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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특검연장 거부한 황교안, 역시 초록은 동색

ⓒ 오마이뉴스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 겸 국무총리가 27일 박영수 특별검사팀이 요청한 수사기간 연장을 승인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예상은 빗나가지 않았다. 기대했던 특검 연장이 무산되자 야권과 시민사회는 실망과 분노를 토해냈다. 야4당은 특검 연장을 거부한 황 대행을 일제히 비난하며 특검법을 직권상정해서라도  수사기간을 연장해야 한다고 정세균 국회의장을 압박하고 나섰다. 이와 함께 바른정당을 제회한 야3당은 황 대행에 대한 탄핵을 추진하겠다고 결의했다. 


범시민사회 역시 황 대행을 향해 날선 비판을 잇달아 쏟아냈다. 참여연대·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법인권사회연구소·한국여성단체연합 등 시민단체들은 성명을 내고 국정농단 사태의 철저한 진상규명을 바라는 시민들의 요구를 저버린 황 대행을 즉각 탄핵하고, 새로운 특검법을 통과시켜 수사를 계속 이어가야 한다고 주장했다.

황 대행의 특검연장 거부 파장이 거세지는 모양새다. 당연하다. 황 대행이 특검수사가 연장돼야 할 당위를 짓밟았기 때문이다. 특검의 수사기간이 연장돼야 하는 이유는 두말할 것도 없이 국정농단 사건의 실체를 명명백백하게 밝혀내기 위해서다. 특검이 아직 규명하지 못한 사안이 산적해 있고, 박 대통령 측이 조직적·고의적으로 수사를 방해해왔던 만큼 특검의 수사기간 연장은 필수불가결한 것이다. 70%에 가까운 국민들이 특검 연장에 찬성하고 있는 것도 그런 까닭이다.

그러나 황 대행은 다수 국민의 뜻인 특검연장을 끝내 수용하지 않았다. 그것도 도무지 납득할 수 없는 이유를 대면서 말이다. 황 대행은 이날 홍권희 총리 공보실장을 내세워 특검연장을 수용하지 않은 이유를 장황하게 설명했다. 그런데 그 이유들이 궁색하고 치졸하기 그지 없다. 하나 같이 말이 안되는 억지와 모순, 자가당착으로 점철돼 있는 탓이다.

먼저 황 대행은 "최순실 등 특검법에서 규정하고 있는 주요 사건들의 핵심 당사자와 주요 관련자들에 대해 이미 기소했거나 기소여부를 판단할 수 있을 수준으로 수사가 진행되어, 특검법의 주요 목적과 취지는 달성되었다고 생각한다"고 주장했다. 국정농단의 진상규명을 위한 특검 수사가 이미 충분히 이루어졌다는 뜻이다. 그러나 이는 사실과 전혀 다르다. 


무엇보다 이번 사건의 가장 핵심 수사 대상인 박 대통령에 대한 수사는 전혀 이루어지지 않았다. 청와대에 대한 압수수색도 불발됐고, 삼성을 제외한 SK·롯데·CJ 등 대기업들에 대한 뇌물 혐의 수사도 전혀 손을 대지 못했다. 구속영장이 기각된 우병우 전 민정수석에 대한 수사나 세월호 7시간에 대한 수사 역시 마찬가지다. 특검이 밝혀낸 부분도 있지만 그렇지 못한 부분도 상당하다. 특검이 수사기간 연장 요청을 한 이유도 바로 그 때문이다.  

황 대행은 수사가 끝나지 않은 사안들의 경우 검찰이 특검수사 결과를 토대로 수사하면 된다는 입장을 밝히기도 했다. 그러나 검찰이 엄중하고 충실하게 수사를 이어갈  것이라는 황 대행의 주장은 애초 특검이 출범한 이유가 검찰 수사에 대한 불신 때문이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는 격이나 다름이 없다. 검찰 수사가 미진하다고 판단되면 특검을 다시 추진할 수도 있다고 말한 대목 역시 마찬가지다. 국민이 바보가 아닌 이상 눈 가리고 아웅하려는 황 대행의 저의를 모를 리가 없다. 


ⓒ 오마이뉴스


무엇보다 황당한 것은 특검 수사가 조기 대선에 영향을 줄 수 있기 때문에 수사 시간을 연장할 수 없다고 밝힌 대목이다. 황 대행의 인식대로라면 검찰 수사 역시 다를 것이 없다. 그 역시 대선에 영향을 끼치기 때문에 대선이 끝날 때까지 수사를 하지 말아야 한다. 그러나 황 대행은 특검연장을 거부하며 남은 부분은 검찰이 수사하면 된다는 논리를 폈다. 지독한 모순이자 이율배반적 행태다. 오랜 고심 끝에 내린 결론이라니 한심하다고밖에는 달리 할 말이 없다.


특검연장 승인에 관한 법리적 해석도 논쟁거리다. 수사 기간 연장의 주체가 대통령이 아닌 특검이라고 보는 시각도 존재하기 때문이다. 실제 특검법 제9조3항에 따르면, 수사가 미흡하거나 공소제기 여부를 결정하기 어렵다고 판단될 시 그 사유를 보고하고 대통령의 승인을 받아 수사 기간을 1회에 한해 30일 연장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그런데 특검법에 적시된 '대통령의 승인을 받아'란 대목이 특검연장의 요건이 충족되면 승인해야 하는 '기속재량 행위'라고 봐야 한다는 것이다.

판사 출신인 박범계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수사가 미진한 경우'나 '공소제기 여부를 결정하지 못하는 경우' 등 기간 연장의 필요성을 판단하는 주체는 특검이고, 이 요건이 충족될 경우 대통령은 반드시 승인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에 따르면 특검법 제9조3항의 내용이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의 근거가 될 수는 없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수사 기간 연장을 결정하는 주체는 대통령이 아닌 특검이라는 의미로, 법리적 논쟁이 있는 황 대행의 특검 연장 거부권 행사는 논란의 소지가 다분하다는 뜻이다. 

이밖에도 정치권과 법조계 안팎에서는 황 대행의 거부권 행사가 대통령의 권한행사를 넘어선다는 지적도 나온다. 황 대행이 국민에 의해 선출된 대통령이 아니라 일시적인 권한대행일 뿐이기 때문에 권력행사에 문제가 있다는 것이다. 이는 청와대에 대한 법원의 압수수색 영장을 집행하려던 특검의 행위를 황 대행이 방해했을 당시에도 불거졌던 문제다. 이처럼 대통령 권한대행으로서 황 대행의 권리행사 자체에 논쟁의 여지가 많은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황 대행은 특검연장을 단호히 거부했다. 그 이유는 어렵지 않게 짐작해 볼 수 있을 것이다. 본래 '초록은 동색이며, 가재는 게 편'이라 하지 않던가. 그동안 '박근혜의 아바타'라 평가 받아온 황 대행에게 특검연장을 승인해야 할 이유 따위는 애시당초 존재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괴멸 직전에 빠진 보수진영의 대안으로 떠오른 황 대행이 그들을 등지는 위험부담을 감수하면서까지 특검연장을 수용할 리가 만무한 까닭이다.  


다수 국민의 절대적 신임을 받아온 박영수 특검팀이 특검연장 거부라는 암초에 부딪히며 수사를 마무리하게 됐다. 지난 3개월 동안 국정농단의 실체를 밝히기 위해 쉬지 않고 달려온 특검의 놀라운 분투, 그리고 특검을 향한 국민의 뜨거운 관심과 성원을 생각하면 허탈감이 결코 적지 않다고 할 것이다. 그러나 끝날 때까지 끝난 것이 아니다는 말도 있다. 설사 특검이 종료된다 하더라도 국정농단의 진상이 규명되길 바라는 국민의 염원까지 좌초된 것은 아니다. 오히려 황 대행의 몽니와 특검연장 거부가 그동안 특검 연장에 미온적이었던 야권의 각성을 이끌어내고 시민사회의 거센 분노를 촉발시킬 가능성도 높다. 아직 실망하기는 이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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