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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통합론 모락모락, 바른정당의 진짜 문제가 뭐냐면

ⓒ 오마이뉴스


분위기가 심상찮다. 불과 열흘 사이에 대중적 인지도가 높은 당내 유력 정치인 두 사람이 연달아 사달이 났다. 한 사람은 사업가로부터 수천만원의 금품을 받은 의혹에 휘말리다 당 대표직에서 물러났고, 다른 한 사람은 예기치 않게 터진 아들의 필로폰 투약 파문으로 고개를 떨궈야 했다. 일각에서는 굿이라도 벌여야 하는 것 아니냐는 우스갯 소리마저 들린다. 앞길이 '산 넘어 산'인 바른정당 얘기다.

남경필 경기지사의 아들이 17일 필로폰 투약 혐의로 체포되자 바른정당은 또 다시 발칵 뒤집혔다. 지난 7일 이혜훈 전 대표가 불명예스럽게 퇴진한 데 이어, 그 여파가 채 가시기도 전에  남경필 지사 아들의 마약 사건이 터졌기 때문이다. 이혜훈 전 대표 금품수수 의혹, 유승민 비대위원장 추대 무산 등 당내 분위기가 어수선한 상황에서 터진 마약 사건으로 바른정당 내부는 그야말로 초상집 분위기다.

이혜훈 전 대표의 사퇴 이후 바른정당은 자강이냐 아니면 자유한국당과의 통합이냐를 두고 내부적 갈등과 혼선을 겪고 있는 상태다. 유승민 비대위 체제가 무산되는 과정에서 자강론자와 통합론자 사이의 입장 차이가 확연히 드러났고, 이러한 내부 갈등은 차기 당 대표와 최고위원을 선출하는 11월 전당대회까지 이어질 것이라는 전망이다. 당장 유승민 의원의 전대 출마 여부를 놓고도 자강론자와 통합론자 사이의 찬반 의견이 팽배하게 맞물려 있는 상황이다.

이런 와중에 또다시 당의 이미지를 실추시키는 대형 악재가 터진 셈이니 바른정당 내부가 뒤숭숭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여기에 일각에서는 연이어 터진 사건들이 우연이 아니라는 '음모론'까지 제기되고 있는 실정이다. 바른정당을 흡수통합하겠다는 의지를 공공연하게 내비쳐온 한국당이 내년 지방선거를 앞두고 대표적인 자강론자인 이혜훈 전 대표와 남경필 지사에 대해 이른바 작업(?)에 들어갔다는 것이 세간에 퍼지고 있는 음모론의 얼개다.


통합론의 대표 격인 김무성 의원이 보수통합의 물꼬를 트기 위해 활동을 재개한 시점도 공교롭다. 김무성 의원은 지난달 30일 정진석 한국당 의원과 '열린 토론, 미래'라는 의원 연구모임을 출범시켰다. 그런가 하면 당이 사당화될 우려가 있다며 유승민 비대위 체제를 반대하기도 했다. 이를 두고 김무성 의원이 한국당과의 통합을 위해 본격적 행보에 나선 것 아니냐는 분석이 나온다. 이런 상황에서 자강론자인 이혜훈 전 대표와 남경필 지사가 갑작스레 곤경에 빠지자, 그 배후에 한국당이 있는 것이 아니냐는 음모론이 퍼져가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음모론'의 진위 여부와 상관없이 바른정당이 겪고 있는 수난(?)은 결국 그들 스스로 자초한 측면이 강하다. 국정농단 사태와 탄핵정국에서 한국당에서 떨어져나온 바른정당은 '건강하고 따뜻한 보수'를 천명하며 승부수를 걸었다. 시대흐름과 동떨어진 색깔론, 망국적 지역주의에 기대지 않는 정책과 노선으로 유권자의 마음을 얻겠다는 복안이었다. 이를 위해 전국순회 토론회를 개최하는 등 시민들과 적극적인 소통에 나서기도 했다.


ⓒ 오마이뉴스


그러나 결과적으로 바른정당은 한국당과의 보수적자 경쟁에서 앞서나가지 못하고 있다. 한국당과의 차별화를 통해 보수의 가치를 새롭게 재정립하겠다고 공언했지만 국정농단 사태와 탄핵 책임론에 대해서만 의견이 갈릴 뿐, 정책과 이념 등에서 두 당 사이에는 큰 차이점이 없다. 바른정당이 그동안 토론회나 콘서트 등 다양한 방법을 통해 참 보수의 가치를 정립하기 위해 노력해왔다는 점을 감안하면 이는 전략의 차원을 넘어 결국 당 정체성의 문제라는 것을 시사해준다.

실제 각론으로 들어가면 바른정당과 한국당 사이의 구분이 쉽지 않다. 경제관, 안보관은 물론이고 시대정신이라 할 수 있는 적폐청산에 대한 입장도 두 당은 대동소이하다. 조기대선으로 인수위 없이 출범한 특수성은 아랑곳하지 않고, 문재인 정부의 인사와 정책은 무조건 반대부터 하고 보는 기조 역시 똑같다. 추가경정예산부터 시작해서 김이수 헌재소장 임명동의안 부결에 이르기까지 바른정당은 한국당과 찰떡 공조를 유지하고 있는 모양새다. 사정이 이러니 도대체 바른정당이 한국당과 뭐가 다르냐는 비판이 당안팎으로부터 터져 나온다.

무너진 보수의 가치를 바로 세우겠다며 호기롭게 뛰쳐나간 이상 바른정당의 성패는 전적으로 그들이 이전과 얼마나 달라진 모습을 보여줄 수 있느냐에 달려 있었다. 그런 면에서 바른정당은 패권에 집착하는 당리당략적 구태정치를 멀리하고, 보편적 상식을 바탕으로 한 합리적 보수의 모습을 보여줄 필요가 있었다. 그렇게 함으로써 한국당에 등을 돌린 보수층과 무당층을 적극적으로 끌어안아야 했다는 의미다.

한국당과의 차별화에 당의 미래가 달려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이는 지극히 당연한 수순이었다. 조직과 세력 등 모든 면에서 열세인 바른정당이 한국당과의 보수적자 경쟁에서 승리하기 위해서는 대안정당으로서의 면모를 확실히 보여주는 길 외에는 달리 방법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모두가 알다시피 바른정당은 그 길을 가지 못했다. 합리적 개혁 보수의 길을 가겠다며 창당한 이 정당은 이제 당의 존립과 진로를 두고 심각한 고민을 해야 하는 궁색한 처지가 됐다.

바른정당이 겪고 있는 위기는 인물 및 전략 부재, 취약한 조직 기반, 역량 및 정책 능력 부족 등 다양한 요인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다. 그러나 보다 본질적인 이유는 그들이 창당의 명분으로 내걸었던 합리적 개혁보수의 모습과 상충되는 정치 행보를 보여왔기 때문일 것이다. 안타깝게도 바른정당에는 정치공학에 매몰되지 않는 합리적 보수, 사회의 모순과 부조리를 혁신하는 개혁적 보수, 사회적 약자와 소외층을 살피는 따뜻한 보수의 면모가 잘 드러나지 않는다.

대신 뚜렷한 명분과 이유 없이 정부 인사와 정책을 반대하고, 대통령과 여당의 헛발질에 편승해 정치적 이득을 도모하려는 정략적 행태만이 도드라져 보일 뿐이다. 창당 전이나 이후나 다를 바가 별로 없는 모습이다. 간판만 바꿔 달았을 뿐 정작 중요한 당의 정체성과 노선은 달라지지 않았다는 뜻이다. 이런 와중에 바른정당은 국정농단과 탄핵 사태의 공동정범인 한국당과 공조해 문재인 정부의 개혁과제를 가로막고 있다는 비판까지 받고 있다. 다르다는 것을 죽기살기로 보여줘도 시원찮을 판에 외려 한국당과 한 몸인 것처럼 움직이고 있는 것이다.

본래 하나였기에 두 당은 정책과 이념, 노선 등에서 서로 큰 차이가 없다. 정부 정책에 대응하는 기본적인 전략과 전술 또한 엇비슷하다. 이런 상황에서 창당정신마저 묘연해진 바른정당이 합리적 개혁 보수정당으로 거듭날 가능성은 그리 높아보이지 않는다. 당안팎에서 통합론이 모락모락 피어나고 있는 이유도 이와 같은 현실론과 무관하지 않을 터다. 이럴 것이라면 바른정당이 굳이 외따로이 딴 살림을 차릴 필요가 없다. 보수우파가 득실대는 이 나라 정치의 효율성을 위해서라도 그렇다. 한마디로 '공급 과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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