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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통일대박' 부르짖던 한국당, 평양선언 비준은 왜 비난하나

문재인 대통령이 23일 국무회의 심의를 거쳐 9월 '평양공동선언'(평양선언)과 '판문점 선언 이행을 위한 군사분야 합의서'(군사분야 합의서) 비준에 서명하자 정치권이 후끈 달아오르고 있다.

더불어민주당과 평화민주당, 정의당 등은 즉각 환영의 뜻을 나타내며 국회에 계류 중인 판문점선언의 비준 동의를 요구하고 나선 반면 자유한국당과 바른미래당은 문 대통령이 국회를 무시했다며 반발하고 있다. 

문 대통령은 이날 오전 청와대에서 주재한 국무회의에서 "남북관계 발전과 군사적 긴장 완화는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를 더욱 쉽게 만들어 촉진하는 역할을 하게 될 것"이라며 "우리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보호하는 길일뿐만 아니라 한반도 위기요인을 없애 우리 경제에도 도움이 될 것"이라고 비준 배경을 설명했다. 

비핵화 추진, 남북간 적대행위 금지, 상호교류 협력 증진, 철도·도로 연결, 이산가족 상봉, 김정은 국무위원장 답방 등 남북관계를 획기적으로 발전시킬 수 있는 내용들이 포함돼 있는 평양선언과 비무장지대 GP 철수, 서해 완충지대 설정, 비행제한구역 설정 등 군사적 충돌을 방지하기 위한 방안들이 명시돼 있는 군사분야 합의서 비준을 통해 한반도 긴장완화와 평화진작의 기틀을 마련할 수 있게 됐다는 의미다. 


ⓒ 오마이뉴스


그러나 여야의 입장은 극명하게 갈렸다. 민주당·평화당·정의당 등 범진보진영은 한반도 평화와 남북교류협력을 위한 당연한 조치라며 일제히 반겼고, 한국당·바른미래당 등 보수진영은 불편한 속내를 감추지 않았다. 판문점선언과 달리 국회의 동의 절차 없이 평양선언과 군사분야 합의서가 비준되자 이를 재가한 문 대통령을 향해 공세의 수위를 높이고 있는 것이다.


김성태 한국당 원내대표는 이날 기자들과 만나 "국민을 속이고 국회를 무시한 처사"라며 "남북 정상회담 부속물인 판문점 선언은 국회 비준 동의를 받아야 된다고 하고, 실제적 알맹이에 해당하는 평양공동선언과 군사분야 합의서는 국회 비준없이 청와대에서 대통령이 비준하는 행위 자체가 대통령이 독단과 전횡을 일삼는다는 방증"이라고 맹비난했다. 

이종철 바른미래당 대변인 역시 논평에서 "판문점선언 비준동의안은 국회에 계류시켜 놓은 상태에서 구체적인 후속 합의 성격의 평양선언을 직접 비준하는 것은 순서에 맞지 않다"며 "문 대통령이 평양선언과 군사분야 합의서를 비준하기 전에 판문점선언 국회 비준 동의안을 거둬들이고 일괄 처리했어야 했다"고 지적했다.  

평양선언과 군사분야 합의서의 토대라 할 수 있는 판문점선언이 국회 비준 동의를 기다리고 있는 상황에서 이를 먼저 의결한 것은 앞뒤 순서가 맞지 않다는 비판이다. 국가안보와 관련된 중차대한 문제이니만큼 국회와 더 긴밀히 소통하고 협력했어야 했다는 얘기다. 

틀린 말은 아니다. 평양선언과 군사분야 합의서가 국회 비준 사안이 아니라고 판단한 법제처의 유권해석과 "평양공동선언은 그 자체로 독자적인 선언이어서 문서에 담긴 내용 자체로 효력이 발생한다"는 김의겸 청와대 대변인의 해명을 감안한다 해도 과정이 매끄럽지 못했다. 판문점선언이 국회에 계류 중인 상태에서 후속조치라 할 수 있는 평양선언을 앞서 비준한 것 역시 순서가 어긋나 보이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보수야당, 그 중에서도 한국당이 이를 비난할 자격이 있는지는 한번 생각해 볼 일이다. 판문점선언의 국회 비준 동의를 누구보다 강력하게 막아서고 있는 주인공이 바로 한국당이기 때문이다. 

지난 9월 11일 국회에 제출된 판문점선언 비준 동의안은 아직까지 상임위 문턱도 밟지 못하고 있다. 청와대의 거듭된 요청에도 불구하고 한국당은 이런저런 이유를 내세워 비준 절차를 미루고 있다. 

지난 10일 문 대통령이 수석보좌관회의에서 "한반도 상황이 빠르게 앞으로 나아가고 있는데 국회는 판문점선언 비준 동의안을 상임위에 상정도 하지 않은 채 제자리에 멈춰있다"며 다시 한 번 국회의 초당적 협조를 당부했음에도 한국당은 꿈쩍도 하지 않고 있다. 

이와 관련 평양선언과 군사분야 합의서 비준이 의결된 직후 나온 정의당의 논평을 보자. 

최석 대변인은 "야당 일각에서 하위 합의문을 먼저 의결하는 것은 국회를 무시하는 행위라 비난하고 있다"며 "그러나 하위 합의문이 먼저 의결되게 만든 장본인은 국가의 중요한 미래를 결정할 판문점선언을 정쟁거리로 만들어 아직까지 동의하지 않고 있는 이들이다"라고 비판했다. 

이어 "한반도 평화 앞에서도 자신들의 이익만 생각하는 정치 무리들을 국민들이 똑똑히 지켜보고 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할 것"이라고 꼬집었다. 남북관계 발전과 군사적 긴장 완화에 크게 기여할 것이라 평가받는 판문전선언 비준 동의에 나 몰라라 하고 있는 '이들'에게 쓴소리를 날린 것이다. 


ⓒ 오마이뉴스


판문점선언의 국회 비준을 지연시키고 있는 한국당의 행태는 마치 개헌안 처리 국면의 데자뷰를 보는 것 같다. 모두가 알고 있는 것처럼 지난 대선 당시 문재인 후보를 겨냥해 개헌의지가 없다고 비판하며 대대적인 공세에 나섰던 한국당은 대통령 선거가 끝나자 언제 그랬냐는 듯 '지방선거-개헌 국민투표' 공약을 슬그머니 파기시켜 버렸다. 

우여곡절 끝에 문을 연 국회 개헌특위 역시 정치공방 속에 1년이 넘도록 공회전만 거듭했다. 대선공약 이행을 위해 문 대통령이 '대통령 개헌안'을 발의했지만 이마저도 결국 정쟁의 대상이 됐다. 한국당은 이를 '관제 개헌', '사회주의 개헌'이라 비난하며 결사적으로 막아섰다. 

판문점선언 국회 비준 역시 마찬가지다. 판문점선언은 한반도 비핵화와 남북관계 개선의 획기적 전환점을 마련한 역사적 합의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미국은 물론이고 중국·러시아 등 전 세계의 주목과 찬사가 쏟아진 배경이었다. 다수 국민 역시 판문점선언에 절대적 지지를 보내고 있다. 국회 비준 동의에 찬성하는 여론도 압도적으로 높은 상태다. 

그러나 한국당은 요지부동이다. 한반도의 항구적인 평화정착과 남북 공동번영을 위해 여야가 총의를 모야야 할 시기임에도 여전히 딴죽만 부리고 있다. 그들은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통일대박'을 부르짖으며 남북관계 개선과 대북투자가 경제·사회에 미치는 영향이 얼마나 큰지 입이 닳도록 찬양하던 당사자들이다.

한국당 조직강화특별위원회 외부위원으로 선임된 전원책 변호사는 16일 <경향신문>과 인터뷰에서 자기희생이 없는 한국당을 가리켜 "우리가 살려면 스스로를 봐야 한다. 내가 정말 거울 하나씩 다 선물해주고 싶다"고 했다. 평양선언과 군사분야 합의서 비준을 '국회 무시'라 비난하고 있는 한국당에게 꼭 들어맞는 소리가 아닌가 싶다. 부디 스스로를 돌아보기 바란다. 국회의 권위와 위상을 무너뜨리고 있는 건 대통령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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