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사회

태완이 법, 공소시효 폐지의 빗장을 열까?

영화 '살인의 추억', '그놈 목소리', '아이들', '내가 살인범이다', '몽타주', '공범'의 공통점은 뭘까. 영화에 관심이 많은 사람들이라면 단번에 알아차렸을 지도 모르겠다이 영화들은 모두 동일한 소재를 다루고 있다는 공통점이 있다. 공소시효가 곧 만료되는 살인사건을 중심으로 범인과 피해자 가족간의 치열한 사투가 긴박하게 펼쳐지는 것이다.

물론 이 영화들은 모두 미제사건으로 남겨진 채 엔딩크레딧이 올라간다. 피도 눈물도 없는 살인범과 그 뒤를 쫒는 형사, 그리고 그 곁에서 망연자실해 하는 피해자 가족 사이의 숨막히는 혈전의 승자는 언제나 악마같은 살인범의 몫이다


영화를 보는 내내 관객은 피해자의 입장과 자신을 동일시하게 된다. 분노하고 경악하고, 때로 아파하고 절망하며 깊은 슬픔에 잠긴다. 보편적 인간이라면 누구나 빠져들게 되는 애처로운 동병상련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영화는 냉정하고 또 냉정하다. 범인이 몰락하는 카타르시스는 절대로 안겨주지 않는다. 살인범의 비릿한 웃음과 절망에 빠진 피해자 가족들의 모습이 교차 편집되는 강열한 여운만을 남겨 줄 뿐이다. 이쯤되면 우리는 한가지 커다란 의문에 빠져든다. 인정사정없는 희대의 살인마에게도 공소시효는 필요한 것인가?






공소시효는 일정한 기간이 경과하면 사건에 대한 국가의 공소권을 소멸시켜 공소자체를 하지 못하도록 하는 제도를 말한다. (해외도피 중일 경우에는 그 기간만큼 공소시효에서 배제된다

공소시효가 존재하는 이유는 다음과 같다.


1. 재판의 공정성 때문에 필요하다. 범죄가 발생한 후 오랜 시간이 지나면, 당사자들의 사건에 대한 기억은 부정확해지고 증거가 제대로 보존되지 않을 가능성이 크므로 재판의 공정성을 담보하기 어려워진다.

2. 처벌의 필요성이 감소되기 때문에 필요하다. 범죄가 발생한 후 시간이 흐를수록 범죄에 대한 피해자의 감정이나 사회적 감정이 진정되어 처벌의 필요성이 줄어드는데 반해, 사건 이후 형성된 사실상태를 존중하여 사회와 개인생활의 안정을 도모할 필요성은 증가한다.

3. 범인이 장기간의 도피생활로 인해 처벌을 받는 것과 유사한 상태에 있을 것이며 국가의 태만으로 인한 책임을 범인에게만 돌리는 것은 부당하므로 필요하다.

4. 주로 수사기관의 입장에서 미해결사건에만 계속 매달려서 수사할 수 없으므로 필요하다. 범죄는 지속적으로 발생하는데 오래전에 발생한 범죄에 대하여 수사를 계속하는 것은 수사의 효율성과 적정성을 떨어뜨린다. (위키백과에서 인용)


공소시효는 지금까지도 한창 논란이 되고 있는 제도다공소시효의 필요성을 주장하는 측과 공소시효의 폐지를 주장하는 측이 치열한 법리적 윤리적 논쟁을 거듭하고 있다대개의 논쟁이 그러하듯 양측의 주장은 서로 나름 타당한 논거를 갖추고 있다범죄자의 인권과 피해자의 억울함 사이에서 이 논쟁은 줄다리기가 계속하고 있는 중이다.

그러나 대체적으로 반인륜적 범죄나 흉악범에 대해서는 공소시효의 연장이나 폐지를 해야 한다는 주장이 점점 설득력을 얻고 있는 상황이다지난 2007 '이형호 군 유괴 살해사건'을 다룬 영화 '그놈 목소리'가 상영된 이후흉악범에 대한 공소시효를 연장하라는 여론이 빗발쳤다이에 정치권은 형사소송법을 개정해서 종전 15년이었던 살인죄의 공소시효를 25년으로 연장했다


한 가정을 파탄에 이르게 하는 반사회적이고 반인륜적인 흉악범죄에 대해서만큼은 공소시효를 연장하고 폐지해야 한다는 것에 사회적 공감대가 형성되고 있는 것이다.







이와 관련해 어제(20) 국회 법제사법위 소속 새정치민주연합 서영교 의원이 살인죄에 대한 공소시효 폐지를 골자로 하는 개정안을 대표 발의해 눈길을 끈다. 개정안에 따르면 살인죄에 대해서는 공소시효를 폐지하고, 살인 이외의 중범죄의 경우 DNA 등 과학적 증거가 확보되면 범죄자를 특정할 수 없는 사건이라도 '5년 이상'의 형에 해당하는 사건은 공소시효가 10년간 중단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서영교 의원이 이 법안을 발의한 배경에는 지난 1999 520일 대구시 동구 골목길에서 김태완 군(당시 6)이 한 남성이 뿌린 황산으로 전신에 중화상을 입고 49일간 투병 끝에 숨진 안타까운 사연이 있다


이 사건은 2007년 법개정 시행 전에 발생한 범죄에 대해서는 기존대로 15년의 공소시효가 인정된다는 규정에 의거해 작 77일로 미제사건으로 남겨졌. 지난해 수사당국은 공소시효를 앞두고 이 사건의 재수사를 펼쳤지만 객관적 증거를 찾지 못해 불기소 처분을 내린 바 있다.


'태완이 법'으로 명명된 이 법안의 발의로 공소시효의 존폐 논란이 다시금 부각할 가능성이 높아졌다. 공소시효를 둘러싸고 '존속' '폐지'를 주장하는 양측의 입장이 서로 팽팽하게 맞서고 있기 때문이다. 언급한 대로 양측의 주장은 타당한 논거를 내세우고 있다. 양측이 오랜 논쟁에도 불구하고 평행선을 달리고 있는 이유다.







그러나 나는 공소시효의 연장과 폐지를 반대하는 사람들이 생계형 범죄나 과실형 범죄가 아닌 반사회적 흉악범에게도 같은 논리를 적용하는 것에는 동의하기 힘들다


물론 가해자의 인권 역시 존중되어야 한다는 점, 증거가 사라져 객관적이고 공정한 재판이 어렵다는 점, 시간이 갈수록 가벌성이 감소한다는 점 등 공소시효의 연장과 폐지를 반대하는 사람들이 내세우는 논거들을 이해 못하는 바는 아니다. 그러나 그것들 못지않게 중요한 것은 피해자와 피해자 가족들의 억울함이다.

우리는 가해자의 가벌성이 감소한다고 해서 피해자 가족의 상처와 고통까지 감소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오히려 시간이 갈수록 그들은 더한 악몽 속에서 지옥과도 같은 날들을 살아가야 할 지도 모른다. 저들이 받은 상처와 고통에는 공소시효가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새정치민주연합 서영교 의원이 대표발의한 '태완이 법'을 계기로 반사회적이고 반인륜적인 흉악범죄에 대한 공소시효 연장과 폐지 문제가 조금 더 진지하게 논의되기를 기대해 본다.



이미지 출처 : 구글 이미지 검색




 바람부는언덕의 정치실험에 여러분을 초대합니다 (클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