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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최저임금 인상으로 촉발된 '乙乙 갈등', 누가 부추기고 있나

최저임금위원회가 내년도 최저임금을 올해보다 10.9% 인상된 8350원으로 의결한 가운데 이를 둘러싸고 각계의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충돌하고 있습니다. 노동계와 시민단체는 문재인 대통령의 대선공약인 2020년 최저임금 1만원 인상이 사실상 물건너 갔다며 반발하고 있고, 중소기업과 자영업자들은 생존권이 위협받게 됐다며 아우성입니다. 

최저임금 인상은 이해당사자 간의 격렬한 논쟁을 불러일으키는 화두입니다. 그런 이유로 최저임금을 산출하는 최저임금위는 매해 커다란 진통을 겪어왔습니다. 올해도 예외는 아니었습니다. 동결을 주장하는 사용자위원 측과 1만790원을 주장하는 근로자위원 측의 입장이 팽팽하게 맞서며 격론이 펼쳐졌습니다. 

올해는 특히 문 대통령의 2020년 최저임금 1만원 인상 공약을 둘러싸고 사용자위원과 근로자위원 사이의 기싸움이 그 어느 때보다 치열했습니다. 그러나 모두가 아는 것처럼 양측의 인식 차이는 끝내 좁혀지지 못했습니다. 급기야 양측의 갈등은 사용자위원 전원이 퇴장한 상황에서 최저임금이 결정되는 초유의 사태로 이어지게 됩니다. 

최저임금위의 모습은 최저임금 인상과 관련해 현재 벌어지고 있는 사회적 갈등의 축소판이나 다름이 없습니다. 우리 사회는 저임금 노동자의 생존권을 위해 최저임금을 인상해야 한다고 말하는 사람들과 중소기업과 영세자영업자 등 소상공인 보호를 위해 동결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공존하고 있습니다. 

흥미로운 것은 노동계와 소상공인 모두 최저임금 문제를 자신들의 '생존권'과 연계시키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최저임금이 인상되면 소상공인이 직접적인 타격을 받게 되고, 최저임금이 인상되지 않으면 저임금 노동자의 삶이 크게 흔들립니다. 


ⓒ 오마이뉴스

최저임금 인상 문제를 놓고 노동계와 소상공인들 사이의 입장이 이처럼 극명하게 엇갈리고 있을 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언론의 역할입니다. 사회의 공기( 公器 )로서 언론은 객관적이고 균형있는 보도를 통해 사회적 논란을 최소화 시키기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그러나 최저임금 인상과 관련해 언론은 그와는 정반대의 모습을 보이고 있습니다. 합리적 비판을 넘어 오히려 논란을 부추기는 기사를 계속해서 내보내고 있기 때문입니다. 특히 보수언론은 연일 최저임금 인상을 비판하는 부정적 기사를 쏟아내면서 ' ' 사이의 갈등을 조장하고 있는 모양새입니다.

<조선일보>는 16일 "내년 최저임금도 두 자릿수 인상, 소상공인 비명 외면한 결정"이라는 제목의 사설에서 "올해 16.4% 인상된 최저임금 때문에 저소득층의 일자리가 줄어드는 부작용이 발생했다"며 "노동 약자를 위한다는 최저임금 인상이 저소득층 일자리와 소득을 빼앗는 역설이 확인되고 있다"고 비판했습니다. 

<중앙일보>도 "대통령이 최저임금 1만원 공약 내려놓고 대국민 설득해야"라는 사설을 통해 대부분의 업종이 경기 침체 속에 신음하고 있다고 강조하며, 이런 상황에서 최저임금 인상은 소상공인들이 직면해있는 현실을 외면한 결정이라고 꼬집었습니다. <중앙일보>는 특히 최저임금이 "문 대통령의 '2020년 1만원 달성' 공약에 맞춰 진행돼 왔다"며 "문 대통령이 최저임금 1만원 공약부터 내려놓고 대국민 설득에 나서야 한다"고 지적하기도 했습니다. 

<매일경제> 역시 "최저임금 8350원, 소상공인·中企  존폐 기로 몰렸다"는 사설에서 정부의 최저임금 인상을 강하게 비판했습니다. <매일경제>는 "폐업이냐, 인력 감축이냐를 선택할 수밖에 없는 기로에 섰다"는 소상공인협회의 논평을 인용하며 최저임금 인상으로 중소기업과 영세자영업자들의 생존이 위협받게 됐다고 강조했습니다. 


이처럼 보수언론의 보도 행태는 한결 같습니다. 최저임금 인상으로 중소기업은 물론이고 단기고용과 임시직이 대부분인 도·소매업, 음식·숙박업 등을 운영하는 소상공인들이 직격탄을 맞게 됐다고 비판하고 있습니다. 또한 관련 직종에서 일하는 노동자의 일자리가 줄어들게 돼 오히려 저소득층과 취약계층의 삶이 더욱 악화될 것이라고 경고하고 있습니다.

보수언론의 주장은 충분히 일리가 있습니다. 비정규직과 자영업자 비율이 월등히 높은 우리나라의 노동 현실을 감안하면 최저임금 인상으로 소상공인과 저임금 노동자들이 큰 타격을 받게 될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입니다. 소상공인협회와 중소기업중앙회, 편의점가맹점협회 등이 최저임금 인상에 강하게 반발하고 있는 것도 그런 맥락에서입니다. 

정부 대책이 미흡해 보이는 것도 사실입니다. 사회보험료 지원 확대, 일자리안정자금 등 보완책을 강구해 두었지만 아직까지 실질적인 효과가 나타나고 있지 않다는 것이 대체적인 평가입니다. 최저임금 인상에 따른 부작용이 충분히 예상되는 상황에서 정부가 낙관론에 기대 실제적인 대책 마련에 소홀했던 것이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입니다. 

그러나 이같은 비판에도 불구하고 보수언론의 보도 행태는 의도적으로 여론몰이를 하고 있다는 인상을 지울 수가 없습니다. 보수언론이 최저임금 인상의 부정적인 측면만 앞다퉈 부각시키고 있을 뿐 저임금 노동자와 소상공인의 생존을 위협하는 본질적 원인에 대해서는 철저히 침묵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보수언론이 연일 최저임금 인상을 비판하고 있지만 소상공인의 생존을 위태롭게 만드는 것들은 그뿐만이 아닙니다. 이명박·박근혜 보수정부 9년 동안 대기업 우선 정책에 펴오면서 그 피해를 직적접으로 받은 당사자들이 바로 중소기업입니다. 출자총액 제한 폐지 등 각종 규제 완화로 대기업이 곳간을 불리는 동안 중소기업은 대기업의 불공정 거래 행위 등 갖은 갑질 횡포에 신음해야 했습니다. 

영세자영업자의 경우 역시 크게 다를 바 없습니다. 그들은 신음은 비단 최저임금 인상 때문만이 아닙니다. 천정부지로 치솟는 임대료와 프렌차이즈 본사의 과도한 비용전가, 높은 카드 수수료, 골목상권까지 넘보는 대기업의 무분별한 문어발 확장 등이야말로 영세자영업자를 울상짓게 만드는 실질적인 요인이라는 것이 중론입니다. 

제대로 된 언론이라면 최저임금 인상의 부작용 뿐만이 아니라 소상공인들의 생존에 막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는 사회구조적인 모순과 병폐에 대한 냉철한 비판도 함께 제기해야 마땅할 것입니다. 그러나 보수언론은 이같은 사실은 도외시한 채 마치 최저임금 인상 때문에 소상공인들의 생존권이 위협받고 있다며 '乙乙 갈등'을 부추기고 있습니다. 


ⓒ 오마이뉴스


여론을 호도하고 있기는 정치권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최저임금 인상 논란이 거세지자 자유한국당과 바른미래당 등 보수야당은 일제히 정부를 비난하고 나섰습니다. 문 대통령의 대선공약 이행을 위해 정부가 무리하게 최저임금 인상에 나서고 있다며 대대적인 공세를 취하고 있는 것입니다. 


윤석영 한국당 수석대변인은 이날 논평을 통해 "대통령 공약을 위해 2년간 29.1%의 최저임금을 올렸다. 750만 소상공인 자영업자들이 망연자실해 하고 있다"고 비판했습니다. 김관영 바른미래당 원내대표 역시 이날 비상대책위원회의에서 "착한 정치 컴플렉스에 빠져 청와대가 최저임금위의 결정에 그저 따르겠다고 하는 것에 심사숙고해야 한다"며 "청와대는 재심의 결정을 내려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보수야당은 보수언론의 보도내용을 앵무새처럼 그대로 반복 재생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보수야당의 주장이 몰염치한 비판이라는 반론도 만만치 않습니다. 지난 대선 당시 홍준표 한국당 후보는 2022년까지, 유승민 후보는 2020년까지 최저임금을 1만원으로 인상하겠다고 공약한 바 있기 때문입니다. 

최저임금 인상은 각자의 이해관계가 복잡하게 얽혀있는 의제입니다. 시각에 따라 다양한 입장이 존재할 수밖에 없습니다. 따라서 이해당사자의 입장과 사회 제반 여건, 경제적 현실 등을 다각도로 숙고해 사회적 합의를 이뤄야 합니다. 문 대통령이 이날 수석·보좌관회의에서 "2020년까지 최저임금 1만원을 이룬다는 목표는 사실상 어려워졌다"고 솔직하게 사과를 한 것도 이같은 현실을 고려했기 때문으로 풀이됩니다. 

최저임금 인상과 관련해 보수언론과 보수야당이 보여주고 있는 모습은, 그러나 '솔직함'과는 거리가 멀어 보입니다. 사회구조적인 문제는 외면한 채 지극히 편향적인 논조로 관련 사실을 호도하는가 하면, 불과 1년 전 자신들이 했던 말은 까맣게 잊은 듯 최저임금 인상 논란을 정치공세의 수단으로 삼으려는 행태를 보이고 있습니다. 

그러나 보수언론의 주장이 공감을 얻으려면 중소기업을 향한 대기업의 불공정 관행과 갑질 횡포, 불평등한 사회경제구조와 시스템에 대한 비판 역시 함께 제기해야 합니다. 보수야당의 공세가 힘을 얻으려면 국회에 계류 중인 '상가임대차보호법 개정안'을 비롯한 각종 소상공인 보호 법안부터 당장 처리해야 마땅합니다. 그러나 현실은 그와는 영 딴판입니다. 


대기업 우선 정책을 앞세웠던 보수정부 9년 동안 저임금 비정규직 노동자가 양산되고 사회적 양극화가 극심해졌다는 건 삼척동자가 다 아는 일입니다. 그럼에도 보수언론과 보수야당은 최저임금 인상이 한국 경제를 망치고 소상공인들을 죽이는 주범이라도 되는 것처럼 논란을 증폭시키고 있습니다. 최저임금 인상 논란에 거품 물고 달려들고 있는 보수언론과 보수야당의 저의가 지극히 의심스러운 이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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