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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청와대가 야당 조롱? 갈수록 가관인 한국당 유체이탈

ⓒ 오마이뉴스

 

문재인 정부 출범 100일 맞아 도입된 국민청원에 대한 보수야당의 비판이 거세지고 있다. 자유한국당과 바른미래당은 최근 청와대가 '정당 해산'과 '국회의원 국민소환제' 국민청원과 관련해 답변을 내놓자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청와대가 국민청원을 이용해 입법부 압박에 나서고 있다는 것이다.

나경원 한국당 원내대표는 13일 국회에서 열린 '재해 및 건전재정 추경 긴급토론회'에서 "우리는 여당과 신뢰를 복원하는 과정을 차곡차곡 쌓아가고 있는데 문재인 대통령이 순방하는 틈에 정무수석과 정무비서관이 정치 전면에 서서 연일 국회를 농락하고 있다"며 "청와대가 야당을 조롱하고 압박하면서 재를 뿌리고 있는데 어떻게 국회를 열 수 있겠느냐"고 날을 세웠다.

청와대를 향한 나 원내대표의 성토는 회의가 끝난 이후에도 이어졌다. 그는 기자들과 만나 "청와대가 진작에 야당에 와서 한번이라도 국회를 열자고 이야기한 적 있나"라며 "야당과 소통하려는 노력은 안하고 야당을 무조건 압박하는 나쁜 정부다. 이런 나쁜 청와대와 같이 국정 운영을 할 수 있겠나"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국회 파행이 장기화되면서 정국이 얼어붙고 있는데도 청와대가 손을 놓고 있다는 지적이다.

황교안 한국당 대표도 이날 최고위원회의에서 "자신들의 실정을 덮고 국민의 심판을 회피하기 위해 꼼수 정치를 하고 있다"라며 "청와대 참모들의 공격이 도를 넘고 있다. 적반하장에 유체이탈이라고 하지 않을 수가 없다"라고 비판했다.

황 대표는 U-20 FIFA 월드컵 결승에 진출한 축구대표팀을 소환하기도 했다. 그는 "기적 같은 승리의 동력으로 원팀 정신을 꼽고 있다"라며 "10대 후반의 청년들도 원팀의 중요성을 아는데 이 정권은 피아식별조차 못 하는 것 같다"라고 꼬집었다. 이어 "경쟁 상대는 야당이 아니다. 야당은 힘을 합쳐 뛰어야 하는 원팀"이라며 "청와대 참모들의 자중과 책임 있는 국정 운영 자세를 엄중히 촉구한다"라고 덧붙였다.

바른미래당도 한목소리를 냈다. 12일 김수민 원내대변인 명의의 논평을 통해 "국민청원을 빌미로 정당해산에 이어 국민소환제까지 언급하는 것은 3권 분립 민주주의 국가에서 나가도 너무 나갔다"라며 "행정부가 국민청원이라는 홍위병을 동원해 입법부를 위협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비판한 것. 청와대가 국민청원 게시판을 정쟁의 도구로 삼고 있다는 주장이다.

청와대 답변에 대한 보수야당의 대응이 매섭고 앙칼지다. 마치 아픈 곳을 건드리기라도 한 것처럼 이구동성으로 청와대 비판에 나서고 있다. 청와대 답변이 도대체 어떻기에 보수야당이 이처럼 맹공을 펼치고 있는 것일까. 문제(?)의 청와대 답변을 한번 살펴보자.

앞서 11일 청와대는 한국당과 더불어민주당 해산 청구 청원에 대해 "정당 해산 청원에 짧은 시간에 이렇게 많은 국민이 참여한 것을 보면 우리 정당과 의회정치에 대한 국민의 준엄한 평가가 내려졌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라며 "국민은 눈물을 훔치며 회초리를 드시는 어머니가 돼 위헌 정당 해산 청구라는 초강수를 뒀다고 생각한다"(강기정 청와대 정무수석)는 답변을 내놓았다.

국민소환제에 대해서도 "대통령도, 자치단체장과 지방의원도 소환할 수 있는데 유독 국회의원에 대해서만 소환할 제도적 장치가 없다는 것은 누가 봐도 상식적으로 납득하기 어렵다"라며 "계류중인 국회의원 국민소환법이 20대 국회를 통해 완성되기를 간절히 바란다"(복기왕 청와대 정무비서관)라고 밝혔다.

어떤가. 그다지 특별한 것은 없어 보인다. 아니, 어찌보면 지극히 당연한 소리 아닌가. 특정 정당을 콕 찝어 비판한 것도, 국회를 압박하거나 조롱한 것이라 보기도 어렵다. 그보다는 국민청원에 담겨있는 민심을 에둘러 설명한 것으로 봐야 하지 않을까. 외려 국회를 향한 따가운 시선을 외면한 채 이를 정치 공세의 빌미로 삼고 있는 건 보수야당일지도 모른다.

패스트트랙 과정과 맞물려 한국당과 민주당에 대한 정당해산 청구 청원이 뜨거운 감자가 됐다. 한국당 해산 청원은 국민청원 사상 최대 인원인 183만 명이 참여했고, 그에 대한 맞불 성격으로 올라온 민주당 해산 청원 역시 33만 명이 동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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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정당 해산 청구심판을 받아들일 가능성이 거의 없다는 것을 그들이 모를 리 없다. 그럼에도 이처럼 많은 사람들이 뜨거운 관심을 보인 이유는 어렵지 않게 짐작해 볼 수 있다. 이전투구나 다름 없는 '동물국회', 아무 일도 하지 않는 '식물국회'에 대한 염증과 분노가 고스란히 투영된 결과일 터다. 겉으로는 '국민', '민생'을 외치면서도 실제로는 밥그릇 싸움에만 몰두하는 국회를 향한 국민의 분노가 극에 달해있다는 것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다.

국민소환제 역시 마찬가지다. 국민소환제는 선출직 공직자가 법을 위반하거나 잘못된 행위를 했을 때 국민 발의로 투표를 통해 재신임을 묻는 제도다. 자치단체장과 지방의회 의원은 대상에 포함되지만 국회의원은 예외다. 심지어 대통령도 탄핵되는 세상이지만, 국회의원의 무능과 일탈을 견제할 장치는 사실상 전무한 셈이다.

국민소환제는 지난 2018년 3월 문재인 대통령의 요청으로 국민헌법자문특별위원회가 마련한 헌법개정안에도 담겨있다. 자문위 개헌안은 국회의원의 임기를 규정한 현행 헌법 45조에 '국민은 국회의원을 소환할 수 있다. 소환의 요건과 절차 등 구체적인 사항은 법률로 정한다'는 별도의 항목을 추가시켰다.

국회의원은 지위나 권한을 남용해 범죄를 저질러도 대법원 형이 확정될 때까지 의원직을 유지할 수 있다. 수없이 많은 특권과 특혜도 그대로 누릴 수 있다. 국민소환제는 이런 맹점을 손질해 보자는 취지다. 그러나 국민소환제는 대통령 개헌안이 '투표 불성립'되면서 없던 일이 됐다. 현재 국회에 계류돼 있는 3건의 법안 역시 처리가 난망이다. 

심드렁한 정치권과 달리 여론은 정반대다. 리얼미터가 CBS 의뢰로 지난달 31일 전국 19세 이상 성인 남녀 504명을 대상으로 국회의원 국민소환제에 대한 찬반 여론을 조사(95% 신뢰수준에 표본오차 ±4.4%포인트)해 6월 3일 발표한 결과에 따르면, '국민의 뜻에 따르지 않는 국회의원을 퇴출하기 위한 장치가 필요하므로 찬성한다'는 응답이 무려 77.5%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자세한 조사개요와 결과는 리얼미터 홈페이지나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고).

이 압도적인 수치는 국회에 대한 국민 불신이 얼마나 높은지를 여실히 보여준다. 국가기관 신뢰도 조사에서 언제나 최하위를 면치 못하고 있는 참담한 현실을 상기한다면 청와대의 답변에 발끈할 것이 아니라 하루 빨리 국회를 정상화 시키는 데 경주해야 하지 않을까. 더욱이 수개월 째 아무 일도 하지 않으면서 세비는 꼬박꼬박 챙기는 국회에 대한 비판이 폭등하고 있는 상황이라면 말이다.

정당 해산과 국회의원 국민소환제 국민청원의 본질이 국회의 본분과 맞닿아 있다는 것은 불문가지다. 경제와 민생, 개혁과제 등 처리가 시급한 현안들이 켜켜이 쌓여있는 데도 당리당략에 휩싸여 쌈박질에만 몰두하고 있는 정치권에 대한 국민적 분노이자 강력한 경고인 것이다.

상황이 이런 데도 보수야당은 "야당과 소통하려는 노력 안하고 야당을 무조건 압박하고 있다", "경쟁 상대는 야당이 아니다. 야당은 힘을 합쳐 뛰어야 하는 원팀이다", "행정부가 국민청원이라는 홍위병을 동원해 입법부를 위협한다"라며 습관처럼 정부 탓, 청와대 탓에 열을 올리고 있다.

불과 얼마 전까지 "청와대가 나설수록 정국이 마비된다. 차라리 뒤로 빠지라"라고 비꼬던 나 원내대표다. 원팀을 강조하는 황 대표는 "김정은 대변인", "좌파독재", "민생 지옥" 등의 잇따른 강성발언으로 한국당의 대정부투쟁을 진두지휘하고 있는 당사자다. 그런가 하면 바른미래당은 국회를 향한 불신과 불만이 고스란히 표출된 국민청원 결과를 놓고 민심과 전혀 다른 해석을 내놓고 있다.

이것이 대한민국 국회의 현실이다. 성난 민심 따위는 전혀 아랑곳이 없다. 국회가 왜 불신의 온상으로 전락하고 있는지에 대한 고민과 성찰 없이 '그들만의 세계'에 푹 빠져 있는 모습이다. 이 장면은 무엇을 말해주고 있나. 

민심을 두려워하지 않는 정치, 선거철에만 반짝 국민에게 고개 숙이는 정치는 이제 그만 끝내야 한다. 10개월 앞으로 다가온 총선이 더욱 중요해진 이유일지 모른다. 특권과 특혜는 마음껏 누리면서도 정작 국민의 요구가 무엇인지 모르는 (혹은 관심조차 없는) 국회가 지속되는 한 '정치개혁'의 간절한 외침은 공염불에 그치고 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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