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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집당폭행 없었다는 군, 이걸 믿으라는 겁니까?

인혁당 사건, 민청학련 사건, 인혁당 재건위 사건은 박정희 군사독재시절 자행된 대표적인 용공조작사건이었다. 박정희 정권이 체제유지와 정권 안위를 위해 조작했던 당시 사건들에서 수사담당자들은 피해자들에게 가혹행위와 고문 등을 자행하며 정권이 원하는 대로 짜맟추기 수사를 감행했다. 


그러나 당시 수사를 진행하며 잔인하고 무자비한 방법들로 피해자들에게 가혹행위와 고문을 일삼았던 전직 중앙정보부 직원 중 누구도 고문 사실을 인정하거나 고백한 사람은 없었다. 구체적인 고문방법과 상황 등에 대한 피해자의 진술이 있었지만 그들은 하나같이 가혹행위와 고문 사실을 부인했다.


당시 현장에 있었던 교도관, 파견경찰, 검찰 서기 등이 가혹행위와 고문 등이 있었음을 확인해 주었고, 고문의 방법 등에 대한 증언까지 나왔음에도 가해자들은 관련 사실을 일관되게 함구했다. 맞은 사람은 있는데 때린 사람이 없는 것이다. 


이 무거운 침묵이 의미하는 것은 두려움과 불안이다. 수십년 전 정권의 도구가 되어 저질렀던 어둠의 실체가 드러나는 것에 대한 두려움과 불안이 저들의 입에 자물쇠를 단단히 채우고 있는 것이다. 





육군은 어제(17일) 자대배치 19일 만에 쓰러져 1년 7개월간 식물인간 상태에 빠졌다가 의식을 되찾은 15사단 구모 이병(22) 사건의 재수사 결과를 발표했다. 육군은 "구 이병 관련 각종 의혹 등에 대해 진실을 규명하기 위해 중앙수사단장 등 22명으로 수사본부를 편성하고 국립과학수사연구원과 분당 서울대병원, 한림대 춘천성심병원 등과 협업해 약 1개월간 재수사를 진행했다"면서 "구 이병과 함께 취사도우미를 지원한 병사들과 목격자들 진술 등을 분석해 볼 때 구 이병 행적이 명확하며 집단폭행은 없었던 것으로 확인됐다"고 밝혔다.


육군은 구 이병 사건을 재수사 하면서 구 이병과 당시 소대원, 지휘계 선상의 간부, 응급후송 의무병과 군의관, 춘천성심병원 의사, 헌병대 수사관계자 등 41명을 대상으로 조사를 벌였다고 밝혔다. (관련기사 보기)


역시나 맞은 사람은 있는데 때린 사람은 없다는 결론이다. 육군의 주장대로라면 1년 7개월간 식물인간 상태에 빠져있던 구 이병이 기적처럼 깨어나서 헛소리를 했다는 것이 된다. 당신이라면 누구의 말을 믿겠는가. 


필자가 서두에 인혁당 사건, 민청학련 사건, 인혁당 재건위 사건의 가해자들을 언급한 것은 그들이 사건의 진상을 고백하고 진실을 밝히기를 꺼려하는 심리적 기저를 말하기 위함이다. 구 이병 구타 사건의 경우도 그와 크게 다르지 않다. 


더구나 언급한 사건들처럼 구 이병 사건 역시 사회적으로 큰 반향을 일으킨 문제의 사안이다. 세상의 주목을 한몸에 받고 있는 사건, 그것도 자신이 가해자 혹은 사건 은폐에 가담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는 당사자라면 관련사실을 인정하거나 고백하기란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닐 것이다. 인간에게는 누구나 과거의 잘못을 인정하지 않으려는 방어기제가 있기 때문이다. 더구나 법적 도덕적으로 무거운 책임을 받게 될 지도 모른다는 심리적 압박이 이해당사자들을 짓누른다면 방어기제는 더욱 공고해지기 마련이다.





육군의 구 이병 사건 재수가 결과가 발표되자 사람들은 대부분 믿을 수 없다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소셜네트워크와 인터넷 여론은 군을 향한 비난과 조롱 일색이다. 군이 한달 여 동안 자체 조사한 결과에 사람들이 전혀 신뢰를 보내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이는 군에 대한 국민 불신이 얼마나 뿌리 깊은지를 여실히 보여주는 방증이다. 사람들은 왜 군을 믿지 못하는 것일까. 



관련 글 ▶ 시사기획 창 '식물인간 이등병'편 보셨습니까? ◀ (클릭)



필자는 지난 11월12일 KBS '시사기획 창'이 보도한 '식물인간 이등병' 사건을 파헤치며 끊임없이 발생하는 군 내부의 구타와 가혹행위, 군 조직의 폐쇄성과 이에 따른 폐단 등을 비판하는 글을 포스팅 한 바 있다. 당시 글을 통해 살펴보았지만 군은 현재 병영 내의 폭행과 가혹행위 뿐만 아니라 방산비리, 군납비리, 군 지휘관의 성추문 및 각종 부정과 비리로 폐부까지 곪아있는 상태다. 


그러나 근본적인 대책마련은 전혀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문제가 불거질 때마다 국민에게 사과하고 재발방지와 혁신을 약속했지만 번번히 도루묵이 되고 있는 실정이다. 수없이 반복되는 사건 사고에도 군이 달라지지 않는 가장 큰 이유는 역시 군 특유의 폐쇄적이고 권위적인 조직문화 때문이라고 봐야 한다. 


그동안 군은 사회적 물의를 일으킨 각종 사건과 사고에도 언제나 자체적으로 조사하고 자체적으로 사건을 마무리 지어왔다. 보안과 기밀이라는 미명 하에 외부로의 노출을 극도로 기피하는 군의 폐쇄성은 곧 건드릴 수 없는 성역의 또 다른 이름이다. 폐쇄성은 공정성과 투명성의 대극에 놓여있는 개념이다. 고인 물이 깨끗할 리 없다는 것을 우리는 경험으로 안다. 





군이 세상에 모습을 드러낸 군 내부의 각종 사건 사고들을 어떻게 처리해 왔는지는 이미 여러 경로를 통해 밝혀진 바다. 그들은 군 내부에서 벌어진 사건 사고를 서스럼없이 은폐하고 조작해 왔다. 올 한 해만 해도 윤일병 사건과 임병장 사건에서 보듯 군은 관련 사실을 허위 보고하고 숨기기에 급급하며 군대에 자식 보낸 부모들의 가슴을 철렁하게 만들었다


군은 이번 구 이병 사건의 재조사에서도 기존의 방식을 그대로 답습했다. 조사를 책임졌던 중앙조사단장은 임석현 대령으로 군 소속이다. 수사본부에 편성된 22명 역시 마찬가지다. 군 내부의 치부를 드러내야 하는 사건 조사를 군이 자체적으로 한다는 것부터가 상식에 부합하지 않는 일이다. 가해자들에게 방어기재가 있는 것처럼 저들에게는 조직의 치부를 감추어야 하는 해묵은 관성이 있다. 


군은 재조사를 통해 1년 7개월만에 깨어난 구 이병의 진술은 사실이 아니라는 결론을 내렸다. 군의 주장대로라면 구 이병과 가족들이 군과 이해당사자들을 모함하고 있다는 말이 된다. 물론 군이 재조사를 통해 결론을 내린 것처럼 구 이병에 대한 집단폭행이 없었을 수도 있다. 그러나 군의 주장에는 치명적인 결함이 존재한다. 조사의 객관성. 그리고 군이 그동안 보여준 낡은 관성들이 바로 그렇다. 



만약 당신이라면 누구의 말을 믿겠는가. 병영 내에 구타와 가혹행위 및 각종 사건과 사고가 끊이지 않는 군, 폐쇄적인 조직문화와 기밀주의에 빠져 부정과 비리가 발생할 때마다 이를 은폐하고 조작해 왔던 군, 수사본부의 인원을 모두 군 내부의 사람으로 편성한 채 사건의 재수사를 벌여온 군을 믿을 것인가 아니면 1년 7개월만에 극적으로 깨어난 구 이병의 진술을 믿을 것인가. 




이미지 출처 : 구글 이미지 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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