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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지역구 무공천? 자기 무덤 파는 안철수의 대악수

ⓒ 중앙일보

 

그날 안랩과 써니전자의 주가는 급락했습니다. '안철수 테마주'로 알려진 안랩과 써니전자의 주가는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의 정계복귀 소식이 알려진 이후 상승곡선을 그리던 참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날'은 달랐습니다. 관련주들은 안 대표가 귀국한 다음날 상승세가 꺾였습니다. 안 대표가 총선 불출마 선언을 하면서 보수통합에 명확하게 선을 그은 바로 그 다음날(1월 20일)입니다.

이후 '안철수 테마주'는 가파른 하락세를 보이고 있습니다. 특히 안랩은 안 대표가 정계복귀를 선언한 직후인 지난 1월 3일 정점을 찍은 뒤 줄곧 하락세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일종의 '전조증상'이었을까요. 1년 6개월의 칩거를 끝내고 정치 일선에 복귀한 안 대표가 고립무원의 처지에 빠졌습니다. 만면에 웃음을 지으며 귀국할 당시와는 상황이 많이 달라졌습니다. 중도실용주의 정당에 대한 포부를 드러내며 국민의당을 창당했지만 눈 앞에는 잔뜩 먹구름이 드리워진 모양새입니다.

신당을 창당했지만 세간의 관심은 시들합니다. 내부로 눈길을 돌리면 문제는 더욱 심각해집니다. 안철수계로 불리던 인사들 중 상당수가 미래통합당에 입당했거나 합류를 타진하고 있습니다. 안 대표와 뜻을 함께 하겠다던 측근들이 하나 둘 그의 곁을 떠나고 있는 것입니다.

지난 20일 김중로 의원을 시작으로 최측근인 이동섭 의원(21일), 장환진 국민의당 창당준비위원회 부위원장(26일), 김철근 창준위 공보단장(27일) 등 이른바 '안철수맨'들이 줄줄이 통합당으로 몰려가고 있습니다. 이뿐만이 아닙니다. 김수민, 신용현, 김삼화 의원 역시 조만간 통합당에 합류할 것으로 보입니다.

한 배를 탔던 이들이 안 대표를 떠나는 이유는아무래도 선거와 관련이 깊습니다. 국민의당 간판으로는 다가오는 총선에서 의미있는 결과를 거두기 힘들다는 판단이 섰기 때문입니다. 쉽게 말해 안 전 대표의 이름으로는 총선 승리가 불투명하다는 이야기입니다.

실제 정치권 안팎에서는 안 대표의 '브랜드 가치'가 예전과 같지 않다는 말들이 공공연하게 나오고 있습니다. 지난 대선과 서울시장 선거에서 연달아 3위를 하면서 안 대표의 위상이 크게 떨어졌기 때문입니다. 호감도 역시 과거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크게 하락한 상태입니다.

한국갤럽이 2019년 12월 10~12일 전국 만 19세 이상 남녀 1,001명을 대상으로 조사해 13일 발표한 '정치 지도자 선호도 조사' 결과(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 ±3.1%포인트)에서는 안 대표가 비호감 정치인 순위 1위에 오르기도 했습니다.

지지율 5% 이상을 기록한 정치인을 대상으로 한 이 조사에서 안 대표는 69%를 기록해 황교안 당시 자유한국당(현 통합당) 대표(67%)와 유승민 바른미래당 의원(59%), 이재명 경기도지사(55%), 박원순 서울시장(53%), 심상정 정의당 대표(45%), 이낙연 총리(33%)보다 호감도가 낮은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국민의당 지지율 역시 더불어민주당 및 통합당과는 커다란 격차를 보이고 있습니다.

리얼미터가 지난 17일부터 19일까지 전국 성인남녀 1508명을 대상으로 조사해 20일 발표한 결과(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서 ±2.5%p)에 따르면, 국민의당은 2.3%를 기록해 민주당(41.1%)과 통합당(32.7%)에 크게 뒤지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국민의당 지지율은 정의당(4.2%)과 바른미래당(3.2%)보다 낮고, 민주평화당(2.1)과 비슷한 수준입니다. (자세한 사항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

오랜 외유 끝에 정계에 복귀한 안 대표의 입장에서는 받아들이기 힘든 현실임이 분명합니다. 더욱이 귀국 당시 안 대표를 환영하기 위해 인천공항에 집결한 '안철수계' 인사들이 불과 한 달여 만에 뿔뿔히 흩어지고 있습니다. 새정치 광풍을 일으키며 기성 정치판을 요동치게 만들었던 과거의 '안철수'를 생각하면 격세지감이 아닐 수 없는 것이죠.

안 대표가 28일 지역구 후보자를 내지 않는 대신 "비례 공천을 통해 실용적 중도의 길을 개척하고, 야권은 물론 전체 정당 간의 혁신·정책 경쟁을 견인하겠다"고 전격 선언한 것도 이같은 현실론이 반영된 결과라는 분석입니다.

안 대표는 이날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국민의당은 이번 총선에서 253개 지역구에 후보자를 내지 않기로 했다"며 "지역 선거구에서 야권 후보를 선택해 문재인 정권을 심판해 주시고, 정당투표에서는 가장 깨끗하고 혁신적·미래지향적인 정당을 선택해 정치를 바꿔달라"고 밝혔습니다.

4·15 총선에서 지역구 선거는 통합당에 투표하고 정당투표는 국민의당에 해달라는 의미로, 사실상 보수야권 선거연대를 선언한 셈입니다. 총선을 위한 물리적 시간이 부족한 데다, 측근들이 대거 이탈하면서 야권 통합과 연대를 요구하는 당 안팎의 목소리가 커지자 승부수를 던진 것이라는 평가입니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지역구 무공천'을 선언한 안 대표를 향해 비판적인 목소리도 나오고 있습니다. 그동안 안 대표는 보수통합과 선거연대에 관한 질문이 나올 때마다 일관되게 거부 입장을 드러내 왔습니다. 불과 일주일 전만 해도 '반문연대' 가능성을 일축했던 그였습니다.

"(반문연대 주장이 일리는 있지만) 최악이라는 20대 국회가 그대로 다음 국회로 이어지는 것을 막고 싸움만 하는 진영정치가 아니라, 민생문제를 해결하는 실용정치로 전환하는 건 우리 대한민국을 위해 결코 포기할 수 없는 소중한 가치이자 반드시 가야 할 개혁의 길이라 생각한다."

21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창당준비위원회 중앙운영위원회의에서 나온 안 대표의 발언입니다. 총선을 위한 현실적 대안으로서의 보수통합이나 선거연대 주장은 일리가 있지만, 그럼에도 연대는 할 수 없다고 선을 그은 것입니다. 그러나 안 대표의 말은 일주일 만에 뒤집어졌습니다.

안 전 대표는 과거에도 기초선거 무공천, 햇볕정책, 전시작전통제권 환수, 사드 배치, 최저임금 등 각종 현안과 관련해 여러 차례 입장을 바꾼 적이 있습니다. 그때마다 해명을 하기는 했지만 정치적으로는 곤란한 상황에 빠지고는 했습니다.

안 대표의 정치 노선 및 철학 역시 논쟁적이기는 매한가지입니다. 정치에 입문할 당시 진보적 스탠스를 취했던 안 대표는 이후 중도를 표방하더니 보수 색채를 점점 강화하고 있습니다. 문제는 이런 일련의 과정을 거치면서 안 대표의 트레이드 마크나 다름없던 새정치의 참신함이 갈수록 희석돼가고 있다는 점입니다. 기성정치를 신랄하게 비판해온 안 대표가 되레 '기성정치화'된 모습을 보이고 있는 것입니다.

사실상의 야권연대 선언인 '지역구 무공천'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현실의 벽에 부딪히자 안 대표는 선거연대로 갑자기 방향을 유턴했습니다. 이는 그동안 줄기차게 독자노선을 천명해온 안 대표의 입장과는 근본적으로 충돌합니다. 아무리 국민의당 내부 사정을 고려한다 해도, '정치공학'적이라는 비판을 면하기 어려운 이유입니다.

더욱이 이번 결정은 안 대표의 군색한 현실을 여지없이 보여주고 있다는 점에서 이미지 타격이 불가피해 보입니다. 독자적으로 총선을 치를 역량과 능력이 부족하다는 사실을 대내외에 공표한 것이나 다름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런 면에서 통합당의 강력한 러브콜을 받아온 안 대표의 입지가 상대적으로 불안정해졌다는 관측도 나오고 있습니다. 

대선과 서울시장 선거 패배로 안 전 대표는 정계은퇴 직전까지 내몰린 적이 있습니다. 정치권 안팎에서는 이번이 안 전 대표에게 마지막 등판이 될 것이라는 전망이 적지 않습니다. 그러나 현실은 그리 녹록해 보이지 않아 보입니다. 갈림길에서 '지역구 무공천' 승부수를 꺼내든 안 대표, 정치인 '안철수'의 주가는 과연 다시 오를 수 있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