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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과에도 조현아 논란이 점점 거세지는 이유

라면상무. 지난해 봄 SNS와 온라인을 뜨겁게 만들었던 화제의 이슈다. 지난해 4월15일 인천을 출발해 LA로 향하던 기내에서 포스코에너지 상무였던 왕모 씨가 '라면이 짜다', '라면이 설익었다'며 승무원을 폭행해 큰 사회적 물의를 일으킨 바 있다. 그저 맛있는 간식일 뿐인 라면의 상태에 대해 그가 그토록 민감하게 반응했던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라면이 짜기 때문에?', '라면이 익지 않았기 때문에?'. 라면에 대한 취향의 문제인지는 모르겠지만 승무원이 끓여온 라면의 상태에 분개한 그의 분노가 적절한 것이었는 지는 여전이 의문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라면의 간이 세면 물을 부어 염도를 낮추고 라면이 설익었으면 익을 때까지 조금 기다려서 먹는다. 물론 비싼 항공료(그것도 비지니스 좌석)를 생각하면 꽤나 속이 쓰릴 지는 모르겠다. 그러나 그렇다고 하더라도 라면이 짜다는 이유로, 라면이 익지 않았다는 이유로 승무원에게 폭언을 하고 폭행을 하는 것은 일반적인 정서상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이다. 어쩌면 그의 분노를 라면의 상태에 대한 순간적인 충동에서 나온 일탈이라고 항변할 수도 있겠다. 그러나 그는 이날 자리배정에서 부터 짐 보관 문제, 안전규칙 무시, 다른 기내식에 대한 불만에 이르기까지 지속적으로 비상식적인 감정을 내뿜었던 것으로 밝혀졌다. 이같은 사실은 그의 분노가 설익은 라면 때문이 아니라 평상시의 모습이 그대로 노출된 결과라는 것을 말해준다. 


'라면상무'라는 신조어까지 만들어 냈던 이 사내의 분노는 몸에 배어 있는 '특권의식'으로 말미암은 것이었다. 다른 사람보다 스스로를 더 우월하다고 여기고 그렇기 때문에 당연히 특별한 대접을 받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특권의식이 그 날 그의 사고를 온통 지배했다. 그는 자리배정을 받으면서 다른 사람들보다 더 나은 대우를 받기를 원했다. 안전규칙 쯤은 무시해도 된다고 생각했고, 특별한 기내식을 원했다. 그리고 설익은 라면을 제공한 승무원에게 폭언과 폭행을 해도 무방하다고 여겼다. 그러나 특권의식이 제대로 발동된 그 날의 망동으로 인해 그는 사람들의 질타를 한몸에 받아야 했고 결국 직장까지 잃어야 했다. 그는 그 날 세상에서 가장 비싼 라면을 주문한 셈이다.  


그 사건 이후로도 그와 유사한 사건들이 심심치 않게 발생했다. 주차장 입구에 차를 세운 것을 문제삼는 호텔 지배인에게 가지고 있던 지갑으로 뺨을 수차례 때리는 '빵회장'도 등장했고, '갑'의 위치에 있던 남양유업의 영업사원이 '을'의 입장인 대리점주에게 폭언 및 욕설과 함께 제품을 강매하는 녹취록이 공개되기도 했다. 이들은 모두 특권의식에 사로잡혀 비정상적인 행동을 보였다는 공통점이 있다. 보편적 상식을 가진 사람들이라면 누구도 이들처럼 행동하지는 않는다. 특권의식은 이처럼 잠자고 있던 인간의 천박함을 여과없이 드러낸다. 물질을 숭배하고 특권을 성역화해 왔던 우리 사회의 씁쓸한 단면들이다. 






어제 SNS와 온라인에서는 하루종일 '조현아'라는 이름이 화제였다. 그녀가 포털사이트 검색어 1위에 오르며 화제의 중심으로 떠오른 사연은 이랬다. 지난 5일 새벽 12시50분 미국 뉴욕 JF케네디 국제공항에서 인천으로 출발하는 KE086편 항공기에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의 맏딸 조현아 대한항공 부사장이 탑승하고 있었다. 조현아씨는 이날 이륙을 위해 활주로로 향하는 비행기를 다시 탑승게이트 쪽으로 돌리도록 지시했다. '램프리턴'으로 불리는 이같은 상황은 통상 기체에 문제가 생겼거나 주인없는 승객의 짐이 발견되었을 경우, 승객의 안전에 문제가 생겼을 경우 등에 한에서 예외적으로 취해진다. 


그런데 이 날의 상황은 조금 달랐다. 조현아씨가 기내서비스를 문제 삼고 수석 스튜어디스(사무장)을 공항에 내리도록 하기 위해 '램프리턴'을 지시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그 이유가 황당했다. 견과류의 일종인 마카다미아넛이 그 원인이었기 때문이다. 한 승무원이 1등석에 타고 있던 조현아씨에게 마카다미아넛을 전달했고, 그녀는 자신이 주문하지도 않은 마카다미아넛이 그릇이 아닌 봉지 그대로 제공된 점을 지적하며 사무장에게 서비스 매뉴얼을 확인해 보도록 지시했다. 그런데 사무장이 서비스 매뉴얼이 적혀있는 태블릿PC를 미숙하게 조작하자 잠자고 있던 그녀의 분노가 폭발한 것이다. 그녀는 사무장에게 내릴 것을 요구했고 결국 비행기는 '램프리턴'을 통해 사무장을 내려놓은 뒤에 출발했다. 


이번 논란은 지난해 벌어졌던 '라면상무' 사건의 판박이다. 다른 점이 있다면 '라면상무'와는 달리 조현아씨가 대한항공 기내식사업본부 부사장이라는 점이다. 이는 논란이 커지자 대한항공측에서 조현아씨의 행위를 정당화하기 위한 근거로 활용하고 있는 부분이다. 조현아씨가 대한항공의 부사장으로서 사무장이 기내 안전을 책임질 준비가 안 돼 있다고 판단해 내리도록 지시했다는 것이 대한항공측의 해명이다. 그러나 대한항공측의 해명에도 불구하고 논란은 수그러들지 않았다. 


논란이 해소될 기미가 보이지 않자 대한항공측은 어제 "(조 부사장이) 비상 상황이 아니었음에도 항공기를 제자리로 돌려 승무원을 내리게 한 것은 지나친 행동이었다"며 "이 때문에 승객들에게 불편을 끼쳐 드려 사과드린다"는 입장을 공식적으로 밝혔다. 그러나 이어 "조 부사장이 기내 서비스를 책임진 임원으로서 승무원의 서비스 문제를 지적한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면서 "매뉴얼조차 제대로 사용하지 못하고 변명과 거짓으로 적당히 둘러댔다는 점을 들어 조 부사장이 사무장의 자질을 문제삼았다" 조현아씨의 지적 자체는 문제가 없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대한항공측의 해명은 그룹 오너의 장녀가 벌인 행위에 걸맞는 황당한 인식을 보여준다. 사적인 분노를 교묘히 공적인 분노로 치환시키려는 사측의 기만적인 태도가 솔직히 더욱 가증스럽다. 승무원의 서비스를 문제삼고 싶었다면 고성과 폭언을 내뱉을 것이 아니라 추후 고객서비스 개선을 위한 참고사항으로 기억하면 그 뿐이다. 사무장이 기내 안전을 책임질 준비가 안 돼 있다고 판단했다면 '램프리턴'을 지시할 것이 아니라 누구처럼 수첩에 메모를 해두면 그만인 것이다. 조현아씨에게 항공법과 관련 규정을 무시하고 승객이 타고 있는 항공기를 리턴시킬 권리와 권한은 전혀 없다. 대한항공측의 이날 사과는 궁색한 변명이자 책임전가를 위한, 진정성없는 면피용 사과에 불과했다. 대한항공측의 사과와 해명에도 불구하고 논란이 더욱 커지고 있는 이유다. 


조현아씨는 작년 '라면상무' 논란 때 "승무원 폭행사건 현장에 있었던 승무원이 당혹감과 수치심이 얼마나 컸을지 안타깝다"면서 "이번 기내 승무원 폭행사건을 통해 승무원의 업무를 방해하는 행위를 처벌할 수 있는 법률 조항도 마련될 것"이라는 글을 사내 게시판에 올린 바 있다. 당시 '라면상무'에 의해 봉변을 당한 승무원을 따뜻하게 위로했던 당사자가 이번에는 그보다 더한 모욕감과 수치심을 안겨주는 무지막지한 가해자로 돌변했다. 그것도 다른 승객들의 안전과 관련 법규정까지 위반해가면서. 이 기막힌 반전이 의미하는 것은 우리 사회의 진화(?)하는 특권의식이다. 


'라면상무'와 '빵회장', '조폭우유'와 '땅콩부사장'을 향해 사람들의 분노가 빗발치는 것은 이들의 '슈퍼갑질'이 보편적 상식이 용인할 정도를 넘어도 한참을 넘어섰기 때문일 것이다. 그깟 라면이 뭐길래, 주차가 뭐길래, 우유가 뭐길래, 마카다미아넛이 뭐길래 사회공동체의 보편적 상식이 이처럼 처참하게 짓밟혀야만 하는가. 끊이지 않고 되풀이 되고 있는 논란을 통해 한가지 확인할 수 있는 사실은 우리 사회가 얼마나 공고한 등급사회이며 신분제 사회인가 하는 점이다.  


성역화된 우리 사회의 특권의식은 '라면', '빵', '우유'에 이어 이제는 '땅콩'에 이르기까지 참 다양하게 표출되기에 이르렀다. 뿐만 아니라 그 내용에 있어서도 단순 분노 표출에서 폭력, 협박에 이어 이제는 비행기까지 리턴시킬 만큼 안하무인의 극치를 보여주고 있다. 이쯤되면 하나의 시리즈로 불리워도 무방할 지경이다. 


대개 시리즈물은 다음 편이 기대되기 마련이다. 그러나 특권층의 분노 시리즈는 이쯤에서 그만 종영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사회공동체의 보편적 상식에 찬물을 끼얹는 그들의 일탈과 망동이 다음 번에는 어떤 소재로, 어떤 형태로 나타나게 될지 생각만해도 끔찍하기 때문이다. 




이미지 출처 : 구글 이미지 검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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