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정치

정치 할 수 있다? 강신명 전 경찰청장은 사과부터 하라

ⓒ 오마이뉴스

지난 12일 오전 국회 안전행정위원회 회의장에서 열린 '백남기 농민 청문회'. 강신명 전 경찰청장이 참고인 자격으로 모습을 드러냈다. 의원들의 질문과 강 전 청장의 반박이 청문회 내내 이어졌다. 이 모습을 지켜보자니 마음이 무겁고 불편했다. 사경을 헤매고 있는 백남기 농민 때문도, 연신 눈시울을 적시던 가족들 때문도 아니었다. 의원들의 질문에 대응하는 강 전 청장의 고압적인 태도가 거슬렸기 때문이었다.

이날 강 전 청장은 떳떳하고 당당했다. 그의 모습 그 어디에도 경찰의 과잉진압으로  생명이 위태로워진 시민에 대한 미안함은 찾아볼 수가 없었다. 집회와 시위에 대해 부정적 인식을 드러내는 장면에서는 백남기 농민이 저리 될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실감했다. 끔찍했다. 이처럼 무책임하고 비민주적 인식을 지닌 경창청장 체제에서 지난 2년을 보냈다는 사실에.

이날 강 전 청장은 시종일관 변명과 회피, 궤변으로 일관하며 빈축을 샀다. 그는 백남기 농민에게 사과를 하는게 맞지 않느냐는 야당 의원의 질문에 "다쳤거나 사망했다고 무조건 사과하는 건 적절하지 않다" "원인과 법률적 책임을 명확히 한 후에 할 수 있다. 결과만 가지고 이야기 하는 건 대단히 적절치 않다고 본다"고 반박했다. 의원들은 혀를 찼고, 방청객에서는 탄식이 흘러나왔다.

당시 경찰이 살수차 운용지침을 어기고 시위대를 향해 물대포를 직사한 사실은 공식적으로 확인된 사안이다. 게다가 이번 청문회에서는 경찰이 사람을 향해 직사 살수할 때 가슴 밑을 겨냥하는 훈련을 하지 않았다는 사실과, 백남기 농민을 향해 물살 방향을 조종했던 최 모 경장의 현장 투입 경험이 없었다는 사실이 새롭게 밝혀지기도 했다. 이는 경찰이 공권력을 행사하기 전과 후 모두 관련 규정을 지키지 않았다는 뜻이다.

법률적 책임을 운운하는 부분 역시 비겁한 변명에 지나지 않는다. 법원은 이미 민중총궐기 집회를 주도했던 한상균 민주노총 위원장에 대한 재판 당시 "경찰의 시위진압 행위는 의도적인 것이든 실수에 의한 것이든 위법하다"고 밝힌 바 있다. 이는 경찰의 과잉폭력 진압에 대한 법률적 책임이 인정된다는 뜻이다. 그러나 강 전 청장은 경찰의 관련 규정 위반과 과잉진압, 법원의 법률적 판단마저 인정하지 않고 있다.


ⓒ 오마이뉴스



더욱 문제가 되는 것은 집회와 시위에 대한 강 전 청장의 인식이다. 그는 시위가 발생하는 원인을 "우리 사회에 여러 제도적 의사표현 장치와 법률적 구제절차가 완비돼 있는데 거기에 응하지 않고 폭력이나 다수의 위력으로 문제를 해결하려는 나쁜 관행이 아직 이어지기 때문"이라고 규정했다. 다시 말해 
문제를 폭력으로 해결하려는 시민들 때문에 시위가 일어난다는 주장이다.


그는 시위가 일어날 수밖에 없는 현실에 대한 고민은 전혀 없이 시위 자체만 문제삼고 있다. 이 얼마나 끔찍하고 해괴한 인식인가. 시위는 제도권 내에서 문제를 해결할 수 없기 때문에 일어난다. 제도와 법률적 절차 내에서 시민의 요구가 수렴되지 않을 때 나타나는 자연스런 행위인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헌법이 시민의 집회결사의 자유를 보장하고 있는 것이다.

시위에 대한 강 전 청장의 부정적 인식은 시민의 권리인 집회·결사의 자유를 잘못 이해하는 것에서 기인한다. 집회·결사의 자유는 시민의 당연한 권리다. 국가는 적법한 집회와 시위를 최대한 보장해야 할 책임이 있다. 이는 집시법 제1(목적)에서 명문화하고 있는 내용이다. 이에 따라 경찰은 집회와 시위가 평화적이고 원만하게 끝날 수 있도록 이를 보호하고 질서를 유지시켜야 할 책무가 있다.

그러나 경찰의 모습은 어떠했나. 지난해 11 14일 열렸던 민중총궐기 대회는 사전에 집회 신고를 냈던 적법한 시위였다. 주최측인 민주노총에서는 평화적인 행진시위를 하겠다고 공표까지 한 터였다. 그럼에도 경찰은 시위 자체를 불허했고 언론을 통해 민주노총이 불법폭력집회를 개최하려 한다며 부정적 여론을 조성해 나갔다. 당시 집회가 대정부 비판적인 성격을 띠자 이를 사전에 차단하려는 의도에서였다.

헌법에 명시된 집회와 시위의 자유에 대해 편협한 시각을 갖고 있는 경찰청장 체제에서라면 합법적인 시위에 불온과 불법, 폭력의 주홍글씨가 새겨지는 것이 어찌보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실제 강 전 총장은 집회가 시작되기도 전에 민중총궐기 대회를 불법폭력집회라고 단정지어 버렸다. 적법한 절차와 과정을 거친 평화적 집회의 개최를 불허하며 집회와 시위의 자유를 침해한 것은 오히려 경찰이었던 것이다. 뿐만 아니라 경찰은 '백남기 농민 청문회'에서 드러났듯 시위 진압과정에서 숱한 위법과 폭력을 휘두르기까지 했다. 사경을 헤매고 있는 백남기 농민이야말로 경찰의 과잉진압이 얼마나 폭력적이고 야만적이었는지를 입증하는 명백한 증거다


설령 민중총궐기 대회 도중 일부 폭력이 있었다 하더라도 경찰이 공권력을 행사하는 과정에서 나타난 위법성과 폭력성에 면죄부를 줄 수는 없는 일이다. 공권력은 법의 테두리 안에서 공정하게 사용될 때에만 비로소 그 정당성을 인정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폭력시위를 주도했다는 이유로 한상균 민주노총 위원장과 시위자들이 복역 중에 있다면 경찰 역시 공권력 남용에 대해 책임을 지는 것이 마땅할 것이다.


퇴임을 앞둔 인터뷰에서 강 전 청장은 앞으로 정치를 할 수도 있다고 했다. 아찔하니 현기증이 난다. 정치를 하겠다며 '아무나'들이 모여 '아무렇게나' 정치를 해 온 결과가 오늘날의 대한민국이기에 그렇다. 그런 이유로 정치는 절대로 '아무나' 해서는 안된다. 강 전 청장이 그럼에도 정치를 할 요량이라면 먼저 백남기 농민과 그 가족들에게 진심어린 사과부터 하라. 정치 이전에 인간의 염치와 도리가 먼저다.





  바람 언덕의 정치실험에 여러분을 초대합니다  (클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