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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전두환도 무릎꿇린 국민의 명령, 박근혜는 응답하라

ⓒ 오마이뉴스


말 그대로 '인산인해'였다. 박근혜 대통령의 퇴진을 요구하는 촛불집회가 열린 12일 서울 광화문광장 일대는 발딛을 틈이 없을 만큼 많은 국민들로 가득 찼다. 주최 측 추산으로 100만명이 넘었고, 경찰 추산만 해도 26만명에 이른다. 단순비교할 수는 없지만 이는 지난 2008년 광우병 촛불집회 당시(주최 측 추산 70만명)와 87년 6월 항쟁 당시의 집회 참석 인원(100만명 추산)을 뛰어 넘는다. 이 압도적인 숫자는 그날의 열기가 얼마나 뜨거웠는지를 보여주는 방증이다. 


촛불집회는 끝났지만 여진은 계속 이어지고 있다. 당연하다. 대한민국이 민주공화국임을 전세계에 증명한 감격과 전율의 현장이 아니었던가. 12일 촛불집회가 87년 6월 항쟁과 비교되는 것은 그런 이유일 터다. 87년 6월 항쟁은 역사적인 '6·29 선언'을 이끌어냈다. 박정희·전두환으로 이어지는 장기군사독재는 국민들의 민주화에 대한 의지를 불타오르게 만들었다. 급기야 박종철과 이한열의 죽음으로 국민들의 민주화 요구는 절정으로 치닫게 되고 수백만명이 전국에서 직선제 개헌을 요구하는 분노의 시위를 벌이게 된다.

서슬 퍼런 전두환 신군부조차 성난 국민들의 요구를 거역할 수는 없었다. 결국 당시 민정당 대표였던 노태우는 '대통령직선제 개헌', '대통령선거법 개정', '김대중 사면복권과 양심수 전원 석방', '언론 자유 보장', '지방자치제 실시' 등을 골자로 하는 '6·29 선언'을 하기에 이른다. 민주화에 대한 국민의 거대한 열망과 전두환 정권에 대한 거센 분노가 87년 체제의 서막을 연 것이다.

지난 주말 광장을 가득 메운 국민들의 모습은 규모로 보나 뜨거움으로 보나 87년 6월 항쟁을 연상시키기에 전혀 부족함이 없다. 오히려 통제가 불가능할 만큼 많은 사람들이 결집했음에도 일체의 폭력없이 평화적으로 집회가 마무리됐다는 점에서 6월 항쟁을 뛰어 넘어 집회시위문화의 새로운 전기를 마련했다고 평가할 만하다. 메마르고 척박한 민주주의의 토양에서도 시민의식은 이처럼 단단히 뿌리를 내리고 있었다.

대규모 촛불집회 이후 시선은 박 대통령에게로 집중됐다. 성난 민심의 요구에 박 대통령이 어떤 반응을 나타낼지가 초미의 관심사였기 때문이다. 6월 항쟁이 '6·29 선언'을 이끌어냈듯이 이번 촛불집회가 박 대통령의 심중에 변화를 가져오게 될 수도 있을 것이란 전망도 있었다. 그러나 촛불집회 이후 청와대는 민심을 무겁게 받아들인다면서도 "박 대통령은 대통령으로서의 책임을 다하고 국정을 정상화하기 위해 고민하고 있다"는 뜻을 피력했다. 역시나 기대난망이었다. 민심과는 동떨어진 나홀로 정치를 고집했던 박 대통령의 통치스타일은 이 와중에도 불변이다.


ⓒ 오마이뉴스


서울 도심과 전국 곳곳을 밝힌 100만 촛불은 민주주의와 정의를 바로 세우려는 국민들의 강렬한 의지를 가늠케 한다. 불의한 권력이 파생시킨 부조리와 모순을 타파하려는 국민들의 염원 앞에 우리 사회를 휘감고 있던 이념과 정파, 지역과 세대의 가시덤불도 산산이 무너져 내렸다. 어디 이뿐인가. 100만명이 넘는 국민들이 참여한 시위에 쇠파이프와 화염병, 최루탄과 물대포를 찾아볼 수 없다. 이는 성숙한 시민의식과 이전과는 달라진 경찰의 집회 관리가 상호 작용했기에 가능했던 일이다. 폭력과 무질서, 극심한 충돌이 사라지고 평화와 질서, 공존이 빛을 발했다. 유례를 찾기 힘든 경이로운 광경에 세계 역시 감탄과 찬사 일색이다.

달라지지 않는 건 박 대통령 한사람 뿐이다. 그는 변화와 개혁, 혁신을 바라는 국민정서와 시대흐름에 여전히 역행하고 있는 모습이다. 이제 그만 내려오라는 국민의 준엄한 명령을 거부하고 있는 박 대통령은 민주주의와 정의의 실현을 막고 있는 장애물이나 다름이 없다. 민주주의와 헌법을 파괴한 박 대통령에게 '대통령으로서의 역할'이 무엇이 더 남아있는지 의문이다.

철권통치를 자행하며 국민들을 무자비하게 탄압했던 전두환조차 전국적으로 퍼져가는 민주화 요구와 퇴진 요구를 거역하지는 못했다. 총칼로 국민들을 제압했던 독재자마저도 민심의 거대한 파고 앞에선 항복 선언을 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러나 박 대통령은 아직까지도 꿈에서 깨어나질 못하고 있다. 시간을 끌면서 버티기만 하면 사태가 수습될 수 있다고 믿는 모양이다. 어러석음의 극치다. 100만 촛불은 박 대통령의 정치생명이 끝났다는 명징한 선언이다. 초등학생들도 인지하고 있는 이 사실을 오직 박 대통령 자신만 모른다. 

촛불로 드러난 민심은 압도적이며 추상같다. 국민들은 단순히 대통령의 퇴진뿐만이 아니라 이 사회의 질곡과 폐부까지도 완전히 도려내기를 기대하고 있다. 사회의 부조리와 모순, 기득권 체제가 양산해 낸 사회제반 문제 등 시스템 전반에 대한 근본적인 개혁을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 사회의 본질적인 변화와 혁신을 갈망하는 시민사회의 거대한 요구 앞에서조차 박 대통령은 권력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있다. 통탄할 노릇이다. 

박 대통령은 대한민국 헌법 제1조를 다시 들여다 볼 필요가 있다. 대한민국의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국민주권의 대원칙이 헌법 제1조 안에 담겨있기 때문이다. 100만 촛불에 담겨있는 민심을 직시해야 한다는 뜻이다. 박 대통령에게는 국민의 준엄한 명령을 거역할 이유와 명분이 없다. 국정을 정상화하기 위한 시발점이 바로 민주주의와 헌법을 파괴한 박 대통령의 퇴진에 있기에 그렇다. 박 대통령은 국민의 명령에 순순히 응해야 한다. 그것이 국민을 배신한 박 대통령의 마지막 역할이자 최소한의 도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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