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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자진 사퇴 가능성? 일고의 가치도 없다

ⓒ 오마이뉴스


헌법재판소의 탄핵 결정이 임박한 가운데 정치권 일각에서 박근혜 대통령의 자진 사퇴 가능성이 모락모락 풍겨 나오고 있다. 대통령 탄핵이 초래하게 될 최악의 국정혼란 사태를 막아야 한다는 것이 그 이유다. 범여권에서 제기되고 있는 '대통령 자진 사퇴론'은 지난해 12월 국회의 탄핵소추안 가결 직전 박 대통령과 새누리당(현 자유한국당)이 제안했던 '질서있는 퇴진론'과 궤를 같이 한다.

자진 사퇴론의 진앙지는 범여권이다. 지난 17일 김성태 바른정당 사무총장이 "박 대통령의 명예로운 결단이 헌재 결정 이후 극단적 대립을 수습할 수 있다"며 군불을 피운데 이어, 21일에는 주호영 바른정당 원내대표가 바통을 이어갔다.

주 원내대표는 이날 원내대책회의에서 "청와대와 대통령은 탄핵 심판 전에 국민을 통합하고 어려운 상황을 극복할 방안이 있는지 탄핵 이전에 어떤 정치적 해법이 있는지 적극 모색해야 할 때라고 본다"면서 "대통령이 하야하고 정치권은 사법처리의 부담을 덜어주는 쪽으로 해결해야 국론이 분열되지 않고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런데 이것이 끝이 아니었다. 정우택 자유한국당 원대대표 역시 22일 YTN '신율의 출발 새아침'과의 인터뷰를 통해 박 대통령의 자진 사퇴 가능성을 흘렸다. 정 원내대표는 "탄핵 심판 이후에 발생할 수 있는 국론 분열을 최소화하기 위해서 정치권이 힘을 합쳐야 할 때가 아닌가 생각한다"며 "이 문제에 대해선 이미 청와대에서도 검토한 것으로 들린다"고 말해 자진 사퇴의 불씨를 이어갔다.

범여권과 보수 일각에서 불거진 자진 사퇴 가능성에 대해 야권은 일단 크게 개의치 않는 모양새다. 범여권이 주장하는 자진 사퇴의 전제조건인 사면 약속을 야권이 수용할 수 없는데다, 박 대통령의 성향상 굴욕에 가까운 자진 사퇴를 받아들이기 힘들 것이란 관측에서다. 여기에 시기적으로 늦었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그러나 범여권발 자진 사퇴론을 돌발성 주장으로 보기에는 석연치 않는 정황들이 있다. 청와대와 범여권이 물밑에서 정교하게 합을 맞춘 시나리오일 가능성도 있다는 뜻이다. 만약 그렇다면 박 대통령이 전격적으로 사퇴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는 없다. 


먼저 박 대통령의 자진 사퇴 가능성을 가장 적극적으로 피력하고 있는 정 원내대표의 발언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그는 YTN '신율의 출발 새아침' 인터뷰 내용과 관련해 청와대와 교감했는지의 여부를 묻는 기자들의 질문에 "그 문제에 대해서는 여기서 이야기하기가 조금 그렇다. 뉘앙스만 남겨놓겠다"고 에둘러 표현했다. 청와대와의 교감이 있었음을 시사하는 대목이다.

실제 라디오 인터뷰에서 정 원내대표는 청와대에서도 자진 사퇴를 검토한 것으로 안다고 말한 바 있다. 다른 누구도 아닌 집권당 원내대표의 발언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박 대통령의 자진 사퇴가 전혀 근거 없는 주장이라고 볼 수만은 없다.  


자진 사퇴 가능성이 제기된 시점도 눈여겨 봐야 한다. 헌재가 27일 오후 2시를 최후 변론 기일로 잡으면서 3월초 선고가 유력해진 상황이다. 헌재가 탄핵을 인용할 것이라는 예상이 지배적인 가운데 박 대통령 측과 범여권도 바짝 긴장하고 있다. 대리인단 측이 사활을 걸었던 탄핵심판 지연작전이 무위로 그치면서 박 대통령의 발등에 불이 떨어진 셈이다.


ⓒ 오마이뉴스


문제는 박 대통령 측에게 헌재의 탄핵 결정을 지연시킬 수단이 거의 남아있지 않다는 점이다. 여론전을 통해 동정론을 확산시키는 방법 외에는 달리 뾰족한 수가 없는 실정이다. 그런 면에서 자진 사퇴 카드는 국면 전환의 전기가 될 수도 있다. 태극기집회를 통해 보수 결집 움직임이 확인된 이상 자진 사퇴 가능성을 흘리면서 여론의 추이를 지켜보자는 정략적 판단이 가능하다.

여기에 국론 분열과 국정 혼란을 최소화시켜야 한다는 그럴듯한 명분까지 더해지면 헌재의 탄핵 결정 전 사퇴해야 한다는 여론이 비등해질 개연성도 충분하다. 또한 탄핵이 인용돼 파면당할 바에야 차라리 탄핵 결정 전 자진 사퇴함으로써 대통령으로서의 명예 실추를 최소화하려 할 수도 있다.

자진 사퇴할 경우 박 대통령이 연금 및 유족연금, 기념사업 지원, 경호·경비, 치료, 사무실 및 비서 제공 등 전직 대통령에 대한 경제적 지원과 의전을 고스란히 받을 수 있다는 점도 무시할 수 없다. 종합해보면 박 대통령의 자진 사퇴가 탄핵을 면하기 위한 지극히 현실적인 대안이 될 수 있는 셈이다.

관건은 실현 가능성의 여부다. 그러나 냉정히 말해 박 대통령이 자진 사퇴할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보는 것이 합리적인 추론이다. 주지한 것처럼 자진 사퇴의 전제가 박 대통령에 대한 정치권의 사면 약속이기 때문이다. 사법처리라는 치명적 독소가 제거되지 않는 이상 박 대통령의 자진 사퇴는 위험부담이 너무 큰 모험수다. 

국민 여론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현재 박 대통령에 대한 탄핵 찬성 여론은 80%에 육박하고 있다. 이는 탄핵소추가 가결된 지난해 12월부터 최근에 이르기까지 변함 없는 흐름이다. 박 대통령에게 정치적·법적 책임을 묻겠다는 국민의 뜻이 그만큼 강렬하다는 방증일 것이다. 이는 야권 역시 마찬가지다. 만약 야권이 정치적 타협을 하게 되면 촛불민심은 그들부터 집어삼킬 것이다.


결국 자진 사퇴는 어디까지나 박 대통령 측과 범여권이 꿈꾸는 일방적인 '희망사항'에 불과하다는 얘기다. 자진 사퇴가 힘을 받으려면 국민과 야권의 동의에 의한 사면 약속이 필수불가결한데 현재로서는 그럴 가능성이 전무하기 때문이다. 


청와대는 일단 범여권과 보수일각에서 제기되고 있는 박 대통령의 자진 사퇴 가능성을 일축했다. 검토한 바 없는 터무니 없는 이야기라며 선긋기에 나서고 있다. 이제 와서 자진 사퇴를 하게 되면 죄를 인정하는 셈이 되기 때문에 무죄를 강변해온 박 대통령의 주장과 상충된다는 판단에서다. 


애초 다수 국민이 요구한 것이 바로 박 대통령의 자진 사퇴였다. 그러나 이를 단호히 거부한 사람은 다름 아닌 박 대통령 자신이었다. 탄핵소추안 가결 이후 일일히 열거하기 힘든 파행과 비이성적 행태를 보여온 것도 박 대통령 측이었다. '이제 와서' 자진 사퇴할 수는 없다는 청와대의 판단을 믿는다. 사람에게는 최소한의 도덕과 양심이라는 것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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