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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자유한국당에게 색깔론과 네거티브란?

ⓒ 오마이뉴스


17일 오후 서울 여의도 63빌딩에서는 한국당 대선 후보 경선 1차 컷오프 통과자를 가리기 위한 비전대회가 열렸다. 이날 행사장에 모습을 드러낸 예비후보는 조경태·원유철 의원, 신용한 전 대통령 직속 청년위원회 위원장, 김진태 위원, 김진 전 중앙일보 논설위원, 김관용 경북지사, 안상수 의원, 이인제 전 최고의원, 홍준표 경남지사 등 모두 9명이다. 한국당은 이들 중에서 여론조사를 통해 1차 컷오프 6명을 선발할 예정이다.


비전대회를 보면서 '세살 버릇 여든까지 간다'는 익숙한 속담이 떠올랐다. 이날 한국당 예비후보들이 너나 할 것 없이 색깔론을 들고 나왔기 때문이다. 그들은 본능적으로 알고 있는 것이다. 네거티브 이슈가 불리한 선거 판세를  단기간에 뒤집을 수 있는 효과적인 전략이라는 사실을 말이다. 이번에도 마찬가지다. 한국당 예비후보들의 흑색선전은 이날도 그대로 이어졌다. 원유철 의원은 "문재인 후보를 비롯한 야권 대선 주자들은 국가 안보가 무너지든 말든 경제가 어려워지든 말든 촛불 민심과 특검을 악용해 국가 위기를 정권획득의 기회로 삼은 사람들"이라고  공격했다. 


어불성설의 극치다. 국가 위기를 부추기고 국가 안보와 경제를 무너뜨린 건 야당이 아니다. 누가 뭐래도 지난 10년 가까이 국정을 운영해온 당사자는 바로 한국당이 아닌가. 안보 불안과 경제 위기, 부정·부패를 양산하며 초유의 국정농단 사태를 촉발시킨 주역 역시 한국당이었다. 그럼에도 반성은커녕 국가위기의 책임을 야권 후보들에게 전가시키고 있으니 기가 찰 노릇이다. 


김진태 의원 역시 특유의 색깔론을 제기하며 현장에 참석했던 태극기 부대의 열렬한 환호를 이끌어냈다. 김 의원은 "이번에 정권을 또 빼앗기면 태극기는커녕 노란색 리본을 단 정체불명, 국적불명의 깃발을 들어야 한다"면서 "좌파에게 정권을 똑다시 내주면 오늘처럼 애국가를 불러보지도 못하고 '임을 위한 행진곡'을 부를 수도 있다"고 주장했다.

저열하고 졸렬하다. 분노와 증오, 적개심을 자극하는 방식으로 대중을 선동하고 있는 탓이다. 김 의원에게는 인류 보편적 가치, 진실의 유무 따위는 전혀 중요하지 않는 듯 보인다. 어떻게 하면 대중의 분노를 자극해  정치적 이득을 도모할 수 있을까에만 집착하고 있는 것 같다. 인간에 대한 예의를 저버린 채 폭력적 언사를 남발하고 있는 김 의원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 지 참으로 난감하다. 

정치인이 대중의 증오와 분노를 정치적으로 악용하는 것만큼 끔찍한 것도 없다. 히틀러는 유대인의 증오를 이용해 권력을 틀어쥐었고, 박정희는 이념갈등과 지역감정을 이용해 무려 19년간 철권통치를 이어갔다. 그로 인해 세계사와 우리 현대사에 어떤 악몽이 벌어졌는지는 불문가지다. 인간의 증오를 끌어내는 정치인의 대중 선동은 그만큼 위험천만하다.

그런 면에서 김 의원의 맹활약(?)은 대한민국 정치의 불행이자 비극이다. 그의 언행은 상대를 향한 증오와 미움, 혐오와 저주, 반목과 불신을 양산해내는 '칼'이자 '독'이다. 내면 속에 숨쉬고 있는 '선함'이 아닌 '악함'을 들추어내는 탓이다. 그의 목소리가 드세질수록 우리 사회는 멍들어간다. 그의 행태가 반사회적으로 비치는 이유다. 


ⓒ 오마이뉴스


색깔론에 있어서라면 김 전 논설위원도 빠지지 않는다. 그는 "대한민국 민주화의 최대 공신은 김대중, 김영삼이 아니고 박정희"라며 "이번 대선은 김일성을 경제적으로 꺾은 박정희와 노벨평화상을 받기 위해 적대세력에게 4억5000만 달러를 준 김대중과의 싸움이자 북한과 굴욕적 회담을 한 노무현과의 싸움"이라고 역설했다.

김대중 정부 시절의 대북정책은 햇볕정책으로 요약된다. 이 시기에는 북한의 변화를 이끌어내기 위해 다양한 분야의 남북협력과 경협이 이루어졌다. 김 전 논설위원이 문제삼은 4조5000만 달러는 당시 현대그룹이 사업 대가로 북한에 송금한 금액이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합법적인 절차를 벗어난 대북송금이 이루어졌고, 결국 대법원으로부터 위법 판결을 받았다. 김 전 논설위원은 바로 이 점을 꼬집은 것이다.

물론 대북송금이 고도의 정치성을 띤 '통치행위'가 할지라도 정당한 절차와 과정을 거치지 않았다면 적법성에 문제가 발생한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도 남북평화정착을 위한 통치행위를 단순화시켜 외따로이 판단할 수는 없는 일이다. 남북정상회담을 앞두고 남북 당사자간의 긴밀한 정치 행위가 진행되고 있었던 특수성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는 뜻이다. 이 문제는 남북간의 특수성과 당시의 시대적 상황을 객관적으로 함께 살펴봐야 한다


게다가 대북송금 자체를 문제삼는다면 한국당 역시 그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는 입장이다. 한국당이 집권한 지난 9년 동안 북한에 송금된 액수가 김대중·노무현 정부보다 많기 때문이다. 통일부의 자료에 따르면 김대중 정부의 대북송금액은 13억4500만 달러 정도다. 개성공단이 가동되는 등 남북경협이 가장 활발히 이뤄졌던 참여정부 시절엔 그보다 조금 많은 14억1000만 달러 가량의 대북송금이 이루어졌다.

그런데 대북송금을 문제삼는 한국당의 주장과는 달리 대북송금액은 이명박 정부와 박근혜 정부 들어 외려 증가했다. 이명박 정부 5년간 대북송금액은 16억8000만 달러에 달한다. 박근혜 정부의 경우 정확한 통계는 밝혀지지 않고 있지만, 미국 UPI 통신에 따르면 취임 이후 1년 동안 대북지원액이 이명박 정부 대비 26% 가량 증가했다는 보도가 나온 바 있다.

이는 한국당이 집권여당으로 있을 때 김대중·노무현 정부보다 더 많은 액수의 대북송금이 이뤄졌다고 추론해볼 수 있는 대목이다. 이처럼 대북송금과 관련된 김 전 논설위원의 주장에는 상당한 어폐가 있는 것이다. 게다가 한국당은 과거 총풍 사건과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의 방북 당시 김정일 국방위원장과의 비공개 회담 내용과 편지 논란 등 남 탓 할 입장이 전혀 못 된다. 김 전 논설위원의 주장은 내 눈의 들보는 보지 못 하고 남의 허물만 탓하는 전형적인 네거티브다. 

뉘늦게 한국당의 대선후보 경선에 참여한 홍 지사 역시 특유의 독설을 쏟아냈다. 그는 "세계적으로 좌파는 다 몰락했는데 대한민국만 반대로 가고 있다"면서 "문재인 정권은 노무현 2기인데 노무현 2기가 탄생하면 이 나라에 희망이 없다"고 주장했다.

이 역시 사실관계를 왜곡한 흑색선전이다. 지난 15일 치뤄진 네덜란드 총선에서 집권당인 자유민주당이 33석을 얻어 '유럽연합 탈퇴', '반 이민 정책' 등의 포퓰리즘 정책으로 세를 불리던 극우 자유당의 돌풍을 잠재웠다. 좌파 정당인 녹색좌파당 역시 4석에서 14석으로 반등하며 입지를 드높였다.

대선 경쟁이 한창인 프랑스의 상황도 마찬가지다. 극우민족주의를 표방하는 '국민전선' 대표 마린 르펜이 돌풍을 이어가고 있지만 결선투표가 이뤄질 경우 진보적 자유주의를 내건 '전진'의 에마뉘엘 미크롱에 크게 뒤지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집권당인 사회당의 브누아 아몽 역시 만만찮은 저력을 내보이며 막판 대반격을 노리고 있다.

이밖에도 오스트리아에서는 지난해 12월 대선에서 녹색당 대표 출신인 알렉산더 판데어벨렌이 승리해 대통령에 취임했고, 그리스에서는 2015년 9월 총선에서 극좌파연합인 시리자가 승리했다. 2014년 9월 치뤄진 스웨덴 총선에서도 좌파연합이 승리를 거뒀다. 좌파가 다 몰락했다는 홍 지사의 주장은 사실이 아닌 것이다. 물론 남미나 유럽 일부의 경우처럼 좌파가 집권에 실패한 곳도 있다. 그러나 이는 좌파의 몰락이라기 보다는 집권당의 실정과 피로감이 만들어낸 결과라 보는 것이 합리적이다.


이는 우리나라의 경우만 보더라도 명확해진다. 국민들이 박 전 대통령과 한국당에 분노한 이유가 달리 있는 것이 아니다. 현 시국은 박근혜 정부와 집권당이었던 한국당의 무능과 부패가 만들어낸 결과일 뿐 좌파와는 아무 관련이 없다. 노무현 2기가 탄생하면 희망이 없다는 주장 역시 아무 근거 없는 흑색선전에 지나지 않는다. 


실제 각종 사회경제 지표는 물론이고 민주주의, 인권, 세계언론지수 등 많은 부분에서 참여정부는 이명박 정부 및 박근혜 정부보다 비교 우위에 있다. 그럼에도 이를 진영논리와 이념문제로 치환시켜려는 태도는 무책임할 뿐더러 악의적인 사실 왜곡일 뿐이다.   


본래 인간은 위기에 처하게 되면 몸에 밴 익숙한 관성이 저도 모르게 튀어나오게 마련이다. 한국당이 바로 그 짝이다. 국정농단 사태의 여파로 집권이 어렵게 되자 전가의 보도인 색깔론을 또 다시 꺼내들며 예의 지저분한 선거 풍토를 재연하고 있다. 하나도 달라지지 않았다. 국정농단 사태를 겪으며 대통령이 탄핵되고 분당의 아픔을 겪었음에도 그들은 전혀 변하지 않는다. 변화와  혁신은 고사하고 사과도 반성도 없다. 최소한의 염치마저도 보이지 않는다. 


이번에도 정정당당한 대결은 기대난망이다. 한국당은 '한국당'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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