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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이름값도 못하는 어버이연합과 검찰

지난 달 17일 아주 흥미로운 재판 결과가 있었다. 지난해 세월호 특별법 제정을 위해 단식투쟁을 벌이던 시민들을 조롱하기 위해 폭식투쟁을 벌였던 어버이연합을 '망나니', '탐욕' 등의 단어를 섞어가며 비판했다가 모욕죄로 기소된 이안 영화평론가에 대해 법원이 무죄판결을 내린 것이다. 서울남부지법 형사8단독 이영선 판사는 모욕죄로 기소된 이안 평론가에 대한 선고공판에서 이안 평론가의 칼럼은 "어버이연합의 일부 회원들의 행위를 전제로 그에 대한 자신의 의견을 개진하는 과정에서 부분적으로 사용된 것이어서 사회상규에 위배되지 아니한다"며 무죄를 선고했다.  





이안 평론가로부터 '나이값 못하는 망나니'라는 평을 받은 어버이연합은 지난해 9월 2일 오후 서울 종로구 동아일보 사옥 앞에서 '세월호 선동세력 규탄집회'를 열어 세간의 따가운 눈총을 받아야만 했다. 그들은 이 자리에서 일베와 함께 유가족 앞에서 폭식 퍼포먼스를 연출하는 한편 증오 가득한 폭언을 퍼부으며 유가족들을 자극했다. 어버이연합이 이 날 쏟아낸 말들은 언어라기보다는 극단적인 저주에 가까왔다. 그들은 "X같은 놈들", "찢어죽일 놈들", "쓰레기들" 같은 원색적인 욕설과 "종북빨갱이 XX들", "시체장사 하지 마라" 따위의 도발적이며 자극적인 욕설을 거침없이 쏟아냈다. 


이안 평론가는 당시 이 모습을 9월 9일 미디어 오늘 '이안의 컬쳐필터'를 통해 비판했다. 그는 일베와 어버이연합이 세월호 특별법 제정을 위한 단식현장에 몰려들어 치킨과 피자를 먹고 술까지 마시며 행패를 부린 행위를 영화 <세븐>(1995년, 데이빗 핀처 감독)의 첫번째 살인 현장 장면에 빗대어 묘사했다. 그는 이 칼럼에서 일베가 "대한민국 어버이연합이라는 나이값 못하는 망나니들의 본을 따른 것"이라며 "늙어가면서 나이만 먹은 게 아니라 이기심과 탐욕만 먹어 배만 채우고 영혼은 텅 비어버린 아귀들을 윗물로 삼았으니, 그 아랫물들이 독살스러울 수밖에"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이안 평론가의 비판에 어버이연합도 가만히 있지 않았다. 그들은 '나이값 못하는 망나니', '늙어가면서 이기심과 탐욕만 먹어 배만 채우고 영혼은 텅 비어버린 아귀'란 표현이 자신들을 모욕한 것이라며 검찰에 고소장을 제출했다. 그런데 상식적으로 '망나니', '아귀' 등의 표현이 "X같은 놈들", "찢어죽일 놈들", 쓰레기들", "종북빨갱이 XX들"보다 더 모욕적일 수는 없는 일이다. 어버이연합에게 향한 모욕이 딱밤 수준이었다면 유족들에게 향한 모욕은 한창 화제가 되고 있는 목함지뢰 수준이다. 누가 누구의 명예를 훼손했다는 건지 황당하기 그지 없는 일이다. 





그런데 이 황당함은 법원의 판결에 불복하며 항소한 검찰의 항소이유에서 절정으로 치닫는다. 검찰은 "대다수의 회원이 고령의 노인인 피해자 연합을 상대로 망나니 아귀들이라고 표현하는 것은 동양 유교적 관점에서도 용납될 수 없는 사회적 품위를 잃은 행위"라며 "객관적으로 명백한 모욕적 표현이 기재돼 있다면 양의 다과를 불문하고 사회상규에 반하는 모욕으로 봄이 상당하다"고 항소이유를 밝혔다. 그런데 검찰이 항소이유서에서 적시한 '동양 유교적 관점'이라는 표현이 영 생뚱맞다. 노인들이 세월호 단식현장에서 보여준 행동과 검찰이 밝힌 '동양 유교적 관점'과의 연관성은 눈꼽만큼도 없기 때문이다. 


유교가 내세우는 가치는 첫째도, 둘째도, 셋째도 '인()'이다. '인'은 곧 사랑이며 모든 사람의타고난 고유의 품성이다. 공자는 바로 이 점에 주목하고 인간은 인성을 밝히기 위해 지혜와 인격을 갖추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인'을 통해 하늘과 땅의 도덕을 지키고, 윤리를 실천하여 행복한 가정, 밝은 사회, 평화로운 세상을 건설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런데 검찰이 항소이유서에서 밝힌 '동양 유교적 관점'으로 보자면 어버이연합의 행동에서 유교가 강조하는 인의 사상은 전혀 찾아볼 수 없다. 오히려 유교의 교리를 정면으로 배척하는 반인륜적이고 반사회적이며 패륜적인 행태만 드러나고 있을 뿐이다. 검찰이 '동양 유교적 관점'을 거론한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란 의미다. 


검찰이 이안 평론가의 표현을 거론하며 '사회적 품위'를 운운한 것도 황당하기는 마찬가지다. 사람이 갖추어야 할 위엄이나 기품을 의미하는 단어인 '품위'는 어버이연합과 전혀 어울리지 않는 수사이기 때문이다. 지푸라기라도 잡아보려는 심정으로 처절하게 단식을 벌이고 있는 유족들을 향해 거리낌없이 "X같은 놈들", "찢어죽일 놈들", 쓰레기들", "종북빨갱이 XX들" 같은 욕설과 폭력을 행사하는 노인들에게 무슨 '사회적 품위'를 기대할 수 있을까. '사회적 품위'를 논하려거든 먼저 어버이연합에게 묻는 것이 순서다. 사회적 비판과 논란을 제공한 원인제공자들은 어버이연합이기 때문이다. 당시 전국에 생중계된 어버이연합의 패악질은 보는 이들의 눈쌀을 찌푸리게 만들며 노인세대에 대한 극도의 경멸을 부추기게 만들었다. 검찰은 '사회적 품위'를 누가 훼손하고 있는지 똑똑히 직시할 필요가 있다.  





본디 '어버이'는 어머니에서의 '어'와 아버지에서의 '버' 합쳐져 만들어진 낱말이고, 검찰은 '검사하고' 자세히 살핀다'는 두 글자가 결합해 이루어진 낱말이다. 아무리 좋은 의미를 지녔어도 누가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따라 이처럼 최악으로 나타날 수 있다. 공경받아야 할 어른으로서 지위를 포기하고 정치권의 홍위병이 되기로 자처한 어버이연합이나 정치권력의 주구가 되어 얼토당토않는 이유로 항소를 결정한 검찰이나 한심하기 이를 데 없다. 어버이연합과 검찰은 더 늦기 전에 제발 이름값 좀 하기 바란다. 그것이 아니라면 '어버이'와 '검찰'의 이름을 사회에 반납하라. 자신들과 어울리지도 않을 뿐더러 그 이름이 실로 아깝다. 




이미지 출처 : 구글 이미지 검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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