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정치

응답없는 '침대정치', 선거제 개혁 물건너가나

ⓒ 오마이뉴스

 

침대축구. 앞서고 있는 팀이 경기 후반에 이르러 별다른 신체접촉 없이 그라운드에 누워 시간을 지연시키는 행위를 말한다.

침대축구는 지고 있는 팀의 선수들의 애간장을 태우고, 지켜보는 이들을 짜증나게 만드는 볼썽사나운 구태 중의 하나다. 축구의 묘미를 반감시킬 뿐 아니라 페어플레이를 강조하는 현대 스포츠의 흐름과도 동떨어지기 때문이다.

'침대축구'는 축구에만 국한되는 문제인 걸까. 아닌 것 같다. 이 말은 정치에도 그대로 소급적용된다. 1월과 2월 국회를 통째로 날려버린 여야가 4월에도 공전에 공전을 거듭하고 있다.

3월 임시국회에서 '반짝' 활동한 것을 제외하면 말 그대로 개점휴업이나 다름없는 상태가 지속되고 있다. 정치를 해야 할 사람들이 정치에 손놓고 있으니 이쯤되면 침대축구, 아니 '침대정치'라고 불려도 할 말이 없는 상황이다.

홍영표 더불어민주당·나경원 자유한국당·김관영 바른미래당 등 여야 교섭단체 원내대표는 지난 15일 회동을 갖고 4월 임시국회 의사일정 등을 논의했지만 합의점을 찾는데 실패했다.

여야는 특히 이미선 헌법재판관 후보자의 거취 문제에 이견을 드러내며 입장차를 좁히지 못했다. 한국당과 바른미래당은 주식투자 의혹이 불거진 이 후보자에 대해 임명불가 원칙을 고수하고 있다. 특히 한국당은 문재인 대통령이 이 후보자 임명을 강행할 경우 장외 투쟁을 나설 것이라며 공세의 수위를 최고조로 끌어올리고 있다.

이 후보자의 거취 문제가 여야 갈등의 주된 요인으로 보이지만 이는 표면적인 것이라는 지적이 많다. 이 후보자 논란은 종속변수일 뿐 국회가 겉도는 이유는 따로 있다는 얘기다.

실제 갖가지 이슈들이 국회 파행으로 이어지고 있다. 올해만 해도 여야는 김태우·신재민 사건, 조해주 중안선거관리위원회 상임위원 임명 논란, 손혜원 목포 부동산 투기 논란, 박영선·김연철 인사청문회 논란 등으로 사사건건 부딪혔고, 그때마다 국회는 돌아가지 못했다.

할 일 안 하는 국회, 주야장천 쌈박질만 하는 국회, 정책 개발보다 정쟁유발에 더 열을 올리는 국회의 모습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국회 회기가 시작될 때마다 의원들은 일 하는 국회, 싸우지 않는 국회, 대안과 비전을 제시하는 건설적 국회를 열겠다고 다짐했지만 언제나 '공염불'이다. 사정이 이러니 역대 최악의 국회란 불명예 기록이 4년마다 깨지는 웃지못할 촌극이 연출되고 있다.

이런 국회를 봐야하는 것은 '침대축구'를 보는 것마냥 피곤하고 짜증나는 일이다. 문제는 이런 상황이 되풀이되면서 정치불신과 혐오가 확산되고 시민들이 정치와 멀어되는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 오마이뉴스


대의민주주의 확장을 위해 시민의 활발한 정치 참여를 이끌어내야 할 정치권이 외려 시민의 정치 불신을 기득권 유지의 수단으로 삼는 어이없는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주지하다시피 국회는 국가기관에 대한 신뢰도 조사에서 늘 최하위를 면치 못하고 있다. 정치인들이 입버릇처럼 내뱉는 개혁·혁신의 최우선 대상이 바로 국회인 셈이다.

그러나 시민의 싸늘한 눈총과 비판에도 국회는 수 십년 째 달라지지 않고 있다. 이유는 다른 곳에 있지 않다. 정책 개발이나 대안 제시 없이 상대방의 발목만 잡아도 승리할 수 있는 선거제도, 인물의 자질과 능력보다 어느당 출신이냐가 더 중요시되는 정치 풍토, 유권자의 의사가 정치에 제대로 반영되지 못하는 환경이 만들어낸 후과다.

현행 거대 기득권 양당 체제로는 망국적인 후진정치를 극복하기 어렵다는 것이 중론이다. 집권당과 제1야당이 물과 기름처럼 부딪힐 수밖에 없는 정치구조에서는 국회 파행은 불을 보듯 뻔한 노릇이다.

여당은 본능적으로 청와대의 눈치를 살필 수밖에 없고, 야당은 정부·여당 흠집내기와 반대를 통해 '수권'의 기회를 엿본다. 야당의 행태에 동의하지는 않지만, 승자독식의 양당체제에서는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현실이다.

정치권과 학계, 시민사회 등이 연동형비례대표제를 골자로 한 선거제도 개혁의 필요성을 역설하고 있는 것은 그 때문일 것이다. 

기득권을 움켜쥔 거대양당이 벌이는 소모적 정쟁에 '정치'가 실종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 건강한 여야관계를 만들고 생산적인 정치문화를 증진시키 위해 유권자의 정치적 의사가 제대로 반영된 진정한 의미의 '다당제'가 정립돼야 한다는 지적이다.

여야는 지난해 12월 올해 1월 말까지 선거제도 개혁안을 합의 처리하기로 약속했다. 그러나 한국당의 일방적 약속 파기로 시한은 지켜지지 않았다. 한국당은 협상에 미온적으로 나오더니 급기야 비례대표제 폐지라는 위헌적 당론으로 선거제도 개혁에 대한 속내를 드러냈다.

한국당을 제외한 여야 4당이 고육지책으로 내놓은 패스트트랙도 사실상 물 건너가는 분위기다. 여야 4당은 지난달 17일 선거제 개혁과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 설치, 검·경수사권 조정을 한 데 묶어 패스트랙으로 처리하자는 안에 잠정합의했지만, 한 달이 다되도록 접점을 찾지 못하고 있다.

국회법과 내년 총선 일정 등을 감안하면 패스트트랙 상정은 본회의 상정 270여일 전인 이번 주가 마지노선이라는 견해가 일반적이다. 그러나 패스트트랙을 둘러싼 여야 4당의 셈법이 제각각인 데다가, 각 당의  내부 사정까지 겹치면서 합의에 난항을 겪고 있다.

특히 열쇠를 쥐고있는 바른미래당 내부의 이견과 내홍이 극심해 선거제 개편 시한 내 처리가 요원해졌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후진적이고 퇴행적인 정치문화는 국가 경쟁력은 물론 시민 개개인의 삶에도 악영향을 미친다. 끊임없이 되풀이되는 정치공방과 소모적 논쟁, 극한 대립과 갈등으로 인한 사회적 비용도 실로 막대하다. 

이같은 망국적 고질병을 근본적으로 뜯어고치기 위해서는 정치 시스템을 획기적으로 대개혁하는 길 외에는 방법이 없다. 아무리 좋은 씨앗이라 해도 토양이 나쁘면 제대로 자라나지 못하는 것과 같은 이치다.

선거제도 개혁을 위한 마지막 희망이던 패스트트랙 상정이 무위에 그칠 공산이 점점 커지고 있다. 지난한 선거제도 개혁의 과정은 '고양이가 제 목에 방울을 달 리 없다'는 속담을 떠올리기에 부족함이 없다. 정치권을 향한 개혁 요구를 멈춰서는 안 되는 이유일 터다. 울화통 터지는 '침대정치'가 지속되는 한, 그 피해는 고스란히 시민의 몫으로 남겨질 것이다.

 

 

▶▶ 바람 언덕의 정치실험에 여러분을 초대합니다 (클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