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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음주운전 경찰청장? 이러고도 국민에게 준법을 강요할텐가?

ⓒ 오마이뉴스


지난 1993년 음주운전 사고를 냈던 이철성 경찰청장 후보자가 23일 강신명 경찰총장의 이임식에 참석했다. 원래대로라면 이날 이취임식이 함께 열려야 했지만 취임식은 생략됐다. 이 후보자에 대한 인사청문경과보고서 채택이 불발된 탓이다. 그는 경찰청장에 취임하는 대신 청장 '직무대행'이라는 꼬리표를 달게 됐다.

그러나 이 후보자의 취임식은 조만간 열릴 것으로 보인다. 야당과 시민사회의 강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박근혜 대통령이 임명을 강행할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정연국 청와대 대변인은 23 "(인사청문회법 상) 요청을 하게 되어 있고 절차에 따라 진행할 것"이라며 이 후보자에 대한 보고서를 국회에 재요청할 것임을 시사했다. 이는 음주운전 전력이 있는 경찰청장의 탄생을 의미하는 것이어서 취임 이후에도 논란은 피할 수 없을 전망이다.

이 후보자는 인사청문회에서 과거 음주운전 사실과 사고 처리 과정의 석연치 않은 의혹들로 집중 추궁을 받아야 했다. 그는 사고 당시 자신이 경찰공무원이란 사실을 숨겨 경찰의 내부 징계를 피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그는 이에 대해 "(당시) 정신이 없고, 너무 부끄러워서 신분을 밝히지 못했다"는 군색한 해명을 늘어 놓았다.

그러나 해명에도 불구하고 당시 상황은 상식적으로 납득하기 힘들다는 지적이 많다먼저 징계를 피하기 위해 경찰공무원 신분을 숨겼다는 것부터가 논란이다. 누구보다 법과 원칙에 충실해야 할 사람이 바로 경찰공무원일 것이다. 그러나 그는 음주운전으로 인한 교통사고의 책임을 회피하기 위해 자신의 신분을 철저하게 숨겼다. 경찰조직을 이끌 수장으로서의 자격이 의심스러울 수밖에 없는 까닭이다.

그가 신분을 감추는 과정에서 동료들의 조직적 은폐와 축소 의혹도 제기되고 있다. 당시 사고는 단순 음주운전 사고로 치부할 수 없는 대형 교통사고였다. 중앙선을 침범한 이 후보의 차량과 마주 오던 차량이 충돌해 상대편 차량이 폐차가 될 정도였다. 그런데 이 사고의 당사자가 경찰이었다는 사실을 몰랐다는 것 자체가 난센스다. 신원 조회를 통해 바로 알 수 있는 사실이기 때문이다.

이 후보자의 해명과는 달리 인명 피해가 있었다는 주장도 제기됐다.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당 소속 의원 12명은 22일 기자회견을 통해 "이 후보자는 인사청문회에서 당시 '인명피해 사고는 없었다'고 증언했지만 언론사와 의원실에는 당시 인명피해가 있었다는 제보가 들어오기 시작했다"고 밝혔다. 상식적으로 생각해도 당시 사고가 차량이 폐차될 정도의 대형 사고였음을 감안하면 인명 피해가 없었다는 이 후보자의 주장을 곧이 곧대로 받아들이기에는 무리가 있다.

당시 사고가 축소 은폐되었다는 의혹이 해소되지 않는 데에는 경찰의 책임도 크다. 경찰이 당시 사고 수사기록 제출에 비협조적이기 때문이다. 당시 사고의 수사기록이 이 후보자에게 제기된 의혹을 풀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열쇠임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그런데도 경찰은 인사청문 위원들이 요구한 당시 사고 자료의 제출 요구에 비협조적인 태도로 일관했다. 이 후보자를 향한 의혹이 수그러들지 않고 있는 또 다른 이유다.



ⓒ 오마이뉴스



취임을 앞둔 이 후보자를 바라보는 국민의 시선은 싸늘하다. 음주운전 사실 하나만으로도 그에게 경찰조직을 이끌 수장의 자격이 없다는 것이 중론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음주운전 사고와 이를 수습하는 과정의 석연찮은 의혹들은 전혀 문제가 되지 않을 전망이다. 국회가 청와대의 보고서 재요청 요구를 거부한다 하더라도 박 대통령이 임명을 강행하면 그만이기 때문이다.

박 대통령은 그동안 기회가 있을 때마다 법과 원칙을 강조해왔다. 국민을 계몽하고 계도하는 데에 그만한 방법이 없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그가 강조하는 법과 원칙은 그 적용 범위와 대상이 지극히 제한적이며 협소하다. 문제의 심각성이 바로 여기에 있다. 국민에게만 엄격히 적용되는 법과 원칙은 국가 폭력을 정당화하는 수단으로 악용되기 십상이기 때문이다.

박 대통령을 가만히 보고 있노라면 이 나라에는 마치 두 사람의 대통령이 존재하는 것만 같다. 한 사람은 법과 원칙을 강조하고 있는 반면, 다른 한 사람은 그것을 부정하고 처참하게 짓밟는다. 이런 식이라면 성추행 전력이 있는 인사를 여성가족부 장관으로 임명한다고 해도 하등 이상할 것이 없다


수많은 국민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음주운전 전력과 숱한 의혹에 휩싸인 인사를 경찰청장에 임명하겠다는 박 대통령. 법치를 스스로 부정하는, 가히 이율배반의 '끝판왕'이라 부를만하다. 과연 박 대통령이 이러고도 국민에게 준법을 강요할 수 있는건지 묻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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