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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윤석열 총장님, 나경원 자녀 의혹 수사는 언제 하시렵니까

ⓒ 문화일보

 

 

"(윤석열 검찰총장은) 권력형 비리에 대해서 권력의 눈치도 보지 않고 사람에 충성하지 않는 그런 자세로 엄정하게 처리해 국민들 희망을 받으셨다. 살아있는 권력에 대해서도 똑같은 자세가 되어야 한다. 우리 청와대든 또는 정부든 또는 집권여당이든 만에 하나 권력형 비리가 있다면 그 점에 대해서는 정말 엄정한 그런 자세로 임해주시기를 바란다."

2019년 7월 25일 문재인 대통령은 윤석열 검찰총장에게 임명장을 수여하면서 의미심장한 말을 전달했습니다. 권력형 비리의 징후가 엿보일 경우 눈치보지 말고 엄정하게 수사해 달라는 주문이었습니다.

대통령의 당부를 깊이 새겼기 때문이었을까요. 윤 총장 취임 이후 검찰은 이전과는 전혀 다른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대통령의 말처럼, 권력형 비리에 사활을 걸고 수사에 나서고 있는 것이죠. 검찰은 조국 전 법무부 장관 일가 의혹 수사를 비롯해 청와대의 울산시장 선거개입과 하명수사 의혹 등 살아있는 권력을 겨눈 수사에 주저함이 없습니다.

이것이 전부가 아닙니다. 윤 총장은 최근 친여권 인사 연루 의혹이 있는 '신라젠'과 '라임사태'와 관련해 수사를 맡은 서울남부지검 수사팀에 서울중앙지검 소속 검사 3명과 서울동부지검 소속 검사 1명을 파견토록 지시했습니다. 지난 10일 열린 전국 지검장 및 선거담당 부장검사 회의에서는 선거범죄와 금융범죄에 대한 엄정 수사를 강조하기도 했습니다.

4·15 총선을 대비한 조치이지만 일각에서는 이를 윤 총장의 정권 수사 의지가 나타난 것이라 보는 시각도 있습니다. 조 전 장관 일가 의혹을 시작으로 울산시장 선거개입과 하명수사 의혹 등 살아있는 권력을 겨눈 검찰 수사에 정당성을 부여하는 한편 현 정권 실세의 이름이 거론되는 금융사건에 대해서도 수사를 이어가겠다는 뜻을 드러낸 것이라는 분석입니다.

윤 총장은 권력의 최정점에 있는 문 대통령을 향해서도 속내(?)를 드러냈습니다. 7일 언론에 공개된 울산시장 선서개입 의혹과 관련한 검찰의 공소장에는 "대통령이나 대통령의 업무를 보좌하는 공무원에게는 다른 공무원보다도 선거에서의 정치적 중립성이 더욱 특별히 요구된다"는 대목이 있습니다.

검찰이 공소장에서 현직 대통령을 거론하는 것은 지극히 이례적인 일입니다. 대통령에 맞서는 모양새가 연출되는 데다, 정치적 논란으로 비화될 소지가 다분하기 때문입니다. 당장 자유한국당 등 야당에서는 "대통령 탄핵" 주장이 공공연하게 터져나오고 있습니다. 과거의 검찰이라면 상상하기 힘든 장면이 아닐 수 없습니다.

어떻습니까. 이만 하면 윤 총장이 "청와대든, 정부든 또는 집권여당이든 권력형 비리가 있다면 엄정하게 수사하라"는 문 대통령의 당부를 정말 충실히 수행하고 있다 해도 지나치지 않을 듯 합니다. 그런데 한편으론 윤 총장이 대통령의 말을 잘못 이해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의구심이 듭니다. 납득하기 힘든 검찰의 수사 행태 때문입니다.

대통령의 당부는 권력형 비리에 대해 눈치보지 말고 수사하라는 의미이지, 청와대와 정부여당만 수사하라는 뜻이 아닙니다. 그런데 윤 총장은 이를 살아있는 권력에 대한 엄정한 수사로만 받아들이고 있는 것 같습니다. 청와대, 정부여당에 대해서는 검찰력을 총동원해 전방위적인 수사를 펼치고 있으면서도 다른 사건의 경우에는 상대적으로 소극적인 면모를 보이고 있기 때문입니다.

지난해 9월 입법로비 명목으로 국회의원 등에게 수천만원을 건넨 혐의를 받고 있는 한국어린이집총연합회(한어총) 관계자들이 검찰에 송치된 일이 있습니다. 사건을 수사했던 서울 마포경찰서는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로 불구속 입건된 김용희 한어총 회장과 박모 전 국공립분과위 사무국장 등 20명을 기소의견으로 검찰에 송치했습니다.

그런데 사건을 담당한 서울 서부지검은 한어총으로부터 로비를 받은 의혹이 있는 전·현직 국회의원과 보좌관들을 입건하지 않도록 수사를 지휘했습니다. 경찰에 따르면, 김 회장이 2013년~14년 국회의원 측에 돈을 전달했다는 관계자의 진술과 불법 정치 후원금을 다수 복지위 의원 측에 계좌로 전달한 정황 등을 파악한 상태였습니다. 그러나 검찰은 혐의 입증이 안 됐다는 이유로 전·현직 국회의원들을 입건해야 한다는 경찰의 건의를 거부했습니다

"9월 16일 첫 고발 후 106일이 되었지만, 검찰은 끝없는 직무유기로 자한당과 나경원 비호하고 있다. 검찰은 10월 24일 전교조가 별도로 고발한 나경원-김재호 입시비리 의혹도 전혀 수사하지 않고 있다. 전교조의 별도 고발까지 포함하면 최소 10번 넘게 고발된 나경원 등에 대해 검찰은 몇 번의 고발인 조사 외에는 나경원과 그 공범들에 대해 어떠한 수사도 진행하지 않고 있다"

'사립학교개혁과 비리추방을 위한 국민운동본부'와 '민생경제연구소' 등 시민단체가 지난해 12월 30일 자녀 입시 부정 의혹을 받고 있는 나경원 자유한국당 의원을 수사하지 않고 있는 검찰을 강력 비판한 내용 중 일부입니다. 검찰이 10여 차례나 고발장이 접수된 관련 의혹에 대해 직무유기를 하고 있다는 지적입니다.

나 의원은 조 전 장관 자녀 입시 의혹과 관련해 '연관 검색어'처럼 따라다니는 인물입니다. 나 의원의 아들과 딸 역시 역시 조 전 장관의 자녀와 마찬가지로 입시 부정 의혹에 연루돼 있기 때문이죠. 그러나 두 사안에 대한 검찰의 수사 행태는 달라도 너무 다르다는 것이 일반적인 평가입니다.

검찰은 조 전 장관의 배우자인 정경심 동양대 교수를 딸의 대학 입시 부정에 관여했다는 혐의로 전격 기소했습니다. 단 한 차례의 소환조사도 없이 인사청문회 도중 이뤄진 기소였습니다. 이후 검찰은 특수부 검사 수십명을 투입해 70여 차례에 달하는 압수수색을 펼쳤고, 공소장을 변경하면서까지 혐의 입증을 위해 매달렸습니다.

반면 나 의원 자녀 의혹 수사는 감감무소식입니다. 첫 고발 이후 5개월 여가 지났고, 무려 10여 차례나 추가 고발장이 접수됐지만 피고발인 조사는 아직까지 단 한 차례도 이뤄지지 않고 있습니다. 조 전 장관 일가 의혹 수사와 관련해 일각에서 '인디언 기우제' 같다는 비유가 나오고 있는 실정이고 보면 수사 행태가 '천양지차'인 셈입니다.

나 의원 딸의 부정 입학 의혹과 관련해 법원의 판결을 주목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2019년 12월 19일 서울고법 행정7부(부장판사 노태악)는 '나경원 의원 딸의 부정입학 의혹'을 보도한 <뉴스타파>에 대한 인터넷선거보도심의위원회(심의위)의 경고처분이 부당하다는 판결을 내렸습니다. <뉴스타파>가 심의위를 상대로 낸 경고처분 취소 소송 항소심에서 원고 승소 판결을 내린 것입니다.

재판부는 "(나경원 의원 딸의) 성적이 담당 교수와 강사를 거치지 않고 정정된 것으로 보여지며, 뉴스타파가 이에 대해 의혹을 제기한 것은 객관적 사실과 부합하고 정당한 이유가 있다"며 "양정의 적정성에 대해 판단할 필요 없이 원고의 이의가 이유 있음을 입증했다. 1심 판결의 결론이 정당하므로 피고의 항소를 기각한다"고 밝혔습니다.

1심에 이어 2심에서도 법원은 나 의원 딸의 성신여대 입학과 성적 비리 의혹에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법원뿐만이 아닙니다. 김호성 전 성신여대 총장은 나 의원 자녀 입시 관련 의혹에 대해 "권력형 입시비리로 볼 수 있다"는 증언을 한 상태이고, 성신여대의 감사보고서 역시 나 의원 딸의 "성적 향상이 극단적"이라고 지적하고 있습니다.

나 의원 아들의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언론보도 등을 종합해 보면, 나 의원 아들을 둘러싼 논란은 연구물 포스터 제1저자 청탁 논란 및 4저자 등재 관련 의혹 외에도 연구윤리심의 미준수 문제, 표절 의혹 등 한 두가지가 아닙니다. 조 전 장관 자녀가 받고 있는 의혹과 겹치는 부분이 많다는 공통점도 있습니다.

그러나 검찰 수사는 극명히 대비됩니다. 조 전 장관 일가 수사의 경우 최초 고발이 들어온지 한 달도 안 돼 대대적인 참고인 조사와 압수수색을 벌였던 검찰이 나 의원 자녀 의혹에 대해서는 최초 고발 후 5개월이 지나도록 피고발인 조사조차 하지 않고 있습니다.

어디 그뿐인가요? 애초 울선시장 선거개입과 하명수사 의혹의 출발점인 '고래 고기 환부 사건'과 김기현 전 울산시장 형제 비리 사건과 관련해서도 검찰은 봐주기 수사 의혹과 전관특혜 의혹을 받고 있습니다.

'고소장 위조 검사' 사건 무마 의혹으로 고발된 김수남 전 검찰총장, 김주현 전 대검찰청 차장검사, 황철규 전 부산고검장, 조기룡 전 청주지검 차장검사 등 4명에 대한 검찰 수사 역시 멈춰선 상태입니다. 초미의 관심사였던 패스트트랙 폭력 사건 수사와 관련해서도 이런저런 뒷말들이 나오고 있습니다.

평검사 시절부터 검찰 조직내의 부조리를 공론화하는데 앞장서 왔던 임은정 울산지검 부장검사는 지난달 23일 페이스북에 "거듭 밝힙니다만, 저는 조국 전 장관에 대한 검찰 수사가 아니라, 검찰의 이중 잣대, 선택적 수사와 선택적 기소, 제 식구 감싸기를 비판하는 것"이라며 검찰 수사를 강하게 꼬집었습니다.

세간의 인식도 그와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정권 수사와 관련된 기사마다 '나 의원 자녀 의혹'이 '해쉬태그'처럼 따라붙고 있습니다. 시야에서 멀어진 세월호 참사 수사 무마 의혹과 기무사 계엄문건 수사가 언급되기도 합니다. 검찰 수사의 공정성을 지적하는 목소리가 잇따르고 있는 것이죠.

검찰 수사에 대한 비판이 나올 때마다 윤 총장은 정면돌파를 시도해 왔습니다. 그러나 윤 총장이 앞세우고 있는 법과 원칙이 유독 정권 수사에서만 도드라지는 것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요. 검찰 수사를 비판하는 목소리에 윤 총장이 귀를 기울여야 하는 이유입니다. 검찰의 탈정치화를 부르짖는 시민의 요구가 거세지고 있는 이때, '선택적 수사'에 대한 세간의 의구심을 털어내기 위해선 그 길외에는 방법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