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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야당이여, 대의에 대한 확신을 가져라

역시 예상한 대로였다. 어제 청와대에서 열린 5자회담은 서로의 극명한 입장 차이만 확인한 채 끝나고 말았다. 이번 회담의 최대 관심사는 국정교과서 문제였다. 대통령과 여야 지도부가 국정교과서 논란의 해법을 찾을 수 있을지의 여부에 모든 시선이 집중됐다. 그러나 1시간 50분 가량 진행된 회담은 아무런 소득없이 끝나고 말았다. 대통령과 여야 지도부 사이의 괴리는 그만큼 크고 깊었다. 5자회담에서도 해법을 못 찾은만큼 앞으로 국정교과서 논란으로 인한 국론 분열과 국정 파행이 장기화될 가능성이 대단히 높아졌다.

이번 회담은 사실 그 결과가 너무도 뻔히 보이는 자리였다. 청와대가 이례적으로 5자회담을 제안한 것은 여론이 국정화 반대로 급속하게 돌아섰기 때문이다. 청와대는 5자회담을 통해 여론을 환기시키길 원했다. 야당과의 회담을 통해 꽉막힌 정국을 풀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는 모습을 국민에게 보여줄 필요가 있었던 것이다. 따라서 청와대와 새누리당이 국정화를 강행하겠다는 고집을 꺽지 않는 이상 회담의 성과를 기대하기란 애시당초 요원한 일이었다.





청와대와 새누리당의 전략은 국정교과서 논란을 정쟁과 이념의 문제로 몰아가는 것에 있다. 그들은 앞으로 '경제가 어렵고 민생이 도탄에 빠졌는데 정치권이 역사 논란에 빠져 시급한 민생현안을 외면해서 되겠는냐'는 식으로 적극적인 공세를 펼칠 것이다. 여기에 더해 보수지식인들과 보수단체를 동원해 기존 검인정 교과서의 좌편향 문제를 계속해서 부각시키려 할 것이다. 경제와 민생, 그리고 좌편향을 한 데 묶는 프레임은 청와대와 새누리당이 국면전환을 시도할 때마다 꺼내드는 단골 레퍼토리다.

문제는 야당에게 과연 어떤 복안이 있느냐에 있다. 새정치민주연합의 문재인 대표는 이날 "가계부채 1,100, 비정규직 600, 청년실업률 10%대 등 이들 모두 사상 최대, 최고를 기록할 정도로 경제가 어렵다"는 점을 강조하며 이런 시국에 국정교과서에 매달리는 대통령과 새누리당을 싸잡아 비판했다. 문재인 대표의 인식은 정확하고 명료하다. 이같은 비상 시국이라면 여야가 초당적으로 협력해서 경제와 민생을 살려야 한다는 것은 상식에 가깝다.

그러나 문제는 이 나라의 대통령과 집권당 역시 같은 논리를 가지고 민심을 집요하게 공략할 것이란 점이다. 이럴 경우 야당에게 과연 어떤 대응책이 있는지 솔직히 의문이다. 경제와 민생을 사이에 두고 치뤄졌던 여야의 전투에서 야당은 그동안 늘 고전을 면치 못했기 때문이다. 그런 면에서 야당에게 국정원 사건과 세월호 참사는 좋은 반면교사가 될 수 있다. 대한민국을 송두리째 뒤흔들었던 이 두 사건과 현재 벌어지고 있는 국정교과서 논란은 아주 닮아있기 때문이다. 대의와 명분이 어디에 있느냐는 측면에 있어서 특히 그렇다.





정치적 이슈-나는 이 표현을 극도로 혐오한다. 세상에 존재하는 이슈치고 정치적이지 않은 것은 없다-를 사이에 두고 벌어지는 정당 간의 치열한 대결을 싸움 혹은 전쟁으로 표현하는 것이 옳은 것인지는 모르겠다. 그러나 그것이 싸움이든 전쟁이든, 아니면 대결이든 가장 중요한 것은 대의가 과연 누구에게 있느냐에 달려 있다. 대의를 확보할 수 있느냐 없느냐에 따라 전세가 이내 판가름나기 때문이다.

그 다음으로 중요한 것은 대의를 천하에 호령할 결연한 의지와 확신이다. 국정원 사건과 세월호 참사 모두 대의와 명분이 야당에게 있었다는 것은 분명하다. 그렇기 때문에 민심이 그들과 함께 했던 것이다. 그러나 야당은 너무나 선명했던 대의명분에도 불구하고 전투에서 승리하지 못했다. 국정원 사건과 세월호 참사의 전모가 아직까지 밝혀지지 않고 있고, 핵심 관련자들이 여전히 건재하고 있다는 것만 봐도 이 전투의 승패는 명확해진다.

국정교과서 논란 역시 전체적인 맥락에서 국정원 사건과 세월호 참사와 별반 차이가 없다. 아무리 청와대와 새누리당이 경제와 민생을 거론하며 이를 이념과 정쟁의 문제로 물타기 하려고 한들, 역사 논란의 본질마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국정교과서 논란은 경제와 민생, 이념과 정쟁의 문제이기 이전에 우리 고유의 역사와 민족에 대한 문제이며, 동시에 상식 대 비상식, 이성 대 비이성, 정의 대 불의 간의 근원적인 대결이기 때문이다.

민주주의의 험난한 과정을 체화한 국민들이 이 기본적인 대결 구도의 의미를 모를 리가 없다. 시간이 갈수록 반대 여론이 높아지는 것은 국민들이 이 대결의 본질을 정확하게 꽤뚫고 있다는 방증이다. 역사 왜곡을 부추기려는 세력들의 비상식과 비이성, 불의에 맞서 사회공동체의 보편적 상식과 이성, 정의가 결집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지금 야당에게 필요한 것은 대의와 명분이 아니다.  그것들은 이미 오래 전부터 같은 자리에 있어온 것들이다. 5천년을 이어온 숭고하고 유구한 역사 속에, 이를 지켜낸 민초들의 가슴과 심장 속에 대의와 명분은 녹아 있다. 이 오래된 싸움에서 승리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 대의에 대한 확신과 이를 바탕으로 한 단호한 행동 뿐이라는 사실을 야당은 기억할 필요가 있다. 야당이 이를 잊지 않는다면 민심은 저절로 그들의 손을 들어줄 것이다. 그러므로 야당이여, 대의에 대한 확신을 가져라. 지금 그대들에게 필요한 것은 오직 그것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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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출처 : 구글 이미지 검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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