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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안철수의 회색정치는 언제까지 이어질 것인가


ⓒ JTBC 뉴스 화면 갈무리


술은 마셨지만 음주운전은 하지 않았다. 이는 아직까지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고 있는 논리파괴형 수사의 대명사다. 언젠가 모 연예인은 황당하기 짝이 없는 이 발언으로 수많은 사람들의 정신을 혼미하게 만들었다. 그러나  순간의 상황을 모면하기 위해 튀어나왔던 이 말의 대가는 실로 컸다. 이후 논리파괴형 어록들이 만들어질 때마다 도매급으로 같이 소환되고 있기 때문이다. 단 한 번의 말실수에 불과했을 뿐인데 참으로 얄궃는 운명이다.

우리는 논리파괴형 수사들을 일상에서 자주 마주친다. "때린 것은 맞지만 폭행은 아니다", "같이 잔 것은 맞지만 간통은 아니다", "엉덩이를 만지기는 했지만 성추행은 아니다", "물건을 은닉하기는 했지만 훔친 것은 아니다", "거짓말을 한 것은 맞지만 사기는 아니다" 등의 표현들은 모두 일상에서 쉽게 접하는 "술은 마셨지만 음주운전은 하지 않았다"의 아류작들이다.

그러나 논리파괴형 수사들이 가장 빈번하게 생산되고 있는 곳은 바로 정치권일 것이다. 그들은 정치적 사안에 따라 자유자재로 이 말도 안되는 언어의 유희에 빠져들고는 한다. 그 모습은 연기 지망생이나 작가 지망생들이 모니터링하면 어떨가 싶을 정도로 아주 자연스럽고 능수능란하다. 능청스러운 연기는 말할 것도 없고 언어의 연금술사나 다름없는 주옥같은 표현들이 만들어진다.

저자거리를 꽉 잡고 있는 논리파괴형 어록의 전설이 모 연예인의 것이라면, 정치권은 단연 이명박 전 대통령이 만들어낸 어록을 손꼽을 수 있다. 그는 지난 2007년 한나라당 대선후보경선과정에서 BBK 실소유 문제로 홍역을 치룬 적이 있다. 당시 문제가 됐던 광운대 강연 동영상에는 그가 BBK를 설립했다고 말하는 장면이 나온다. 그러나 그는 "BBK를 설립한 것은 맞지만 실소유주는 아니다"라는 희대의 궤변으로 논란을 유유히 비켜갔다.

본디 나쁜 것은 빠르게 퍼지기 마련이다. 이명박 전 대통령이 만들어 낸 BBK의 아류작들도 속속 양산되기 시작했다. "돈을 받기는 했지만 뇌물은 아니다", "정치에 개입한 것은 맞지만 선거에 개입한 것은 아니다", "허위사실을 적시한 것은 맞지만 명예훼손은 아니다", "자회사를 설립한 것은 맞지만 민영화는 아니다", "국가안보실은 있지만 재난 컨트롤타워는 아니다", "전경련의 돈을 썼지만, 받은 것은 아니다" 등 하루가 멀다하고 논리파괴형 어록들이 출몰하고 있다.



ⓒ 뉴시스



그런데 이 대열에 이제는 국민의당 안철수 상임공동대표도 가세할 모양이다. 국회의장 선출과 관련된 안철수 대표의 발언 역시 논리파괴형 어록의 맥을 고스란히 잇고 있다. 그는 당초 이 문제와 관련해 "총선에서 나타난 민심을 따르는 게 순리"라며 국회의장은 원내 1당을 차지한 더불어민주당의 몫이여야 한다는 취지로 발언을 했었다. 그러나 그는 21 "저는 어느 당이 국회의장을 했으면 좋겠다고 말한 적이 없다"며 슬그머니 말을 바꿨다.

안철수 대표의 말 한마디에 정치권은 혼란에 빠졌고 국민도 어리둥절하기는 마찬가지다. 그의 말처럼 순리대로라면 원내 1당을 차지한 더불어민주당이 국회의장직을 맡는 것이 상식일 것이다. 그러나 그는 불과 며칠만에 자신이 한 말을 스스로 뒤집었다. 즉흥적이지 않다는 것만 다를 뿐 안철수 대표의 발언은 비상식적이고 비논리적이라는 점에서 논리파괴형 어록의 정석을 그대로 답습하고 있다.

이해관계가 복잡하게 얽혀있는 자본주의 사회 속에서 논리파괴가 흔한 일상이 된 것은 분명해 보인다. 이런 가운데 상식과 논리를 파괴하는 정치권의 언어적 수사들은 관련 사실을 부인하고 책임을 회피하며 국민을 기만하고 있다는 점에서 더욱 저질스럽다. 게다가 이는 말이 좋아 논리파괴이지 어디까지나 말장난이며 위선에 불과할 뿐이다. 

정치인은 사회적 현안과 정치적 사안에 분명한 입장을 밝혀야 한다. 이도 저도 아닌 기계적 중립과 이랬다 저랬다를 반복하는 애매모호함은 결코 정치의 미덕이 될 수 없다. 안철수 대표는 정치에 입문한 이후 대중의 정치혐오와 불신을 부추기거나, 양비론과 중립이 마치 새정치인 것처럼 포장해 왔다. 그러나 신기루 같은 불확실성의 정치, 뜬구름 잡는 실체 불명의 정치는 정치의 미덕이 아니라 사라져 할 박멸의 대상일 뿐이다.


(녹색당의 고유 색깔을 그들이 사용한 이유는 모르겠지만) 국민의당을 상징하는 색깔은 녹색이다. 그러나 안철수 대표는 녹색이 아니라 '회색'이 먼저 떠오른다. 더러워도, 때가 많이 껴도 가까이서 자세히 보지 않으면 별로 티가 나지 않는 차량 색깔 '회색' 말이다. 나는 안철수 대표가 하루 빨리 자신의 색깔을 되찾게 되기를 바란다. 정치인에게 '회색'은 그다지 달가운 색깔이 아니다. 이는 굴욕이자 수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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