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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심재철의 폭로가 공감받지 못하는 이유

ⓒ 오마이뉴스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한 정상적 의정 활동의 일환인가, 아니면 의도적인 목적에서 불법적으로 자행된 해킹 행위인가. 정부 재정분석 시스템의 비인가 정보에 접근해 청와대 등 관계 기관 자료 수십만건을 내려받은 심재철 자유한국당 의원의 비공개 예산정보 무단 유출 의혹 파문이 점입가경으로 흐르고 있다. 

심 의원은 기재부가 승인해준 아이디로 정상적인 방법을 통해 정보를 취득했다고 주장하고 있는 반면, 기재부는 심 의원 측이 비정상적인 방법으로 자료를 열람하고 이를 불법 유출했다며 강력하게 반발하고 있다. 기재부는 정보통신망법·전자정부법 위반 혐의로 심 의원을 고발했고, 심 의원 측은 김동연 부총리와 기재부 관계자 등을 무고 혐의로 맞고발했다. 

정치권은 크게 요동치는 모양새다. 자유한국당은 검찰이 심 의원 사무실 압수수색에 나서자 이를 "야당 탄압"이라 규정하며 강력 투쟁을 예고했다. 이와 관련 김성태 원내대표는 지난달 27일 의원총회를 통해 "대정부 투쟁에 나설 것"이라 공언한 상태다. 검찰의 압수수색이 제1야당을 무력화시키기 위한 정치적 의도라는 주장이다 . 

28일에는 김 원내대표 등 한국당 의원 30여명이 대법원을 전격 방문해 김명수 대법원장에게 법원의 압수수색 영장 발부를 따지기도 했다. 한국당이 이례적으로 대법원을 항의 방문한 것은 그만큼 이번 사태를 심각하게 여기고 있다는 방증이다. 논란의 진원지인 심 의원 역시 청와대 예산사용 내역을 잇따라 공개하며 적극적인 공세에 나서는 중이다. 27일 청와대의 업무 추진비 내역을 공개한 데 이어, 28일에는 청와대 회의참석수당 문제를 걸고 넘어졌다. 

청와대와 기재부, 더불어민주당은 적극적인 해명에 나서는 한편 정부 동의 없이 비인가자료를 열람하고 이를 무단 유출한 심 의원 측과 이를 정치쟁점화시키고 있는 한국당을 향해 역공에 나서고 있다. 제기된 의혹들은 모두 합법적인 지출이라며 사안마다 조목조목 반박하고 있는 것이다. 24시간 가동되는 청와대 업무 특성을 고려하지 않은 과도한 정치 공세라는 주장이다. 회의참석수당 역시 정식 임용 전에 받은 정책자문료이니만큼 문제될 것이 없다는 입장이다. 

추가 공세 차단에도 앞장서고 있다. 심 의원 측이 내려받은 자료에 통일·외교·치안·보안 등 국가 안보에 영향을 미치는 기밀 사항이 대거 포함돼 있다는 사실을 강조하며 자료 반환을 거듭 촉구하고 나섰다. 그런가 하면 문제가 되고 있는 업무추진비 집행 내역과 관련해 감사원에 공식 감사를 청구하고, 재정분석 시스템의 보안이 뚫리게 된 경위 파악에 나서는 등 사태 수습에 적극 나서는 모습이다. 의혹 제기에 미온적으로 대처할 경우 사태가 걷잡을 수 없이 악화될 수 있다는 판단 때문인 것으로 풀이된다.  

예산정보 유출 사건을 둘러싸고 이처럼 뜨거운 설전이 이어지고 있는 가운데 주목해야 할 것은 여론의 동향이다. 첨예하게 엇갈리는 정치 공방의 향배는 결국 여론에 의해 좌지우지되는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그런 면에서 보면 심 의원의 폭로는 여론의 지지와 공감을 받고 있다고 보기 어려운 측면이 있다. 몇 가지 이유가 있다. 무엇보다 결정적인 한 방이 눈에 띄지 않는다. 비인가자료의 불법유출에 대한 위법성 논란은 차치하고서라도, 제기된 의혹들은 국가기강이나 문재인 정부의 도덕성을 무너뜨리는 심각한 위법행위라 보기에는 무리가 있다는 것이 일반적인 평가다. 


ⓒ 오마이뉴스


심 의원이 질의자로 나서 관심을 모은 2일 경제분야 대정부질문에서도 사태를 반전시킬만한 추가 폭로는 이어지지 않았다. 외려 심 의원이 답변대에 오른 김동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의 논리적 반박에 역공을 당하는 장면이 연출되기도 했다. 심야시간·주말시간대의 업무추진비 사용과 관련해 심 의원이 문제를 제기하자 김 부총리가 "심 의원님이 국회에서 쓰신 것과 똑같은 것"이라고 되받아친 것이다. 김 부총리는 업무관련성이 뒷받침되면 심야시간·주말시간에도 업무추진비를 사용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른바 '한국당 디스카운트'도 무시할 수 없다. 이는 합리적이고 정당한 문제 제기조차 일단 걸러서 듣고 보는 사회적 현상을 빗댄 것으로, 한국당을 향한 국민 불신의 골이 얼마나 깊은지를 보여주는 단면이다. 국민의 알 권리 차원에서 이루어진 정당한 의정활동이라는 한국당의 강변에도 불구하고 심 의원의 폭로가 국민으로부터 공감을 얻지 못하고 있는 데에는 '한국당 디스카운트'로 대변되는 이와 같은 뿌리 깊은 불신 역시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관련해 심 의원 및 한국당의 과거 행태도 도마 위에 오르고 있다. 박범계 민주당 의원은 지난달 29일 페이스북에 "법적 도덕적 검증은 그럴만한 자격이 있을 때 호소력이 있다"라며 "과거 19대 국회 제가 민간인불법사찰 국조특위 야당 간사 시절, 단 두 번 회의 열고 심 위원장께서 활동비 9000만원 받아가신 -후에 비난 여론에 반납했지만- 몰염치는요? 국회부의장 2년 시절 받아간 6억이 특활비인가요. 업추비인가요. 그걸 지금 청와대에 들이대는 잣대로 스스로 검증할 의지는 없으신가요"라고 지적했다. 19대 국회 당시 심 의원이 수령했던 활동비와 그 사용처에 의문을 제기한 것이다. 

일각에서는 국회 특수활동비 공개에는 미온적이던 한국당이 청와대의 업무추진비 사용에 대해서 공세적으로 나오는 것을 비판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박근혜 정부 당시 논란이 됐던 '정윤회 문건'을 국기문란이라 규정했던 한국당이 국민의 알 권리를 앞세워 비인가자료 유출을 정당한 의정활동이라 주장하는 것 역시 자가당착에 불과하다는 지적도 잇따른다. '내로남불'(내가 하면 로멘스, 남이 하면 불륜)식의 전형적인 정치 공세라는 비판이다. 

일파만파로 번지고 있는 비공개 예산정보 무단 유출 의혹 파문의 진상은 결국 검찰 수사를 통해 밝혀질 것이다. 그러나 현재까지 드러난 양상을 종합해 보면 총력전에도 불구하고, 심 의원과 한국당의 공세는 '찻잔 속의 태풍'으로 그칠 가능성이 더 커 보인다. 심 의원의 폭로 속에 여론을 환기시킬만한 결정적인 '스모킹 건'이 없는 데다, 한국당에 대한 국민 불신이 여전히 팽배한 상태이기 때문이다. 전략 수정이 불가피해 보이는 이유일 터다. 민심을 등에 업지 못한 상태에서, 확실한 증거도 없이 벌이는 이 싸움의 승패는 물어보나 마나한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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