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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심상정 대표가 '한국당 패싱'을 주장하고 있는 이유

ⓒ 연합뉴스

 

"자유한국당이 멈춰 세웠던 국회의 시계가 다시 돌아가기 시작했습니다. 어제부터 예산안, 민생개혁법안 처리를 위한 4+1 비상회의체가 가동되었습니다. 이제 민생과 개혁을 위한 마지막 시간입니다.

그런데 자유한국당은 자신들의 원내대표가 선출될 때까지 또 기다려달라고 합니다. 정기국회 마지막 날이 10일인데, 10일에 선출될 원내대표와 정기국회 이후에 협상을 시작하자고 합니다. 가당치 않습니다.

대한민국 국회는 더이상 자유한국당에 의해 좌지우지되어서도 안 되고 무엇보다 그럴 시간이 없습니다. 오는 9일, 예정대로 예산안, 패스트트랙 법안과 민생개혁법안을 일괄상정하여 처리해야 합니다. 4+1의 굳건한 공조로 20대 국회가 국민들께 최소한의 책임을 다해야 합니다."

심상정 정의당 대표가 5일 페이스북에 남긴 글의 일부다. 더불어민주당과 바른미래당, 대안신당(가칭), 정의당, 민주평화당 등이 참여하고 있는 '4+1 비상협의체'의 협의를 통해, 오는 9일 예산안·선거개혁 방안·공수처 설치 및 검경 수사권 조정법안·민생개혁법안을 일괄 처리해야 한다고 강조한 것이다.

지난달 29일 한국당이 본회의에 상정될 예정이던 안건에 대해 무더기 '필리버스터'를 신청하며 유치원 3법을 비롯 패스트트랙 법안 등 각종 민생개혁법안의 저지에 돌입한 만큼 나머지 정당만이라도 힘을 합쳐 법안 처리에 나서야 한다는 주장이다.

한국당을 향한 심 대표의 불편한 속내는 글의 행간 곳곳에 묻어난다. 심 대표는 "그동안 자유한국당이 보이콧을 밥 먹듯 하고, 몽니를 부리고, 폭력으로 저지하면서 (예산안과 민생개혁 법안 등이) 법정 시한을 넘겨 초읽기에 몰렸다"며 "더이상 자유한국당의 개혁 저지를 위한 파렴치한 꼼수에 놀아나서는 안 된다"고 성토했다.

원대대표가 교체된다 해도 한국당의 태도가 바뀔 가능성이 희박하기 때문에 더 기다릴 필요가 없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심 대표가 저리 강하게 나오는 데에는 다 그만한 이유가 있다. 그동안 "기다려달라"는 한국당의 말을 곧이 곧대로 믿었다가 낭패를 본 경우가 한 두번이 아니기 때문이다.

지금으로부터 정확히 1년 전,  사립유치원의 공공성과 회계 투명성 강화를 위한 유치원 3법의 처리 문제가 정치권의 뜨거운 화두로 떠올랐다. 2018년 10월 열린 국정감사에서 박용진 민주당 의원은 충격적인 내용을 폭로해 정국을 후끈 달아오르게 만들었다. 전국 17개 시·도교육청의 2013~2017년 감사 결과 전국 1,878곳의 유치원에서 무려 5,951건의 비리가 적발된 것이다.

풍문으로만 떠돌던 사립유치원 비리 실태는 상상을 초월했다. 교비를 명품가방과 성인용품 구매에 사용하는 등 사적으로 유용하는가 하면, 원장 가족을 보조교사로 등록해 인건비를 지급하고, 유치원 건물과 토지에 대한 재산세와 토지세를 유치원 돈으로 납부하는 등 회계부정 사례들이 마구 쏟아져나왔다.

박용진 의원의 폭로 이후 유치원의 공공성과 회계 투명성을 높이기 위한 제도적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빗발쳤다. 박용진 의원이 대표 발의한 '유치원 3법'은 이같은 요구가 반영된, 사립유치원 비리 근절을 위한 법안이었다. 그러나 국민들의 압도적 지지를 받았던 이 법안은 발의된 지 1년이 넘도록 처리되지 못하고 있다. 한국당의 반대와 비협조가 주된 요인이라는 평가다.

유치원 3법에 반대하던 한국당은 처음부터 논의에 소극적으로 나오더니, 자체 법안을 낼 때까지 "기다려달라"며 법안 심사를 수차례나 지연시키며 학부모들의 애간장을 태웠다. 결국 다수 국민이 찬성했던 유치원 3법은 소관 상임위인 교육위원회와 법제사법위원회의 논의를 건너뛴 채 패스트트랙에 태워져 본회의 표결을 기다리는 처지가 됐다.

선거법 개정과 관련해서도 한국당은 그동안 여러 차례 말을 바꿔왔다. 지난해 7월 26일 열린 본회의에서 여야는 6개의 비상설특위(정치개혁·사법개혁·에너지·남북경제협력·4차산업혁명·윤리특별위원회)를 설치하기로 의결했다. 그러나 정개특위는 한국당이 특위위원 명단 제출을 지연시키면서 3개월이 넘도록 가동되지 못했다.

우여곡절 끝에 10월 24일 특위가 공식 출범했지만 사정은 달라지지 않았다. 한국당은 12월 원내대표 선거에 집중해야 한다며 미온적으로 나오더니, 특별한 이유 없이 시간을 끄는 등 선거법 개편 논의에 불성실한 태도를 보였다.

나경원 원내대표 선출 이후, 여야 5당 원내대표가 모여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골자로 한 선거제도 개편안을 합의해 처리하기로 약속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이마저도 없던 일로 만들었다. 선거제도 개편을 논의하기 위해 여야 합의로 정개특위를 설치했음에도 한국당은 당론조차 내놓지 않은 채 차일피일 시간만 소비시켰다.

시간에 쫓긴 여야 4당이 선거제 개편안 단일안에 합의하자 한국당은 그제서야 독자적 안을 제시하며 뒷북을 쳤다. 그마저도 현행 300명인 의원 정수를 270명으로 줄이고 비례대표를 폐지하는 내용이었다. 선거제도 개편 논의를 이어가기 위해 오랫동안 참고 기다려왔던 여야 4당의 뒷통수를 제대로 날린 셈이다.

김진태·이종명·김순례 의원의 '5·18 망언'과 관련해서도 마찬가지였다. 비난 여론이 솟구치자 한국당은 이종명 의원을 제명시키고, 김진태·김순례 의원의 징계는 전당대회 뒤로 미루는 징계안을 발표했다. 김병준 비대위가 5·'18 망언' 의원에 대한 징계 책임을 차기 지도부에 떠넘긴 것이다.

그러나 당대표로 선출된 황교안 대표는 '5·18 망언' 의원들의 징계와 관련해, "기다려달라"고만 할 뿐 한동안 이렇다 할 움직임을 보이지 않았다. 한국당은 여론의 눈치를 살피다 4월 19일이 돼서야 '당원권 3개월 정지'(김순례 의원)와 '경고'(김진태) 처분을 내리는 것으로 징계를 일단락시켰다. 의원 제명에 찬성하는 다수 여론과는 동떨어진 조치였다.

한국당 요청대로 했지만, 기다림의 결과가 대체로 이랬다. 한국당은 논의에 소극적으로 임하는가 하면, 정반대의 내용을 들고 나오거나, 다수 국민의 바람과는 괴리가 있는 행태를 보이기 일쑤였다. 아마도 그래서일 것이다. 심 대표가 한국당을 제외하고서라도 정기국회 내에 반드시 안건을 처리해야 한다고 강력하게 주장하는 이유 말이다.

학습효과가 아니겠나. 기다린 보람이 전혀 없는 상황이 또다시 되풀이될까봐 우려하고 있는 것이다. 더욱이 이번은 2019년 정기국회의 마지막 본회의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당 원내대표 선출 이후로 또다시 협상을 미룬다는 것은, 그간의 한국당 행태로 미루어 보건대 '언 발에 오줌 누기'요, '희망고문'이 될 가능성이 농후하다. 국회가 민생을 볼모로 책무를 방기하고 있다는 비판이 속출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4+1 비상협의체'를 주도하고 있는 민주당은 오는 9일 열릴 예정인 국회 본회의에서 패스트트랙법안 상정을 일단 보류하고 내년도 예산안만 상정해 처리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법안을 강행 처리할 경우 예상되는 정치적 파장을 고려해 협상의 끈을 끝까지 놓지 않겠다는 의도로 풀이된다.

그러나 언제까지고 기다릴 수는 없는 입장이다. 예산안을 비롯해 내년 총선을 위해 반드시 처리해야 할 선거제도 개편안, 시대적 과제인 검찰개혁안, 20대 국회 1호 법안인 청년기본법, 세간의 관심이 집중된 유치원 3법, 민식이법 등 의결해야 할 민생개혁법안들이 수두룩하다.

합의 처리를 위해 최선을 다하되 한국당이 전향적인 태도를 보이지 않을 경우, 심 대표의 지적대로 여야는 정기국회 폐회 전에 관련 법안들을 일괄 처리해야 한다. 이미 경험한 바와 같이, 그리고 뼈저리게 체감하는 바와 같이 기다림의 댓가와 상처는 아주 크고 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