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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승부수 던진 청와대, '김기식 구하기'는 성공할 수 있을까?

"김기식 위원장이 굉장히 유능하고 잘해요. 그래서 이런 개혁적인 인사가 한번 가서 금융계도 개혁해야지 언제까지 MB 정부 때처럼 대통령 측근들이 가서 금융계를 말아 먹느냐. 그래서 나는 됐으면 좋겠다. 기관 스폰서를 받아서 의원들이 외유를 하는 건 관례입니다. 많이 있어요. 1년에 국회의원들이 서너 번 외유를 하는데 그 관행이 없어져야죠. 지금은 많이 없어진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관행 가지고 야당에서 어쩌고 저쩌고 하는데 안 걸릴 사람 있으면 나와 보라고 하세요. 박지원 외에는 없어요."

박지원 민주평화당 의원이 정국의 뜨거운 감자인 김기식 금융감독원장의 해외 출장 논란에 입을 열었다. 12일 tbs라디오 <김어준의 뉴스공장>에 출연해서다. 박지원 의원은 사퇴 압력에 시달리고 있는 김기식 원장에 대해 안타까움을 표시하면서 야당 역시 해외 출장 논란에서 떳떳하지 못할 것이라고 단언했다. 해외 출장이 국회의 관행이나 다름이 없었기 때문에 어느 누가 자유로울 수 있겠느냐는 지적이다. 

김기식 원장의 해외 출장 논란과 관련한 박지원 의원의 이날 인터뷰 내용은 크게 두 가지로 압축할 수 있다. 하나는 김기식 원장이 금융 개혁 과제를 추진할 적임자라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총공세로 나오고 있는 야당이 김기식 원장에게 돌을 던질 자격이 없다는 것이다. 

12일 청와대가 정면돌파 의지를 밝힌 것도 이 두 가지를 의식했기 때문인 것으로 풀이된다. 청와대는 이날 야당이 제기한 김기식 원장의 해외 출장 의혹에 대해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정식으로 유권해석을 의뢰했다고 밝혔다. 김기식 원장을 둘러싼 법률적 쟁점에 대해 선관위의 공식적인 입장을 들어보겠다는 것이다. 


오마이뉴스


청와대가 임종석 비서실장 명의로 선관위에 적법성 유무를 질의한 내용은 '임기 말 후원금으로 기부를 하거나 보좌직원에게 퇴직금을 주는 행위', '피감기관이 비용을 부담한 해외 출장', '보좌직원 또는 인턴을 동반한 해외 출장', '해외 출장 중 관광을 하는 경우' 등 모두 4가지다. 

김의겸 청와대 대변인은 이날 춘추관에서 열린 브리핑에서 "김기식 원장의 과거 해외 출장을 평가하면서 좀 더 객관적이고 공정한 법적 기준이 필요하다"면서 "김 원장의 해외 출장 사례가 일반 국회의원들의 경우와 비교해볼 때 과연 평균 이하의 도덕성을 보였는지 따져볼 필요가 있다"고 선관위에 유권해석을 의뢰한 취지를 설명했다. 

두 차례의 자체 검증 결과 '해임에 이를 정도의 문제를 발견하지 못했다'는 청와대의 입장 표명에도 의혹과 공세가 수그러들지 않자 제3자의 시각에서 보다 객관적으로 판단해 보자는 것이다.

청와대가 이날 19대와 20대 국회 당시 피감기관 예산으로 해외 출장을 다녀온 국회의원의 사례를 공개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김기식 원장의 경우가 상대적으로 얼마나 심각한지 다른 의원들의 사례와 비교해 보겠다는 취지이지만, 해외 출장이 국회의 전반적인 관행이었던 만큼 이를 통해 야당의 공세를 누그러뜨리겠다는 의도가 깔려 있는 것으로 보인다.

실제 청와대가 민주당의 도움을 받아 국회의원들의 해외 출장 사례를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19대 20대 국회의원들은 모두 167차례(민주당 65차례, 한국당 94차례)에 걸쳐 해외 출장을 다녀온 것으로 확인됐다. 이 중에는 야당이 강력하게 문제 삼고 있는 개별 출장의 경우도 8차례나 있었던 것으로 조사됐다. 

김의겸 대변인은 "수천 곳에 이르는 피감기관 가운데 고작 16곳만 살펴봤다. 전체 피감기관을 들여다보면 그 숫자가 얼마나 될지 알 수 없다"며 "이런 조사 결과를 볼 때 김기식 금감원장이 자신의 업무를 이행하지 못할 정도로 도덕성이 훼손되었거나 일반적인 국회의원의 평균적 도덕감각을 밑돌고 있는지 의문"이라고 밝혔다. 해외 출장이 당시 국회의 보편적 관행이었다는 사실을 지적한 것이다. 

청와대가 선관위에 유권해석을 의뢰하고 관련 사례들을 수집하면서까지 철통 방어에 나선 것은 김기식 원장이 금융개혁의 최적임자라는 판단을 하고 있기 때문으로 보인다. 김기식 원장은 참여연대 시절부터 금융계를 엄격하게 감시·비판하며 '금융계의 저승사자'라 불리던 인물이었다. 이에 청와대는 김기식 원장 임명을 통해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과 함께 대기업과 금융계의 지배구조 개선과 불공정 관행 등을 혁신하는 강력한 개혁 드라이브를 걸겠다는 복안이었다. 

그러나 야당이 김기식 원장의 해외 출장과 더미래연구소 기부 등을 문제 삼으며 사생결단으로 나오면서 스텝이 꼬이게 됐다. 야당과 보수언론은 김기식 원장의 해외 출장 의혹에 연일 공세를 펼쳤고, 더미래연구소 강연 문제와 기부 의혹, 정치후원금 의혹 등도 추가로 제기했다. 야당과 보수언론의 파상공세에 상황은 점점 더 나빠져갔다. 당초 우호적인 입장이었던 정의당은 격론 끝에 '자진사퇴'를 당론으로 채택했고, 김기식 원장의 친정이라 할 수 있는 참여연대마저 비판 성명을 발표했다. 

여론 역시 극도로 나빠졌다. 리얼미터가 11일 전국 성인 남녀 5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해 12일 발표한 결과에 따르면, '부적절한 처신이므로 김 원장은 사퇴해야 한다'는 응답이 50.5%로 나타났다. 반면 '재벌개혁에 적합하므로 사퇴해선 안 된다'는 응답은 33.4%에 그쳤다. (표본오차 95% 신뢰수준에 ±4.4%포인트, 자세한 사항은 중앙선거관리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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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청와대의 선택은 결국 '김기식 구하기'였다. 청와대가 맞불공세로 나오자 야당은 강력하게 반발하고 있다. 장제원 한국당 수석대변인은 논평을 통해 "청와대 발표는 입법부에 대한 선전포고이자 민주주의를 파괴하는 폭거"라고 맹비난했고, 권은희·오신환 바른미래당 의원은 성명서를 통해 "선관위까지 동원해 김 원장의 범죄 혐의를 덮으려는 무서운 행위를 중단하라"로 촉구했다.


청와대가 야당의 반발을 예상하지 못했을 리는 없다. 그럼에도 청와대가 선관위 유권해석 의뢰를 결정한 것은 객관적인 상태에서 국민의 평가를 받겠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김기식 원장 한 사람에게 집중돼 있는 전선을 국회 전체로 확대시키겠다는 의도인 것이다. 


민주당도 지원사격에 나섰다. 11일 tbs라디오 <색다른 시선, 김종배입니다>에 출연한 홍익표 의원에 따르면, 현재 민주당은 여야 전·현직 의원의 해외 출장 사례를 전수조사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홍익표 의원은 이날 방송에서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회 산하기관 40여곳 전체를 대상으로 전수조사를 하고 있으며 이를 16개 상임위원회 전체로 확대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청와대가 '사퇴 불가' 입장을 재확인하면서 정국은 시계제로 상황에 빠지게 됐다. 야당의 파상공세에 청와대가 배수진을 치면서 혈전을 피할 수 없게 됐기 때문이다. 관건은 여론에 달렸다는 것이 중론이다. 야당과 보수언론의 전방위적 공세의 기저에 금융개혁을 무산시키려는 특정세력의 의도가 있다는 시각도 있는 만큼 정부여당은 여론전을 통해서 활로를 모색해 보겠다는 각오다.

선관위에 유권해석을 의뢰하고 국회의원 해외 출장 사례를 전격 공개한 것도 결국 이를 위한 수순으로 보인다. 국회의원의 해외 출장 사례가 향후 추가로 공개될 경우 국면이 달라질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는 탓이다. 문재인 정부 초기 야당의 거센 공세 제기에 반대 여론이 우세했다가 인사 검증 과정을 거치는 동안 여론이 역주행하며 입각에 성공한 강경화 외교부 장관이 그런 경우에 해당한다. 

물론 반대의 상황이 벌어질 수도 있다. 여론이 지금보다 더 악화되는 경우다. 이럴 경우 김기식 원장과 인사검증 책임자인 조국 민정수석, 선관위 유권해석을 의뢰한 임종석 실장을 향한 사퇴 압력이 비등해지게 된다. 눈앞으로 다가온 지방선거와 문재인 정부의 국정 운영에도 타격이 불가피해질 전망이다. 청와대가 승부수를 던졌다는 분석이 나오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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