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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수문 개방에 농민이 뿔나? 진짜 화나는게 뭐냐면

ⓒ 오마이뉴스


가뭄이 지속되면서 '농심'이 바짝 타들어가고 있다. 6일 전국적으로 비가 내렸지만 메마른 땅을 적시기에는 역부족이었다. 기상청에 따르면 올 1월부터 지난 5일까지 내린 누적 강수량은 평년 누적 강수량의 절반 수준인 166.6mm에 불과한 것으로 알려졌다. 6월말, 7월초 장마가 시작될 전망이지만, 그마저도 마른 장마일 가능성이 예고되면서 농민의 시름이 깊어가고 있다.

이런 가운데 4대강 보의 수문 개방을 두고 사회적 논란이 일고 있다. 하천이 말라붙고 저수지의 바닥이 드러나고, 거북 등처럼 논바닥이 쩍쩍 갈라지고 있는 상황에서, 가뭄 해소에 사용돼야 할 물을 아깝게 흘려보내는 것 아니냐는 문제제기가 잇따르고 있는 것이다. 언뜻 들으면 귀가 솔깃한 이 주장에 4대강 주변 농민들과 환경단체, 정치권의 입장이 뒤섞이면서 혼란은 더욱 가중되고 있다.

논란은 지난달 22일 문재인 대통령이 녹조발생 우려가 높은 4대강 보의 상시개방을 지시한 것에서부터 시작됐다. 정부는 수문 개방이 녹조발생과 수질악화를 막기 위한 조치라고 설명했다. 이를 위해 녹조 발생이 심하고, 체류 시간이 길며, 수자원 이용에 영향이 적은 6개 보부터 즉시 개방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와 함께 나머지 10개 보의 경우 여러가지 상황을 면밀히 검토한 후에 개방 여부를 결정하겠다는 뜻을 피력했다.

이렇게 해서 지난 1일 4대강에 설치된 총 16개 보 중 6개 보(강정고령보, 달성보, 합천창녕보, 창녕함안보, 공주보, 죽산보)의 수문이 개방됐다. 수문이 열리자 각계의 반응은 엇갈렸다. 그동안 4대강 사업의 문제점을 끊임없이 비판해온 환경단체는 정부의 조치를 환영하면서도 나머지 보 역시 완전 개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반면 일부 농민들과 야당, 그 중에서도 자유한국당은 가뭄이 극심한데 수문을 개방하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는다며 공세를 높여가고 있다.

정우택 한국당 대표 권한대행 겸 원내대표는 4일 충남 예산 예당저수지와 금강 공주보를 둘러보면서 "이렇게 가물었는데 보에 담아놓은 물을 이 시간에도 흘려보내 농민들이 화가 났다"면서 "녹조는 정치적 문제가 아니라 과학적으로 검증해서 해결해야 한다"고 비판했다. 4대강 정책감사에 이어 수문 개방까지 지시하자 문재인 정부의 정치적 의도를 의심하고 있는 것이다.

반면 정부의 입장은 그와는 다르다. 이윤섭 환경부 기획조정실장은 1일 정부세종청사에서 열린 4대강 보 개방 관련 언론 브리핑에서 "정부는 6개 보의 개방에도 불구하고 6개 보 구간 농업용 양수장 60곳이 모두 농업용수 공급에 차질이 없고 선박 계류장 등 수변시설 이용에도 영향이 없음을 재차 확인했다"면서 "가뭄이 심할 때 보를 개방해서 농민들 가슴을 아프게 하느냐는 지적이 있으나, 보 개방과 가뭄은 연관성이 없다"고 힘주어 강조했다.

4대강 보 수문 개방을 둘러싼 각계의 시각이 이처럼 첨예하게 맞서고 있다. 논란의 쟁점은 4대강 보의 수문 개방이 가뭄과 어떤 연관이 있느냐다. 다시 말해 4대강 보 안의 물이 가뭄 해소에 얼마나 '실효성'이 있는 것인가가 이번 논란의 실체를 밝혀줄 열쇠라는 뜻이다.


ⓒ 오마이뉴스


정부는 수문을 개방하면서 방수량을 최소화하기로 방침을 정했다. 그 결과 개방 수위는 6개 보 평균 0.26m에 그치고 있다. 이에 대해 정부는 보에 설치된 양수장에서 농업용수를 치수하는 데 문제가 없도록 하기 위해서라고 밝혔다. 그러나 환경단체는 이 정도 수준으로는 녹조 해결에 미치는 영향이 지극히 미미하다고 지적하고 있다. 오히려 정부가 상시 개방 방침을 밝히면서 방류하고 있는 방류량이 몇해 전부터 실시해온 펄스 방식보다도 못한 수준이라는 것이다. 환경단체의 주장은 수문 개방이 농업용수 치수에 별다른 영향을 주지 않는다는 정부의 입장에 힘을 실어준다.  

국민의당 이상돈 의원은 보다 직설적으로 4대강 사업이 가뭄 해소와는 아무런 관계가 없다고 밝히고 있다. 이 의원은 지난달 31일 국회의원회관에서 이뤄진 <프레시안>과의 인터뷰에서 4대강 사업이 가뭄 해소 효과와 치수 효과가 있다는 주장에 대해, "거짓말이다. 가뭄 피해는 주로 강 상류 지역에 집중되고, 지천 부근에 집중된다. 보가 집중적으로 설치된 강 본류는 가뭄과 관련이 없다. 지금 가뭄 피해가 심각한 지역을 보라. 보를 세워 물을 막아놓은 들, 이 물을 가뭄 지역으로 보낼 방도도 없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4대강 사업이 가뭄과 치수에 전혀 도움을 주지 않는다는 주장이다.

박근혜 정부 시절인 지난 2014년 12월 국무조정실 4대강조사평가위원회가 발표한 <4대강 사업 조사 평가 보고서> 역시 같은 의견을 내놨다. 당시 보고서에는 "4대상 사업이 실시된 지역에서는 가뭄이 발생하지 않았고, 4대강 사업으로 확보한 용수를 가뭄에 사용한 실적도 없다"고 기술돼 있다. 결국 수십조원의 세금을 투입해 보를 만들고 대규모의 물을 가둬놨지만, 그렇게 해서 확보한 용수를 정작 가뭄 피해 지역에서는 사용하지 못하는 촌극이 펼쳐지고 있는 셈이다.

종합해 보면 가뭄 해소는 보가 설치된 4대강 본류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고, 확보한 용수 또한 가뭄 피해지역에 사용되지 못하고 있다는 결론에 이른다. 다시 말해 4대강 사업을 통해 가뭄 문제가 완전히 해소될 것처럼 말해 왔던 이명박 정부의 주장이 사실과 다르다는 뜻이다.

"연평균 강우량은 세계 평균보다 높음에도 불구하고 한국은 상시적인 물 부족에 시달려야 했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강바닥을 준설해 '물그릇'을 키울 필요가 있었다. 그렇게 되면 건기에도 강은 물로 가득 찰 수 있다."

이명박 전 대통령이 자서전 <대통령의 시간>에서 4대강 사업을 추진하게 된 배경을 설명하는 부분이다. 선한 의도가 반드시 선한 결과를 만들어내는 것은 아니다. 백번 양보해 4대강 사업을 선의로 이해한다 해도, 그 과정에서 수많은 오류와 모순, 부정과 비리가 발생했다면 그에 대해 사과하고 책임을 져야 마땅할 터다. 그러나 4대강 사업을 찬양했던 인사들 중 지금껏 누구 하나 사과를 하거나 잘못을 인정하는 사람은 없다.

이는 가뭄과 별 상관이 없는 4대강 보 수문 개방에 대해 정치공세를 펴고 있는 한국당 역시 마찬가지다. 그들은 이명박 정부 당시 다수 국민이 반대했던 4대강 사업을 앞장서서 주도했던 장본인들이었다. 지난 2013년 감사원으로부터 총체적 부실이라 판명받은 4대강 사업의 직적접 책임이 그들에게 있다는 뜻이다.

그러나 '역시나'다. 잘못된 국가정책으로 생태계가 파괴되든 말든, 혈세가 낭비되든 말든, 녹조가 창궐하든 말든, 수질이 악화되든 말든, 그들의 마음은 멀리 '콩밭'에 가있는 듯 하다. 사과는커녕 미안한 기색조차 없이 오직 '수문 개방이 가뭄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서만, 더 솔직히는 '수문 개방이 당리당략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서만 골몰하고 있으니 말이다.

가뭄 및 홍수 걱정이 사라질 것이라며 4대강 사업의 자화자찬에 여념이 없던 사람들이 기록적인 가뭄 앞에서 본질과는 동떨어진 이야기로 또 다시 국민을 호도하고 있다. 이 모습을 보고 있자니, 이제 확실히 알겠다. 악마는 디테일 속에 숨어 있다는 사실을. 속이 탄다. 시커멓게 썪어가는 건 4대강 만이 아닌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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