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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소녀상 지키는 대학생들은 누가 지켜줄 것인가

정의당 심상정 대표가 어제 대단히 의미심장한 발언을 했다. 그는 19대 국회를 유심히 지켜보면 각종 현안에 대해 여야가 서로 장기적으로 대립하면서 교착상태에 빠져 있다가, 막판에 가면 언제나 새누리당 뜻대로 결론이 난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서 이럴거면 뭐하러 여야가 그토록 오랫동안 대치한 것인지 의문이 든다며 더불어민주당을 향해 강한 유감을 표명했다.

그의 발언은 최근 여야가 원칙적으로 합의한 선거구 획정에 대한 불만에서 비롯됐다. 권역별 비례대표제를 당론으로 채택하고 연합전선을 펼쳐오던 더불어민주당이 지역구 의석을 늘리고 비례대표 의석을 줄이는 안에 합의하자 커다란 배신감을 느꼈을 것이다.

심상정 대표의 서운함과 안타까움을 충분히 이해한다. 그의 지적처럼 크고 작은 국정 현안들이 종극에 가면 새누리당의 뜻대로 이루어져 왔기 때문이다. 그동안 거대 양당이 면전에서는 사생결단으로 싸우는 것처럼 보이다가 막판에 이르러 슬그머니 손을 맞잡는 경우가 다반사였으니 심상정 대표의 쓴소리가 괜한 것은 아니다. 



ⓒ 주간현대


그런데 심상정 대표의 비판이 꼭 더불어민주당에게만 해당되는 것은 아닌 것 같다. 국면을 조금 확대해서 보면 우리 사회에서도 국회에서 벌어지고 있는 풍경이 고스란히 재연되고 있다는 생각마저 든다. 박근혜 정부를 유심히 관찰해 보면, 19대 국회와 마찬가지로, 각종 시국현안에 정부와 시민사회가 극한 대치를 보이다가도 결국에 이르러 정부가 원하는 모습대로 일단락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기 때문이다.

희대의 선거부정 사건이었던 국정원 대선개입 사건, 무능과 무책임의 끝판을 보여주었던 세월호 참사, 한달이 넘도록 전국을 극심한 공포 속에 몰아 넣었던 메르스 사태, 역사 교과서 국정화 논란 등도 결국에는 정부의 뜻대로 흘러가고야 말았다. 언제나 마지막에 웃는 것은 정부였고, 새누리당이었으며, 대통령이었다.

어차피 이럴 것이었다면 우리는 왜 땀이 비오듯 흐르는 땡볕에, 살을 에는 추위에 아랑곳 하지 않고 거리에서 광장에서 목이 터져라 외쳤던 것일까. 지난 날의 수고와 열정에 비한다면 현실은 지극히 초라하게만 느껴진다. 아무 것도 바뀌지 않았고, 그렇다고 바뀔 가능성도 거의 없기 때문일 것이다.




ⓒ M이코노미뉴스


작년 12 28일 박근혜 정부는 위안부 문제를 일본 아베 내각과 전격적으로 합의했다. 소식이 전해지자 시민들은 분노했고, 굴욕적 협상을 이끈 정부에 강력하게 항의했다. 촛불이 다시 밝혀졌고 소녀상 주변에는 수많은 시민들이 운집했다. 그들은 협상 무효를 외치며 재협상을 추진하라고 정부를 압박했다. 매서운 겨울 소녀상 주변은 대한민국에서 가장 뜨겁게 달아 올랐던 곳이었다.

그로부터 한 달이 지났다. 소녀상 주위에는 소녀상을 지키기 위해 벌써 28일째 노숙을 강행하고 있는 대학생들이 있다. 그들은 기록적인 한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그러나 소녀상 주위는 한 달 전과는 확연히 달라진 모습이다. 대학생들을 응원하는 시민들의 발길이 이어지고는 있지만, 정부를 강력하게 성토하던 열기와 뜨거움은 이제 그 곳에서 찾아 볼 수는 없다. 핫팩과 비닐천에 의지해 혹한을 견뎌야 하는 이 곳은 이제 대한민국에서 가장 추운 곳 중의 하나다.

불과 한 달만에 일어난 변화다. 그 뜨거웠던 열기는 다 어디로 사라져 버린 것일까. 굴욕적인 협상에 분노하고 뻔뻔함에 치를 떨던 시민들의 의기는 다 어디로 증발되어 버린 것일까. 강력한 분노와 결연한 의지로 충만했던 소녀상 주위가 어느새 몇몇 대학생들의 처연함이 느껴지는 춥고 황량한 곳으로 변해 있다. 불과 얼마 전까지 대한민국에서 가장 뜨거웠던 소녀상 주위가 가장 추운 곳으로 변한 까닭은 무엇일까.



ⓒ 아주경제


온탕에서 냉탕으로 자유자재로 오가는 모습에서 나는 우리 사회에 대한 본질적인 의문을 갖는다. 물론 잘 알고 있다. 각자의 위치에서 사회의 부조리와 부정에 대항해 저항의 메시지를 표시하고, 행동으로 표출하는 사람이 여전히 많다는 것을. 그들의 노력과 수고가 이 사회를 지탱하는 최소한의 동력이라는 것도 역시 잘 알고 있다.

그러나 그럼에도 의문은 좀처럼 가시지 않는다. 우리 사회는 좀 더 정의로워 질 수는 없는 것인가. 상식이 통하는 세상이 될 수는 없는 것인가. 민주주의가 꽃을 피우고 시민의 권리가 확장될 수는 없는 것인가. 소녀상을 지키기 위해 애쓰고 있는 저 대학생들을 추위와 외로움으로부터 지켜 줄 수는 없는 것인가. 정녕 그렇게 할 수는 없는 것인가. 

나는 이 질문을 가슴 속 깊이 무겁게 받아들이는 사람들이 많아졌으면 좋겠다. 그리고 기억했으면 좋겠다. 대한민국의 정의와 상식, 민주주의와 시민의 권리를 위해 수많은 사람들이 싸워왔다는 사실을혹독한 세상의 불의에 맞선 청춘들의 몸부림이 소녀상의 눈물을 닦아주고 있다는 사실을, 그리고 저들을 지켜주어야 할 책임이 우리 모두에게 있다는 사실을. 나는 많은 사람들이 이 사실을 꼭 환기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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