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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셀프 공모' 논란 홍준표, 2년 전 발언을 보니

지난 2016년 '4.13 총선'을 석달여 앞두고 더불어민주당은 김종인 전 청와대 경제수석을 선거대책위원장 겸 비상대책위원회 대표로 영입하는 승부수를 던졌다. 관련 소식이 전해지자 정치권은 크게 술렁거렸고, 커뮤니티 게시판과 SNS 등에서는 그의 영입을 두고 치열한 논쟁이 벌어지기도 했다.

그도 그럴 것이 김종인 전 대표가 18대 대선 당시 새누리당 국민행복추진위원장으로서 경제민주화 공약을 진두지휘하는 등 박근혜 후보의 대선 승리에 크게 기여한 이력이 있기 때문이었다. 새누리당이 집권하는 데 혁혁한 공을 세웠던 인물이 민주당의 총선을 이끌 총책임자로 전격 영입됐으니 '설왕설래'가 오갈 수밖에 없는 것이 당연했다.

그러나 총선 결과만 놓고 보자면, 김 전 대표의 영입은 성공적이었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민주당은 불리할 것이라는 세간의 예측을 깨고 20대 총선에서 당당히 원내 1당을 차지하는 기염을 토했다. 김 전 대표는 강력한 리더십을 발휘하며 계파 갈등으로 내홍에 시달리던 민주당을 연착륙시키는 데 성공했다. 그리고 마침내 세간의 우려를 불식시키고 총선 승리를 이끌어 낸다.

그러나 김 전 대표에게 '비단길'만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대표 취임 이후 일사분란하게 선대위 체제를 이끌던 김 전 대표는 비례대표 선정 과정에서 크게 곤욕을 치르게 된다. 대표 몫으로 할당된 3개의 비례대표 공천권 중 자신을 두 번째에 배치하는 이른바 '셀프공천'으로 논란에 휩싸인 것이다. 비례대표 1번이 여성 몫이었던 것을 감안하면 사실상 자신에게 첫 번째 공천권을 행사한 셈이다.

그러자 당안팎으로부터 거센 반발이 터져나왔다. 당시 김광진 의원은 페이스북에 "김종인 대표의 '셀프 전략공천'은 정의롭지도 상식적이지도 않다"며 김 전 대표를 공개적으로 비판했고, 정청래 의원 역시 트위터에 "사람들이 염치가 있어야지. 좌시하지 않겠다. 표 떨어지는 소리가 전화통을 불지르려 한다. 걱정이 태산"이라 적으며 불편한 감정을 숨기지 않았다.

이는 당 대표가 비례대표로 나설 경우 선거 책임에 대한 의지와 결의의 차원에서 스스로 후순위에 배치하던 관행을 비켜난 것에 대한 이유있는 비판이었다. 셀프공천 논란은 이후 김 전 대표의 당무 거부로 이어지면서 한동안 민주당을 난처하게 만드는 뜨거운 감자가 된다.


ⓒ 오마이뉴스


불현듯 지난 총선 당시 김 전 대표의 '셀프 공천' 논란이 떠오른 것은 그와 아주 비슷한 상황이 자유한국당 내에서 벌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논란의 발원지는 다름 아닌 홍준표 대표다. 홍 대표가 대구 북구을 당협위원장 공모에 나선 것이 사달이 났다. 지방선거를 진두지휘해야 할 당 대표가 자신의 정치적 입지를 먼저 생각하고 있다는 비판이 당내부에서 쏟아져 나오고 있는 것이다.

이 모습은 지난 총선 당시 김 전 대표의 '셀프 공천' 논란의 완벽한 '데자뷰'다. 김 전 대표가 수월한 국회 입성을 위해 '셀프 공천'을 행사했다면, 이유야 어찌됐든 홍 대표가 지방선거 이후를 겨냥해 '셀프 공모'를 한 모양새가 됐기 때문이다. 두 사람 모두 강도 높은 당내 비판에 휩싸이고 있다는 점도 당시와 아주 흡사하다.

 비판이 거세지자 홍 대표는 서둘러 해명에 나섰다. 8일 오전 대구 북구 엑스포에서 열린 한국당 대구시당 신년 인사회에 참석해 "대구를 근거지로 해서 정치를 하겠다는 뜻이지 대구에 출마하겠다는 뜻은 아니다. 다음 총선 전에 그 지역구에 훌륭한 대구의 인재를 모셔다 놓고 출마시키도록 하겠다"며 진화에 나선 것이다.

그러나 홍 대표의 대구지역 불출마 선언에도 불구하고 당내 비판은 좀처럼 수그러들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8일 김태흠 최고위원은 입장문을 통해 "당 대표라면 지방선거를 앞두고 험지를 택해 희생과 헌신의 모범을 보여야 하는데 텃밭 대구는 '셀프 입성'을 하겠다는 것"이라며 "대표가 앞장서 누구라도 원하는 당의 텃밭 대구에 안주하겠다는 것은 당의 지지기반 확장 포기와 다름없다"고 강하게 비판했다.

부산시장에 출마할 것으로 알려진 박민식 전 의원도 이날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당 대표는 지방선거를 책임져야 할 장본인인데 서울·경기는 가시밭이고, 부산과 경남도 쑥대밭이 됐다. 그런데 홍 대표는 나 홀로 꽃길을 걷겠다고 선언했다"고 꼬집었다. 외연확장에 앞장서야 할 당 대표가 외려 텃밭에 안주하려 한다는 비토가 줄줄이 터져나오고 있는 것이다.

일각에서는 홍 대표의 대구행이 보수의 심장이자 텃밭인 대구를 발판으로 당의 지지세를 넓혀가려는 의도라는 분석도 있다. 심상치 않은 대구지역 민심을 고려한 전략적 선택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그럼에도 홍 대표를 향한 당안팎의 시선은 싸늘하기 그지없다. 출마하지 않을 것이라면 굳이 대구행을 선택할 이유가 없기 때문에 다분히 지방선거 이후를 의식한 정치적 포석일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다.

그러나 홍 대표의 '셀프 공모' 논란의 진짜 문제는 어쩌면 다른 곳에 있는지도 모른다. 홍 대표는 경남도지사 시절이던 지난 2016년 3월 24일 페이스북에 "대한민국 정치는 참 불가사의하다"면서 "자신의 노욕으로 스스로를 공천하고 몽니를 부려도 통하는 세상이 대한민국 정치"라고 개탄스러워 했다. 이어 "나라를 경영하는 사람들이 이렇게 가볍게 움직여도 그것을 선택할 수밖에 없는 대한민국이 참 안타깝다"고 쓴소리를 내뱉기도 했다.

19대 총선 당시 김 전 대표의 '셀프 공천'을 '노욕'이라 규정했던 홍 대표가 불과 2년 만에 김 전 대표의 전철을 그대로 답습하고 있다. 대한민국 정치의 구태 중 하나인 '내로남불'이 이번에도 역시 어김없이 등장했다. 홍 대표 스스로 자초한 '셀프 공모' 논란의 본질이 바로 여기에 있을 것이다. 대한민국 정치의 저급함과 저열함이 이 모습 속에 여실히 드러나고 있기 때문이다.

이해타산에 따라, 정치공학에 따라 정치인의 입장과 태도가 수시로 바뀌고 있다. 이래서는 정치가 바로 설 수 없다는 것은 불문가지다. 노욕으로 스스로를 공모해도, 정부여당의 일이라면 사안마다 몽니를 부려도, 염치가 없어도 아무 문제가 없다면 대한민국 정치는 한걸음도 앞으로 나아갈 수 없다. 정치인에 대한 감시와 비판을 게을리하지 말아야 하는 이유일 터다. 끊임없이 묻고 소리쳐야 한다. 대한민국 정치의 구질구질함을 깨부수기 위해서라면 더더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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