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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세월호 참사 대처, 박근혜와 문재인은 이렇게 달랐다.

ⓒ 오마이뉴스


뒤늦게 <공범자들>을 봤다. 예상대로, 보는 내내 감정이 요동쳤다. 지난 9년 동안의 공영방송의 몰락사가 고스란히 담겨있으니 그럴 수밖에. 특히 참을 수 없었던 건 공영방송 장악을 공모했던 '공범자들'이 (최승호 PD의 독백처럼) 잘 살고 있다는 거다. 누군가는 직장을 잃고, 누군가는 부당 전보조치를 당하고, 또 누군가는 병마와 힘겨운 사투를 벌이고 있는데 정작 이 비극을 초래한 당사자들은 여전히 잘 살고 있다.

영화가 중후반을 향해 갈 무렵 세월호 참사와 관련된 내용이 흘러 나왔다. 순간 '또' 울컥했다. 아직도 많은 사람들에게 그날의 기억은 고통이자 절망이다. 한없는 슬픔이며 아픔이다. 아마도 타인의 고통과 슬픔에 교감토록 하는 무엇인가가 '인간'에게 있기 때문일 것이다. 어찌보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다른 누군가의 아픔과 슬픔에 공감하는 건 인간을 다른 종과 구별시키는 여러 이유 가운데 하나이지 않은가.

그러나 <공모자들>은 이 기본적인 믿음을 철저하게 전복시킨다. 도대체 그들은 무슨 짓을 한 것일까.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책임져야 할 정치권력, 사건의 진실을 오롯이 밝혀내야 할 언론은 당시 무엇을 하고 있었던 것일까. 사람들과 아이들의 생명이 스러져가고 있을 때, 유족들이 헤어나오기 힘든 절망에 빠져 있을 때 그들은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었을까. 그러나, 굳이 영화가 말해주지 않아도 사람들은 안다. 정치권력과 공영방송, 보수언론이 세월호 참사의 진실을 어떤 방식으로 조작하고 왜곡시켰는지를 말이다.

그들이 가장 먼저 했던 일은 세월호 참사가 관재나 인재가 아닌 불가항력의 사고쯤으로 여겨지도록 만드는 일이었다. 그들은 세월호 참사가 대통령과 정부의 책임이 아니라는 인식을 심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다. 청와대 국가안보실이 컨트롤 타워가 아니라는 무책임한 주장에서부터, 80명을 구했으면 많이 구한 것이라는 해경 간부의 어처구니 없는 항변, 그리고 세월호 참사를 단순 교통사고에 비유하는 얼빠진 언론인에 이르기까지 대통령과 정부의 책임론을 희석시키기 위한 시도는 곳곳에서 펼쳐졌다.

추모 분위기를 훼손시키려는 움직임도 있었다. 유족들이 단원고 학생들의 특혜입학과 의사자 지정 등을 요구했다는 유언비어가 사이버공간에 무차별적으로 유포되는가 하면, 터무니 없는 보상과 배상을 원하고 있다는 식의 악의적인 내용들이 무더기로 양산되기도 했다. 그 와중에 청와대와 국정원은 어버이연합 등 보수단체를 움직여 세월호 반대 집회를 열도록 관제데모까지 주도해 나갔다.


세월호 참사 당시 청와대와 정부의 부실한 대응을 은폐하고 조작하기도 했다. 청와대는 세월호 참사와 관련 박근혜 전 대통령에게 최초 보고한 시점을 9시30분에서 10시로 조작했고, 국가안보실이 국가 위기관리를 위한 컨트롤타워 역할을 한다고 명시돼 있던 국가위기관리 기본지침 역시 사후에 수정했다. 대통령과 청와대, 정부의 무책임과 무능을 성토하는 여론이 빗발치자 책임을 모면하기 위해 관련 사실을 불법적으로 조작한 것이다.



ⓒ 오마이뉴스


돈 타령도 빠지지 않았다. 당시 여당이었던 심재철 의원은 "안전사고로 죽은 사망자들을 국가 유공자들보다 몇 배 더 좋은 대우를 해달라는 것이 세월호 특별법의 주장"이라는 악의적 내용의 문자를 카톡에 공유해 사회적 논란을 일으키는가 하면, 같은 당의 김재원 의원은 세월호 특조위를 가리켜 '세금도둑'이라 명명해 국민적 공분을 사기도 했다.

그런가 하면 유족들의 여한이 없도록 진상규명에 최선을 다하겠다던 박 전 대통령은 수백명의 희생자를 낸 참사의 진상규명보다 세금 문제를 더 걱정했다. 아버지의 우상화 작업에 투입되는 수백억 국민혈세에 대해 말을 아끼던 대통령이 세월호 특조위 기간 연장 문제에 대해서는 부정적인 의사를 득달같이 피력했다. 세금이 많이 들어간다는 이유에서였다. 일찌기 경험해보지 못한 국가적 재난인 세월호 참사에 대한 박 전 대통령과 청와대, 정부여당의 인식과 행태가 대개 이러했다.


300명이 넘는 희생자가 발생하고, 수천명의 가족들이 절망에 빠졌으며, 수많은 국민들을 비통하게 만든 대형 참사가 발생했다면 정부가 해야 할 일은 명확하다. 세월호 참사의 본질을 생각하면 더더욱 그럴 터다. 희생자들과 유족들을 진심으로 애도하고 위로할 것. 그와 같은 참사가 다시는 발생하지 않도록 철저히 진상규명을 할 것. 그리고 상처받은 국민과 사회공동체의 안전을 위한 재발방지대책을 확실하게 마련할 것. 이는 다름 아닌 국민의 생명과 인간의 존엄, 국가의 품격에 관한 문제다.

그러나 이 상식적인 주문이 박근혜 정부에게는 통하지 않았다. 그들은 세월호 참사를 정권의 존립과 안위와 직결되는 정치적인 문제로 인식했다. 세월호 참사의 진실을 막기 위한 조직적이고 악의적인 조작과 왜곡, 폄훼가 난무했던 이유일 터다. 우리 사회의 총체적 부실이 적나라하게 드러난 참사에 이념을 끌어들이고 천박하기 짝이 없는 돈 타령을 읊어댄 것도 같은 맥락이다. 슬픔과 고통을 억누르며 제2, 제3의 참사를 막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들의 한켠에는 이처럼 진실이 드러나는 것을 원치 않았던 사람들이 공존하고 있었다.


지난 3월 23일 침몰한지 1073일만에 세월호가 수면 위로 떠올랐다. 박 전 대통령에 대한 헌법재판소의 탄핵 인용 결정이 난지 불과 2주일만의 일이었다. 3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바다 깊숙이 잠겨있던 세월호가 탄핵 결정 이후 물 위로 모습을 드러내자 세간에는 '박근혜가 내려가니 세월호가 올라왔다'는 말이 크게 화제가 됐다. 박근혜 정부 내내 지지부진하기만 했던 세월호 인양작업이 박 전 대통령 탄핵 이후 일사천리로 진행되는 세태를 비꼰 것일 테다.

문재인 정부가 '2017년 일반회계 예비비 지출안' 상정을 통해 세월호 미수습자 수습을 연말까지 연장하기로 했다는 소식이다. 지난 24일 침몰해역 수중 수색이 종료된 데 이어, 이달 말 완료를 목표로 진행 중이던 선체 수색작업에도 미수습자 5명의 흔적을 찾지 못하자 정부가 수색 연장을 할 뜻임을 시사한 것이다.

기획재정부에 따르면, 정부는 세월호 미수습자 수습 지원경비로 119억원 가량을 추가 편성할 계획인 것으로 전해졌다. 세월호 침몰의 원인과 미수습자 수색을 위해 선체조사위원회가 지난 27일  의결한 선체 직립 문제 역시 함께 논의할 예정이다. 권한과 위상이 크게 강화된 세월호 특조위 2기 역시 올해 안에 출범할 가능성이 높다. 일련의 흐름들은 세월호 참사에 대처하는 문재인 정부의 기본적인 태도와 인식이 특조위를 세금도둑으로 매도하고, 세금 문제를 언급하며 특조위 활동기한 연장에 난색을 표하던 박근혜 정부와 판이하게 다르다는 것을 여실히 보여준다.  


인간과 사회를 향한 두 정부의 철학과 인식의 차이가 이처럼 상이한 결과를 만들어내는 것일 테다. 앞서 지난 26일 "여한이 남지 않도록 선체 직립를 포함한 모든 방법을 동원해 마지막까지 책임 있는 모습을 보여달라"며  정부에 수색 기간 연장을 호소하던 미수습자 가족들의 애타는 염원이 이뤄질 수 있을지 주목된다. 정부의 이번 결정이 아직까지 가족의 품으로 돌아오지 못하고 있는 미수습자 수습의 전기가 되기를 간절히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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