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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세월호 당일 대통령 행적 공개해야만 하는 이유

지난 2012년 대선 직후부터  꽤 오랫동안 정국은 국정원 사건을 둘러싼 치열한 싸움으로 혼돈의 연속이었다. 야당은 국정원의 불법대선개입을 문제삼고 민주주의 회복과 국정원 개혁을 외치며 대통령의 사과와 진상규명을 요구했고, 여당은 이를 터무니없는 정치공세로 치부하는 한편 대선불복 프레임으로 방어진을 단단하게 구축한 채 공세에 대응했다. 그러나 여당이 구축한 방어진은 진상규명을 강력하게 요구하는 성난 민심을 만나자 조금씩 헛점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당황한 여당은 긴급히 작전회의를 소집했고 지난 대선기간 중에 한차례 선보인 바 있는 노무현 전 대통령의 'NLL 포기발언'을 다시 꺼내들기로 했다. 


공격은 최상의 방어라는 정설대로 여당의 NLL 공세는 절묘했고, 수세에 몰려있던 정국상황을 대번에 역전시키는 묘수로 작용했다. 당시 박근혜 정부는 국정원 사건 뿐만 아니라 대선공약 파기논란, 졸속 세제 개편안, 윤창중 사건, 거듭되는 인사파문 등으로 바람 잘 날 없는 나날들을 보내고 있던 터였다. 이런 위급한 상황에서 다시 등장한 정부여당의 NLL 공세는 국정원 사건의 피의자인 국정원이 남북정상회담 회의록을 공개하는 장면에서 절정으로 치달았다. 





2013년 6월24일 국정원이 무단투척한 남북정상회담 회의록은 국정원이 보관하고 있던 공공기록물 관리법상의 '2급기밀'인 회의록을 일반문서로 재분류하는 꼼수끝에 공개한 것이었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정치적 논란과 법리적 논란을 감수하면서 국정원이 공개한 회의록으로 인해 정부여당이 대선 전부터 줄기차게 주장해왔던 노무현 전 대통령의 'NLL 포기 발언'은 전혀 사실이 아닌 조작이며 사기였다는 것이 밝혀졌다. 남과 북의 두 정상이 '서해평화협력특별지대' 플랜을 교감하는 과정에서 나온 발언들을 새누리당이 멋대로 해석하고 짜집기해서 악의적으로 날조했던 것이다. 


사실 2007년 남북정상회담에서 노무현 전 대통령이 했던 발언들은 현 박근혜 대통령이 대선후보시절인 2012년 9월13일 한국지방신문협회소속 9개 지방일간지와 가진 공동인터뷰 내용과 원론적인 차이가 없다. 당시 박 대통령은 "군사적 충돌의 가능성이 있는 서해에서 기존의 남북간 해상경계선만 존중된다면 10•4 남북정상회담에서 합의한 서해공동어로수역 및 평화수역설정방안 등도 북한과 논의해 볼 수 있다"고 말한 바 있다. 


그러나 박 대통령도 원칙적으로 동의했던 남북 두 정상의 '서해평화협력특별지대' 구상은 한달여 만인 2012년 10월 새누리당의 정문헌 의원에 의해 노무현 전 대통령이 NLL을 포기했다는 무시무시한 내용으로 탈바꿈했다. 불과 한달 전 지방일간지와의 인터뷰에서 10•4 남북정상회담의 서해공동어로수역 및 평화수역설정방안에 대해 전향적인 입장을 보였던 박근혜 당시 후보도 NLL을 물고 늘어지며 문재인 후보와 민주당을 향해 대대적인 공세를 취했다. 같은 내용, 같은 인식이 하룻밤 사이에 다른 내용, 다른 인식으로 뒤바뀌어 버리는 이 기막힌 반전은 정치적 목적을 위한 '정략적 술수'라고 밖에는 달리 설명할 길이 없다. 





JTBC 뉴스룸은 어제 청와대가 세월호 참사 당일 비서실과 국가안보실 등이 박 대통령과 어떤 내용의 보고를 주고 받았는지에 대해 그 내용을 공개하는 것을 거부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보도에 따르면 청와대는 지난 5월 세월호 참사 이후 감사원이 청와대의 감사를 실시하면서 요구한 사고 당일의 대통령 행적과 관련된 자료의 제출을 거부했다. 청와대는 대통령과 관련된 행적이 박 대통령의 퇴임 이후에 '대통령 지정기록물'로 지정될 수 있기 때문에 관련자료의 제출을 거부했고 감사원은 이를 수용해 추가 조사를 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대통령 지정기록물을 관리하고 있는 대통령기록관의 유권해석은 청와대와는 달랐다. 대통령기록관은 관련법 시행령에 따라 "지정기록물의 보호 기간은 대통령 임기가 끝나는 다음날부터 시작된다"며 세월호 참사 당일 대통령과 관련된 청와대의 기록이 지정기록물로서 보호받을 법적인 근거는 없다고 밝혔다. 대통령기록관의 유권해석은 박 대통령의 사고 당일의 행적이 국가안보사항이라며 공개할 수 없다는 새누리당의 입장과도 상충된다.


조선일보와 일본 산케이의 보도로 의혹이 눈덩이처럼 불어났던 박 대통령의 행적은 여전히 미궁 속에 갖혀있다. 마치 천기누설이라도 되는 것처럼 청와대와 집권여당은 대통령의 행적을 감추려고만 하고 있고, 당사자인 박 대통령은 이와 관련해 얼마 전 매우 불쾌한 감정을 직설적으로 드러냈다. 박 대통령의 '모욕' 발언이 나오자마자 충직한 검찰은 인터넷 상의 허위사실 유포를 엄단하겠다며 대대적인 사이버 감시에 팔을 걷어 붙였다. 이같은 과정이 별개의 독립적인 흐름이라 믿는 바보는 없을 것이다.


집권을 위해 정당치 않은 방법으로 국가기록물인 남북정상회담 회의록까지 날조해가며 정략적으로 악용했던 자들이, 대통령의 공적인 업무수행마저 정보수집의 대상으로 전락시켜 버렸던 자들이 이제와서 박 대통령이 공무시간에 무엇을 했는지, 왜 7시간 동안 청와대 내에 있었다면서도 직접대면보고와 회의소집조차 할 수 없었는지에 대해서는 법적인 근거도 없이 공개하지 않고 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NLL 발언에 대해서는 국민의 알 권리가 더 중요하다며 공개를 주장했던 자들이 이제는 대통령의 행적이 사생활이고 보호받아야 할 국가기밀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정치적 술수임을 감안하고 본다해도 그 졸렬함과 치졸함이 목불인견이 따로 없다. 


박 대통령과 새누리당에 대한 정치적 입장을 떠나서 나는 우리나라의 정치가 최소한 일관성 쯤은 갖추고 있어야 한다고 본다. 결과에만 집착한 나머지 합리적 과정과 정당한 절차를 무시하고 자기합리화에만 열을 올리는 이같은 아전인수식 정치행태야말로 대한민국 정치의 저급화를 부추기는 제일 주범이다. 남이 하면 불륜이고 내가 하면 로맨스라는 치졸한 정치가 판을 치는 한 대한민국 정치의 레벨업은 절대로 이루어지지 않을 것이다.  





JTBC 뉴스룸의 보도로 세월호 참사 당일의 박 대통령의 행적을 공개할 수 없다는 청와대의 주장은 법적인 근거가 없는 것으로 밝혀졌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남북정상회담회의록까지 공개된 마당에 그깟(?) 박 대통령의 묘연한 행적을 공개하지 못 할 이유는 없다. 더구나 청와대와 새누리당은 그동안 줄기차게 박 대통령이 그날 경내에 머물러 있었다고 주장해 왔다. 떳떳하다면 공개하면 되는 것을 청와대와 새누리당이 자꾸 감추며 숨기고 있으니 의혹이 가라앉지 않고 우후죽순처럼 커져만 가고 있는 것이다. 


의혹이란 진실이 밝혀지지 않는 한 사라지지 않는 법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남북정상회담에서 NLL을 포기하는 발언을 했다는 의혹도 결국 국정원의 회의록이 공개된 이후에야 새누리당의 조작이며 날조에 의한 것임이 밝혀졌듯이 박 대통령을 둘러싼 풍문 역시 마찬가지다. 의혹을 잠재우기 위해 청와대와 새누리당이 해야 할 일은 박 대통령이 그 날 그 시각 무엇을 하고 있었는지 공개하는 것이지, 풍문을 차단하겠다고 검찰을 이용해서 사이버 감시를 하겠다며 국민을 겁박하는 것 따위가 아니다. 


전자는 상책이요, 후자는 하책 중의 하책이다. 청와대와 새누리당은 대통령의 당일 행적 공개불가가 법적으로 아무런 근거가 없다는 것이 밝혀진 이상 국민의 알권리와 세월호 참사의 진상규명을 위해서라도 박 대통령의 당일 행적을 공개해야 한다. 공개하지 않으면 않을수록 박 대통령을 둘러싼 풍문은 절대로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발없는 말이 천리를 가듯이 진실이 밝혀지지 않는 한 풍문은 구전되고 또 구전되는 습성이 있다는 것을 청와대와 새누리당은 잊지말기 바란다. 




 이미지 출처 : 구글 이미지 검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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