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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선거제 개정안 의결이 날치기? 밑도 끝도 없는 한국당의 어깃장

ⓒ 오마이뉴스

 

국회 정치개혁특별위원회가 29일 선거법 개정안을 의결하자 자유한국당이 거세게 반발하고 있습니다. 한국당은 의사 일정 중단과 함께 서울·부산 등지에서의 장외집회를 예고하는 등 강력한 대여 투쟁을 천명하고 나섰습니다.

일각에서는 선거법 개정안 의결 후폭풍이 현재 진행중인 청문회를 비롯해 9월 정기국회에까지 영향을 미치는 것 아니냐는 전망이 나오고 있습니다. 여야 대치가 길어질 경우 다음달 2~3일로 합의한 조국 법무부 장관 후보자 인사청문회 일정에 차질이 생길 수 있다는 관측입니다.

정개특위는 이날 전체회의를 열고 정의당 심상정 의원이 대표 발의한 선거법 개정안을 표결에 부쳐 재석위원 19명 가운데 찬성 11명으로 의결했습니다.

개정안은 한국당을 뺀 여야 4당이 패스트트랙으로 올린 안으로, 국회의원 정수를 300명으로 유지하되 준연동형 비례대표제를 도입하고 의석수를 지역구 225석·비례대표 75석으로 조정하는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한국당은 선거법 개정안 의결 직후 긴급의원총회를 열고 대책마련에 돌입했습니다. 그 결과 인사청문회를 제외한 국회 의사일정을 거부하고 원내·외 강경 투쟁에 나서는 것으로 총의가 모아졌습니다. 합의가 되지 않은 상황에서의 의결은 인정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황교안 대표는 "민주당의 정개 특위 선거법 날치기는 국회법을 위반하는 위법적 행위로 원천 무효"라며 "이 정부 폭정을 막아내기 위한 모든 투쟁을 다해야 한다. 원내는 원내대표 중심으로 뭉치고, 원외투쟁도 당 지도부를 믿고 참여해주시길 바란다"고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강경투쟁을 독려하는 사실상의 전면전 선언입니다.

나경원 원내대표는 의총 직후 기자들과 만나 "선거제마저 힘의 논리로 바꾸겠다는 민주당을 탄핵해야 한다"며 "헌법재판소에 권한쟁의 심판과 효력정지 가처분 신청을 하고 홍영표 정개특위 위원장과 김종민 1소위원장을 직권남용 혐의로 형사고발하는 방안도 검토 중"이라고 밝혔습니다. 당 차원에서 법적 대응에 나설 뜻임을 시사한 것입니다.

한국당을 바라보는 세간의 시선은 싸늘합니다. 그동안 갖가지 이유로 선거제도 개편 논의를 방해해왔던 한국당이 여야 4당 주도의 선거법 개정안 의결을 '날치기', '원천무효'라고 주장하는 것은 말이 안 된다는 지적입니다. 한국당은 과거 자신들이 해왔던 행태를 돌아봐야 하지 않을까요.

 

ⓒ 오마이뉴스


여야는 지난해 7월 26일 열린 본회의에서 6개의 비상설특위(정치개혁·사법개혁·에너지·남북경제협력·4차산업혁명·윤리특별위원회)를 설치하기로 의결했습니다. 그러나 정개특위는 이후 3개월이 다되도록 출범하지 못했습니다. 한국당이 특위위원 명단 제출을 차일피일 미룬 탓에 원구성 합의가 이뤄지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해 10월 24일 진통 끝에 심상정 정의당 의원을 위원장으로 하는 특위가 공식 출범했습니다. 그러나 그 이후로도 특위는 정상 가동되지 못했습니다. 한국당은 원내대표 선거를 이유로 논의에 불성실하게 응했습니다. 뚜렷한 이유없이 질질 시간 끌기로 일관하면서 비판을 받기도 했습니다.

나 원내대표 취임 이후 12월 15일 여야 5당이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골자로 한 선거제도 개편안에 큰 틀에서 합의했지만 해가 바뀌자 언제 그랬냐는 듯 없던 일로 만들었습니다. 선거제도 개편을 논의하자면서 심지어 한국당은 당론조차 내놓지 않았습니다.

보다 못한 여야 4당이 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을 골자로 한 선거제 개편안 단일안에 합의하자 한국당은 그제서야 부랴부랴 독자적 안을 제시했습니다. 300명인 의원 정수를 270명으로 줄이고 비례대표를 아예 폐지하자는 안입니다.

단순다수제인 소선거구제는 사표를 양산해 민의를 왜곡시키고 대의민주주의의 기능을 약화시키는 문제가 제기돼왔습니다. 지역주의를 고착시키고 극심한 대결 정치를 부추겨 국민통합을 저해하는 부작용을 낳기도 합니다. 소수정당의 국회 진입을 봉쇄시킨다는 단점도 있습니다.

그 대안으로 정치권과 시민사회에서 논의돼 온 것이 바로 연동형 비례대표제입니다. 정당득표율에 따라 의석수를 배분해 거대 정당의 과다 대표 문제를 바로잡고 소선거구제의 부작용과 폐단을 개선해보자는 취지입니다. 여론 역시 선거제도 개혁에 찬성하는 목소리가 높습니다.

비례대표를 아예 없애자는 한국당의 주장은 이같은 논의를 다시 원점으로 되돌리자는 의미입니다. 정치권과 시민사회의 오랜 숙의의 결과인 선거제도 개편을 방해하려는 의도라는 비판이 나오는 배경입니다. 법조계에서도 한국당 안은 " 선거구와 비례대표제는 법률로 정한다"고 명시한 헌법 제41조 3항 위반이라는 견해가 다수입니다.

한국당의 행태는 지금도 변함이 없습니다. 지난 6월 여야가 난항 끝에 특위 연장에 합의했지만 달라진 것은 없습니다. 두 달 동안 한국당은 제대로 된 협상안은 제시하지 않은 채 시간만 질질 끌어왔습니다. 특위를 한 달간 연장해 논의를 이어가자는 한국당의 제안이 무의미해 보이는 이유입니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는 지난 26일  정개특위 제1소위원회에 여야 4당이 합의한 선거제 개편안을 2016년 치러진 20대 총선에 대입한 시뮬레이션 결과를 제출했습니다. 그 결과에 따르면,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의 의석은 123석에서 107석으로 16석이 줄어들고, 새누리당(현 한국당)은 122석에서 109석으로 13석이 감소하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반면 바른미래당·민주평화당·변화와 희망의 대안정치연대로 갈라진 국민의당은 38석에서 60석으로 22석이 증가하고, 정의당은 6석에서 14석으로 8석이 늘어나는 것으로 집계됐습니다. 예상대로 거대 양당인 민주당과 한국당의 의석수가 줄어들고 소수정당의 의석수는 늘어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같은 결과는 한국당이 선거제도 개편에 미온적인 본질적 이유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지역주의와 결합한 현행 소선거구제의 수혜를 마음껏 누려온 한국당으로서는 자시들에게 유리하게 설계돼 있는 선거제도를 구태여 손 볼 필요를 느끼지 못하는 것입니다.

여야 4당이 패스트트랙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가, 특위 종료를 이틀 앞두고 선거제 개정안을 의결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더욱이 시간도 촉박합니다. 내년 총선 전에 선거구 획정 및 후속 작업을 마무리 하기 위해서는 올 11월까지는 선거제 개정안을 본회의에 상정해야만 합니다.

그러나 한국당은 이같은 사실을 잘 알고 있으면서도 선거제 개편 논의에 무성의하게 대응해 왔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여야 4당이  한국당의 처분을 마냥 기다릴 수는 없는 일입니다. 지금까지의 행태로 미루어 한국당은 선거제도 개편에 마음이 없다고 보는 편이 합리적이기 때문입니다.

한국당은 선거법 개정안 결의를 여야 4당의 '밀실야합'이라고 맹비난하고 있지만 작금의 상황은 한국당 스스로 자초한 측면이 크다는 것이 일반적인 평가입니다. 여야 합의를 강조한 한국당의 주장이 공감을 얻으려면 최소한의 노력과 성의라도 보였어야 마땅하지 않을까요.

여야 4당의 선거법 개정안 의결을 '날치기'로 규정한 한국당은 의총을 통해 선거법 개정 저지에 나서겠다는 뜻을 재확인했습니다. 한국당이 변하지 않는다면 길는 외길입니다. 지난 2012년 한국당의 전신인 새누리당이 주도한  패스트트랙 절차대로 갈 수밖에 없습니다. 선거제도 개편은 정치개혁의 요체이며 거부할 수 없는 시대적 요구이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