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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서청원의 폭로를 주목해야 하는 이유

ⓒ 오마이뉴스


친박청산 대상자로 지목돼 탈당 권유를 받은 서청원 자유한국당 의원이 칼을 뽑아 들었다. 그런데 이 한방의 무게감이 예사롭지 않다. 친박청산을 주도하고 있는 홍준표 대표의 최대 약점으로 지목돼온 '성완종 리스트'를 직접 거론하고 나섰기 때문이다. 홍 대표가 검찰 수사 과정에서 자신에게 구명을 요청했다는 서 의원의 폭로가 사실로 드러날 경우 전세는 대번에 뒤바뀌게 된다. 친박청산 작업이 물거품이 되는 것은 물론이고 대법원 판결을 앞둔 홍 대표가 돌이킬 수 없는 내상을 입게 될 수도 있다.

서 의원이 관련 사실을 폭로한 시점은 지난 22일이었다. 이날 서 의원은 국회에서 기자간담회를 자청해 "대법원 최종심을 기다리는 사람은 야당 대표로서 결격 사유"라며 "고 성완종 의원 사건에 대한 검찰 수사 과정에서 홍 대표가 나에게 협조를 요청한 일이 있다"는 사실을 폭로했다. 이어 "진실을 얘기하지 않았을 때는 제가 진실을 증거로 내놓겠다"고 말해 자신에게 강력한 패가 있음을 시사하기도 했다.

홍 대표는 즉각 반발했다. 이날 페이스북에  올린 글을 통해 "나는 다른 친박을 살리려고 박근혜 정권이 사건을 만들어 1년 6개월 동안 고통을 받았던 소위 성완종 리스트의 최대 피해자"라며 "협박만 하지 말고 녹취록이 있다면 공개해서 내가 회유를 했는지 아니면 거짓증언을 하지 말라고 요구했는지 판단을 받아보자"고 맞받아쳤다. 그러면서 홍 대표는"불법자금은 먹어본 사람이 늘 먹는다"며 "노욕에 노추로 비난 받지 말고 노정객답게 의연하게 책임지고 당을 떠나라"고 일갈했다.

친박청산과 맞물려 홍 대표의 구명 의혹이 폭로되자 서 의원이 언급한 증거가 무엇인지에 이목이 쏠리고 있다. 이와 관련 이용주 국민의당 의원은 23일 "항소심을 앞두고 서 의원과 홍 의원 사이에 오간 얘기는 '항소심 가서 윤승모씨가 진술을 번복해 달라'였다"면서 "단순한 협조요청이 아니라 번복을 해달라고 명확히 말을 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는 홍 대표가 서 의원에게 진술번복을 해달라고 요청하는 녹취록이 존재한다는 의미다.

홍 대표와 서 의원 사이의 진실공방이 치열하게 전개되고 있는 가운데 세간의 관심은 녹취록에 집중되고 있다. 녹취록의 공개 여부에 따라 파장의 강도와 세기가 달라지기 때문이다. 만약 녹취록이 실제로 존재하고 이것이 공개된다면 정국이 크게 요동치게 될 것은 불문가지다. 당장 홍 대표가 주도하는 친박청산 작업과 보수통합 움직임에 제동이 걸리게 되는 것은 물론이고, 경우에 따라 '성완종 리스트'에 연루된 인사들에게 불똥이 옮겨붙을 수도 있다.

이처럼 녹취록의 공개 여부는 홍 대표와 서 의원 사이의 진실공방의 진위를 가려줄 열쇠가 될 뿐만 아니라 향후 정치권에 막대한 영향을 끼치는 중대 변수가 될 전망이다. 이는 바꿔 말하면 녹취록이 공개되지 않는다면 이번 논란은 그렇고 그런 저급한 정치공방에 지나지 않는다는 뜻이다. 불필요한 정치적 논란을 종식시키고, 국민의 알권리를 충족시키기 위해서라도 서 의원과 이 의원은 하루 빨리 녹취록을 공개해야 마땅할 것이다.


ⓒ 오마이뉴스


그런가 하면 이번 논란을 주목해야 할 또 다른 이유들이 있다. 홍 대표와 서 의원의 낯뜨거운 이전투구 속에 간과해서는 안 되는 몇 가지 '함의'가 녹아있기 때문이다. 서 의원의 주장이 사실이라면 그는 불법정치자금을 수수한 혐의로 대법원 판결을 앞두고 있는 인물을 한국당의 대선후보로 추대한 셈이 된다. 다시 말해 홍 대표의 부도덕성을 사전에 인지하고 있었음에도 이를 묵인하고 방조했다는 뜻이다. 서 의원은 홍 대표의 자격없음을 성토하기 이전에 그와 같은 부적격 인사를 공당의 대선후보로 추인한 까닭이 무엇인지 국민 앞에 소상히 밝혀야 한다.

서 의원의 폭로가 사실일 경우 대법원  판결을 앞둔 홍 대표의 재판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칠 것으로 전망된다. 홍 대표는 고 성완종 경남기업 회장으로부터 1억원의 불법정치자금을 수수한 혐의로 기소돼 1심에서 징역 1년 6월을, 항소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았다. 그러나 당시 항소심 재판 결과에 대한 반론도 만만치 않았다. 홍 대표의 측근들이 검찰 수사 직전 윤씨에게 보좌관이 돈을 받은 것으로 해달라고 회유한 사실이 드러나는 등 혐의를 입증할 증거들이 상당했음에도 항소심 재판부가 윤씨의 진술이 정확하지 않다는 점을 들어 무죄를 선고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당시 재판부는 이완구 전 국무총리에게도 1심을 뒤집고 무죄를 선고한 전례가 있어 논쟁을 더욱 증폭시켰다. 상식적으로 생각할 때 홍 대표가 떳떳하다면 서 의원에게 전화해 구명 요청을 할 까닭이 전혀 없을 터. 서 의원의 폭로로 새롭게 드러난 사실이 대법원 재판과 검찰 수사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도 지켜볼 일이다.

서 의원의 폭로가 미완의 수사에 그친 '성완종 리스트'를 재조명하는 계기가 될 수 있을지도 관심거리다. 지난 2015년 봄 '성완종 리스트'가 공개될 당시만 해도 대형 '정치스캔들'로 비화되는 것은 시간문제인 것처럼 여겨졌다. 그도 그럴 것이 성 전 회장이 목숨을 끊으면서 남긴 메모 속에는 당시 여권의 유력 정치인 이름이 대거 등장했기 때문이었다.

이 전 총리를 비롯해 김기춘·허태열·이병기 전 청와대 비서실장, 서병수 부산시장, 유정복 인천시장, 홍문종 당시 새누리당 의원, 홍준표 당시 경남지사 등 여권의 내노라하는 인사들이 대거 포함된 '성완종 리스트' 수사는, 그러나 결국 정권 실세들에게 면죄부를 주는 것으로 흐지부지 끝이 나고 말았다. 검찰은 이 전 총리와 홍 지사를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로 불구속 기소하고 나머지 6명은 무혐의 처리하는 것으로 수사를 마무리 지었다.

당시 검찰의 '성완종 리스트' 수사는 진보언론은 물론이고 '조중동' 등 보수언론까지 앞다퉈 비판했을 정도로 논란이 거셌다. 검찰은 박근혜 대통령의 측근이자 정권실세였던 거물급 인사들을 수사하면서 철저하게 봐주기 수사로 일관했다. 무혐의 처분을 받은 6명 중 홍 의원만 참고인 신분으로 조사했을 뿐 나머지는 서면조사로 대신했고, 불법정치자금 수사 사건임에도 계좌추적조차 하지 않았다. 이에 정권실세에 대한 '면죄부 수사'란 비판이 끊이질 않았다.

그러나 당시 검찰 수사 결과를 곧이 곧대로 믿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오죽하면 보수언론에서조차 검찰의 수사를 '부실·봐주기·면죄부 수사'라고 맹비난했을까. '성완종 리스트'는 권력형 비리를 밝혀내기 위한 중요한 단서이자 증거였다. 한 기업인이 죽음으로 말하려 했던, 권력의 치부가 담겨있던 유서였다. 그러나 정권실세 다수가 연루돼 있던 불법의 정황들은 끝내 세상에 공개되지 못했다.

"말이 안 되는 짓을 하니까. 신뢰를 이렇게 헌신짝처럼 버리니까 내가 희생해서라도 사회를 바로 잡아주는 길 밖에는 없잖아요."

성 전 회장이 세상을 떠나기 전 남긴 마지막 소회다. 그러나 사회를 바로 잡기 위한 그의 결단은 '죽은 자는 말이 없다'는 자조로 되돌아 왔을 뿐이었다. 켜켜이 쌓여온 부정·부패의 고리들을 낱낱이 밝히는 것은 투명하고 정의로운 사회를 만들기 위한 첫걸음일 테다. 서 의원의 폭로가 단지 홍 대표의 불법정치자금 수수 혐의를 입증하는 것으로 끝나서는 안 되는 이유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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