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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생리대 지원사업 발표한 성남시, 역시 이재명은 달랐다

성남시가 가장 먼저 움직였다. 생리대 살 돈이 없어 휴지와 수건, 신발 깔창 등으로 견뎌야 했던 소녀들의 안타까운 사연을 접한 성남시가 '저소득층 미성년자 생리대 지원사업'을 시작하겠다고 밝힌 것이다. 이재명 성남시장은 "이런 어려움을 몰랐다니 어른으로서, 정치행정가의 한 사람으로서 반성한다. 단 한 명의 인권도 존엄도 훼손되지 않게 하겠다"며 내년부터 사업을 시행할 수 있도록 준비하겠다고 밝혔다.

이 시장이 전격적으로 '저소득층 미성년자 생리대 지원사업'을 실시하겠다고 밝힌 데에는 온라인과 SNS를 뜨겁게 달구었던 가슴 먹먹한 사연 때문이었다. 지난달 23일 인터넷 커뮤니티 사이트와 SNS에 올라온 사연에는 생리대를 살 돈이 없어 학교에 가지 못하고 일주일 내내 집에서 수건을 깔고 누워 있어야만 했던 소녀의 이야기에서부터, 편부 가정에서 신발 깔창으로 생리대를 대체해야 했던 가난한 소녀의 이야기, 생리대 살 엄두가 안 나 휴지로 대신할 수밖에 없없던 사연, 비싼 생리대 가격 때문에 한 두개로 하루를 버텨야 했던 소녀의 이야기 등 저소득 청소년이 겪고 있는 안타까운 현실이 담겨있었다.

이 사연들은 SNS를 타고 전국으로 삽시간에 퍼져나갔고, 시민들은 상상조차 못했던 믿을 수 없는 이야기에 안타까움을 금치 못했다. 물질만능의 시대이자 공급과잉의 시대, 그 반대편에는 이처럼 생리대 살 돈이 없어 열악하고 비참한 삶을 이어가야만 하는 어린 소녀들도 있었다. 시대가 만들어낸 씁씁한 단면들이다.


ⓒ 오마이뉴스



사연이 알려지자 여기저기서 따뜻한 온정의 손길이 이어지고 있다. 한 여성위생용품 회사가 성남시에 8800만원 상당의 생리대를 기탁하는가 하면, 성남시의 한 생활용품 대리점 대표는 생리대 100박스를 성남시에 기탁하기도 했다. 이 밖에도 일반 시민들의 후원 의사가 쇄도하는 등 자발적 기부가 잇따르고 있다

시민들의 관심과 후원이 이어지자 이번에는 대한민국의 복지체계를 다시 써 내려가고 있는 이재명 성남시장이 나섰다. 그는 저소득 청소년들의 아픔을 살피지 못한 데에 따른 반성과 함께 이 문제를 복지와 인권과 결부시켜 제도적으로 뒷받침시키겠다는 의지를 나타냈다. 성남시가 발표한 '저소득층 미성년자 생리대 지원사업'이 바로 그것이다.

이 시장은 이를 위해 약 5~6억 정도의 예산을 책정하고 관련 부서에 사업 시행을 위한 작업 검토를 지시했다. 사업이 차질 없이 진행될 경우 성남시에 거주하는 3400여 명에 달하는 저소득층 청소년들은 내년부터 시의 지원을 받을 수 있게 될 전망이다. 이미 청년배당과 무상교복, 무상 공공 산후조리원 등 복지의 패러다임을 바꾸고 있는 이 시장의 복지정책에 한 가지가 더 추가된 것이다.

그러나 '저소득층 미성년자 생리대 지원사업'이 당장 내년부터 시행될 수 있을지는 불투명하다. 이 사업의 시행여부는 이 시장이 아닌 중앙정부의 의지에 달려 있기 때문이다. 중앙정부가 제동을 걸 경우 성남시의 이번 사업은 암초에 부딪힐 공산이 크다. 이미 성남시는 복지정책과 관련해 중앙정부와 치열한 법정분쟁을 벌이고 있는 상태다.

이 시장은 이를 우려한 듯 지난달 30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복지 과잉 국민 나태' 주장하며 반대하는 정부 관계자들과 성남시 재정을 약탈하려는 정부 시도를 막아야 하는 큰 장애물이 있지만 여러분과 함께 넘겠다"는 글을 남긴 바 있다. 최근 발표된 정부의 지방 재정 개편안 등 자자체의 복지정책에 브레이크를 걸고 있는 중앙정부의 행태를 직설적으로 비판한 것이다.


ⓒ 오마이뉴스



정부 여당이 보편적 복지를 결사적으로 반대하는 이유는 표면적으로는 예산에 있다. 한정된 예산을 보편적 복지에 쏟아 부으면 재정파탄이 발생할 수밖에 없고, 결국 그리스처럼 국가부도 사태를 맞게 될 것이라고 그들은 주장하고 있다. 그리스의 국가부도를 단순히 과잉복지 때문이라고 규정지을 수는 없는 일이다. 그러나 이를 액면 그대로 받아들인다 해도 정부 주장에는 곳곳에 헛점이 산재해 있다. 무엇보다 이 시장이 부임한 이후 성남시가 어떻게 달라졌는지가 그들의 오류를 입증하는 가장 확실한 증거다.


이 시장이 취임할 무렵인 2010년 성남시의 재정상태는 파산일보 직전이나 다름이 없었다. 전임 시장이었던 이대엽 시장(구 한나라당, 판교 신도시 분양 청탁 등 뇌물혐의로 구속됨)이 방만하게 시정을 운영한 결과였다. 그러나 이 시장은 부임하자 마자 대대적인 예산구조조정을 통해 불필요한 재정지출을 줄이고, 토목 공사와 전시성 공사 등을 최소화하면서 시의 재정 상태를 완전히 바꾸어 놓았다. 그 결과 성남시는 2014년 지방재정자립도 1위에 오르는 등 전국 최상위의 재정 상태를 유지하고 있다.

이처럼 이 시장 취임 전과 후의 극명한 대비는 결국 재정파탄은 중앙정부와 지자체의 무분별한 재정지출과 관료들의 부정 부패 때문에 발생하는 것이지, 정부 여당의 주장처럼 과잉복지 때문이 아니라는 것을 여실히 보여준다. (OECD 회원국 가운데 국내총생산 대비 복지지출이 가장 낮은 우리나라에서 과잉복지를 거론되고 있으니 기가 찰 노릇이다)

뜨겁게 공론화되고 있는 '저소득층 미성년자 생리대 지원사업' 역시 마찬가지다. 불필요하게 낭비되는 예산을 줄이고, 효율적인 예산 집행과 예산관리의 투명성만 확보 할 수 있다면 예산 문제는 충분히 극복할 수 있다는 것이 성남시를 통해 드러난다. 결국 복지는 예산의 문제가 아닌 철학과 윤리, 의지의 문제인 것이다.


2015년 국가통계포털에 따르면 전국의 저소득층 가정의 여학생 수는 약 10만명에 이른다. 300억원의 국가예산(성남시가 예측한 예산 기준)이 투입되면 전국의 저소득층 여학생들이 다시는 이런 말도 안되는 고통 속에 내몰리지 않아도 된다는 뜻이다. (참고로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박정희 전 대통령 관련 기념 사업 예산은 지난 2015년 기준으로 403억원에 달하고 있다)


정부가 조금만 관심을 가지면 가장 민감한 시기의 어린 학생들이 악몽같은 현실에서 벗어날 수 있다. 성남시가 추진하려는 '저소득층 미성년자 생리대 지원사업'에 정부가 과연 어떤 입장을 취할지, 그리고 어떤 대책을 내놓을지 두고 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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