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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법부 비난 여론 비판한 전국법과대학교수회에 대한 반론

사법부를 향한 비난 여론이 솟구치고 있다. 법원이 군 사이버사령부의 댓글 공작에 개입한 혐의로 구속되었던 김관진 전 국방부 장관에 이어 임관빈 전 국방부 정책실장까지 석방하자 비판 여론이 속출하고 있는 것이다. 특히 구속적부심에서 김 전 장관과 임 전 실장의 석방을 결정한 신광렬 수석부장판사에 대해 비난의 화살이 집중되고 있다. 일부 네티즌들이 신 판사를 '적폐 판사'라 지목하며 맹비난하고 있는 가운데 이같은 사법부 비난 여론에 대해 우려의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담당 판사를 향한 신상털기, 험담과 비방 등의 사이버테러가 사법부의 독립을 침해할 우려가 있다는 지적이다.

전국법과대학교수회는 27일 '사법부의 독립을 해치는 행위는 자제되어야 한다'는 성명을 발표하고 일각에서 표출되고 있는 재판부를 향한 과도한 비난에 깊은 우려를 표시했다. 전국법과대학교수회는 "과거의 적폐를 청산하고 미래를 더 투명하고 공정하게 하려는 노력에 지지를 표한다"고 전제하면서도, "그 모든 시도는 헌법이 보장하는 삼권분립·견제와 균형·개인의 인권 보호 등 공동체의 가치 속에서 이뤄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지금 벌어지고 있는 일련의 사태는 판사 한 개인에 대한 불만이나 위협을 떠나 사법부의 독립적인 판단을 담보하는 법관 개인의 직업적 양심을 위축, 제한하여 헌법이 정하는 공정하고 신속한 재판을 받을 권리를 침해할 소지가 있다"며 "개인의 정치적 표현의 자유는 보장되어야 하지만 익명에 기대어 집단으로 인격살인에 가까운 막말을 하고 정치인들까지 여기에 가세하는 것은 책임 있는 시민의 자세라 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재판부를 향한 지나친 비난이 사법독립을 저해할 수 있기 때문에 자제해야 한다는 그들의 주장은 일견 타당해 보인다. 역설한 것처럼 사법적 판단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해서 재판부를 향해 무차별적 인신공격을 퍼붓는 것은 법치주의를 부정하는 행위로 비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편으로, 사법부를 향해 비난이 거세지고 있는 이면에는 국민의 법 상식과 동떨어진 재판부의 판단이 있다는 사실 역시 부인하기는 힘든 실정이다.

김 전 장관과 임 전 실장을 풀어준 재판부의 구속적부심 판결만 해도 납득하기 어렵다는 지적이 많다. 재판부는 지난 22일 구속적부심을 열고 "김 전 장관의 위법한 지시와 공모 여부에 대한 소명 정도 및 변소내용 등에 볼 때 범죄 성립 여부에 대한 다툼의 여지가 있어 방어권을 보장할 필요가 있다"는 이유를 들어 김 전 장관을 석방했다. 24일 열린 임 전 실장에 대한 구속적부심에서도 "일부 혐의에 관하여 다툼의 여지가 있고, 현재 피의자가 증거를 인멸할 염려가 있다고 믿을 만한 충분한 사유가 있다거나 증인 및 사건 관계인에게 위해를 가할 염려가 있다고 믿을 만한 충분한 이유가 있다고 보기 어렵다"는 이유로 석방을 결정했다.


재판부의 판단은 지난 11일 김 전 장관과 임 전 실장의 구속을 결정한 영장실질심사 때와는 정반대의 결과여서 주목받는다. 당시 영장실질심사를 맡았던 서울지방법원 강부영 영장전담판사는 "범죄 혐의가 소명되고 증거 인멸의 염려가 있다"며 두 사람에 대한 구속 결정을 내린 바 있다. 그러나  구석적부심 재판부의 판단은 달랐다. 누가 판단하느냐에 따라 동일한 사안이 이처럼 상반된 결과로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김 전 장관과 임 전 실장 석방이 특히 논란이 되고 있는 것은 이번 판결이 구속적부심의 일반적 통념을 허물었다는 데에 있다. 피의자에 대한 구속이 적절한지의 여부를 다시 판단하는 구속적부심은 부당하거나 위법하게 구속된 피의자를 구명하기 위해 만들어진 제도다. 그러나 새로운 증거가 나오거나 피해자와의 합의 등 사정변경이 발생하지 않는 한 법원이 구속적부심에서 피의자를 석방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는 것이 정설이다.


 오마이뉴스


영장전담판사를 지냈던 이정렬 전 부장판사는 바로 이 점을 지적하며 구속적부심 결과에 의문을 표시했다. 이 전 판사는 27일 tbs 라디오 '김어준의 뉴스공장'에 출연해 "사정변경이 없는데 석방 결정을 하는 것은 흔하지 않다"면서 특히 임 전 실장의 경우 뇌물 수수 혐의까지 있어 풀어주기가 어렵다고 설명했다.

이 전 판사는 변호인들이 김 전 장관에게 구속적부심 신청을 제안한 것에 대해서도 "의뢰인이 하자고 해도 안 될 것 같으면 '괜히 역효과만 난다'고 말린다"면서 "이 경우는 희안한 게 잘 받아들여지지 않는 구속적부심을 변호인이 하자고 했다"고 꼬집었다. 한마디로, 김 전 장관과 임 전 실장의 구속적부심 신청과 이를 받아들인 법원의 결정 모두 이해하기 어렵다는 지적이다.

더욱이 김 전 장관 임 전 실장은 불법 여론조작을 통해 대한민국의 법치와 헌정질서를 무너뜨린 중대범죄의 피의자들이다. 범죄혐의가 이미 상당 부분 드러난 상태에서 '다툼의 여지가 있어 방어권을 보장할 필요가 있다'고 판단한 재판부의 결정은 국민정서와 크게 상충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 영장실질심사와 구속적부심마저 서로 완벽하게 엇갈리고 있다. 사법 불신을 사법부 스스로 초래하고 있다는 비판이 제기되는 이유다.

국민의 법 감정과 동떨어진 재판부의 판단이 잇따르고 있는 것도 사법 불신이 증폭되는 주된 요인으로 손꼽힌다. 최근만 하더라도 25일 롯데홈쇼핑 뇌물 혐의를 받고있는 전병헌 전 청와대 정무수석에 대한 구속영장이 기각됐다. 앞서 10일에는 국정원법 위반 등의 혐의로 영장이 청구된 김재철 전 MBC 사장에 대한 구속영장이 기각되기도 했다. 이명박·박근혜 정부 시절 자행된 국정원의 정치개입에 깊숙이 관여한 혐의를 받고 있는 추명호 전 국정원 국익정보국장에 대한 구속영장 역시 지난 10월 20일 기각됐다.

이뿐만이 아니다. 지난 9월 7일 국정원 사이버 외곽팀장으로 활동한 양지회 간부 2명에 대한 구속영장 역시 기각됐다. 당시 법원은 '증거인멸의 끝판왕'이라 지목받는 국정원 전·현직 직원에 대한 영장실질심사에서 "범죄혐의는 소명되나 수사 진행 경과 등에 비춰 도망 등 증거인멸의 염려가 있다고 보기 어렵다"는 기각 사유를 밝혀 논란에 기름을 부은 바 있다. 이밖에도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과 우병우 전 청와대 민정수석, 이영선 전 청와대 행정관, 추선희 전 어버이연합 사무총장 등에 대한  구속영장 역시 모두 기각됐다. 그때마다 법원의 판결을 두고 사회적 논란이 거세게 일었음은 물론이다.

국민들이 사법부의 판결에 문제를 제기하는 것은 다 그만한 이유가 있다. 객관성과 합리성에 의문부호가 붙는 경우가 빈번할 뿐 아니라 김 전 장관과 임 전 실장의 경우에서 드러나듯 형평성과 일관성을 찾아보기 힘든 판결이 이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법과 원칙에 따라 객관적이고 합리적이며 일관된 판결이 행해진다면 국민들이 사법부를 비난하고 나설 까닭이 없을 것이다. 그러나 현실을 그와는 사뭇 딴판이다. 재판부의 주관적 판단에 따라 법리 적용이 달라지는 경우가 다반사다. 이래서는 사법부를 신뢰하려야 할 수가 없게 된다. 


전국법과대학교수회는 '사법부의 독립을 해치는 행위는 자제되어야 한다'고 강하게 역설했다. 맞는 말이다. 그러나 저 주장은 법관 한사람 한사람이 법리적 판단의 엄중함과 책임감을 통감하고 법조인의 양심에 따라 판결을 내렸을 경우를 전제로 한다. 그런 면에서 전국법과대학교수회의 비판은 그 순서와 방향이 잘못됐다고 생각한다. 모든 사회적 현상에는 인과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사법부의 신뢰를 무너뜨리는 판결이 속출하는 현실에 대한 비판이 먼저다. 지금처럼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 식의 오락가락 판결을 계속하게 된다면 사법 불신 풍조는 더욱 증폭될 것이고 사법부의 독립성 또한 지킬 수 없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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