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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사람들은 왜 '바보 노무현'을 그리워할까!

ⓒ 오마이뉴스


공교롭다.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똑같은 일이 되풀이되고 있어서다. 110억 원대 뇌물수수 혐의와 350억 원대 다스 횡령 혐의 등으로 구속기소된 이명박 전 대통령이 5월 23일 첫 공판을 위해 서울중앙지방법원에 모습을 드러냈다. 1년 전 이날은 박근혜 전 대통령이 서울중앙지법에서 국정농단의 공동주역이었던 최순실과 나란히 피고인석에 앉았던 날이기도 했다. 


1년 터울로 두 전직 대통령이 같은 날 같은 장소에서 첫 공판을 받게 되는 이 기막힌 장면은 시사하는 바가 남다르다. 역사의 비극이자 부끄러운 우리 정치의 현주소가 이 모습 속에 적나라하게 드러나고 있기 때문이다. 두 사람은 모두 국민의 환호와 기대 속에 대통령에 취임했다. 그러나 위임받은 권력을 사사로이 남용하고 법 질서를 무너트리는 국정운영을 지속적으로 펼친 결과 파국을 맞았다. 

2017년 3월 10일 박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이 헌법재판관 8인의 만장일치로 인용됐다. "피청구인 대통령 박근혜를 파면한다"라는 이정미 헌재소장 권한대행의 주문이 낭독되는 순간, 거리에서 가정에서 판결 결과를 숨죽이며 지켜보던 수많은 국민들의 입에서 환호성이 터져나왔다. JTBC의 최순실 태블릿 PC 보도 이후 불붙기 시작한 탄핵 정국이 헌정 사상 최초의 대통령 파면으로 일단락되는 순간이었다. 

박 전 대통령이 파면된 이유는 헌재가 밝힌 탄핵 인용의 배경 속에 고스란히 담겨있다. 헌재는 박 전 대통령이 대의민주주의의 원리와 법치주의 정신을 크게 훼손했다고 밝혔다. 실제 박 전 대통령에게 적용된 혐의는 직권남용, 뇌물수수, 공무상 기밀 유출, 언론자유 침해 등 법 질서와 민주주의 체제를 뒤흔드는 내용 일색이다. 탄핵의 당위는 "박 전 대통령을 파면함으로써 얻는 헌법 수호의 이익이 압도적으로 크다"라고 헌재가 적시한 것에서 여실히 드러난다. 


그러나 '정상의 비정상화'가 만연했던 '박근혜 시대'는 애시당초 이명박 정부가 없었다면 탄생하기 어려웠다. 다시 말해 박근혜 정부의 출범에 이 전 대통령의 역할이 절대적이었다는 견해다. 이 전 대통령은 집권 이후 김대중·노무현 민주정부 10년의 흔적을 지우는 작업에 공을 들였고, 시대는 다시 권위주의 시절로 회귀했다. 이명박 정권을 거치는 동안 표현의 자유가 크게 침해받고, 언론자유가 심각하게 위축되는 등 민주주의가 크게 후퇴했다는 것이 중론이다.

이명박 정부 5년은 집권세력의 독단과 독선에 의한 국정운영이 고착화되면서 민주적 시스템이 사라지고 불통과 권위가 득세한 시기였다. 그 결과 비판과 쓴소리를 배격하고 집권세력이 일방적으로 의사결정을 하는 일이 비일비재했다. 다수 국민이 반대했던 한반도 대운하 공약을 4대강 사업으로 둔갑시켜 강행시킨 것이 그 단적인 예다. 돌이켜보면 콘크리트 보에 의해 가로막힌 강물은 민의의 차단을 의미하는 것이었고, 파헤쳐진 강바닥은 갈갈이 찢겨나간 국민의 마음을 상징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런 면에서 합리적 소통과는 담을 쌓은 채 국민을 적으로 돌리는 권위적이고 일방적인 국정운영을 펼친 이 전 대통령이 직권남용과 뇌물수수, 횡령, 조세포탈 등 16개에 달하는 혐의로 구속 수사를 받게 된 것은 어쩌면 필연에 가까운지도 모른다. 이는 국민에 의해 파면당한 박 전 대통령 역시 마찬가지다. 헌법적 가치와 민주주의 체제와 질서에 대한 통찰과 이해가 부족한 인물이 권력을 갖게 될 경우 어떤 비극이 초래하는지를 극명하게 보여준다 할 것이다. 


ⓒ 오마이뉴스



이 전 대통령의 첫 공판이 열린 날, 경남 김해시 진영읍 봉하마을에서는 그와는 사뭇 다른 풍경이 펼쳐졌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일이기도 한 이날 봉하마을은 서거 9주기를 추도하기 위해 모인 사람들로 가득했다. 노무현재단에 따르면 이날 노 전 대통령 서거 9주기 추도식에는 권양숙 여사를 비롯한 유가족과 정치권 인사, 참여정부 관계자 및 시민 등 5000여 명이 참석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가 떠난 지 벌써 햇수로 9년이다. 그러나 추모 열기는 좀처럼 식지 않는다. 중요한 일을 앞두고 정치인들이 봉하마을을 찾는 일은 이제 흔한 일상이 됐다. 일반인에게도 봉하마을은 낯설지 않다. 사람들은 아무렇지 않게 봉하마을을 찾아 '노무현'을 추억하고 그가 걷던 길을 따라 걷는다. 사람들은 왜 '바보 노무현'을 그리워하는 것일까. 그는 청와대에 있을 때는 인기가 없는 대통령이었다. 많은 사람들이 노 전 대통령을 손가락질 했다. 비가 안 와도 노무현 탓이었고, 비가 너무 와도 노무현 탓이었다. 

그랬던 사람들이 이제 노무현을 추억하고 그리워한다. 그가 남긴 발자취를 기억하고 따라 걷는다. 생각해보니 우리 삶이 그렇다. 물, 공기, 바람, 나무, 꽃, 흙, 구름, 자유, 인권, 민주주의... 그리고 사람. 우리 주변엔 너무나 흔하고 흔해서 곁에 있을 때는 그 가치를 몰라보는 것들이 참 많다. 그러나 우리는 안다. 그것들이 실상 얼마나 값진 것인지를. 우리 삶에 없어서는 안 되는 소중한 것이라는 사실을 말이다. 어느 순간 깨닫게 되는 '부재'의 역설이다. 

노 전 대통령이 바로 그런 존재일 터다. 임기초 많은 사람들이 문재인 대통령의 소통과 탈권위, 민주적 국정운영 등을 높게 평가했다. 그러나 문 대통령보다 먼저 낮은 자세로 국민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권위를 덜어내기 위해 노력한 사람이 바로 노 전 대통령이었다. 탄핵 사태로 인수위 없이 취임한 문 대통령이 국정을 연착륙시킬 수 있었던 배경에 참여정부 시절 노 전 대통령과 국정철학을 공유하며 체득했던 경험을 빼놓을 수는 없을 터다. 

그러나 노 전 대통령은 재임 기간 내내 당시 한나라당(현 자유한국당)과 보수언론의 집중공세에 시달려야 했다. 이명박 정부(평균 3.2%)와 박근혜 정부(2.9%)보다 높은 4.5%의 경제성장율을 기록했음에도 '경포대'(경제를 포기한 대통령)라는 조롱을 받는가 하면, '환생경제'라는 연극을 통해선 한나라당 의원들로부터 입에 담기 민망한 '육두문자'까지 들어야 했다. 


재임 당시 끊임없는 공격과 조롱, 멸시를 받았던 노 전 대통령은 그러나 퇴임 후 재평가를 받기 시작했다. 이 전 대통령 집권 이후 권위주의 시대가 도래하자 노 전 대통령의 진면목과 가치가 새삼 부각된 것이다. 노 전 대통령의 사저가 있던 봉하마을은 그를 만나려는 사람들로 날마다 북새통을 이뤘다. 임기 내내 인기 없던 대통령은 퇴임 이후 사람들에 둘러싸인 국민의 대통령이 됐다. 어쩌면 그때가 노 전 대통령에게 있어 가장 평화롭고 평온했던 시절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모두가 알다시피 행복은 오래가지 않았다. 불꽃같이 치열한 삶을 살았던 그는 "누구도 원망하지 마라, 운명이다"라는 말을 남기고 봄날의 꿈처럼 우리 곁을 떠나갔다. 허망하고 애잔한, 너무나도 갑작스러운 이별이었다. 흥미로운 것은 정치적 표적수사로 노 전 대통령을 죽음으로 내몰았다고 지목받고 있는 이 전 대통령이 현재 구속돼 재판을 받고 있다는 사실이다. 노 전 대통령이 떠나간 날, 이 전 대통령의 첫 번째 공판이 열렸다.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노 전 대통령이 떠난지 9년. 사람들이 다시 그를 기억하고 추모한다. 그의 삶을 반추하고, 그가 우리 사회에 남긴 흔적을 되새긴다. 사람들은 왜 '바보 노무현'을 잊지 못하는 것일까. 아마도 이제는 분명하게 깨달았기 때문일 것이다. 

낮은 자세로 진솔하게 국민을 섬긴 대통령, 민주주의의 가치와 소중함을 일깨워준 대통령, 반칙과 특권이 없는 사람사는 세상을 꿈꾸던 대통령이 바로 그였다는 사실을 말이다. 노무현은 떠나고 없지만 그가 남긴 유산들은 여전히 우리 곁에 살아 숨쉬고 있다. 우리는 '바보 노무현'에게 빚을 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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