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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보수단체의 대북전단 살포는 제2의 총풍사건?

흡사 전쟁터를 방불케했다. 경기도 파주시 임진각 일대는 어제(25일) 대북전단을 살포하려는 보수단체와 이를 막아내려는 인근주민 및 진보단체 간의 충돌로 하루종일 몸살을 앓아야만 했다. 이날 임진각에는 보수단체 회원들을 태운 전세버스와 풍선 충전용 가스통을 탑재한 트럭이 등장했고, 그 반대편에는 한창 논밭에 있어야 할 트랙터들이 길게 줄지어 도열하고 있었다. 풍선을 띄우려는 자들과 이를 막으려는 자들 사이에 험악한 고성이 오고 갔고, 어디선가 계란이 투척되기도 했다. 몸싸움과 설전이 오가는 치열한 신경전은 저녁이 될 때까지 계속되었다. 대북전단을 살포하려는 보수단체와 이를 저지하려는 주민 및 시민단체, 만일의 사태를 대비해 배치된 경찰 14개 중대와 내•외신 취재진 그리고 관광객까지 뒤섞인 임진각은 이날 그야말로 북새통이나 다름이 없었다. 전세계에서 오직 유일하게 대한민국에서만 볼 수 있는 진풍경이었다.  





얼마 전 탈북자단체가 날린 대북전단을 사이에 두고 남북의 총격전이 벌어졌다. 인접지역에 살고있는 주민들 입장에서 본다면 생명과 안전에 심각한 위협을 느낄 수 밖에 없는 상황이 발생한 것이다. 생존권을 위협받는 상황에서 자기방어는 지극히 당연한 인간의 권리다. 더구나 북한은 이틀 전 전단살포에 대해 "사실상 선전포고"라 규정하고 절대로 용납하지 않겠다는 분명한 경고의 메시지를 남긴 터였다. 이는 지난 번에는 풍선을 겨누었던 북의 고사총탄이 다른 곳으로 향할 수도 있다는 의미다. 따라서 대북전단보내기국민연합이 주축이 되어 강행된 이번 전단살포를 인근주민들이 강력하게 규탄하며 반대하는 이유는 충분하다. 


그렇다면 대북전단을 살포한 보수단체에게는 어떤 명분이 있는 걸까. 보수단체들은 북한 주민들에게 북한의 실상을 알리는 대북전단이 궁극적으로 북한의 인민혁명을 불러일으켜 북한 주민들의 손으로 3대 독재를 끝낼 수 있다고 믿고 있다. 따라서 대북전단이야말로 북한 주민들을 해방시키기 위한 역사적 사명이라고 주장한다. 보수단체들이 국민의 생명과 안전, 한반도의 평화마저 위협하면서 내세우는 명분이 고작 망상이라는 사실에 분노하지 않을 수 없다. 저들의 주장은 마치 자신이 들고있는 약이 만병통치약이라며 떠들어 대는 약장수의 그것만큼이나 허무맹랑하기 그지 없다. 


보수단체의 치기어린 망상은 결국 우군들까지 등을 돌리게 만들었다. 새누리당의 하태경 의원과 북한인권단체들 마저 대북전단을 살포하는 보수단체들의 망상을 비난하고 나선 것이다. 그들은 대북전단을 살포한 지역의 풍향이 북쪽이 아닌 동남쪽을 향하고 있었다는 점을 지적하며 전단살포의 실효성에 의문을 표했다. 북한주민들에게 북한의 참상을 알리겠다더니 대북전단의 대부분을 우리 국민들과 바다 생물들이 봐야 하는 웃지 못할 촌극이 벌어진 셈이다. 대북전단을 북한정권을 붕괴시키기 위한 핵폭탄쯤으로 여기고 있는 보수단체들이 이런 기본적인 사항조차 고려치 않은 것을 보면 대북전단 살포행위는 "대국민 사기극"이라는 하태경 의원의 주장은 매우 설득력이 높아 보인다. 





이틀 전 국감에서는 총리실과 안전행정부가 탈북전단을 살포한 보수단체들에게 정부지원금을 지급한 사실이 드러나 충격을 주었다. 새정치민주연합의 민병두 의원은 국무조정실로부터 제출받은 민간경상보조사업 현황자료를 분석한 결과 총리실이 대북전단 살포에 동참한 것으로 드러난 대한민국사랑회 등에 지난 2년간 2억원에 달하는 지원금을 지급한 것으로 나타났다고 주장했다. 민병두 의원의 주장을구체적으로 살펴보면, 총리실은 2013년에 대한민국사랑회에 3천만원, 북한민주화네트워크에 4천만원, 북한인권탈북청년연합에 4천만원을 지원한 것으로 밝혀졌다. 또 2014년에는 북한민주화네트워크 3천만원, 북한인권탈북청년연합 4천만원, 북한 전략센터에 3천만원을 민간경상보조사업 명목의 지원금을 지출했다. 


이뿐만이 아니다. 통합진보당의 김재연 의원이 안전행정부로부터 넘겨받은 자료에 따르면 안전행정부 역시 이들 단체에 2013년부터 올해까지 비영리단체 지원사업 명목으로 3천만원에서 7천만원을 지급했다. 이는 사실상 (정부의 부인에도 불구하고) 정부가 대북전단 살포자금을 물밑에서 지원해 왔다는 의미이다. 그동안 정부가 대다수 국민이 반대하고 있는 대북전단 살포행위를 '표현의 자유'를 들먹이며 방치해 왔던 이유가 드러나는 대목이다. 


민병두 의원과 김재연 의원의 폭로대로 정부가 대북전단을 살포한 보수단체들에게 정부지원금을 지급한 것이 맞다면 이는 묵과할 수 없는 국민 기만행위다. 정부가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위협하는 보수단체의 위험천만한 일탈행위를 지원한 것이나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물론 국무총리실은 반박문을 통해 야당의 주장을 일축했다. 총리실의 해명자료에는 "총리실에서 단체를 지원하는 이유는 사회통합과 갈등완화에 기여하는 사업을 추진했기 때문이며, 대북전단 살포와는 전혀 관계가 없다"고 적혀 있다. 


바보가 아닌 이상 대북전단 살포가 사회통합과 갈등완화에 기여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백번 양보해서 총리실의 주장대로 단체의 사업 내용이 공모주제와 부합하고, 사업계획이 충실했기 때문에 지원금을 지급했다 하더라도, 이후에 단체의 사업진행을 모니터링하고 지원금이 지원목적에 맞게 사용되고 있는지를 철저하게 점검하고 감시해야 하는 책임은 정부에게 있다. 정부의 해명은 무책임할 뿐더러 궁색하기 짝이 없다. 이러나 저러나 결국 정부가 직무유기를 범했다는 것은 변함이 없기 때문이다. 





1997년 대선을 앞두고 발생한 총풍사건을 기억할 것이다. 총풍사건은 이회창 후보의 대선승리를 위해 청와대 행정관 3명이 북한 고위층과 접촉해 휴전선 인근에서 무력시위를 해달라고 요청했던 전설적인 정치공작사건이었다. 국무총리실과 안전행정부가 정부지원금을 대북전단을 살포한 보수단체들에 지원해온 것은 그 내용만 다를 뿐 본질은 매우 흡사하다. 북한과의 대치상황을 활용해 정치적 목적을 얻어내는 수법은 예나 지금이나 전혀 변하지 않았다. 총풍사건이 대선승리를 목적으로 자행되었다면, 정부가 이번에 대북전단을 살포한 보수단체를 지원한 것은 세월호 참사, 전시작전권 연기, 서민증세, 사이버 감시 파문 등 연이어 발생하는 논란을 이념논쟁을 통해 물타기하려는 측면이 강하다. 국민의 생명권과 재산권이 심각하게 위협받고 있는 상황에서도, 정부가 다른 부분에서는 엄격하게 적용하던 '표현의 자유'를 거론하며 사실상 대북전단 살포를 수수방관하고 있었던 점, 정부의 지원금이 논란을 야기시킨 보수단체들로 흘러 들어간 점, 정부가 지원금의 전용여부를 전혀 확인하지 않았던 점 등 들어나는 여러 정황들이 이같은 합리적 의심을 더욱 공고하게 만든다. 


옛말에 '아니 땐 굴뚝에 연기 나랴'라고 했다. 박근혜 정부가 들어선 지 채 2년도 지나지 않은 시점, 곳곳에서 피워나는 연기 속에 대한민국이 점점 한치 앞을 내다보기 힘든 시계제로의 상황으로 치닫고 있다. . 총풍사건 이후 십수년이 지났지만 달라진 것은 없다. 결국 피해를 보는 것은 언제나 선량한 국민들이다.



이미지 출처 : 구글 이미지 검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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