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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반일감정 역린 건드린 한국당, 지지율 폭락에 비상

"나경원 의원님 나흘째입니다. 진도가 나가지 않습니다. 병목을 풀어주십시오."

 

'세비반납 릴레이 버스킹'을 제안한 민병두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다음 주자로 나경원 자유한국당 원내대표를 지목했다. 민 의원은 22일 페이스북에 "사상 최악의 장기 국회 파행으로 인한 민생입법 지연, 추경무산위기를 보면서 국민들에게 송구한 마음에서 (버스킹을) 시작했다"며 나 원내대표의 동참을 촉구했다.

 

앞서 19일 민 의원은 국회 장기 파행에 따른 책임을 지는 의미로 윤상원 열사 기념사업회에 1000만원의 세비를 기부한 바 있다.

 

민 의원이 사상 초유의 '세비반납 릴레이 버스킹'을 시작한 이유는 글의 행간에 고스란히 묻어난다. 5월에 이어 6월 국회 역시 빈 손으로 끝이 나자 책임을 통감하며 정치권의 각성을 촉구한 것이다.

 

민 의원은 "여야 교차하는 방식으로 릴레이를 진행하는데 한명을 지명하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며 "버스킹은 6월 국회 무선에 따른 책임을 지는 행위이기 때문에 7월 국회 성과와 관계없이 진행하는 것으로 한다"고 밝혔다.

 

ⓒ 오마이뉴스

 

당연한 얘기지만, 국회 파행은 정치권 모두의 책임이다. 민 의원이 버스킹을 제안하면서 여야 정치인이 번갈아가면서 한 명씩 지명하는 방식을 선택한 이유일 터다. 7월 국회와 상관없이 버스킹을 이어가자고 한 것도 비슷한 맥락으로 보인다. 국회의원으로서의 양심과 책임에 대한 근본적인 문제 제기인 것이다.

 

주지한 것처럼 국회가 장기간 문을 열지 못하면서 처리해야 할 현안이 산더미처럼 쌓여가고 있다. 그 중 3개월이 다되도록 묶여있는 추가경정예산안과 일본의 수출규제 철회 촉구 결의안 등은 처리가 시급하다는 것이 중론이다. 경제와 민생, 외교에 직결되는 사안이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는 현재 경제와 외교 등 많은 부분에서 어려움에 직면해 있다. 이럴수록 정치권은 머리를 맞대고 지혜를 모아야 한다. 초당적으로 힘을 합쳐 위기를 벗어나기 위한 해법을 강구해야 한다. 민 의원이 버스킹을 제안한 것도 그와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다음 주자로 지목된 나 원내대표는 버스킹을 이어갈 마음이 없는 듯 보인다. 4일이 지났지만 '묵묵부답'인 데다가 국회 공전의 책임을 정부·여당에 돌리며 공세를 이어가고 있기 때문이다. 나 원내대표는 특히 일본의 경제보복과 관련해 정부·여당이 반일감정을 자극해 정치 갈등과 국론 분열을 부추기고 있다고 각을 세우고 있다.

 

22일 최고위원회의에서 나온 나 원내대표의 발언 중 일부를 소개한다.

 

"이 정부는 무능과 무책임을 일본 팔이로 덮으려 하고 있다. 저성장에 오랫동안 신음했던 일본과 같이 대한민국 경제 현실을 일본화 하고 있는 이 정부야말로 신친일파가 아닌가 묻고 싶다."

 

"여당이 안보 파탄, 군 기강 해이에 대한 국방부 장관 해임 건의안 표결도 못 하겠다, 북한 선박 무단 입항 국정조사도 못 하겠다, 하고 버티고 있다. 추가경정예산이 무조건 도깨비방망이인 것처럼 얘기하지 말고 해야 할 일을 해야 한다."

 

국회 파행의 책임이 오롯이 정부·여당에 있다는 주장이다. 아베 내각이 초래한 한일 무역전쟁과 관련해서도 정부 대응이 잘못됐다며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경제·외교적 위기에 대한 국민적 우려가 높아지고 있는 상황 속에서도 '기승전-문재인 정부 비판' 기조를 그대로 답습하고 있는 것이다.

 

나 원내대표의 주장처럼 장기 국회 파행과 일본이 자행한 경제보복의 책임이 전적으로 정부·여당에게 있는 것일까. 지난 19일 이정미 정의당 의원이 YTN 라디오 '이동형의 뉴스 정면승부'와 했던 인터뷰 내용을 살펴보자.

 

"자유한국당이 17번 국회 보이콧을 선언할 때마다 다 이런 조건이었다. 국정조사 하자, 청문회 하자. 한 번은 채용비리 관련해서 국정조사 하자고 해서 정의당이 하자고 할 때 강원랜드 채용비리 같이 하자고 했더니 또 입 싹 다물었다. 한 마디로 지금 자유한국당은 추경 인질극을 벌이고 있다고 본다. 추경 하나 부여잡고서는 패스트트랙에 대해서도 사과해라, 그다음에 정개특위 위원장 교체해라, 목선 국정조사 해라, 국방부 장관 해임해라, 이렇게 끝없이 조건을 내걸고 자기가 원하는 방향대로 국회가 움직여지지 않으면 우리는 일 안 하겠다는 식의 이런 파업과 태업을 일삼고 있는 것이다."

 

이 의원의 생각은 다르다. 그는 나 원내대표의 주장과는 달리 한국당의 책임이 더 크다고 보고 있다. 요컨대, 한국당이 추경안 처리를 앞세워 국회를 자신들이 유리한 방향으로 이끌어가려 한다는 얘기다.

 

이 의원은 일본의 경제 보복과 관련해서도 나 원내대표와 결을 달리 했다. 그는 "일본이 기본적으로 외교 문제를 무역 문제로 끌고 가는 정말 전례 없는 결정을 했다"며 "한 마디로 동북아시아에서의 안보 파트너로써 대한민국을 여기지 않는다고 하는 그런 신호를 먼저 준 것"이라고 꼬집었다. 한일 무역전쟁을 촉발시킨 당사자가 아베 정권임을 분명히 한 것이다.

 

이 의원의 지적은 나 원내대표의 주장과 정면으로 충돌한다. 국회 공전과 일본 경제보복의 일차적 책임이 각각 '한국당'과 '아베 정권'에 있다고 보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여론은 어떨까. 여론 역시 나 원내대표의 주장을 무색하게 만든다. 패스트트랙 국면 이후 계속되고 있는 국회 파행에 대해 각종 여론조사 결과를 살펴보면, 한국당의 책임이 더 크다는 응답이 훨씬 높게 나타나고 있다.

 

ⓒ 오마이뉴스

 

지난 6월 27일에는 전국 570여개 시민사회단체로 구성된 정치개혁공동행동과 시민사회단체연대회의가 서울 광화문 세종문화회관 앞에서 선거제·국회개혁 단행, 일하지 않는 국회의원 수당 반납, 국민소환제 도입 위한 범국민적 논의 등을 요구하는 기자회견을 열기도 했다.

 

이들은 "사태가 이 지경에 이른 책임은 무엇보다 자유한국당에 있다"며 "현행 선거제도로 누리던 부당 이득을 내려놓기 싫어 선거제도 개혁 요구를 끝끝내 외면하더니 이제는 자신의 정치적 잇속을 챙기느라 정상적인 국회 운영까지 훼방을 놓고 있다"고 한국당을 맹비난했다.

 

리얼미터가 YTN 의뢰로 지난 15일부터 19일까지 전국 19세 이상 유권자 2505명을 대상으로 조사해 22일 발표한 여론조사(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서 ±2.5%p) 결과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조사 결과에 따르면, 문재인 대통령의 국정수행 지지율은 지난 주보다 4.0%p 오른 51.8%를 기록해 한 주만에 50%대를 회복한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눈여겨봐야 할 대목은 정당 지지율이다. 민주당은 지난주보다 3.6%p 올라 42.2%로 반등한 반면 한국당은 전주 대비 3.2%p 내린 27.1%를 기록했다. (자세한 사항은 리얼미터나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

 

이번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한국당 지지율은 황교안 대표 체제 출범 이전이던 지난 2월 3주차(26.8%) 수준으로 되돌아간 것으로 보인다. 연일 정부·여당과 대립각을 세우며 공세의 수위를 높이고 있지만 되레 여론은 한국당에 그다지 우호적이지 않은 것으로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리얼미터는 문 대통령과 민주당의 지지율 상승 이유로 △일본의 경제보복에 대항한 일본제품 불매운동 등 반일(反日) 여론 확산, △정부의 단호한 대(對)일 대응 기조, △조선·중앙의 일본어판 기사와 일본 후지TV의 ‘문재인 대통령 탄핵’ 주장에 대한 비판 여론 확산 등을 꼽았다.

 

일본의 경제보복과 관련해 정부·여당의 대응 기조를 성토하고 있는 한국당의 행태가 외려 역풍을 초래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외교 관례를 허무는 아베 정권의 비이성적 경제 보복을 정부 책임으로 몰아가는 한국당의 주장이 힘을 얻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한국당의 지지율 하락은 이같은 여론이 반영된 결과로 보인다. 정부 때리기에 급급한 나머지 건드려서는 안 될 '역린'을 건드린 셈이다. 아무리 정부·여당이 밉다 해도 이번 사태의 원인 제공자인 아베 내각을 편드는 것은 시쳇말로 나가도 너무 나갔다. 사실 관계부터 전혀 맞지 않을 뿐더러 국민정서와도 크게 상충되기 때문이다.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끝없이 되풀이되고 있는 한국당의 몽니 역시 지지율 하락의 한 요인이라는 지적이다. 앞서 이 의원이 꼬집은 것처럼 '자기가 원하는 방향대로 국회가 움직여지지 않으면 일 안 하겠다는 식의 파업과 태업'이 계속되면서 한국당에 대한 국민적 피로감이 쌓여가고 있다. 국회의 책무를 망각한 듯 습관적으로 보이콧을 남발하고 있는 한국당을 향해 비판적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는 것이다.

 

2.27 전당대회 이후 한국당은 급속하게 우경화되고 있다. 그 영향 탓일까. 최근 한국당은 망언과 구설이 잇따르며 공분을 사고 있다. 황 대표 취임 이후 상승곡선을 그리던 당 지지율이 다시 하락하게 된 실질적인 이유일 터다. 정부 정책에 대한 맹목적인 반대, 퇴행적인 역사인식, 시대착오적인 이념 공세가 계속되자 합리적 보수층와 중도층이 떨어져나가고 있는 것이다.

 

"황교안 대표가 최근에 아주 잘했다고 칭찬한 게, 일본 문제는 초당적으로 협력하겠다. 그리고 두 번째로 청와대 회동에 구애됨 없이 하겠다. 했잖아요. 그리고 그 자리에서 일본 문제는 초당적으로 협력한다, 하고 나왔으면요. 그렇게 협력해 주면 또 경제 문제에 대해서 문재인 대통령, 정부가 잘못하고 있다. 하지만 우리가 약 7조의 추경을 해줄 테니까 한번 잘해봐라, 했으면 국민들이 굉장히 박수를 보낼 거예요. 자기가 얘기한 것, 청와대 갔다 와서도 똑같은 그런 반복을 하면 국민이 누구를 믿겠어요?"

 

22일 KBS 1TV '사사건건'에 출연했던 박지원 민주평화당 의원의 발언 중 일부다. 한국당이 뼛속 깊이 새겨들어야 할 고언일지도 모른다. 대안은 제시하지 않은 채 기존의 관성대로 '기승전-문재인 정부 반대'기조만 고수해서는 등 돌린 중도층의 마음을 되돌리기 어렵기 때문이다. 한국당은 전략적 변화를 모색해야 한다. 사회공동체의 보편적 인식과 맞서서는 절대로 폭넓은 지지를 받을 수 없다. 그것이 '상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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