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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반기문의 불출마가 문재인의 위기일 수 있는 이유

ⓒ 오마이뉴스


2월의 첫날 정치권은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의 대선 불출마 선언으로 크게 요동쳤다. 그동안 지지율 하락과 각종 구설에도 불구하고 반 전 총장 측은 "중도 포기는 있을 수 없다", "내기라도 하면 좋겠다"며 끝까지 완주하겠다는 강한 의지를 피력해온 터였다.

그러나 1일 오후 3시30분 국회 정론관에 모습을 드러낸 반 전 총장은 뜻밖에도 "정치교체를 이루고 국가통합을 이루려던 순수한 뜻을 접겠다"며 출마 포기를 선언해 버렸다. 20여일간의 짧았던 대선행보에 마침표가 찍히는 순간이었다.

반 전 총장의 전격적인 대선 불출마 선언으로 정치권의 셈법은 대단히 복잡해졌다. 당장 반 전 총장과 제3지대를 묶어 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에 맞서자는 이른바 '빅 텐트론'은 급격히 힘이 빠질 것으로 보인다.

애초 '빅 텐트론'이 무당층과 중도 보수세력을 한 데 묶는 정치공학적 이벤트의 성격이 강했던 데다, 그 구심점이었던 반 전 총장이 출마를 포기함으로써 흐지부지될 가능성이 커진 것이다.

잠재적 여권 후보로 분류되던 반 전 총장이 전열에서 이탈함에 따라 새누리당과 바른정당 역시 커다란 타격을 입게됐다. 두 정당 모두 반 전 총장의 영입에 상당힌 공을 들여왔던 터였다.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의 후폭풍에 풍비박산이 난 새누리당이나, 창당 이후 지지율 정체에 빠져있는 바른정당이나 반 전 총장 영입을 통해 반등을 도모하려는 같은 꿈을 꾸고 있었다. 그러나 반 전 총장의 불출마 선언으로 두 당의 바람은 '일장춘몽'으로 끝이 나게 됐다. 

명색이 집권 여당인 새누리당은 최악의 경우 대선 후보조차 내지 못하는 '불임 정당'이 될 처지로 전락했고, 바른정당 역시 반 전 총장 영입으로 세를 불리고, '유승민·남경필' 두 사람에 불과한 대선 경선에 바람을 불어넣겠다는 계획이 물거품이 됐다.

새누리당이 황교안 대통령 권한 대행 카드를 만지작거리는 것이나, 바른정당 일각에서 대선 불출마를 선언한 김무성 의원의 이름이 거론되는 것 모두 두 당이 처해있는 곤궁한 상황과 무관치 않다. 반 전 총장의 대선 불출마가 가뜩이나 약세로 점쳐지는 여권을 더욱 힘빠지게 만드는 '악재'가 된 것이다.

그렇다고 반 전 총장의 불출마가 야권에게 '호재'라고 속단하기도 어렵다. 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독주가 이어지고 있는 야권의 정치적 불확실성은 그로 인해 외려 커진 모양새다. 황 권한대행 외에는 뚜렷한 여권 후보가 없는 상황에서 야권 주자들의 내부 경쟁은 더욱 격화될 것이고, 그와 함께 대립과 갈등 역시 첨예화될 것이기 때문이다. 


특히 안철수 전 국민의당 대표와 문 전 대표 사이의 외나무 다리 혈투는 피할 수 없게 될 전망이다. 이는 반 전 총장의 대선 불출마가 대세론을 타고 있는 문 전 대표에게는 오히려 '독'이 될 수도 있다는 의미다.

반 전 총장의 합류를 전제로 논의됐던 '빅 텐트론'이 흐지부지된다고 해서 '반 문재인' 구도까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반 전 총장의 퇴장을 기화로 정치권, 그 중에서도 야권의 '반 문재인 정서'는 더욱 거세게 몰아칠 개연성이 높아졌다.



ⓒ 오마이뉴스


그리고 그 중심에 바로 안 전 대표가 있다. 반 전 총장의 대선 불출마로 반사이득을 가장 많이 보는 사람이 바로 안 전 대표다. 애시당초 '친박'과 '친문'에 반대하는 중도 보수세력을 하나로 묶어 그들에 대항하자는 것이 '제3지대론'이었다. 그리고 이것이 개헌과 결합된 것이 '빅 텐트론'이다.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로 '친박'이 사실상 와해된 상황에서 제3지대 측의 표적은 '친문'으로 집중되게 되어 있다. 그리고 반 전 총장이 불출마를 선언한 이상 제3지대의 중심축은 안 전 대표에게 쏠릴 수 밖에 없다. 안 전 대표는 지난해부터 '제3지대론'을 강력하게 주장해왔던 인사이며, 문 전 대표의 가장 유력한 대항마이기 때문이다. 야권 내 '반 문재인연대'의 중심으로 자연스럽게 안 전 대표가 부상할 수밖에 없는 상황인 것이다.

문 전 대표를 향한 안 전 대표의 앙금은 봉합이 불가능한 수준이라는 것이 지배적이다. 지난 대선부터 시작된 두 사람의 불화는 새정치민주연합의 분당 사태를 거쳐 현재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지난달 31일에도 안 전 대표는 문 전 대표가 발간한 대담집 내용을 두고 불편한 속내를 내비치기도 했다.

국민의당 내부의 반 문재인 정서 역시 "너무 극좌적이어서 확장성이 없다(박지원 대표)", "정권교체를 못해도 친문과는 손을 못 잡는다(주승용 원내대표)"의 인식에서 드러나듯 극한으로 치닫고 있는 양상이다. 제3지대의 잠재적 경쟁자였던 반 전 총장이 사라진 이상 문 전 대표를 향한 안 전 대표와 국민의당의 공세는 한층 거세질 것은 불을 보듯 뻔한 상황이다.

여기에 최근 "순교하겠다"는 의미심장한 발언을 했던 김종인 전 민주당 대표와 조만간 국민의당에 합류할 것으로 보이는 손학규 국민주권개혁회의 의장 등도 개헌을 고리로 '반 문재인연대'에 앞장설 것으로 보인다. 대선 후보 지지율 부동의 1위를 달리고 있는 문 전 대표가 어느새 야권의 '공공의 적'이 돼버린 것이다.


야권의 불협화음은 정권교체의 가능성을 갉아먹는 최대의 불안요소다. 이는 지난 대선의 지난했던 단일화 과정이 여실히 입증한다. 문제는 야권 내에 만연해 있는 '반 문재인 정서'다. 반 전 총장의 불출마는 야권의 '반 문재인 정서'를 증폭시키는 기폭제나 다름이 없다. 이는 결국 야권의 정치적 불확실성을 높이는 악재로 작용할 수밖에 없다. 정치는 생물이다. 야권의 우세가 끝까지 지속된다는 보장은 그 어디에도 없다. 


이는 문 전 대표에도 마찬가지다. 야권의 대선 주도권 경쟁의 화살이 다름 아닌 문 전 대표에게 집중될 것이기 때문이다. 반 전 총장의 대선 불출마가 문 전 대표의 위기의 시작이 될 수도 있다는 뜻이다. 관건은 '반 문재인연합'의 거침없는 공세에 문 전 대표가 어떻게 대응할 것인지에 달려있다. 섯부른 대세론에 안주하다 보면 위기는 현실이 될 수도 있다. 문 전 대표의 냉철하고 이성적인 현실 인식이 그 어느 때보다 필요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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