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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박근혜로 살펴보는 차기 대통령의 조건

ⓒ 오마이뉴스


미 대선에서 트럼프가 당선됐다. 지인들의 입에서 연신 'Oh my god'이 튀어 나온다. 세계는 지금 집단 패닉에 빠졌다. 모두들 설마했을 것이다. 그러나 미국 시민들은 '미치광이' 소리까지 들었던 트럼프를 자신들의 미래를 짊어질 지도자로 선택했다. 그들의 선택을 존중한다. 오바마 대통령의 말처럼 그래도, 내일의 태양은 뜨는 법이므로. 그러나 그에 대한 책임은 오롯이 시민들의 몫이다. 지금 우리가 생생히 경험하고 있는 것처럼.

미 대선 결과가 남의 일 같지 않은 것은 학습효과 때문일 것이다. 잘못된 선택의 대가는 혹독하고 처절하다. 각계각층에서 시국선언이 봇물터지듯 터져나오고 수많은 시민들이 거리와 광장에서 유린된 민주주의와 헌법질서를 회복시켜야 한다고 외치고 있다. 거센 분노의 물결이다. 진보와 보수, 지역과 세대를 막론하고 이렇게 한 목소리로 시민들이 분노했던 적이 있었던가. 아마 '4·19'와 '6월 항쟁'이 그랬을 터다. 변화를 갈망하는 시민들의 역동성이 시대를 바꾸는 초석이다.

조심스레 조기 대선 이야기가 나온다. 대통령의 퇴진을 염두해 둔 발언이리라. 조기 대선이 아니더라도 1년 뒤면 차기 대선이다. 내년 봄 여야의 대권후보들이 대선출마 선언을 하면 대선후보 경선을 통해 본격적인 대선 경쟁이 펼쳐질 것이다. 불과 6개월 뒤면 대선 정국이 형성된다는 뜻이다. 차기 지도자를 선출해야 할 시점이 그리 멀지 않았다. 지도자가 갖추어야 할 덕목은 무엇일까 생각해본다. 다행히(?) 현 대통령은 그에 대한 더할 나위없이 좋은 반면교사다. 

먼저 헌법과 민주주의에 대한 확고한 신념이 있어야 한다. 적어도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헌법 제1조 1항과 2항 정도는 숙지하고 이를 체화할 수 있는 인물이어야 한다. 국민이 위임한 권력을 누군가에게 양도하는 사람은 대통령으로서의 자격이 없다. 현 대통령은 대의민주주의체제의 핵심 원리를 부정했다. 주권자인 국민은 현 대통령에게 권력을 위임한 것이지 최순실 일당에게 위임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현 대통령이 민주주의를 훼손하고 유린한 사례들은 일일히 열거하기가 벅차다. 표현의 자유와 집회의 자유 등 국민의 기본권이 크게 억눌리고 정치적 자유가 흔들린다. 언론자유 역시 갈수록 곤두박질치고 있고, 인권은 아시아의 모범국에서 인권후진국으로 추락했다. 삼권분립의 대원칙은 유명무실해졌고, 공안통치와 권위주의가 부활했다. 하루 아침에 정당이 해산되고 대통령을 풍자했다는 이유로 아티스트가 기소된다. 이 모두 현 대통령의 민주주의에 대한 몰이해가 초래한 비극이다. 차기 지도자는 헌법과 민주주의를 이해하는 대통령이 되어야 한다.

국정원과 군 사이버사령부 등 국가기관의 도움을 받지 않는 지도자가 선출되어야 한다. 지난 대선은 축제가 되어야 할 선거가 만신창이가 된 선거였다. 복수의 국가기관이 대선에 불법개입했고, 그로 인해 국민의 참정권이 훼손되고 법치가 유린됐다. 현 대통령은 경찰과 검찰, 언론의 협조 덕에 절체절명의 위기에서 벗어났지만 그 결과는 비참했다.

지난 대선은 부정선거라도 성공만 하면 책임을 물을 수 없다는 나쁜 전례를 남겼기 때문이다. 기실 지난 대선이 국가기관이 불법개입한 부정관건선거였다는 증거는 차고도 넘친다. 그러나 현 대통령은 사건수사를 담당했던 검찰총장을 내치고 수사팀을 와해시키면서까지 사건을 무마시켰다. 정권에 대한 공정성·정당성 시비가 아직까지 사그라들지 않는 이유다. 정통성 논란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라도 차기 지도자는 정정당당한 인물이 선출되어야 한다.


ⓒ 오마이뉴스


가치관과 철학도 대단히 중요하다. 철학이 빈곤하면 복잡하고 첨예하게 얽혀있는 사안들에 대한 인지능력과 공감능력이 현저히 떨어진다. 대표적인 예가 현 대통령이 오바마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에서 보여준 낯뜨거운 장면이다. 기자의 질문 내용을 기억하지 못해 허둥대는 모습은 한 국가를 대표하는 지도자의 모습과는 거리가 멀다. 새누리당 김무성 전 대표는 "대통령은 보좌관이 써준대로만 읽는다"고 고백한 바 있다. 가치관과 철학이 없는 지도자는 국가와 국민을 불행하게 만든다는 사실을 잊지말아야 한다.

역사관도 빼놓을 수 없다. 현 대통령은 당선되기 전부터 역사관 논란에 시달렸다. 심지어 인혁당 사건에 대한 대법원의 판결마저 무시하는 초법적인 역사인식으로 우려를 자아냈다. 급기야 현 대통령은 다수 국민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국정교과서라는 퇴행적인 흉물을 부활시키기에 이른다. 헌법은 물론 대한민국의 독립사마저 부정하는 대통령의 역사인식이 미래세대들의 '혼'을 비정상으로 만들 것은 자명한 일. 차기 대통령은 반드시 합리적 역사관을 갖춘 사람이 되어야 한다.

대통령의 언어구사능력도 중요하다. 혹 '그깟 말이 뭐가 대수인가'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면 현 대통령의 언어 사용을 유심히 살펴볼 필요가 있다. 너무 사례가 많은 탓에 부득이 한 가지만 옮겨 보겠다. 다음은 2015년 5월 12일 청와대 국무회의 발언의 일부다.

"우리의 핵심 목표는 올해 달성해야 할 것이 이것이다 하고 정신을 차리고 나아가면 우리의 에너지를 분산시키는 것을 해낼 수 있다는 그런 마음을 가지셔야 한다"

이는 오타가 아니다. 안타깝게도 현 대통령의 언어를 완벽히 이해하려면 번역기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 이해할 수 없는 언어를 구사하는 것은 그 사람의 사고가 이해할 수 없는 것들로 가득차 있기 때문이다. 만약 당신이 현장에 있었다고 가정해 보라. 머리에 쥐가 났을 지도 모른다. 대통령의 언어는 간결하고 핵심적이며 명확해야 한다. 이는 전달하려는 내용을 분명히 숙지하고 있을 때에라야 가능한 일이다. 원활한 국정운영을 위해서라도, 국민과의 소통을 위해서라도 차기 지도자의 언어구사능력은 필수다.


어디 이뿐인가. 유체이탈의 전력이 있는지, 말바꾸기 이력이 있는지도 따져 물어야 하며 도덕성, 공정성, 책임감, 통찰력, 추진력, 소통능력, 공감능력 등도 면밀히 살펴야 한다. 이처럼 대통령이 갖추어야 할 덕목은 부지기수다. 과연 현 대통령에게서 이것들 중 무엇을 발견할 수 있는지 지극히 의문이다. 대통령은 권력의 정점에 서 있는 인물이다. 대통령 한 사람으로 인해 국가 시스템이 휘청거릴 수 있을 정도의 막강한 권력을 지닌 것이다. 


국민은 대통령에게 '백마 타는 초인'의 능력을 기대하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적어도 그가 합리와 상식을 바탕으로 한 정치를 해 주기를 기대한다. 이제 1년 뒤면 대선이다. 최소한 '내가 이 꼴 보려고 대통령을 뽑았나'라는 자괴감이 들지 않으려면 신중하고 냉정하게 선택해야 한다. 후회는 두 번이면 족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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