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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박 대통령은 군 특식의 내용물을 알고 있었을까?

박근혜 대통령이 추석 연휴를 맞아 부사관 이하 모든 국군 장병에게 '하사'한 특별간식이 장안의 화제를 불러 모으고 있다. 청와대는 지난 20일 청와대 누리집에 "박근혜 대통령은 다가오는 추석을 맞이하여 부사관 이하의 모든 국군장병들에게 격려카드와 특별간식을 하사할 예정"이라는 내용의 공지를 띄운 바 있다.

그런데 청와대는 이 공지에서 중세 봉건주의 국가에서나 사용될 만한 '하사'라는 어휘를 사용해 여론의 뭇매를 맞았다. '하사'라는 어휘는 원래 임금이 신하에게 물건을 내려줄 때 사용하는 권위주의적 표현으로 민주주의 국가에 어울리는 표현이 아니다. 절대왕정에 버금가는 강력한 통치체제를 구축했던 군사독재시절에 사용됐던 이 표현으로 박 대통령과 청와대는 여론의 따가운 눈총을 받아야만 했다.

받는 사람이 주는 사람의 성의에 감사를 표하면서 '하사품'이라고 높여 부르는 경우는 있어도, 주는 사람이 대놓고 직접 '하사'라고 표현하는 경우는 어지간해서는 찾아볼 수 없기 때문이다. 이는 국민을 위에서 내려다 보는 청와대의 낡은 관성과 권의주의를 향한 본능이 만들어 낸 눈꼴시린 장면이 아닐 수 없었다.





그런데 청와대가 기획한 시대에 동떨어진 촌극으로 일단락되는가 싶던 이번 논란이 이번에는 부실하기 짝이 없는 특별간식의 내용물로 인해 재조명받고 있다. 박 대통령의 '하사품'을 받은 한 장병이 자신이 받은 특식의 내용물을 공개하자 온라인이 뜨겁게 달아오르고 있는 것이다.

언론 보도에 따르면 이 장병은 25일 오전 전달받은 특식은 "멸치스낵 10g, 밥에 뿌려먹는 김가루스낵 30g, 5백원 동전 크기의 약과 10개가 한  상자에 담겨 있다"며 세 종류가 담겨 있는 특식을 "장병 4명이 나눠먹게 되어 있다"고 설명했다. 제보자의 설명대로라면 장병 1인당 멸치스낵 2.5g, 김가루 7.5g, 5백원 동전 크기의 약과 2.5개가 추석 맞이 대통령 특식의 전부라는 얘기다.

코미디도 이런 코미디가 따로 없다. 대통령이 '하사'한 것이라며 청와대가 거창하게 홍보한 대통령 특식이 고작 이 정도 수준이라니 말문이 막힐 지경이다. 허탈함이 쓰나미처럼 밀려들 뿐만 아니라, 언론이 대통령의 '하사' 특식을 대서특필했던 것을 생각하면 분노마저 치민다. 관련 예산의 25% 이상을 격려 카드 인쇄비에 사용한 내용은 쏙 빼놓고, 갖은 생색과 자랑질에 여념이 없었던 청와대와 언론의 행태는 이제보니 역겨움 그 자체였다.






간과 쓸개마저 내어줄 듯이 연일 박비어천가를 불러대는 대한민국에서는 언론에 의한 사실의 가공과 윤색, 뻥튀기가 이처럼 보편화되고 일상이 된다. 2.5g의 멸치가 죽방멸치로, 7.5g의 김가루스낵이 최상급 돌김으로, 500원 동전 크기의 약과 2.5개가 최고급 한과로 둔갑된다 해도 전혀 이상하지 않은 세상이 된 것이다. 그런데 이번에는 해도 너무했고, 티가 나도 너무 났다. 장병 한 명당 1554원이 책정된 특식비용을 감안해도 그 내용물이 너무 빈약하기 때문이다.

혹자는 1만원짜리 USB 95만원에 구입하는 대한민국 국방부를 생각하면 6200원의 비용으로 저만한 특식을 마련한 것이 어디냐고  말할 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이것은 어디까지나 먹는 것과 관련된 문제다. 굳이 먹는 것 가지고 장난치지 말하는 희대의 '명언'을 거론하지 않더라도, 그리고 아무리 천정부지로 치솟은 살인 물가를 감안하더라도 이는 묵과할 수 없는 작태다.

필자는 자신이 하사한 특식의 내용물을 박 대통령이 인지하고 있었는 지의 여부가 가장 의문이다. 알고 있었다면 그녀가 국군장병 전체를 조롱한 것이고, 모르고 있었다면 군 시스템에 대해 완전히 무지하다는 결론에 이른다. 물론 당연히 후자일 가능성이 높지만 여성 대통령과 정부 고위직의 상당수가 군미필인 현실에서 이같은 촌극은 어쩌면 당연한 귀결일 지도 모른다.

군에 다녀온 사람들은 안다. 군 사기 진작을 명목으로 청와대와 박 대통령이 준비한 대통령 특식이 얼마나 무의미한 것인지를, 군의 사기를 진작하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는 탄식과 한숨, 공허한 허탈감만 유발시킨다는 사실을 그들은 경험으로 알고 있다.

군의 사기를 진작시키기 위해서 정작 필요한 것은 군의 썩은 비리와 부정을 들추어 바로 잡는 일이다. 끊임없이 발생하는 군 내부의 구타와 가혹행위를 없애는 일이며, 방산비리, 군납비리, 군 지휘관의 성추문 등을 야기시키는 군 특유의 폐쇄적권위적 조직문화를 근본적으로 바꾸는 일이다.

그런데 이러한 막중한 과제를 안고 있는 박근혜 대통령부터가 군에 대해 아는 것이 거의 없다. 그녀를 보좌해야 할 정부 요직은 군 미필자들로 넘쳐나고, 군 출신 고위 관료들은 정치군인들이 차지하고 있다. 문제가 발생할 때마다 대통령과 정부가 군 개혁과 혁신을 외치지만 실제로 달라지는 것은 전혀 없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국군장병의 사기를 고무시키고, 애국심을 고양시키고 싶은가? 방법은 아주 간단하다. 지금까지 박 대통령이 해왔던 반대대로만 하면 된다. 정부 요직을 부정 비리없는 군필자로만 채워라. 정치군인을 멀리하고, 남북평화 진작을 위해 노력해라. 군 내 부정 비리 척결을 위한 특단의 조치를 마련하라. 그리고 가급적 군시찰 다니지 마라.

어떤가? 정말 쉽지 않은가? 어디 이렇게만 해 보라. 군의 사기는 저절로 올라갈 것이며, 우리 군은 애국심과 충성심이 흘러 넘치는 일당백의 강력한 군대로 거듭 나게 될 것이다.

이번 논란으로 군의 사기가 떨어지는 소리가 천둥소리보다 크게 들린다이번 특식 논란은 박 대통령과 청와대, 군 수뇌부가 군 장병의 현실과는 얼마나 동떨어져 있는지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씁쓸하기 그지없는 한심한 풍경이다.




이미지 출처 : 구글 이미지 검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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