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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바보야, 문제는 조국이 아니야

ⓒ 한겨레

 

조국 법무부 장관 일가를 둘러싼 논란이 한창인 가운데, 심상정 정의당 대표가 24일 의미있는 제안을 내놨다. 국회의원과 고위공직자 자녀의 입시 비리를 국회 차원에서 전수조사하자고 밝힌 것.

조 장관 자녀의 입시 특혜 논란을 계기로 고위 공직자 자녀들의 입시 비리 의혹들도 함께 조사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분출되고 있는 상황에서 심 대표의 제안이 어떤 파장을 불러일으킬지 주목된다.

심 대표는 이날 국회에서 열린 의원총회에서 "조국 법무부 장관 자녀의 학업 논란을 통해 기득권의 대물림에 있어 보수와 진보 모두 자유롭지 못하다는 것이 확인됐다"며 "전수조사를 위한 국회 차원의 현실적 방안을 제안한다"고 밝혔다.

심 대표는 특히 "특권교육의 문제는 진보·보수의 문제가 아니라 기득권의 특권 카르텔을 청산해야 하는 문제"라며 "이제 정치권과 고위공직자의 구습과 특권적 관행을 넘어서기 위해 정치권부터, 국회부터 특권 교육 청산을 요구하는 국민의 응답에 응답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심 대표의 지적처럼 현재 조 장관 자녀가 받고있는 입시 특혜 의혹은 어느 한 개인에게 국한된 문제가 아니다. 현행 대입제도의 헛점을 파고든 특권층의 반칙과 편법, 관행이 조 장관 자녀의 케이스를 통해 수면 위로 드러난 것에 불과하다는 뜻이다.

개인의 특기와 장점을 입시에 반영하겠다는 취지로 도입된 학생부종합전형을 두고 그간 뒷말이 많았던 것이 사실이다. 대학마다 전형 방법이 제각각인 데다가, 경제적 능력을 갖춘 부모를 둔 학생에게 절대적으로 유리한 제도라는 지적이 끊이질 않았다. 요컨대 특권층 자녀를 위한 맞춤형 대입 입시 수단이라는 비판이다.

구체적으로 드러나지 않았을 뿐, 현행 입시제도를 활용한 특권층의 특혜 사례가 상당히 많을 것으로 추정되는 이유다. (숱한 화제를 낳았던 드라마 '스카이캐슬'을 떠올려 보라).

멀리 갈 것도 없다. 조 장관 자녀 입시 특혜 의혹에 맹공을 펼치고 있는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와 나경원 원내대표 역시 자녀의 입시 특혜 문제로 구설에 오르고 있다. 본인들은 극구 부인하고 있지만 세간의 시선은 아주 따갑다.

황 대표 자녀들은 지난 2011년 '장애우와 함께하는 청소년 모임' 활동으로 보건복지부 장관상을 수상했다. 장애인과 비장애인 청소년을 연결해주는 '친구 맺기' 사이트를 개설해 활동한 것이 좋은 평가를 받은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특혜 의혹을 제기하는 측은 사이트를 정식 오픈한지 4개월 만에 장관상을 수상한 것을 문제 삼고 있다. 일각에서는 장관상 수상이 황 대표 아들의 연세대 법학과 진학에 영향을 주었을 것이라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나 원내대표의 자녀 역시 비슷한 의혹에 휩싸였다. 나 원내대표 아들은 고등학교 시절 서울대 의대 윤모 교수 연구실에서 인턴 자격으로 연구에 참여했고, 이를 바탕으로 의공학 포스터에 제1저자로 이름을 올려 특혜 의혹을 받고 있다.

이 과정에서 나경원 원내대표가 대학동기인 윤 교수에게 자신의 아들이 연구실 인턴으로 일할 수 있도록 부탁했다는 사실이 드러나 의혹은 더욱 증폭됐다.

나 원내대표의 딸도 부정입학 의혹을 받고 있다. 성신여대 현대실용음악학과 특수교육대상자 전형으로 입학하는 과정에서 특혜를 받았다는 내용이다. 관련 의혹은 지난 2016년 <뉴스타파>에 의해 보도된 바 있다.

조국 이슈에 가려졌지만 이정옥 여성가족부 장관도 인사청문회 당시 자녀의 대입 입시 문제로 야당의 공세를 받았다. 이 장관 딸이 미국에서 고등학교를 다닌 뒤 귀국해 책을 출간하는 과정에서 이른바 '엄마찬스'가 활용됐고, 대학진학 과정에서도 유리하게 작용했다는 의혹이다.

 

ⓒ 서울경제



이처럼 고위공직자 자녀 입시 특혜 문제는 어느 한 사람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 일반적이다. 특권층 사이에 두루 퍼져 있는 관행이라 보는 것이 더 타당하다. 심 대표를 비롯해 이인영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 손학규 바른미래당 대표 등 정치권이 고위공직자 자녀 입시비리 전수조사의 필요성을 앞다퉈 강조하는 배경이다.

그러나 전수조사보다 더 중요한 것은 입법을 통한 제도 개혁이다. 우월적 지위를 이용한 특권층의 특혜 논란을 해소하기 위해서는 공정하고 투명한 시스템과 제도를 만드는 것이 무엇보다 시급하기 때문이다.

심 대표가 이날 제안한 내용의 핵심 역시 (전수조사가 아니라) '제도 개혁 입법을 통한 특권 교육 청산'에 방점이 찍혀있다.

심 대표는 "공직윤리법 개정과 공수처법 개정을 통해 고위공직자 자녀의 입시 및 취업관련 자료의 신고를 의무화하고 공수처가 자녀 입시 및 취업 관련 비리에 대한 상시적인 수시를 담당하도록 한다면 기득권층만의 특권 카르텔이 생길 수 있는 토양을 제거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입법을 통해 고위공직자 자녀의 입시·취업 문제를 감시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자는 주장이다. 전수조사는 특권층 자녀 특혜 의혹의 실상을 드러내는 것에 불과할 뿐 근본적인 해결책이 될 수 없다.

더구나 김기식 전 금융감독원장 사례에서 보듯 전수조사의 실효성 역시 그리 높아 보이지 않는다. 피감기관 지원에 의한 해외출장이 도마 위에 오르자 정치권은 당장이라도 전수조사에 나설 것처럼 바짝 몸을 낮췄다.

그러나 그뿐이었다. 김 전 원장이 여론의 압박을 견디지 못하고 사퇴하자 정치권의 뜨거운 감자였던 전수조사 이슈는 슬그머니 자취를 감췄다. 제도 개혁을 통해 잘못된 관행을 바로잡고 투명한 시스템을 구축하자는 각계의 요구도 빛을 잃었다. 나라가 떠나갈 듯 난리법석을 떨었던 것을 떠올리면 참으로 어이없는 결말이다.

정국의 블랙홀이 돼버린 조국 논란도 그와 다르지 않다. 우리가 사는 세상은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얻을 수 있고, 뜻하는 것은 무엇이든 될 수가 있는' 그런 곳이 아니다. 낭만과 희망을 담은 노랫말과 달리 이 세상은 부모의 능력에 따라 부와 권력, 그리고 계급이 세습된다. 조국 논란은 이 불편한 진실을 드러내 주는 씁쓸한 서사다.

이슈 자체에 함몰돼 버리면 정작 중요한 것을 놓치기 쉽다. 일반 시민은 닿을 수 없는 '이너서클'(권력을 쥐고 있는 핵심층)의 실체가 '조국'에 의해 어렴풋이 드러났을 뿐, 그는 이번 논란의 전부가 아니다. 핵심은 바로 그 너머에 있다.  뜨겁게 분출되고 있는 사회적 에너지를 입법과 제도 개혁으로 확장·발전시켜야 하는 이유일 터다. 그렇게 하지 못한다면 이너서클의 성벽은 점점 더 높아지고 견고해져 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