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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바른미래당의 존립 여부, 유승민 거취에 달렸다

ⓒ 오마이뉴스


오는 13일이면 바른미래당이 창당된지 1년이 된다. 사람으로 치면 돌이 된 셈이니 잔치라도 벌여야 하겠지만 현실은 정반대다. 창당 1년이 다 되도록 지지율은 여전히 한자리수 박스권에 머물고 있다. 창당 주역이자 당의 간판인 안철수 전 공동대표와 유승민 의원은 지방선거 참패 이후 정치 일선에서 한걸음 물러나 있다. 가뜩이나 미미했던 당의 존재감은 더 희미해졌다. 하태경 최고위원이 활발한 방송 활동을 통해 당 홍보대사를 자처하고 있지만 역부족이다. 

바른미래당을 더욱 코너로 몰아넣는 것은 자유한국당을 중심으로 한 야권발 정개개편 움직임이다. 지난 연말 나경원 의원을 신임 원내대표를 선출한 한국당은 '보수통합'에 부쩍 힘을 싣는 모양새다. 정치권 안팎에서는 오는 2월 27일 개최되는 한국당 전당대회를 기점으로 본격적인 야권 재편이 일어날 것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1년 앞으로 다가온 차기 총선이 정개개편을 촉발시키는 강력한 태풍이 될 것이라는 관측이다. 

이와 관련 정두언 전 한나라당 의원은 지난달 1월 23일 tbs라디오 '색다른 시선 배종찬입니다'에 출연해 "바른미래당은 어쨌든 지난 지방선거에서 거의 완패, 거의 그냥 자멸해버렸다"며 "총선에서 별로 희망이 없다"고 단언했다. 총선 전망이 불투명한 이상 바른미래당 내부의 동요와 이탈이 불가피하다고 본 것이다. 정 전 의원은 유승민 의원의 한국당 복당 가능성에 대해서도 "총선에서 살아남으려면 바른미래당 갖고는 도저히 안 된다"며 당장은 아니더라도 결국 합류하게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바른미래당 입장에서는 생각조차 하기 싫은, 암울하고 절망적인 진단이다. 문제는 정 전 의원의 평가가 현실화될 가능성이 점점 높아지고 있다는 것. 실제 바른미래당 내부의 균열은 이미 시작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지난 12월 18일 원내의원으로는 처음으로 이학재 의원이 탈당해 한국당에 복당했다. 같은달 26일 '인재 영입' 1호였던 신용한 전 충북지사 후보가 당을 떠났다. 1월 4일에는 송파을 재보궐선거에 출마했던 박종진 앵커가 탈당을 선언했다. 류성걸 전 의원과 이지현 바른미래연구소 부소장 등 전·현직 당협위원장과 기초의원 등의 탈당 역시 줄을 잇고 있다.

속수무책이다. 손학규 대표를 비롯한 당 지도부의 만류에도 한번 물꼬가 터진 탈당 흐름을 막을 해법이 보이질 않는다. 당 일각에서는 이 의원이 당을 떠날 당시 동반 탈당할 것으로 점쳐졌던 바른정당 출신 의원 일부가 한국당 전당대회 일정에 맞춰 시기를 조율하고 있다는 얘기가 떠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내년 총선 전 바른미래당의 분당이나 해체가 공공연히 거론되고 있는 실정이다. 

거대 기득권 양당의 패권정치를 뛰어넘는 대안정당이 될 것이라는 기대 속에 출범한 바른미래당이 1년여 만에 당의 존립을 걱정해야 하는 처지로 전락한 까닭은 무엇일까. 여러 이유가 있을 것이다. 그러나 무엇보다 정체성과 노선이 다른 두 정당의 합당이 정치공학적 결합으로 비치면서 유권자의 공감을 끌어내지 못했다는 지적이다. 합리적 진보세력(국민의당)과 영남의 개혁적 보수세력(바른정당)이 한 데 모여 한국 정치의 고질적 병폐인 진영논리와 지역주의 극복에 앞장서겠다고 했지만 결과적으로 공염불에 그쳤다는 평가가 나온다. 

바른미래당은 중도보수개혁 정당을 표방했지만 노선과 강령 등을 둘러싸고 두 세력 간의 이견이 표출되는 등 시작부터 삐걱거렸다. 창당 이후에도 당의 정체성과 철학, 이념 등을 놓고 자주 부딪히는 모습을 연출했다. 특히 외교안보 분야에서 ‘국민의당 대 바른정당’, ‘호남 대 비호남’ 사이의 간극은 더욱 도드라졌다. 판문점 국회 비준동의와 관련한 내분은 두 세력 사이의 갈등의 원인이 결국 '정체성'에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 오마이뉴스


리더십 부재 역시 바른미래당이 고전하는 이유 중의 하나다. 안철수 전 대표와 유승민 의원은 이미 리더십에 큰 상처를 입은 상태에서 바른미래당을 창당했다. 안 전 대표는 국민의당의 분당을, 유 의원은 동료 의원들의 한국당 복당을 막지 못했다. 바른미래당 창당 이후에도 두 사람의 리더십은 빛을 발하지 못했다는 것이 중론이다. 창당 과정에서의 불협화음이나 지방선거 당시 공천권과 유 의원 출마 문제를 둘러싼 갈등은 두 사람의 리더십 부재를 떼어놓고는 설명하기 힘든 것들이다. 

인물의 수혈이 없는 것도 문제다. 조직과 세력이 열세인 신생정당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바른미래당은 참신하고 새로운 인물을 영입해 새바람을 불러일으킬 필요가 있었다. 그러나 지방선거를 앞두고 안 전 대표가 인재영입위원장을 맡으며 직접 영입전에 뛰어들었지만 효과는 미미했다. 이후에도 사정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당에 활력을 불러넣어줄 인재 충원이 이뤄지지 않는 가운데, 외려 남은 사람들이 하나 둘 떠나고 있는 실정이다.


이런 상황에서 당의 얼굴이나 다름 없는 안 전 대표와 유 의원은 정중동 행보를 이어가고 있다. 서울시장 선거에서 3위에 그친 안 전 대표는 이후 정치 일선에서 물러나 독일·미국 등지를 오가며 연구 활동에 전념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복귀 시기를 두고 의견이 분분한 가운데 정치 재개가 쉽지 않을 것이라는 관측도 제기된다. 안 전 대표의 트레이드 마크였던 '새 정치'의 동력이 이미 상실된 데다가, 서울시장 선거 낙선으로 정치적 자산을 크게 잃어버렸다는 평가다. 선거 막바지에 이르러 김문수 한국당 후보와 단일화를 시도한 것도 진보와 보수 진영 모두에게 적잖은 실망을 안겨줬다. 안 전 대표가 정치 재개를 선언한다 하더라도 예전만큼의 영향력을 끼치지 못할 것이라는 부정적 전망이 나오는 배경이다. 

유 의원 역시 극도로 말을 아끼며 몸을 사리는 모습이다. 지난달 24일 손 대표를 만난 자리에서도 서로 간의 입장 차이만 확인한 채 헤어졌다는 후문이다. '개혁보수'로 나가야 한다는 유 의원과 외연확장을 위해 중도개혁을 강조하는 손 대표 사이의 간극이 다시 확인된 것이다. 유 의원은 정치 일선에 복귀해 달라는 손 대표의 간곡한 권유도 뿌리친 것으로 알려졌다. 손 대표와 유 의원의 인식 차이는 창당 당시 논란이 됐던 정체성 갈등이 당내에 여전히 존재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선거를 앞두고 감행했던 인위적 결합의 한계가 여실히 드러나고 있는 셈이다.

주목할 것은 전당대회를 앞두고 최근 한국당을 중심으로 보수통합 움직임이 활발하게 전개되고 있다는 점이다. 주지한 것처럼 당권 유력 후보들인 황교안 전 국무총리와 오세훈 전 서울시장 모두 보수통합을 전면에 내세우고 있다. 정치권에서는 한국당 전당대회 이후 정개개편이 본격적으로 진행될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내년 총선을 앞두고 '보수 빅텐트'를 향한 원심력이 강하게 작용할 것이라는 이유에서다. 반면 바른미래당의 구심력은 갈수록 약화돼 가고 있다. 

창당한지 1년, 바른미래당은 갈림길에 서 있다. 내부 분화와 균열이 이미 시작된 가운데 당의 얼굴이나 마찬가지인 안 전 대표의 정치적 위상은 크게 손상을 입었다. 당 지분의 절반을 가진 유 의원의 입장이 더더욱 중요해진 이유일 터다. 바른정당 계열 인사들의 연쇄 탈당으로 유 의원의 거취는 초미의 관심사가 된 상황이다.  유 의원의 탈당은 단순히 의원 한 사람의 이탈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이는 바른미래당의 정치 실험이 실패했다는 것을 뜻할 뿐 아니라 당 해체를 촉발시키는 도화선이나 다름이 없다. 바른미래당의 '미래'는 과연 어떻게 될까. 당 존립의 열쇠를 지닌 유 의원의 행보에 시선이 집중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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