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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민주당이 더 밉다'는 이정미 대표의 말에 공감하는 이유

오죽했으면 그랬을까. 단식 중인 이정미 정의당 대표가 "(자유한국당보다) 더불어민주당이 더 밉다"고 개탄했다. 10일 KBS라디오 '김경래의 최강시사'와의 인터뷰에서 이 대표는 더불어민주당을 향한 서운함을 감추지 않았다. 

이 대표는 이날 "한국당은 연동형 비례대표제가 원래 당론이 아니었다가 그래도 그나마 연동형에 대해서 고려하는 듯한 제스처라도 취하고 있는 것인데 물론 그 속내야 또 들여다봐야 한다"면서 "민주당은 이것이 자신의 강력한 당론이었고 대통령의 의지였는데 이 부분이 되네, 안 되네 이러고 계시니까 사실 그런 마음으로 더 민주당에게 (미운 감정이) 많이 든다"고 토로했다. 믿었던 민주당으로부터 발등을 찍힌 것이 더없이 뼈아프다는 것일 테다. 


ⓒ 오마이뉴스



아닌 게 아니라 선거제도 개혁과 관련해 민주당의 최근 행보는 요상하기 그지없다. 말 바꾸기는 기본이요, 이도저도 아닌 행태로 개혁 의지 자체를 의심받고 있다. 이 대표의 지적처럼, 민주당이 처음부터 그래왔다면 이해할 법도 하다. 그러나 한국당과 달리 민주당은 과거 야당 시절부터 선거제도를 바꿔야 한다고 줄기차게 피력해 온 터였다. 연동형을 기반으로 한 권역별 비례대표제가 민주당의 당론이었고, 이는 문재인 대통령의 지난 대선 공약이기도 했다. 

그러나 민주당의 태도는 여당이 되면서 달라지기 시작했다. 특히 지난 6·13 지방선거에서 기록적인 압승을 거둔 이후 감춰져 속내가 여지없이 드러나고 있다. 이해찬 대표를 포함해 여러 의원들이 다른 목소리를 내고 있는 것이다. 선거제도 개편 논의가 진척되지 못하고 있는 것과 관련해 민주당 내부로부터 이런 저런 해명이 나오고 있지만, 그 이면에 연동형 비례대표제에 대한 거부감이 있다는 사실을 부인하기는 어렵다. 

현행 소선거구제가 거대 기득권 정당에게 절대적으로 유리하다는 것은 삼척동자가 다 아는 일이다. 지방선거에서 민주당은 전국 평균 51%의 득표율로 광역의원 의석의 79%를 차지했다. 서울시의회의 경우는 더 심하다. 51%의 득표율로 무려 93%의 의석을 가져갔다. '20년 집권 플랜'을 공공연히 밝히고 있는 민주당이 이 유혹을 떨쳐버리기는 쉽지 않은 일이다. 16개월 앞으로 다가온 차기 총선을 생각한다면 더더욱 그럴 터다. 달콤한 솜사탕을 앞에 둔 아이의 심정이 딱 그럴 테니. 

지난 지방선거는 '과대 대표'의 심각성이 극명하게 드러난 선거였다. 소선거구제의 수혜자가 한국당에서 민주당으로 바뀌었을 뿐 유권자의 표심은 이번에도 역시나 왜곡됐다. 문제는 표심과 의석수가 불일치되는 선거 결과의 피해가 국민에게 그대로 전가된다는 사실이다. 기득권을 움켜쥔 거대정당들의 과거 행태가 이를 단적으로 입증하고 있다. 정치권과 시민사회를 중심으로 현행 선거제도를 바꿔야 한다는 요구가 거세지고 있는 이유다.  

간과하지 말아야 할 것은 민주당의 집권 가능성과 '퉁치기'에는 선거제도 개혁의 의미가 너무나 크다는 사실이다. 선거제도 개혁은 정치혁신을 위한 선결조건이다. 지역주의를 허무는 전기가 마련될 수 있음은 물론, 경제·사회적 약자를 비롯한 다양한 계층의 목소리를 정치에 반영시켜 대의 민주주의를 확장·발전시키는 계기가 될 수도 있다. 

정당득표율에 따라 의석수를 배분하는 연동형 비례대표제는 다당제로의 전환을 기저에 깔고 있다. 이는 분열과 대립을 부추겨온 기득권 양당정치가 사라지고 진정한 의미에서의 협치를 기대해 볼 수 있다는 의미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자서전 <운명이다>에서 "국회의원 선거구제를 바꾸는 것이 권력을 한 번 잡는 것보다 큰 정치 발전을 가져온다고 믿는다"고 역설한 것도 그 때문이다. 낡은 정치구조를 획기적으로 바꿀 수 있는 해답이 바로 선거제도 개혁에 있다는 뜻이다. 

지방선거에서 한국당이 참패하자 많은 이들이 선거제도를 바꿀 다시 없을 절호의 기회가 찾아왔다고 전망했다. 소선거구제의 직격탄을 맞은 한국당이 연동형 비례대표제에 솔깃하고 있는 지금이 선거제도 개혁을 이룰 적기라는 지적이 잇따랐다. 더욱이 연동형 비례대표제가 집권당인 민주당의 당론이자 동시에 노 전 대통령과 문 대통령의 숙원이었다는 점에서 가능성이 그 어느 때보다 높았던 것이 사실이다. 


ⓒ 오마이뉴스



그러나 상황은 기대와는 전혀 다르게 흘러가고 있다. 지방선거 결과에 고무된 민주당이 주판알을 튕기는 사이 당 지지율이 반등한 한국당은 예전의 모습으로 돌아간 모양새다. 덕분에 선거제도 개혁을 강력히 요구해온 야3당만 닭 쫓던 개 지붕쳐다 보는 신세가 됐다. 시간도 별로 없다. 2020년 총선을 위한 선거구 획정 시한은 내년 4월까지다. 선거제도 개혁의 방향과 관련해 원내5당의 합의가 이달 안으로 나와야 한다는 얘기다.  

그러나 정치 시계는 현재 멈춰선 상태다. 국회 정치개혁특별위원회(정개특위)의 활동은 이번 달로 마무리된다. 정개특위의 활동 연장을 위해서는 임시국회가 소집돼야 하지만 이마저도 불투명한 상태다. 설령 여야가 정개특위 연장에 합의한다 해도 민주당과 한국당이 현재의 모습을 이어간다면 생산적 논의를 기대하기는 사실상 어렵다는 것이 중론이다. 선거제도 개혁은 결국 국회 의석의 80%를 차지하고 있는 거대 양당의 기득권 포기를 전제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 

선거제도 개혁 요구는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한국 사회의 고질적 병폐인 지역주의와 극단적 대결 정치의 폐해를 극복하기 위해 오래 전부터 제기돼온 정치적 과제다. 그런 면에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여당인 민주당의 역할이다. 국민의 뜻이 정확하게 반영되는 선거제도를 확립하는 일은 결국 정당간 협상과 타협을 전제로 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이는 결국 정국 주도권을 쥐고 있는 집권당의 책무가 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작금의 민주당에게는 시대적 과제인 선거제도를 개혁하려는 의지가 보이지 않는다. 자신들이 야당일 때는 유권자의 표심에 맞게 의석수가 배분돼야 한다고 주장하더니, 이제는 취지에는 공감하지만 "선거정수 확대에 반대하는 국민들을 설득할 자신이 없다"(우상호 의원)며 오히려 선거제도 개혁을 요구하는 바른미래당·평화당·정의당 야3당을 비판하고 있다. 화장실 갈 때와 나올 때 다르다더니 그 말 그대로다. 

노회찬 정의당 원내대표는 지난해 7월 <시사IN>과의 인터뷰에서 "선거제도 개혁 문제가 논의가 되면, 그때 대한민국 정치인들의 민낯이 드러날 것이다. 대의를 중시할지 정치집단의 야욕을 더 중시할지 적나라하게 나타날 것이다"라고 전망한 바 있다. 요즘 화제가 되고 있는 노 원내대표의 예언이다. 씁쓸하고 비통하다. 선거개혁의 가능성이 점점 희미해져 가고 있는 현실이. 한국당보다 "민주당이 더 밉다"는 말이 자꾸만 귓전을 맴도는 이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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