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정치

민주당 경선 갈등? 정의당에게 배워라

ⓒ 오마이뉴스


"촛불 정국을 거치면서 심 대표가 이끄는 정의당의 지지율은 답보상태이며 존재감도 미미하다. 이는 변화를 선도해야 할 정의당 자체가 변화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심상정 후보의) 여론조사 지지율을 보면 최근 0.6%까지 나왔다. 아마 후보가 공식적으로 결정이 나더라도 큰 변동은 없을 것이다."

지난 2월 정의당 대선 후보 경선 과정에서 터져나온 날이 서린 비판이다. 정의당 대변인 출신의 강상구 후보는 지지율 정체 상태에 빠져있는 정의당의 현실을 아주 냉정하고 직설적으로 꼬집었다. 이뿐만이 아니다. 강 후보는 당 대표로서 정의당을 이끌고 있는 심상정 후보의 책임을 신랄하게 비판하는가 하면, 낮은 지지율에 고심 깨나 하고 있을 심 후보의 심기를 불편하게 만들기도 했다.

당시 강 후보는 정치 이력, 대중적 인지도 등에서 심 후보에게 크게 밀리던 상황이었다. 판을 흔들기 위해서는 앞서 가는 심 후보를 거세게 몰아붙일 필요가 있었다. 그런데 이에 대한 심 후보의 대응이 퍽이나 인상 깊었다. 강 후보의 도발에 심 후보는 "아직 당의 정식 후보도 되지 못했다"면서 "그런데 낮은 지지율을 가지고 비판하는 것은 정의당 후보답지 못하다"고 점잖게 응수했다.

그뿐이었다. 두 후보 사이의 공방은 이렇게 싱겁게 끝이 나고 말았다. 이후 경선 기간 내내 대선 공약과 정책, 노선 등을 둘러싼 뜨거운 토론이 펼쳐졌지만 네거티브 공방으로 비화되지는 않았다. 내일이 없는 이전투구식 진흙탕 싸움도, 감정이 밑바닥까지 드러나는 낯뜨거운 장면도, 저열하고 비루한 정치공세도 그들에게는 찾아볼 수 없었다. 

대선후보 경선이 치열하다 못해 과열 양상을 보이는 있는 요즘 새삼 정의당의 대선 경선 과정을 주목하게 된다. 정의당은 원내정당 중 가장 먼저 경선레이스를 시작했고, 가장 먼저 대선후보를 선출했다. 지난 2월 2일 선거정책토론회를 개최했고, 16일 일찌감치 대선후보를 확정지었다. 심 후보와 강 후보의 2파전 양상으로 진행된 당내 경선이 남긴 것은 극심한 후유증이 아닌 본선을 향한 기대와 끝까지 해보자는 투지였다.

언론과 대중의 주목을 거의 받지 못했지만 정의당 대선후보 경선은 네거티브와 후보 진영간 격한 감정 싸움이 벌어지지 않았다. 어쩌면 혹자는 이를 원내 의석 6석에 불과한 미니정당의 구조적 환경 탓이라고 치부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이는 정치인의 권력의지는 정당의 규모나 노선과 상관 없이 본질적으로 같다는 점에서 설득력이 떨어진다.

심 후보의 "정의당 후보답지 못하다"라는 발언에 주목해보자. 나는 이 발언 속에 당내 경선에 임하는 정의당의 기본적인 자세와 태도가 오롯이 녹아있다고 생각한다. 경선은 정당의 대표선수를 뽑는 과정이다. 후보들은 자신의 정치적 이상과 비전을 당원과 대중에게 제시하고, 철저한 검증과 치열한 내부 경쟁을 통과해야 한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상대 후보와 차별화되는 자신만의 컨텐츠, 즉 내용이다. 이는 자신을 돋보이게 만드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자 전략이다. 그러나 이 전략은 실제 선거에 돌입하는 순간 네거티브의 유혹 앞에 뒷전으로 밀려나기 일쑤다다. 자신이 내세우는 정치철학과 정책을 부각시키는 지난한 과정보다 상대방의 약점과 문제를 공략하는 편이 훨씬 더 효과적이라고 믿는 탓이다.

ⓒ 오마이뉴스


경선 과정의 민낯이 적나라하게 드러나고 있는 민주당의 경우가 이에 해당된다. 경선이 시작되기 전만 하더라도 민주당 후보들의 이력과 관계성에 미루어 생산적이고 건설적인 정책토론과 가치대결이 펼쳐질 것이란 예상이 많았다. 그동안 문재인 전 대표와 안희정 충남지사, 이재명 성남시장 등이 끈끈한 유대감과 결속력을 보여온 데다, 그들 스스로도 네거티브 없는 클린 경선을 치르겠다고 거듭 강조해왔기 때문이다.

그러나 막상 뚜껑이 열리자 상황은 정반대로 흘러가고 있다. 문 후보와 안 후보의 공방은 경선 후를 걱정해야 할 정도로 험악한 상태로 비화되는 모양새다. 서로를 치켜세우던 훈훈했던 모습은 온 데 간 데 없이 사라지고, 감정의 골을 여과 없이 드러내는 일촉즉발의 상황을 연출하고 있다. 여기에 지지자들도 가세해 혼탁·과열 양상마저 보인다. 선거 때마다 신물나게 목격해왔던 익숙한 모습들이다.

다시 정의당으로 돌아가보자. 네거티브 없는 정의당 경선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그들은 지난 2015년 당 대표 경선에서도 대단히 이례적인 장면을 연출한 적이 있다. 당시 정의당은 경선 기간 중 상대 후보의 약점이나 문제를 파고드는 대신 장점을 치켜세우거나 칭찬하는 '포지티브' 선거운동을 펼쳐 잔잔한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이는 한국정치사에서는 좀처럼 찾아보기 힘든 장면이다.

그렇다고 정의당 후보들이 정책토론에 소홀했던 것도 아니었다. 당시 정의당은 진보정치의 현재와 미래를 놓고 치열한 정책과 가치 토론을 벌였다. 특히 '2세대 진보정치'의 기치를 내세워 돌풍을 일으켰던 조성주 후보는 민주화운동과 노동운동으로부터의 탈피를 주장해 진보운동의 새로운 방향을 제시하기도 했다. 우리 정치의 오랜 숙원이었던 결선투표제를 당 대표 경선에 도입한 것도 정의당이었다.

군소정당의 한계와 약점을 딛고 선거운동의 올바른 방향을 제시한 정의당의 행보는 시사하는 바가 결코 적지 않다. 이는 극심한 경선 갈등에 휩싸여있는 민주당의 행태를 보면 더더욱 선명해진다. 민주당의 경선 갈등은 통상적인 정책과 노선의 대립이 아니라 네거티브를 동반한 전형적인 정치공세의 양상을 띠고 있다. 미래를 기약하기 힘든, 치킨게임이 펼쳐지고 있는 것이다.

바로 여기에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네거티브 선거는 대중의 정치 혐오와 정치 불신을 가중시키는 구태 중의 구태다. 새로운 정치문화와 선거 풍토를 기대했던 국민의 바람을 거스를 뿐만 아니라 정권 교체와 정치 개혁를 원하는 국민적 염원을 정면으로 거스르는 행위다. 그런데 사라져야 할 구습이 정치문화를 이끌어나가야 할 민주당 대선후보 경선에서 표면화되고 있는 것이다.

이는 공공의 선보다 눈 앞의 이익과 실리를 쫓은 결과다. 선거에서 이겨야 한다는 강한 집착과 욕망이 상대를 향한 지나친 공세로 표출되고 있는 것이다. 정의당의 경선 과정과 대비되는 씁쓸한 장면이 아닐 수 없다. 민주당이 망각해서는 안 되는 것은 도를 넘는 네거티브 공방이 야권지지층의 '역린'을 건드릴 뿐만 아니라 자칫 다된 밥에 코를 빠트리는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다는 점이다. 과정의 문제는 반드시 결과의 문제로 이어지게 된다. 민주당이 정의당의 경선 과정을 본보기로 삼아야 할 이유다. 




♡♡ 바람 언덕의 정치 실험에 여러분을 초대합니다 (클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