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정치

문재인 대통령이 분노한 진짜 이유

"이명박 전 대통령이 노무현 전 대통령의 죽음을 직접 거론하며 정치 보복 운운한 데 대해 분노의 마음을 금할 수 없다". 문재인 대통령이 18일 전날 있었던 이명박 전 대통령의 입장 표명을 강도 높게 비판했다. 이날 박수현 청와대 대변인은 긴급 브리핑을 통해 문대통령이 "이명박 전 대통령이 마치 청와대가 정치보복을 위해 검찰을 움직이는 것처럼 표현한 것에 대해 이는 우리 정부에 대한 모욕"이며 "사법질서에 대한 부정이고 정치 금도를 벗어나는 일"이라고 밝혔다고 전했다.

감정을 잘 드러내지 않는 것으로 알려진 문 대통령이 정치적으로 민감한 사안에 직접적으로 심경을 표현한 것은 대단히 이례적이라는 평가다. 문 대통령의 불편한 심기는 특히 '분노', '모욕' 등의 단어를 거론한 것에서 도드라진다. 그만큼 이 전 대통령의 입장문이 문 대통령의 감정을 자극했다는 얘기다.

검찰 수사에 대한 이 전 대통령의 입장문에 대해 문 대통령이 강도 높게 비판하자 이 전 대통령의 측근들과 자유한국당은 즉각 반발했다. 그들은 "노무현 정권과 이명박 정권의 싸움이면 결국 화살이 문 대통령에게 튈 것"(이재오 전 의원), "올해가 개띠 해라고 이전투구를 한번 해 봐야겠나"(김두우 전 청와대 홍보수석), "노무현 비서실장 같은 말을 대통령이 하는 것은 부적절하다"(홍준표 한국당 대표), "이 전 대통령에 대한 피의 사실 유포로 모욕주기 수사를 자행하는 검찰부터 문책하라"(장제원 수석대변인)고 하는 등 일제히 반격에 나섰다.

이 전 대통령 수사는 검찰의 기획·표적 수사이자 정치보복이라는 것이 보수진영의 한결 같은 시각이다. 앞서 17일 이 전 대통령이 '서재 성명'을 통해 "적폐청산이라는 이름으로 진행되고 있는 검찰수사에 대하여 많은 국민들이 보수궤멸을 겨냥한 정치공작이자 노무현 대통령의 죽음에 대한 정치보복이라고 보고 있다"고 밝힌 것 역시 같은 맥락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와 관련해 절치부심하고 있던 문 대통령이 정권을 잡자 대대적인 복수에 나섰다는 주장이다. 이같은 주장은 그동안 보수언론과 한국당 등 보수진영에서 끊임없이 확대 재생산해 왔던 '프레임'이다.

문 대통령이 보수진영의 '정치보복' 프레임을 모르고 있을 리는 없을 터다. 그럼에도 문 대통령이 이례적인 반응을 내비친 까닭은 무엇일까. 여기에 대해서는 크게 두 가지 해석이 나오고 있다. 먼저 노무현 전 대통령을 또 다시 정쟁의 장으로 끌어들인 것에 대한 자연인으로서 감정 표출이라는 지적이다. 이는 문 대통령과 노 전 대통령 사이의 특별한 관계, 그리고 서거 당시의 정황 등을 고려한 추론이면서 동시에 보수진영에서 주장하는 '정치보복' 프레임의 출발점이기도 하다.

문 대통령과 노 전 대통령이 떼려야 뗄 수 없는 '운명적' 관계라는 것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두 사람은 인권 변호사로 활동하던 시절부터 함께 해온 오랜 친구이자, 참여정부 당시 대통령과 비서실장·민정수석으로 동거동락했던 영원한 동지다. 따라서 문 대통령이 친구인 노 전 대통령을 또 다시 소환시켜 '정치보복' 프레임으로 활용하려는 이 전 대통령의 도발을 마냥 두고 보기는 어려웠을 것이라는 분석이다. 

보수진영의 '정치보복' 주장 역시 이를 기반으로 한다. 노 전 대통령의 죽음을 앙갚음하기 위한 문 대통령의 복수라는 것이 그 골자다. 그러나 대통령은 자연인이 아니라 공인이다. 대통령의 감정이 사적인 분노로 폭발하는 순간 정치권에 피바람이 인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사람이 문 대통령이다. 사람의 마음을 들여다 보기는 어려우나 문 대통령이 '분노'한 진짜 이유를 유추해 볼 수 있는 사례가 있다.


오마이뉴스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 경선이 한창이던 무렵 문 대통령은 안희정 충남지사와 치열한 공방을 주고 받은 적이 있다. 문 대통령이 안 지사의 '선의'(善意) 발언에 대해 "분노가 담겨있지 않다"고 일침을 가하자, 안 지사가 "지도자의 분노는 그 단어만으로도 많은 사람에게 피바람이 난다"고 되받아치면서다. 이 공방의 과정 속에 지도자의 '분노'에 대한 문 대통령의 명확하고 분명한 자기 입장과 철학이 드러난다. 

문 대통령은 안 지사의 역공에 "우리의 분노는 사람에 대한 증오가 아니라 불의에 대한 것으로, 불의에 대한 뜨거운 분노 없이 어떻게 정의를 바로 세우겠느냐"고 반문했다. 나는, 이 전 대통령에 대한 검찰 수사의 핵심이 바로 여기에 있다고 생각한다. 정치공방이 벌어진다고 해서 죄의 본질까지 사라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문제의 핵심은 이 전 대통령이 저지른 범죄 혐의에 있다. 사태를 이 지경으로 몰고 온 일차적 책임이 다름 아닌 이 전 대통령에게 있다는 얘기다.

이명박 정부 시절 자행된 불법 부정의 사례들은 일일이 열거하기 벅찰 만큼 부지기수다. 이 전 대통령은 입장문에서 권력형 비리가 없었다고 밝혔지만 이명박 정권은 측근비리와 친인척 비리 등으로 임기 내내 몸살을 앓아야 했다. 이 전 대통령의 친형인 이상득 전 의원과 멘토로 알려진 최시중 전 방송통신위원장을 필두로 청와대 참모와 내각, 친인척, 친구 등이 재임 기간 동안 줄줄이 구속됐다. '도덕적으로 가장 완벽한 정권'의 실상이 대개 이러했다.

이 전 대통령에 대한 검찰 수사와 관련해 주목해야 할 것이 있다. 이 전 대통령이 받고 있는 주요 범죄 혐의가 기실 지난 2007년 한나라당 대선 후보 경선 당시 박근혜 후보 캠프 쪽에서 제기된 것들이라는 사실이다. 당시 이명박 캠프와 박근혜 캠프는 고소·고발을 남발하는 이전투구의 폭로전을 이어가며 시쳇말로 '박 터지게' 싸웠다. 한창 논란이 되고 있는 BBK 주가조작 의혹, 도곡동 땅 및 다스 실소유주 의혹 등이 그 과정에서 불거진 것들이다. 이명박·박근혜 정권 9년 동안 감추어져 있던 불법과 부정, 비리 의혹의 실체들이 이제서야 비로소 드러나고 있는 것이다.

국정원과 군 사이버사령부 댓글 여론조작, 국정원 특활비 청와대 상납 의혹,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사건 등도 결국 마찬가지다. 국민이 위임한 권력을 사유화시키고 법치와 민주주의를 농단한 책임은 다른 누구도 아닌 이 전 대통령 자신에게 있다. 염치가 있다면 정치보복 운운하기 이전에 국민에게 사과부터 하고 보는 게 도리일 것이다. 그러나 이 전 대통령은 물론이고 한국당 등 보수진영은 막무가내다. 논란이 되고 있는 의혹들 대부분이 자신들이 집권할 당시 벌어진 일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반성은커녕 적반하장으로 나오고 있다.

불법과 부정, 불의에 대한 확고한 청산 없이 정의와 공의가 바로 설 수는 없는 일이다. 그러나 보수진영은 정작 이 전 대통령이 저지른 범죄 행위에 대해서는 철저하게 함구한 채, 검찰의 수사에 대해 정치보복이라는 논리를 펴고 있다. 죄는 '죄'일 뿐, 정쟁의 대상이 될 수 없다는 것을 모르는 모양이다.

저들을 보면 명확해진다. 전대미문의 국정농단 사태가 일어날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황망하기 그지 없던 대통령 탄핵이 결코 우연이 아니었다는 사실을 말이다. 추상같아야 할 부정과 부패, 비리에 이리 관대하니 당연히 그럴 수밖에 없을 테다. 옛말 그른 거 하나 없다. 보수는 '부패'로 망한다. 2018년 대한민국 보수가 던져주는 교훈이다.



♡♡ 1인 미디어 '바람 언덕'이 여러분의 후원을 기다립니다 (클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