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정치

만약 황교안이 꿈꾸는 세상이 도래한다면..

ⓒ 한겨레

 

언어는 사고의 반영이다. 말은 한 사람의 인격과 품성, 세계관을 드러내는 거울이다.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가 총선 대비용으로 영입하려던 박찬주 전 제2작전사령관(예비역 육군대장)이 연일 논란의 중심에 오르고 있다.

한국당은 지난달 31일 박 전 대장이 포함된 인재 영입대상자 8명을 발표했다. 황 대표의 첫 번째 인재영입에 세간의 관심이 쏠린 건 당연지사. 그러나 막상 뚜껑이 열리자 당 안팎의 우려와 비판이 쏟아졌다.

원래 황 대표의 1차 영입 명단에는 '공관병 갑질' 논란의 당사자인 박 전 대장을 비롯해 이명박-박근혜 언론탄압의 상징적 인물 이진숙 전 MBC 보도본부장, 신보라 한국당 의원 비서 남편인 백경훈 청년이여는미래 대표, 후쿠시마 원전 방사능의 국내 영향 가능성을 일축한 정범진 경희대 원자력공학과 교수 등이 포함돼 있었다.

그 중 가장 'hot'한 인물은 단연 박 전 대장이다. 잘 알려진 대로 박 전 대장은 공관병 갑질 의혹으로 공분을 샀던 인물이다. 2013년부터 2017년까지 공관병에게 호출팔찌를 채우고 텃밭 관리, 감 따기, 골프공 줍기 등 업무 이외의 행위를 시킨 것으로 알려졌다. 

박 전 대장이 받고 있는 가혹행위 의혹은 검찰 수사 결과 무혐의 처분을 받았다. 그러나 인사 청탁과 관련해선 '부정 청탁 및 금품 등 수수 금지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가 인정돼 지난 4월 벌금 400만 원을 선고받았다. 그런가 하면 그의 부인 역시 공관병에 대한 폭행 혐의로 불구속 기소됐다.

그러나 황 대표가 직접 입당을 설득할 만큼 심혈을 기울였던 박 전 대장 영입은 결과적으로 자충수가 됐다. 총선 전 당내에 자기 사람을 심어놓으려던 구상이 최고위원회에 의해 사실상 가로막힌 데다, 그 과정에서 리더십에 커다란 상처까지 입었기 때문이다. 급기야 황 전 대상은 논란 끝에 최종 명단에서 결국 제외됐다. 

이런 상황에서 황 전 대장이 4일 '공관병 갑질' 의혹을 제기한 임태훈 군인권센터 소장에 대해 "삼청교육대 교육을 한번 받아야 한다"고 하는가 하면,  "감은 공관병이 따야지 누가 따겠느냐"며 갑질 의혹을 부인하는 기자회견까지 했다.

삼청교육대는 전두환 신군부가 자행했던 극악무도한 국가 폭력의 상징과도 같은 곳이다. 박물관에 전시해야 할 구시대의 유물을 천연덕스럽게 운운하는 것만 봐도, 갑질이 뭐가 문제냐고 되묻는 것만 봐도 황 전 대장이 얼마나 시대착오적 인사인지가 여실히 입증된다.

이런 문제적 인사를 영입하기 위해 끝까지 미련을 놓지 못했으니 황 대표를 향한 당 안팎의 비판이 쇄도할 수밖에 없다. 부러 멀리해야 할 인물을 "정말 귀한 분"이라 한없이 추켜세우기까지 했으니 황 대표의 안목과 비전에 물음표가 붙을 수밖에 없는 노릇이다.

그런데 어디 이뿐이랴. 언론장악이 극에 달했던 이명박 정부 시절 MB의 아바타로 불리던 김재철 전 MBC 사장의 가신으로 손꼽히던 이진숙 전 본부장, 신보라 의원 비서의 남편이자 청년 수구의 대표적 인물로 주목받는 백경훈 대표, 원전마피아의 입장을 대변해온 정범진 교수 등도 갑론을박이 뜨겁다.

무자비한 국가폭력과 반인권의 상징인 삼청교육대를 아무렇지 않게 끄집어내는 사람, 특권의식에 사로잡혀 있는 사람, 언론의 독립성과 공정성을 외면한 채 권력에 부역했던 사람, 세상과 인간에 대한 입체적 시각이 결여돼있는 사람, 시민의 생명과 안전보다 특정 집단의 이익을 더 우선시하는 사람...

무릇 하나를 보면 열을 안다고 했다. 점점 거세지는 한국당발 인재영입 논란은 이 정당이 사회공동체의 보편적 상식과 얼마나 괴리돼 있는지를 극명하게 드러내준다.

한국당과 황 대표가 만들어가려는 세상이 저들의 면면과 삶의 이력 속에 고스란히 투영돼 있다. 한국당이, 그리고 황 대표가 꿈꾸는 세상은 '미래'가 아니라 '과거'다. 그 겨울 광장을 환히 밝히던 촛불을 경험하고도 그런 세상을 맞이해야 한다면, 나는 자괴감에 한동안 하늘을 올려다보지 못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