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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또 '개헌타령' 하는 야당, 새들도 자기 분수는 안다

더불어민주당이 주도했던 6·13 '지방선거-개헌 국민투표' 동시 추진은 자유한국당과 바른미래당 등 야권의 반대로 무위에 그쳤다. 이런 저런 구구절절한 구실을 내세웠지만, 야권의 반대 이유는 사실 뻔했다. '지방선거-개헌 국민투표'가 야권에 불리하게 작용할 것을 우려했기 때문이다. 선거를 앞두고 개헌 이슈가 부각될수록 정부야당에 힘을 실어주자는 여론이 힘을 받게 된다는 것이 정설이다.

야권은 '지방선거-개헌 국민투표' 실시를 위한 개헌 논의에 시큰둥한 태도로 일관했다. 여야는 2017년 1월 5일 국회헌법개정특별위원회(개헌특위)를 가동시키며 개헌 협상에 나섰지만 결과는 '허탕'이었다. 개헌특위는 1년이 넘도록 공회전만 거듭했다. 이를 보다 못한 문재인 대통령이 직접 정부 주도 개헌안까지 발의했지만, 이미 마음이 떠난 야권을 돌려세우지는 못했다. 오히려 문 대통령은 야권으로부터 '관제개헌', '사회주의개헌'을 주도한 당사자로 낙인찍혔다.

국민의 기본권, 권력구조 개편, 선거구제 개편, 지방분권 등의 시대적 과제들을 담아내야 하는 6월 개헌은 그렇게 무산됐다. 황당한 건 야당의 태도였다. 대선 전까지만 해도 개헌의 전도사라도 되는 것처럼 개헌에 목을 맸던 그들이 돌변했기 때문이다. 한국당·국민의당·바른정당은 대선이 불과 두 달도 남지 않은 2017년 3월 15일 '대선 당일 개헌 국민투표'를 실시하기로 전격 합의했을 정도였다.


ⓒ 오마이뉴스


특히 한국당은 대통령제의 폐단과 폐해를 집중 부각시키며 대선에 맞춰 권력구조 개편을 중심으로 한 '원포인트 개헌'이라도 해야 한다고 주장하기까지 했다. 대선후보들 역시 개헌에 적극적이었다.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후보를 비롯해 홍준표 한국당 후보, 안철수 국민의당 후보, 유승민 바른정당 후보 등은 '지방선거-개헌 국민투표' 실시를 공약으로 내세우며 개헌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복기해 보면, 그때는 여기서도 저기서도 '개헌 타령'이었다. 당장 하지 않으면 마치 큰 일이 날 것처럼 그들은 개헌을 부르짖었다. 그럴 수밖에 없었던 이유가 있었다. 당시는 국정농단 사태와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으로 보수진영이 시쳇말로 쑥대밭이 된 상황이었다. 집권 가능성이 희박하다는 분석이 팽배했다. 어떻게든 판을 흔들어야만 했다. 가만히 앉아서 당할 수는 없는 일 아닌가.

개헌은 좋은 수단이었다. 국정농단의 여파로 대통령제에 대한 부정적 여론이 높아지고 있던 참이었다. 무소불위의 대통령 권한을 이참에 제한해야 한다는 그럴싸한 명분과 구실도 있었다. 정치사전에는 없는 '분권형 대통령제'는 그렇게 만들어졌다. 대통령의 권한을 축소시키는 대신 의회의 권력을 강화하겠다는 의도였다. 그러나 그들이 간과한 것이 하나 있었다. 의회에 대한 국민 불신이 극에 달해있다는 사실이다.

국정의 동력은 국민의 지지로부터 나온다. 그러나 개헌을 관철시키기 위한 그들의 노력은 국민의 공감을 전혀 받지 못했다. 권력형 게이트와 친인척·측근 비리 등 대통령제의 문제점을 모르는 국민은 없다. 그럼에도 국민들이 의원내각제나 이원집정부제보다 대통령제를 선호하는 이유는 다른 곳에 있지 않다. 쉽게 말해 국회를 믿을 수 없기 때문이다.

국회가 불신의 온상으로 전락한 것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실제로 국회는 국가기관에 대한 신뢰도 조사에서 늘 최하위를 면치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고양이에게 생선을 맡기면 어떤 일이 벌어질지는 자명한 일일 터. 이런 상황에서 국회의 권력과 위상을 강화하기 위한 개헌을 하겠다고 주장하니 여론이 싸늘할 수밖에 없는 것은 당연지사다.

'당장 개헌을 해야 한다'던 그들은 대선 이후 돌연 '6월 개헌은 불가능하다'로 입장을 바꿨다. 개헌 논의로 정국 주도권이 정부여당에 넘어갈 경우 지방선거 전망이 불투명해질 것을 우려했기 때문이었다. 지난 지방선거가 30년 만에 찾아온 개헌의 적기였음은 이론의 여지가 없다. 문 대통령의 개헌 의지가 (대통령 개헌안을 직접 발의할 만큼) 확고부동했던 데다가, 국회의 의지도 그 어느 때보다 높았기 때문이다.


ⓒ 오마이뉴스


<중앙일보>가 2017년 9월 국회의원 241명을 대상으로 전수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당시 '개헌을 해야 한다'는 의견이 무려 94.2%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개헌시기 역시 '6월 지방선거'에 맞춰 해야 한다는 의견이 90% 가깝게 나타났다. 조사범위를 한국당·국민의당·바른정당으로 좁혀도 결과는 큰 차이가 없었다. 한국당(80.4%), 국민의당(94.6%), 바른정당(94.4%) 의원의 절대다수가 6월 개헌에 찬성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하지만 딱 거기까지였다. 의원들의 소신은 당리당략에 가로막혀 앞으로 나아가지 못했다.

그러나 물 건너간 것처럼 보였던 개헌의 불씨는 지방선거가 끝나자 다시 솔솔 피어나고 있다. 한국당과 바른미래당 등 야당은 "국민 개헌을 추진해 나가야 할 판에 문재인 정권과 민주당이 묵묵부답으로 침묵을 지키는 것이 혹시라도 개헌을 하지 않으려는 속내가 아닌지 의구심이 든다"(김성태 한국당 원내대표), "(개헌을 가로막는) 가장 큰 장애는 바로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이다. 민주당을 제외한 모든 정당은 개헌과 선거제도 개혁을 주장하고 있다"(김동철 바른미래당 원내대표)며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때 맞춰 신임 문희상 국회의장이 오는 연말까지 헌법개정안을 도출하자고 제안하면서 야당의 개헌 공세는 더욱 힘을 받는 모양새다. 대선과 지방선거를 통해 민심의 흐름이 확인된 이상 개헌을 통해 권력구조를 바꿔야 한다는 전략적 판단이 재가동된 것으로 풀이된다. 더욱이 한국당 등이 지난 지방선거에서 현행 소선거구제의 직격탄을 맞은 터라 선거구제 개편을 고리로 민주평화당과 정의당 등을 포함한 '개헌 연대'를 추진하려는 계산까지 깔려있는 것으로 보인다.

마치 타임머신을 타고 시간여행을 하고 있는 듯하다. 개헌을 매개로 정부여당을 강하게 압박하고 있는 야당의 모습은 '개헌 타령'에 여념이 없던 지난 대선 당시와 하등 다를 바가 없다. 불과 1년여 사이에 공당의 입장이 이쪽에서 저쪽으로, 다시 이쪽으로 오락가락하고 있다. 주장의 옳고 그름을 떠나 참으로 무책임한 태도가 아닐 수 없다. 이런 식이라면 개헌에 대한 입장이 또 언제 어떨게 바뀔지 알 수 없는 일이다.

물 들어올 때 노를 저어야 한다는 속담처럼 모든 일은 다 때가 있는 법이다. 앞서 인용한 여론조사에서 드러나듯 지난 지방선거가 개헌의 최적기였다는 것이 중론이다. 대통령과 정치권 그리고 국민의 관심과 의지가 그 어느 때보다 드높았기 때문이다. 뜨거웠던  6월 개헌요구를 사실상 무산시킨 보수야당이 이제와서 다시 개헌을 운운하는 건 염치가 없어도 너무 없는 짓이다. 더욱이 야당의 저의가 이미 다 드러난 상황에서의 개헌 요구는 다분히 정략적 의도라고밖에 볼 수 없다.

개헌을 하지 말자는 것이 아니다. 국민의 기본권, 지방분권, 권력구조와 선거구제 개편, 국가기관 혁신 등의 시대적 과제에 부합하기 위해서라도 개헌은 반드시 추진돼야 한다. 문제는 개헌 논의가 정치권의 이해관계와 당리당략에 의해 왜곡될 소지가 높다는 점이다. 개헌을 둘러싸고 펼쳐지는 현 정치권의 모습은 이같은 우려가 현실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을 여실히 보여준다.

그런 면에서 국가와 국민의 미래와 직결돼있는 중차대한 개헌 문제를 손바닥 뒤집듯 수시로 바꾸고 있는 야당의 행태는 비판받아 마땅하다. 신뢰도가 바닥인 국회가 그 어떤 합의도 없이 제멋대로 개헌을 추진하겠다는 건 주권자인 국민을 무시하는 지극히 오만한 발상이다. 무릇 자기 분수를 알아야 한다. 제왕적 대통령 못지않게 제왕적 국회에 대한 국민의 원성도 하늘을 찌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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