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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드루킹의 옥중서신..조선일보가 간과하고 있는 것

"현 단계에서 이 글이 모두 진실인지는 확인할 수 없으나 독자의 '알 권리'를 위해 게제한다."

18일 <조선일보>는 '드루킹의 옥중편지'를 대서특필하면서 이 편지를 공개하는 이유를 저와 같이 덧붙였다. 내용의 진위보다 독자의 알 권리가 더 중요하다는 판단에서 편지를 공개하기로 결정했다는 것이다. 지금껏 몰랐다. <조선일보>가 '독자의 알 권리'를 이처럼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는지를. A4 용지 9장, 무려 7000자에 달하는 방대한 내용을 진실 확인도 거치지 않고 1면에 실을 만큼 금쪽같이 여기고 있는지를 말이다.

그런데 말이다. 아무리 독자의 알 권리를 금과옥조로 여기고 있다 한들 사실 확인이 안 된 기사를 내보내는 건 언론의 본분을 망각한 행태다. 언론 기사의 핵심은 뭐니뭐니해도 객관적 사실에 입각한 '팩트' 보도가 아닌가. 그런 면에서 "이 글이 모두 진실인지는 확인할 수 없으나"라고 여지를 남긴 것은 언론의 가장 기본적인 철칙을 지키지 않았다는 고백이나 마찬가지다. 기사의 가치와 신뢰성을 스스로 갉아먹고 있다는 얘기다.

<조선일보>는 '드루킹 사건'을 가장 의욕적으로 보도하고 있는 언론사 중 하나다. 국내 최대 발행부수를 자랑하는 보수언론이 이 사건에 화력을 집중하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그들이 누구보다 앞장서 정부여당을 비판해왔다는 점을 상기하면 <조선일보>가 왜 확인되지 않은 내용을, 그것도 1면 탑기사로 내보냈는지 어렵지 않게 짐작해볼 수 있다. 


ⓒ 오마이뉴스


우선 제목부터가 남다르다. <조선일보>는 기사의 제목을 "드루킹 옥중편지 '김경수에 속았다'"라고 뽑았다. 자극적이고 선정적인 제목에서부터 <조선일보>의 의도가 여실히 드러난다. 기사에서 제목이 차지하는 비중은 대단히 높다. 기사의 내용은 잘 몰라도 대중은 가판대에 놓인 신문의 1면 헤드라인 제목은 기억한다. 제목을 어떻게 정하느냐에 따라 포털사이트 기사의 노출수가 출렁이기도 한다. 

<조선일보>의 기사 제목에서는 김경수 더불어민주당 경남지사 후보가 드루킹을 속였다는 뉘앙스가 짙게 묻어난다. 김 후보의 부도덕성을 의도적으로 부각시키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옥중서신 내용은 어디까지나 드루킹의 일방적인 주장일 뿐 아직까지 진실 여부가 밝혀지지 않은 상태다. 그럼에도 <조선일보>는 드루킹을 피해자로 설정하고 김 후보의 도덕성에 문제가 있는 것처럼 묘사하고 있다. 

<조선일보>가 드루킹의 옥중서신을 전격 공개한 이후 정국은 크게 요동쳤다. 관련 기사가 쏟아졌고 자유한국당 등 보수야당과 민주당 사이에는 치열한 정치공방이 오갔다. 당사자인 김 후보 측은 황당하다는 반응이다. 김 후보는 이날 부산 영주동 부산민주공원에서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이렇게 소설 같은 얘기를 바로 기사화해도 되는 건지 묻지 않을 수 없다"며 "제가 꺼리낄 게 있다면 경찰 조사를 먼저 받겠다고 하고, 특검도 먼저 주장하고 그리고 이번 지방선거에 나섰겠나"라고 반문했다. 한마디로 "황당하고 어처구니없는 소설 같은 얘기"라는 주장이다.

드루킹의 옥중서신을 둘러싸고 이처럼 치열한 진실공방이 펼쳐지고 있다. 서로의 주장이 첨예하게 엇갈리고 있는 만큼 진위는 검경 수사에 이은 특검에서 가려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 중론이다. 때맞춰 여야는 진통 끝에 '드루킹의 인터넷상 불법 댓글조작 사건과 관련한 진상규명을 위한 특별검사의 임명 등에 관한 법률안'을 오는 21일 오전 10시 본회의를 열고 추경안과 함께 처리하기로 합의했다. 그에 따라 드루킹 사건의 진위는 결국 특검 수사를 통해 밝혀질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 사건이 불거진 이후 <조선일보>의 태도는 한결같다. 김 후보와 드루킹 사이를 연관시키려는 공세적 보도에 촛점을 맞추고 있다. <조선일보>의 보도 행태는 다수의 국가기관이 조직적으로 대선에 불법 개입한 '국정원 사건' 당시와 비교해 보면 극명한 차이가 난다. <민주언론시민연합>(민언련)은 지난 4월 26일 '조선일보의 드루킹 보도, 무엇이 문제인가'라는 제목의 신문 모니터에서 <조선일보>의 이중적 보도 행태를 신랄하게 꼬집은 바 있다. <민언련>의 모니터 내용 중 <조선일보>의 국정원 사건 관련 보도 행태를 옮겨본다. 

"당시 조선일보는 매우 적극적으로 국정원을 엄호했다. 특히 '여직원 인권', '여직원 감금' 프레임을 내세우며 국정원의 범죄행위를 감싸고 되레 민주당을 공격했다. 수사가 진행되는 과정에서도 조선일보는 '원세훈 국정원장 지시 말씀 강조' 문건이 공개돼 국정원의 정치개입이 여실히 드러난 상황에서도 침묵하거나 '내부문건 유출'에 촛점을 맞춰 본질을 흐렸다. 또 국정원 대선 개입의 정황과 주요 증거들에 대한 보도는 뺀 채 '정권 교체기마다 반복되는 홍역'이라거나 '북한의 대남 심리전 방어목적'이라는 국정원 주장을 앞세우기도 했다."

"특히 조선일보는 국정원이 대통령 선거에 특정 후보의 이해를 위해 조직 동원한 것에 대해 '일반 국민에겐 별 관심사도 아닌 문제'(2013/6/20)라고 치부했다. 국가 조직도 아닌, 민주당과의 연결고리가 정확히 확인되지 않은 개인(드루킹) 문제를 집요하게 파고드는 현재 조선일보와는 전혀 다른 모습이다. 심지어 2013년 4월 24일에는 이례적으로 칼럼을 1면에 배치하고 <김창균/대선여론조작 목적이면 330위 사이트 골랐겠나>를 실어 '국정원은 대선에 개입하지 않았다', '대북 심리 업무를 했다'는 국정원의 주장을 적극 옹호했다. 경찰 수사 과정에서 외압 논란이 불거지고 국정원 직원이 댓글을 단 내역이 나온 상태에서도 '국정원 무혐의'를 주장했던 것이다."


ⓒ 오마이뉴스


<민언련>의 지적처럼 <조선일보>는 국정원·군 사이버사령부·기무사 등의 국가기관이 동원된 불법 댓글조작 사건을 축소하거나 왜곡하는가 하면, 박근혜 정부와 새누리당(현 한국당)·국정원 등을 비호하는 논지의 기사를 계속해서 내보내며 시민사회로부터 강한 비난과 질타를 받은 바 있다. 국가기관의 불법 대선개입 의혹으로 절체절명의 위기에 빠진 정부여당을 옹호하기 위해 총력을 기울였던 것이다.

그랬던 <조선일보>가 드루킹 사건에는 정반대의 행태를 보이고 있다. 민간인인 드루킹의 불법 댓글공작 의혹을 정부여당과 연계시키기 위해 화력을 집중시키고 있는 것이다. 국가기관의 조직적인 불법 댓글공작에 적극적으로 방어막을 쳤던 당시와는 판이하게 다른 대응 방식이다. <조선일보>의 이같은 맹목적·극단적 편향성은 급기야 진위 여부조차 확인되지 않은 기사를 1면과 3면에 대대적으로 내보내는 어처구니없는 상황에까지 이르게 된다. 

드루킹의 옥중서신에는 간과해서는 안 되는 중요한 '포인트'가 존재한다. 드루킹은 댓글 추천 조작 사건과 관련해 아주 의미심장한 이야기를 털어놨다. 편지를 통해 "2012년 여름 이름을 밝힐 수 없는 한나라당측 선거관계자로부터 2007년 대선에 사용되었던 '댓글기계'에 대한 구체적인 정보를 입수하게 됐다. 이것은 블로그에도 언급했고 경찰 관계자들에게도 이야기 한 바 있다. 그때 비로소 2007년과 2012년 대선의 패배가 이 댓글기계부대의 맹활약 때문임을 알게 됐다"고 밝힌 것이다. 

<조선일보>의 행태대로 이를 곧이 곧대로 받아들이면, 2007년과 2012년 대선에서 문제의 '댓글기계'가 사용됐고 이 과정에 당시 집권당이었던 현 한국당이 조직적으로 개입했다는 의미가 된다. 드루킹의 주장대로라면 세상이 발칵 뒤집힐 어마어마한 내용이 편지 속에 포함돼 있는 셈이다. 그러나 <조선일보>는 이 중차대한 내용에는 그다지 관심이 없는 모양이다. 17·18대 대선에 집권당 차원의 대규모 댓글 공작이 전방위적으로 자행됐다는 폭로가 터져나왔음에도 불구하고 이 부분은 외면한 채 드루킹과 김 후보의 관계를 부각시키기 위해 경주하고 있다. 

지난달 23일 청와대 국민청원에 제안된 <TV조선 허가 취소 청원>이 20만 명을 넘겼다. 글이 게시된 지 불과 10여일 만이다. 청원인은 "과거부터 현재진행형으로 허위, 과장, 날조 보도를 일삼고 국민의 알 권리를 호도하는 TV조선의 종편 퇴출을 청원한다"며 "이념을 떠나 사실에 근거하지도 않는 뉴스를 생산 유통하는 방송사가 더 이상 존재해서는 안 된다"고 청원 이유를 밝혔다. <조선일보>를 향한 시민사회의 비판이 나날이 거세지고 있는 이유도 그와 크게 다르지 않을 터다.

'국정원 사건'과 '드루킹 사건'은 본질적으로 차원이 다른 문제다. 전자가 사건의 정황이 확연히 드러난 국가기관의 불법 댓글조작 사건이었다면 후자는 사실 관계가 명확하지 않은 민간인에 의한 댓글조작 사건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조선일보>는 국정원 사건은 적극적으로 축소·비호한 반면 드루킹 사건은 악의적으로 확대·왜곡시키고 있다. 이 극명한 대비는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드루킹의 사건을 기화로 인터넷 상의 댓글조작 행태가 큰 사회적 논란으로 떠오르고 있다. 매크로 등의 불법적 도구를 동원한 댓글조작 행위가 여론을 왜곡하고 민심을 뒤흔드는 심각한 범죄라는 것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그러나 여론 조작과 왜곡이 비단 인터넷 상에서만 펼쳐지는 행위일까. 논란이 되고 있는 인터넷 댓글조작 행태와 <조선일보>의 보도 행태 중, 나는 누가 더 여론을 왜곡·호도하고 있는건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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