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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드루킹 특검 합의에도 한국당이 웃지 못하는 이유

여야가 14일 드루킹 특검법과 추가경정예산안(추경)을 오는 18일 동시 처리하기로 합의했다. 두 달 가까이 공전을 거듭하던 국회는 이날 오후 늦게 본회의를 열고 6.13 지방선거에 출마하는 국회의원 4명에 대한 사직서를 처리했다. 

정치권 안팎에서는 지방선거 출마 의원의 사직 처리기한 마지막 날인 이날 본회의가 열릴 것이라는 전망이 많았다. 만에 하나 사직 처리가 안 될 경우 국회가 국민의 참정권을 박탈했다는 비난을 피할 길이 없기 때문이다. 정세균 국회의장 역시 페이스북에 "국회가 오늘 의원사직 문제를 처리하지 못하면 향후 1년 가까이 4개 지역구에 국회의원이 부재하게 되는 결과를 초래한다"며 본회의 개최를 예고한 바 있다. 

그러나 자유한국당이 이날 오전 9시부터 국회 본회의장 문 앞에 둘러앉아 농성전에 돌입하며 분위기가 험악해졌다. 이 자리에서 김성태 원내대표는 "문재인 정권과 더불어민주당이 두려운 것이 없다면, 숨기고 감춰야 할 구석이 없다면 떳떳하고 정정당당하게 특검을 받아야 한다"고 민주당을 강하게 압박했다.  

정 의장과 여야 지도부는 이날 오전 수차례 만나 절충점을 모색했지만 합의에 이르지 못했다. 더불어민주당은 지방선거 출마 국회의원 4명에 대한 사직서를 먼저 처리해야 한다고 주장한 반면 한국당과 바른미래당은 드루킹 특검법을 본회의에 동시 상정해야 한다고 맞섰다. 이런 가운데 한국당이 보좌진까지 총동원해 본회의 저지 움직임을 내비치자 국회는 일순간 전운이 감돌기도 했다. 

긴장감이 팽배하던 국회 분위기는 오후가 되면서 달라지기 시작했다. 여야 원내지도부는 타협점을 찾기 위해 분주하게 움직였고, 결국 이날 오후 극적인 합의에 이르렀다. 두 달 가까이 이어지고 있는 국회 파행에 대한 비판 여론이 극에 달한 데다가, 사직서 처리에 실패했을 경우 직면하게 될 정치적 후폭풍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었기 때문으로 보인다. 


ⓒ 뉴시스


여야가 드루킹 특검과 추경안 동시 처리에 합의하자 일각에서는 이번 합의가 한국당의 자충수라는 분석이 제기되고 있다. 드루킹 특검을 관철시켰음에도 한국당이 얻는 실익이 거의 없다는 것이다. 주지하다시피 한국당은 드루킹의 인터넷 댓글 조작 사건을 부각시키기 위해 전력을 기울여왔다. 지방선거를 두 달여 앞두고 불거진 드루킹 사건을 통해 정부여당에 타격을 입히겠다는 전략적인 의도에서였다. 한국당이 지난 대선으로까지 전선을 확대시키며 특검 도입을 강력하게 주장했던 배경이었다. 

한국당이 드루킹 특검에 사활을 걸었던 것은 이 사건이 국정원 사건과 유사한 댓글조작 사건이기 때문이었다. 국정원 사건으로 거센 국민적 저항에 시달려야 했던 한국당은 어쩌면 이 사건을 통해 반격의 모멘텀을 찾으려 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상황은 한국당의 예상대로 흘러가지 않았다. 대대적인 공세에도 문재인 대통령과 민주당의 지지율은 좀처럼 꺾일 기미가 없다. 오히려 남북정상회담 이슈가 등장하면서 한국당 등 보수야당의 지지율이 하락하고 있는 추세다. 

보수야당의 총공세에도 불구하고 정치적 효과가 미미한 것은 드루킹 사건과 국정원 사건의 본질적인 차이 때문으로 풀이된다. 민간인에 의한 댓글조작 사건인 드루킹 사건은 국정원·군 사이버사령부·기무사·경찰 등의 국기기관이 총동원된 댓글 조작과는 근본적으로 차원이 다른 문제다. 드루킹 사건이 여론을 왜곡한 중대 범죄라는 사실은 의심의 여지가 없으나 그렇다고 국가기관이 개입한 국정원 사건과 동일시하기에는 무리가 있다. 

그럼에도 한국당 등 보수야당은 드루킹 사건을 이슈화하기 위해 총력을 기울여왔다. 문제는 계속되는 정치공세에도 불구하고 국면이 한국당의 의도와는 다르게 전개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당은 '울며 겨자먹기'로 드루킹 특검과 추경안 동시 처리에 전격 합의했다. 사실상 드루킹 사건에 올인해 왔던 한국당으로서는 가장 강력한(?) 대여 공세의 무기가 사라져 버린 셈이다.

정치권에서는 준비기간 등을 고려하면 지방선거 이후에야 특검이 본격적으로 가동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지방선거를 염두해 두고 적극적인 공세에 나섰던 한국당 입장에서는 맥이 빠질 수밖에 없는 노릇이다. 그런가 하면 지방선거 이후 정치권, 그 중에서도 보수야당을 중심으로 정계개편이 급속히 이뤄질 것이라는 게 일반적인 관측이다. 이는 특검 수사가 원활히 진행된다 해도 공세의 동력이 급격히 떨어질 수 있다는 의미다. 

여야가 합의한 특검의 내용도 민주당이 크게 손해볼 것이 없다는 분석이다. 우선 여야가 첨예하게 부딪혔던 특검의 명칭과 수사 대상에서 문 대통령과 김경수 의원, 민주당의 이름이 빠졌다. 대한변호사협회가 추천하는 특검 추천 방식 역시 야당에게 자의적 추천권이 있던 기존안에서 후퇴했다는 평가다. 


ⓒ 오마이뉴스


벼르고 벼르던 특검이 '용두사미'로 끝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점도 떨떠름하다. 최순실 국정농단 사건을 제외하면 대부분의 특검이 별다른 성과를 얻지 못한 채 종료되고 말았다. 김 의원이 드루킹 일당에게 불법 댓글조작을 지시하거나 방조·묵인한 정황이 아직까지 드러나지 않고 있는 가운데, 세간에서는 문재인 정부 집권 초기에 열리는 특검 수사가 과연 제대로 될 수 있겠느냐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지방선거가 채 한 달도 남지 않은 상황에서 한국당의 대여공세 카드가 마땅치 않다는 점도 고민거리다. 이런 와중에 오는 22일 개최되는 한미정상회담, 지방선거 하루 전 열리는 북미정상회담 등 한국당을 한숨짓게 만드는 대형 이슈들이 줄줄이 대기상태다. 일각에서는 문 대통령이 북미정상회담 장소인 싱가포르로 날아가 '한··미' 혹은 '한···중'이 참여하는 종전협정에 참석할 수도 있다는 관측도 제기된다.


국정농단 사건과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으로 절체절명의 위기에 빠진 한국당에게 드루킹 사건은 모처럼 찾아온, 반격을 위한 회심의 기회였다. 한국당이 특검을 관철시키기 위해 당력을 총동원했던 이유였을 것이다. 그러나 이번 합의로 한국당이 과연 무엇을 얻었는지는 냉정하게 따져볼 문제다. 비록 특검 수용을 이끌어 냈을지는 몰라도 그를 통해 얻을 있는 실질적 이득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외려 특검의 반대급부로 일자리 추경을 확보한 민주당은 지방선거를 앞두고 쏠쏠한 실속을 챙기게 됐다. 문재인 정부 출범 1년을 맞아 진행된 각종 조사에서 상대적으로 낮게 평가받았던 부분이 바로 민생·경제 분야였다. 이번 합의로 3조 9천억원 규모의 추경을 확보할 수 있게 됨으로써 정부여당은 시급한 청년 일자리 문제 해결의 숨통을 틔이게 됐다. 결과적으로 민주당으로서는 앓던 이가 빠진 셈이 됐고, 한국당은 닭 쫓던 개 지붕 쳐다보는 격이 됐다. 드루킹 특검을 관철시켰음에도 불구하고 한국당이 전혀 웃을 수 없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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