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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독립운동하면 3대가 망해? 그래서야 되겠습니까?

배정훈 PD 트위터


제72주년 광복절을 이틀 앞둔 지난 13일, 소셜네트워크에 공유된 두 장의 사진이 큰 화제가 됐다. SBS '그것이 알고 싶다'의 배정훈 PD가 자신의 트위터에 올린 사진에 시민들의 관심이 집중된 것이다. 배 PD는 이날 "하나는 '친일파 후손의 집'? 다른 하나는 독립을 갈망하다 '빨갱이 자식'으로 평생을 숨죽여 살아온 집"이라는 글이 실린 두 장의 사진을 공개했다.

배 PD가 어떤 의도로 사진을 올렸는지는 굳이 설명을 하지 않아도 짐작이 가는 상황. 그는 친일파와 독립운동가 후손 사이의 극명한 삶의 대비를 통해 우리 사회의 불편한 단면을 환기시키고 했을 터다. 청산되지 않은 과거가 잉태한 엇갈린 운명과 그로 말미암은 우리 사회의 모순에 대해서 말이다. 

아닌게 아니라 사진 속 두 집은 건물의 외관은 물론이고 주변 환경에서도 확연한 차이를 보인다. '친일파 후손'의 것으로 보이는 집은 의리의리한 자태를 뽑낸다. 잘 다듬어진 높은 벽담에, 소위 있는 집 정원에서나 볼 수 있다는 아름드리 소나무도 몇 그루 눈에 띤다. 차고로 보이는 넓지막한 출입구는 가문의 위세를 어렵지 않게 짐작하게 만든다. 드라마에서 종종 보던 재벌 집을 그대로 옮겨놓은 듯한 모습이다.

반면, 독립운동가 후손의 집은 남루하다 못해 허름하기 짝이 없다. 이 집은 외벽은커녕 대문조차 없다. 녹과 먼지가 뒤섞인 낡고 닳은 지붕만이 가문이 겪었을 모진 풍파를 어렴풋이 말해주고 있을 뿐이다. 사진을 보고 있자니 씁쓸함과 분노가 빠르게 교차한다. 대극에 위치한 이 두 장의 사진이 대한민국 현대사의 비극을 압축적으로 표현해주고 있다는 생각에서다.

<시사IN>은 지난 2008년 광복절 특별기획 '독립군 할아버지 저는 배를 곯아요', '친일파 할아버지 고맙습니다'라는 기사에서 독립운동가와 친일파의 삶을 재조명해 사회에 큰 반향을 불러일으킨 바 있다. 독립운동가와 그 가문들이 해방 이후에도 사회의 기득권으로 편입한 친일파들에 의해 탄압을 받았다는 사실을 후손들의 증언과 함께 전격 공개한 것이다.

<시사IN>의 기사에서 특히 눈길을 끌었던 것은 해방 이후 독립운동가와 친일파 후손들의 삶을 비교 분석한 부분이었다. <시사IN>은 2008년 8월 당시 국가보훈처에 등록된 독립유공자 223명, 유족 6283명 중 직업이 없는 사람이 무려 60%가 넘는 것으로 밝혀졌다고 보도했다. 그들 중 고정수입이 있는 봉급생활자는 고작 10%를 조금 넘는 수준이었으며 그마저도 질나쁜 직업이 태반이라고 전했다. 그러면서 유족의 55% 가량이 중졸 이하이고, 두 집 중 한 집이 중병을 앓고 있다는 사실도 덧붙였다.

반면 친일파 후손의 삶은 그와는 완전히 대조적이었다. 일제로부터 귀족 작위와 은사금, 은사 토지를 하사받은 친일파의 후손들 대부분이 사회 각계로 진출해 엄청난 기득권을 누리며 승승장구하고 있었다. 부와 가난이 후대에게 되물림되는 '부익부 빈익빈' 현상이 독립운동가와 친일파의 후손들에게도 예외없이 적용되고 있었던 것이다.


ⓒ 오마이뉴스


보편적 상식을 가진 한국인이라면 화가 머리 끝까지 치밀어야 정상일 이 기형적 상황을 만든 책임은 전적으로 국가에 있다. 해방 이후 들어선 이승만 정권은 친일파를 '단죄'하지 않았다. 그것이 우리 사회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는 따로 설명이 필요없는 문제다. 일신의 영달을 위해 나라와 민족을 등진 친일파의 후손들과 나라를 위해 모든 것을 헌신했던 독립유공자 후손들의 엇갈린 삶이 이를 너무나도 잘 설명해주고 있는 탓이다.

해방 이후 독립유공자에 대한 서훈과 보훈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던 것도, 그래서 독립유공자의 후손들이 극심한 생활고에 빠지는 곤궁함에 처하게 된 것도 그와 무관치 않다. 친일파와 그 후손들이 기득권이 돼버린 이 역설적 상황이 친일부역자의 단죄는 물론이고 독립유공자에 대한 정당한 보훈체계의 확립을 가로막았던 주된 요인 중의 하나였음은 물론이다.

실질적 보훈 정책의 출발점이라 할 수 있는 국가원호법은 1962년이 되어서야 작동됐다. 그마저도 6.25 참전 용사들에 대한 예우를 논의하는 과정에서 포함된 측면이 강하다. '독립유공자예우에관한법률'도 94년에서야 '국가유공자예우에관한법률'에서 분리됐다. 그 사이 역사적 고증을 위한 자료가 사라지는 것은 물론이고 독립유공자와 이를 증언해주어야 할 사람들 역시 유명을 달리했다 .


보훈 정책 역시 현실과는 동떨어진 불합리한 규정들이 상당하다. 이는 독립유공자와 그 유족들의 보훈을 위해 제정된 '독립유공자예우에관한법률'만 보더라도 도드라진다. 현행 법률상 후손의 범위는 자녀와 손자녀로 제한되어 있고, 보훈급여는 이 가운데 한 명만 받도록 되어 있다. 이마저도 독립유공자 지정이 늦게 돼 자녀와 손자녀가 사망한 경우는 혜택을 받지 못했다.

이같은 불합리를 개선하고자 지난 2011년  말 서훈이 인정되는 시점에 독립유공자의 자녀나 손자녀가 모두 사망한 경우 직계비속 중 한 명에게 보훈혜택을 주는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했지만 그 역시 비현실적이라는 지적이다. 상황에 따라 보훈혜택을 받는 세대의 수가 달라지는 문제가 발생할 수도 있고, 무엇보다 1명에게만 주어지는 현행 보훈혜택 규정상 다른 자녀나 손자녀에게는 해당사항 자체가 아예 없기 때문이다.

이밖에도 보훈 규정과 관련해 터져나오는 독립유공자 후손들의 탄식은 한두가지가 아니다. 보훈혜택과 기초생활수급 규정이 충돌해 경제적 어려움을 겪는 경우도 있으며, 사회주의 운동 이력으로 서훈에서 탈락하는 경우도 있다. 친일파가 버젓이 독립유공자로 서훈을 받는 일이 발생하는가 하면, 심지어 유공자 사망 시 영구용 태극기를 택배로 받는 어이없는 일이 벌어지기도 했다(2017년 5월26일부터 국가부담으로 개선). 모두 비정상적인 보훈 체계가 빚어낸 우리 사회의 부끄러운 치부다.

"이제 독립유공자 1만5천여 분 중에 생존해 계신 분이 쉰 여덟분밖에 되지 않는다. 한 분이라도 더 살아계실 때 제대로 보답해야 한다. 독립유공자 3대까지 합당한 예우를 받도록 하겠다. 독립운동을 하면 3대가 망하고, 친일을 하면 3대가 흥한다는 말이 사라지도록 하겠다. 지금까지는 자녀·손자녀 보상금이 선순위자 1인에게만 지급돼 다른 자녀, 손자녀에게 도움을 주지 못했는데, 앞으로 보상금은 현재대로 지급하면서 생활이 어려운 모든 자녀, 손자녀를 위해 생활지원금 사업을 새로 시작하고 500여억 원을 투입하겠다."

문재인 대통령이 14일 독립유공자와 유족을 청와대로 초청해 격려 오찬을 하는 자리에서 밝힌 내용이다. 독립유공자의 헌신과 희생에 걸맞는 국가적 예우를 약속한 것이다. 사회적 모순과 불합리한 보훈 규정으로 인해 상처받았던 유족들의 설움과 고통을 이제부터는 국가가 보듬어 안겠다는 것이어서 의미가 깊다. 독립유공자와 친일파 후손들의 기막힌 현실을 생각하면 더더욱 그렇다.

독립유공자들은 오늘의 대한민국을 있게 만든 주역이자, 역사의 증인들이다. 그들은 공동체의 존경과 찬사를 받을 권리가 있고, 국가는 그들의 빛나는 업적에 걸맞는 처우를 해야 할 책임이 있다. 오는 2019년은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수립된지 100주년이 되는 해다. 문 대통령의 다짐처럼, 적어도 "독립운동을 하면 3대가 망한다"는 개탄스러운 말이 더 이상 통용되지 않는 사회가 되기를 희망한다. 국가를 위한 희생과 헌신을 굴욕과 핍박으로 되갚는 나라에 공동체가 기대할 것은 아무 것도 없기 때문이다.

광복 72주년, 독립유공자와 그 유족에게 다시 한 번 머리 숙여 깊은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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