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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대한민국 고위공직자에게 위장전입이란?

위장전입. 대한민국에서 고위공직자가 되기 위해서 반드시 거쳐야만 하는 필수코스입니다. 얼마 전 인사청문회를 가볍게 통과한 네 명의 장관 후보자 역시 위장전입 전력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박근혜 정부는 위장전입 전력을 인정한 13명의 고위공직자 후보들 중 12명을 임명했습니다. 이 정도면 가히 압도적인 수치입니다. 무려 40여가지에 달하는 의혹들로 눈물을 머금고 물러나야 했던 김병관 국방부장관 후보자만 아니었다면 100%도 가능했을 겁니다.

그가 요즘 임명되는 고위직 인사들의 면면을 보았다면 속 꽤나 쓰렸을 겁니다. 변별성을 느낄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김병관 후보자와 이완구 총리가 도대체 뭐가 다를까요. 저 둘의 차이를 발견하는 것은 윌리를 찾는 것만큼이나 어렵습니다. 그런데 '도진개진'인 저 두 사람의 오늘날의 모습은 천양지차입니다. 한 사람은 총리가 되어 후안무치하게도 부패와의 전쟁을 선포하고 있고, 다른 한 사람은 부패하고 부도덕한 최악의 공직후보로 기억되고 있습니다. 이 극명한 대비는 우리사회의 비정상성을 보여주는 결정적 장면입니다.





대한민국에서 위장전입은 어느새 '장관의 자격', '고위공직자의 품격'이 되어버린 듯 합니다. 그러나 위장전입이 자격과 품격으로 둔갑한다고 해서 그 범죄행위까지 사라지는 것은 아닙니다. 위장전입이 범죄인 이상 어떤 이유를 갖다 붙인다 하더라도 저들이 범죄를 저질렀다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습니다. 굳이 좋게 표현한다면 유능한 범죄자 정도가 될겁니다. 동일한 범죄를 저지른, 이 땅을 살아가는 수많은 범죄자들에게 서광이 비치는 순간입니다.

'범죄자가 어떻게 공직에'라고 생각할지도 모르겠지만 지레 겁먹거나 낙담할 필요는 없습니다. 대한민국에서는 가능합니다. 물론 유능해야 하고, 사회적 명망이 어느 정도는 있어야 합니다. 여기에 약간의 전문성까지 갖추고 있다면 더할 나위가 없습니다. 위장전입, 부동산 투기, 탈세, 논문표절, 군면제 등의 각종 범죄기록은 크게 걱정할 필요가 없습니다. 세상이 바뀌었습니다. 이 모든 것이 이명박 전 대통령과 박근혜 대통령의 눈부신 활약 덕분입니다. 공직을 염두해 두고 있는 사람이라면 저 두 사람의 공을 잊어서는 안됩니다.

10년 전만 해도 위장전입 전력이 있다면 고위공직에 오른다는 것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새누리당의 전신인 한나라당의 엄중한 공직임용기준을 통과하는 것이 불가능했기 때문입니다. 당시 한나라당은 도덕성이야말로 고위공직자가 갖추어야할 최고의 덕목으로 생각하는 대쪽같은 정당이었습니다. 그 결과 2002년 장상장대환 국무총리 후보자가 위장전입때문에 눈물을 머금어야 했습니다. 유시민 전 의원은 건보료를 체납했다는 엄청난 사실이 발각되어 하마터면 보건복지부장관에 오르지 못할 뻔 했습니다. 심지어 교통법규를 위반한 사실이 들통나 곤욕을 치른 후보자도 있습니다. 생각만해도 식은땀 나는, 정의와 도덕이 강물처럼 흐르던 시절이었습니다.

그 때에 비하면 지금은 한결 수월해 졌습니다. 위장전입은 말할 것도 없도, 부도덕한 삶을 살아온 것 쯤은 별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단지 흉악범죄만 아니면 됩니다. 그 나머지는 박 대통령과 새누리당이 다 알아서 처리해 줄 겁니다. 지금껏 임명된 고위공직자들 대부분이 이 과정을 거쳤습니다그저 버티기만 하면 됩니다. 세간의 비난과 여론의 추이 쯤은 무시해야 합니다. 무지몽매한 그들이 뭘 알겠습니까. 부끄러움과 굴욕은 찰나이나 영광과 명성, 명예와 지위는 대대손손 영원합니다.


여기까지 오셨으면 가슴 속에서 꿈틀거리는 무엇인가가 있어야 정상입니다. 정의와 상식, 원칙과 기준을 무시하고 파괴하는 행위에 대한 분노가 솟구쳐야 마땅합니다. 아무리 선의로 생각한다 해도 박근혜 정부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공직임용이 보편적 국민정서와 부합한다고 말할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부도덕한 삶을 살아온 사람들에게 국가와 사회는 면죄부가 아닌 책임을 물어야 마땅합니다. 그러나 대한민국에서는 정반대의 상황이 연출되고 있습니다. 부도덕한 범죄가 출세와 명망을 얻기 위한 수단이자 방법으로 인식되는 것이죠.






현행법 상 명백한 범죄행위인 위장전입을 관행이자, 흠집 정도로 생각하는 박근혜 정부의 관대함으로 인해 지난 10년간 처벌받은 5000여 명의 국민들만 배가 아프게 됐습니다. 필자는 고위공직자와 일반 국민들에게 다르게 적용되는 법규정이 있다는 소리는 일찌기 들어보지 못했습니다. 법이 만인에게 공평하고 평등하게 적용되어야 한다는 건 상식입니다. 보편적 상식이 통용되지 않는 사회. 대한민국의 보편적 상식은 지금 크게 흔들리고 있습니다.

"나라의 국정 책임은 대통령이 지고 나라의 운명은 국민이 결정하는 것입니다. 저는 깨끗하고 투명하고 유능한 정부를 반드시 만들어 국민 여러분의 신뢰를 얻겠습니다"

저 발언의 당사자가 박근혜 대통령이라는 사실은 이제 전혀 놀라운 일이 아닙니다. 깨끗하고 투명한 정부를 만들기 위해 그녀는 유능한 범죄자들을 임명하고 있습니다이 어처구니없는 이율배반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요. '신뢰'라는 빛나는 수사가 이처럼 가볍고 경박하게 여겨지다니 정말 기가 찰 노릇입니다.

요즘 초등학교에서는 학생회장 선거가 한창이라 합니다. 각종 공약들을 제시하며 선거전에 임하는 모습이 어른들의 그것에 못지 않다고 합니다. 아이들의 눈에 어른들의 세계는 과연 어떻게 비춰질까요. 어른으로서, 아이들의 아빠로서 한없이 부끄럽기만 합니다.



이미지 출처 : 구글 이미지 검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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