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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

대한민국 사회의 민낯을 보여준 충암고 급식비리

지난 4월 급식비를 내지 않은 사람은 급식을 먹지 말라는 무지막지한 훈육으로 여론의 지탄을 받았던 충암학원이 이번에는 급식비리로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들고 있다. 서울시교육청의 감사 결과 충암고등학교가 4억원 가량의 급식비를 횡령한 것으로 드러났기 때문이다. 돈 없으면 굶으라고 으름장을 놓던 충암학원이 실상은 아이들의 급식비를 뒷구멍으로 '삥땅'치고 있었다. 졸렬하고 치졸하기 그지없는 어른들의 세상을 아이들이 어떻게 받아들일지 걱정이 앞선다. 부끄럽고 부끄럽다.

때로 아이들은 어른의 스승이자 교사다. 보고도 믿지 못할 학교 측의 급식 비리를 목격한 일단의 학생들은 이 사실을 동료 학우들과 세상에 널리 알리기로 마음 먹었다. 자신들의 건강과 직결되는 문제를 더 이상 두고 볼 수만은 없었다는 그들은 누구보다 일찍 등교해 학교급식 비리의 실태가 적혀있는 유인물을 학우들에게 나누어 주었다.

입시를 코 앞에 두고 급식 비리를 알리기 위해 발벗고 나선 학생들을 향해 학우들과 교사, 학부무들의 걱정이 잇따랐다. 그러나 그들은 부담스럽다는 생각보다 자신들의 알권리가 더 중요하다는 뜻을 피력했다. 실력 향상과 경쟁력 확보에 치우친 교육을 받아온 학생들이, 경쟁과 갈등, 불평등과 차별을 통한 서열화 교육에 노출된 학생들이 불의에 맞서 자신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이 사회가 온전히 작동할 수 있는 기저에는 저와 같은 보편적 상식과 정의에 대한 갈급함이 놓여 있다. 귀하고 고마운 일이다.





교내에서 법사회 동아리 활동을 하고 있는 이 학생들의 증언에 따르면 그동안 학생 대부분이 급식의 양이 부족하다고 느끼고 있었으며, 위생문제 또한 많았다고 한다. 학생들의 증언은 충암고등학교의 급식비리를 폭로했던 교사와 감사 과정에서 열악한 급식 실태를 고백했던 영양사의 진술과도 일치한다. 이는 서울시교육청의 감사 결과를 받아들일 수 없다며 법적 대응을 시사한 충암학원의 입장과는 상반된다.

서울시 감사원의 감사결과와 교사와 영양사, 학생들의 폭로를 부인하고 있는 충암학원의 모습은 우리에게는 대단히 낯익은 풍경이다. 마치 대한민국 사회의 축소판을 보는 듯한 착각마저 들 정도다. 충암학원의 급식 운영 문제를 폭로했전 한 교사는 이로 인해 학교측으로부터 전방위적인 압박을 받았다고 고백했다. 학교 측의 급식운영 문제를 공개적으로 비판했던 그에게 학교와 학교의 위탁을 받은 업체, 학부모들의 압력이 들어왔던 것이다.

학교 측의 급식비리 의혹을 제기했다는 이유로 그는 학교와 계약을 맺은 위탁배송업체로부터 명예훼손과 업무방해 혐의로 고소를 당하기도 했고, 검찰의 무혐의 처리에도 불구하고 학교 측으로부터는 징계를 받을 위기에 처해 있다. '공익신고자 보호법'에 따라 보호받아야 할 입장임에도 학교 측이 징계 절차를 밟고 있기 때문이다. 이같은 모습은 어느새 우리 사회를 관통하는 풍조가 되어버린 듯 하다. 사회와 조직의 부정 비리를 고발한 공익신고자와 내부고발자가 오히려 사회와 조직으로부터 강력한 보복과 응징을 받는 장면은 이제 우리 사회에서 일상이 되어 버린 지 오래다.





국정원의 불법대선개입 사건은 이같은 우리 사회의 어이없는 신상필벌 흐름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예다. 당시 국정원 심리전담반의 조직적 선거개입을 내부고발했던 국정원 직원 3명은 국정원의 고강도 색출작업 끝에 모두 파면당했다. 공익에 부합하는 신고자는 법으로부터 보호받는다는 '공익신고자 보호법'조차 그들을 보호해주지는 못했다. 김용판 전 서울경찰청장의 수사 외압을 폭로한 권은희 수서 경찰서 과장 역시 뚜렷한 이유없이 전보조치 됐으며, 당시 국정원 사건을 진두지휘했던 채동욱 검찰총장, 윤석열 수사팀장, 박형철 수사부팀장 등 3인방은 옷을 벗거나 한직으로 물러나야 했다.

그런데 이들과 달리 권력의 편에 섰던 사람들은 하나같이 모두 영전을 하거나 승진을 했다. 김용판 청장과 함께 사건을 축소 은폐한 혐의를 받았던 최현락 당시 수사부장은 경찰청 수사국장으로, 이병하 당시 수사과장은 여주 경찰서장으로 각각 영전했고, 지난 대선 직전인 2012 12 16일 경찰의 중간수사결과를 발표하며 "(댓글이) 삭제된 흔적은 있으나 혐의사실과 관련이 없다"고 말해 박근혜 후보의 대선 승리에 일조했던 김수미 분석관 역시 수사관으로 승진했다. 그렇게 보면 국정원 사건은 이 나라에 '정의는 없다'는 사실을 대내외에 선언한 한편의 드라마나 마찬가지였다.

논란이 되고 있는 충암학원의 급식비리 역시 국정원 사건과 정확히 맥을 같이하고 있다. 부정과 비리를 폭로하며 진실을 위해 분투하는 사람들이 오히려 손가락질을 받고 외압에 노출된 채 시련을 겪고 있는 반면, 부정 비리를 일으킨 주범들은 사건을 무마하기 위해 갖은 수단과 방법을 동원해 진실을 덮으려 하고 있기 때문이다.





정의와 상식이 무너지고, 불의와 부정이 득세하는 국가가 쇠락하는 것은 역사가 증명하는 불변의 진리다. 문제는 이와 같은 망국의 풍조를 다름 아닌 정부 여당이 앞장 서서 조장하고 있다는 사실에 있다. 예로 들었던 국정원 사건도 그렇고, 부정 비리의 온상인 사학재단의 족벌 경영체제의 폐단 역시 현 박근혜 대통령과 새누리당이 참여정부 시절 추진된 사학법 개정을 결사반대했기 때문에 벌어지고 있는 일이다. 이는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대한민국은 지금 심각한 위기에 직면해 있다. 아무리 살펴 보아도 정의는 고사하고사회공동체를 위한 최소한의 상식조차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2015년의 대한민국은 바른 말을 하는 사람들이 '종북', '좌파', '빨갱이'가 되는 세상이고, 부정과 비리를 바로 잡으려는 사람들이 오히려 피해를 보는 세상이다. 그럼에도 이 나라의 대통령과 집권여당은 앵무새처럼 법과 원칙을 이야기하고, 정의와 공정을 말한다. 소들이 웃는 소리로 세상이 들썩거리고 있다는 사실을 저들만 모르고 있다. 요지경이 따로 없다.



이미지 출처 : 구글 이미지 검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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