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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대통령의 미생 언급에 빠져 있는 몇가지

'미생'(未生)은 바둑 용어다. 가로 세로 19줄로 이루어진 바둑판 위에 놓여진 돌들은 두 집이 나야 비로서 살 수 있는 자격이 주어진다. 두집을 내지 못하면 사석 즉 죽은 돌이 되고, 두 집을 내면 완생 곧 살아있는 돌이 된다. 이에 반해 미생마의 생사 여부는 아직 불분명하다. 살아있는 것도 그렇다고 죽어있는 것도 아니다. 살아있는 것처럼 보여도 산 것이 아니요, 죽어 있는 것처럼 보여도 죽은 것이 아니란 얘기다. 생사 여부가 정해지지 않는 상태, 완생할 여지가 남겨져 있는 상태, 우리는 이를 미생이라 부른다. 





아직 살아있지 않는 돌, 미생. 어중간하고 애매하기만 한 이 상태는 희망과 절망의 경계를 아슬아슬하게 오가는 우리네 인생의 또 다른 이름이다. 누군가에게 미생은 희망의 찬가일 지도 모르고, 다른 누군가에게는 끔찍한 절망의 애가로 인식될 지도 모른다. 살아있는 것도, 그렇다고 죽어있는 것도 아닌 인생, 할 수 있다는 가능성과 해도 안되는 현실 속에서 우리는 살기 위해 매일매일 치열한 사투를 벌인다. 


사느냐 죽느냐, 햄릿의 고뇌가 담긴 깊은 탄식이 매 순간 우리의 삶을 시계추처럼 왔다갔다 하고 있다. 드라마 미생이 사람들의 뜨거운 관심과 환호를 받고 있는 것은 그 안에 이 시대의 치열한 일상이 고스란히 녹아있기 때문일 것이다. 


원 인터내셔널의 계약직 사원 장그래. 그를 통해 우리는 우리 시대 젊은 청춘들이 마주한 냉혹한 현실을 목도한다. 계약직에 대한 편견과 선입관을 보기 좋게 깨뜨리는 장그래의 맹활약에도 그가 정규직이 될 가능성은 없다. 오차장을 향해 "이렇게만 하면 되는 거죠. 이렇게만 하면, 정규직"이라고 되뇌이는 장그래의 자조섞인 읊조림은 그런 면에서 슬픈 애가다. 


오차장 역시 이 같은 사실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다. 장그래의 정규직 전환을 위해 회사의 이곳 저곳을 드나들지만 돌아오는 답변은 한결같이 "규정 때문에, 시스템 때문에, 전례가 없기 때문에"라는 불가의 메시지 뿐이다. 현실은 지독하리만큼 냉정하다. 현실은 낭만이 끼여들 여지를 좀처럼 내어 주지 않는다. 최전무와 손을 잡기 전까지 그는 대책없는 희망과 무책임한 위로 따위에 감정을 소비하지 않았다. 이것이 얼마나 무의미한 일인지 경험으로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경험이 없는 사람은 다르다. 





박근혜 대통령이 어제 드라마 '미생'을 언급했다. 나는 대통령의 발언을 듣고 좀처럼 잠을 이루지 못했다. 잠이 오지 않은 건 솔직히 말해 분노가 쉽사리 가라앉지 않았기 때문이다. 현실과 적어도 수 십억 광년은 떨어져 있는 듯한 대통령의 인식에 이 시대의 젊은이들이 안쓰럽다는 생각만 들었다. 대통령의 발언은 대책없는 희망과 무책임한 위로로 가득했다. 그렇기에 아무 짝에도 쓸모 없는 그렇고 그런 말의 성찬들만 무의미하게 난무했다. 


박 대통령은 어제(18)일 오후 청와대에서 제6차 청년위원회를 주재했다. 이 자리에서 박 대통령은 "'미생'의 뜻이 바둑에서 아직 완전히 살지 못한 돌이라고 하지 않나. 이것을 긍정적인 의미로 생각하면 가능성이 아직 많이 있다고 볼 수 있다""시행착오도 있겠지만 젊은이라는 무한한 가능성을 바탕으로 남들보다 치열하게 고민하고 노력한다면 여러분의 미래는 바둑에서 말하는 완생마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대통령이 이날 발언은 좋게 받아들이면 덕담의 의미다. 힘들지만 참고 노력하면 언젠가 좋은 날이 오지 않겠냐는 어른들의 격려라고 이해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는 한 나라의 국정을 책임지고 있는 대통령의 입에서 나올 소리는 아니다. 현실감이라고는 눈꼽만큼도 찾아볼 수 없는 공치사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더구나 무한경쟁의 신자유주의를 통해 독점 자본주의를 극대화시키고, 재벌과 부자 기득권을 위한 경제시스템을 구축하며 비정규직과 저임금, 청년실업 및 구직난을 양산한 주체가 바로 이명박 정부와 박근혜 정부다. 적반하장도 유분수라더니 이 뻔뻔함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도무지 모르겠다. 





생각해 보면 이 뻔뻔함은 소위 국정을 운영한다는 사람들에게서 흔히 발견되는 중증질환의 하나다. 이명박 정부 시절의 일이다. 당시 설동근 교육과학기술부 차관이 한 방송에 출연해서 비싼 등록금에 대해 인터뷰를 했던 내용은 아직도 잊혀지지 않고 필자의 뇌리에 강렬하게 남아 있다. 그는 "젊어서 하는 고생은 옛날부터 사서도 한다라는  인식이 있듯이 용기를 가지고 최선을 다한다면..."이라고 말해 필자를 경악시켰다. 


세상에나. 비싼 등록금을 마련하기 위해 최저임금을 받으며 밤을 세워 아르바이트를 하는 학생들이 정부의 반값등록금 약속을 지켜달라는 읍소를 하고 있는 상황에서 저 따위 말을 할 수 있는 무개념은 도대체 어디서 나올 수 있는 것인지 나는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런데 그의 무개념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그는 또 "굳이 등록금을 마련하기 위해 어떤 아르바이트를 한다기보다 든든학자금을 잘 활용하고 그렇게 부담을 줄여가면서..."라며 천연덕스럽게도 학자금 대출이 능사인 것처럼 말을 이어 갔다. 대한민국 교육과학기술부 차관에게는 취업난 속에 학자금 대출이 생활고로 이어지고 있는 암담한 현실따위는 안중에도 없었던 것이다. 


사태의 본질은 외면하고 관련 사실은 호도하면서도, 대책없는 희망과 무책임한 위로만 남발하고 있다는 측면에서 당시 교육과학기술부 차관이나 현 박 대통령의 상황인식은 쌍둥이처럼 똑같다. 국정을 책임지고 운영해야 할 위정자들이 하나같이 이런 태도와 인식으로 무장하고 있다는 것은 국가로 보나 국민으로 보나 불행하기 그지없는 일이다. 


저들은 자신들이 만들어 놓은 시스템의 오류와 오작동에 대해서는 인정도 그렇다고 책임도 지지 않으려 하면서, 이를 상황이나 환경 탓, 개인의 무능과 노력 부족 등으로 몰아간다는 공통점이 있다. 젊어 고생은 사서도 한다, 남들보다 노력하면 길이 있다, 안되는 건 네가 못나서 그런 거다, 등등은 저들이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흔히 사용하는 상투적인 표현들이다. 


물론 저 표현들이 통용되는 시절은 분명히 있었다. 경제 성장기의 그 즈음에는 -비록 그 조차도 위장자들의 고도의 기만이 혼용된 개념이었지만- 개별 주체의 노력 여하에 따라 개천에서 용이 날 수 있는 여건이 제공되기도 했다. 그러나 지금은 냉정하게 말해 그런 시대는 지나갔다. 이는 패배주의도 염세주의도, 루저들의 자기합리화도 아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사회의 냉정한 현실일 뿐이다.





장그래를 보라. 한번 계약직은 영원한 계약직일 뿐이다. 이는 드라마를 위한 극적 장치가 아니라 우리가 처해있는 엄연한 현실이다. 재계의 입장을 받아들여 노동시장의 유연화를 적극 추진한 이명박 정부와 박근혜 정부의 노동 정책으로 말미암아 비정규직과 기간제, 시간제 일자리가 전체 임금 노동자의 절반을 넘어선지 이미 오래다. 이는 임금 노동자의 절반이 넘는 사람들이 장그래의 고민을 똑같이 안고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남들보다 노력이 부족해서, 치열한 고민을 하지 않아서, 긍정적이지 못해서 상황이 이렇게 악화된 것이 아니다. 이는 시스템이 처음부터 잘못 설계되어 있는 탓이며, 시스템을 운용하는 사람들의 철학과 비전이 다수 공동체가 아닌 소수를 위해 기능하고 있기 때문에 빚어진 일이다. 


박 대통령의 '미생' 발언이 화가 나는 이유는 희망과 위로를 말하면서도 정작 그 안에 '희망' '위로'가 빠져 있기 때문이다. 박 대통령이 청년들의 암담한 현실과 미래를 진심으로 걱정한다면 대책없는 희망과 책임없는 위로로 그들의 염장을 지를 것이 아니라 국정의 최고통수권자 답게 행동으로 보여주는 방식이어야 한다. 장그래를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걸고 있는 오차장의 모습처럼 말이다. 그것이 결여되어 있는 대통령의 모습은 위선이자 기만에 불과할 뿐이다.




이미지 출처 : 구글 이미지 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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